Lv.99 Princess of Black Flame RAW novel - Chapter 73
73. 온전치 못한 귀환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언노운 게이트 내부.
“제, 젠장! 경호야! 석경호!”
“알고 있으니 보채지 마!”
우우우웅─
대기가 진동했다. ‘스트라이커’ 석경호의 양발에서 마치 수증기를 닮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경각(硬脚).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른 그가 돌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뻐어어억!
몬스터의 목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풍차처럼 돌아갔다. 줄곧 틈을 노리고 있던 준환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패시브 ▶ ‘약점 포착’ 활성화. 단숨에 적의 급소를 파악합니다. 공격 성공 시 치명타 확률이 극대화됩니다.]번쩍!
준환이 쥔 나이프가 짧고 강렬하게 빛을 발산했다.
푸우우욱!
……툭.
목이 꺾인 채 가슴이 뚫려 버린 몬스터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축하합니다! 마지막 네임드를 해치웠습니다!] [곧 출구가 활성화됩니다.] [ – – – Loading – – – ]“하아…… 하아…….”
준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을 응시했다.
내용만 보면 일반 게이트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난이도는 그렇지 못했다. 언노운 게이트 하나 해결하는 데에 S급 헌터 1명, 그리고 A급 헌터 5명이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
나이프 표면에 묻은 보랏빛 혈액을 닦아 낸 준환은, 시스템창 오른쪽 아래 ‘TIME’ 항목에 손을 가져갔다.
이 멤버라면 웬만한 S급 게이트도 5시간 내에 클리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8시간이라니.
‘한 명이라도 부족했더라면 위험할 뻔했군.’
보통 군단의 멤버는 2인 1조로 움직였다. S급 게이트의 경우 3인 1조. 이렇듯 여섯 명이나 한꺼번에 출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지난 부산 언노운 게이트 당시, 불멸의 출혈도 이해가 갔다.
‘이것이 언노운 게이트.’
발밑에 쓰러진 몬스터의 시체를 복잡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준환 곁에 불쑥 다가온 경호가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배준환, 뭐 해? 어서 챙길 거 챙기고 나가야지. 타임 보너스가 끝나기 전에 잽싸게 움직여.”
“아,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언노운 게이트인데 좀 수확을 기대해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어디에도 전리품으로 쓸 만한 아이템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언노운 게이트는 난이도도 보상도 제멋대로라고는 들었지만…….
‘이런 경우도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의아했다. 하다못해 몬스터의 잔뼈 따위의 잡다한 아이템이라도 떨어져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야. 원래 언노운 게이트란 게 이런…….”
그때였다.
퍼어어엉─!!!
갑작스레 그들 앞에 무지개 빛깔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분명, 민주가 평소 소지하고 다니는 연막탄이었다.
“마, 마스터?!”
켈록켈록, 놀란 길드원들이 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폈지만 요란한 색감의 연막 탓에 작은 소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 한 마리가 남았어.”
어디선가 민주의 나지막한 경고가 들려올 뿐이었다.
“네? 그게 무슨.”
분명 마지막 네임드를 처치했다. 시체도 확인했고 클리어 메시지도 팝업됐다. 그런데…….
“나가.”
철컹!
어디선가 탄알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
* * *
민주와 약속한 토요일.
딩동─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 있지 않아 달칵, 문이 열렸다.
“어머, 유라 씨. 벌써 오셨어요?”
함수현. 군단 길드원 중 하나로, 민주에게 잡혀 있는 은하에게 다가와 마실 것을 권하던 이였다.
자신은 표면적인 부길드장일 뿐 실제로 그 정도 권력을 가진 것은 수현이라던 준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네. 민주 있나요?”
“아마 지금 오고 계실 거예요. 먼저 들어와 계시겠어요? 혼자 집 지키느라 따분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은하는 수현과 함께 본부 내부로 들어섰다.
지상층은 그리 넓은 평수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전보다 휑한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그녀를 제외한 여섯 명 전원이 포항으로 출장을 간 모양이었다.
수현은 테이블 위에 마실 것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내준 뒤,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얘들은 대체 뭐 하느라 연락 한 통이 없어? 벌써 출발했을 시간인데.”
토독토독토독.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듯 수현은 휴대전화 액정을 빠르게 연타하더니 곧 그것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날 만큼 단호하게 엎어 놨다.
“어디서 또 관광이라도 하고 있나 봐요. 하여간 위기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수현을 보며 은하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늘 그런가 봐요.”
“어휴, 말도 마요. 기왕 포항에 갔겠다, 내친김에 바다 구경하러 갔을걸요? 백 퍼센트지, 뭐.”
수현은 쯧쯧 혀를 찼다.
“마스터는 열다섯이니 그렇다 쳐도 다 큰 녀석들이 원. 말리지는 못할망정.”
팔짱을 낀 채 씩씩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철없고 어린 동생들을 이야기하는 맏누이처럼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은하는 그들이 서로를 ‘패밀리’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알 것 같기도 했다.
“금방 돌아오겠죠. 괜찮아요. 조금 기다려도.”
수현이 내어 준 과자를 하나 집어 든 은하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현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네, 뭐…… 마스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라 씨와의 약속을 어길 리는 없을 테니까.”
수현은 은하를 따라 소파에 앉아 과자를 집었다. 이제 더 이상 화를 내진 않았다.
“하여튼 마스터도 그래요. 어찌나 누나, 누나 노래를 부르는지 길드원으로서는 조금 질투가 날 정도라니까.”
그 후 수현은 은하가 지루하지 않도록 화제를 바꿔 가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된 화제는 군단 길드원 7명의 시시콜콜한 일상이었다.
놀라운 점은 한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는 동안, 수현은 단 한 번도 은하의 드레스나 양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F급 컨셉 헌터로 알려진 은하를 업신여기거나 깔보지도 않았다. 최근 도마 위에 올랐던 자갈치시장이나 제천대성의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고.
그래서일까.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은하는 의자 쿠션에 등을 기댄 채 편안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Rrrrr…….
“아, 잠시만요.”
준환의 식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다 만 수현이 부르르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야,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빽 소리를 지른 수현이 기관총처럼 다다다닥, 잔소리를 쏟아 냈다.
“유라 씨 벌써 와 있단 말이야. 마스터도 그래. 설마 오늘 약속 잊으신 거 아니지?”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현은 “여보세요?” 하며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다시금 스피커에 귀를 가져갔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여보세요? 듣고 있어, 배준환?”
그때, 수현의 얼굴에 실금이 번졌다.
“……잠깐, 너 울어?”
조용히 음료를 홀짝이던 은하가 힐끗 그녀에게 시선을 옮긴 순간.
툭.
수현의 손아귀에서 휴대전화가 힘없이 떨어졌다.
* * *
타닷─
군단 본부 근처 대학 병원에 도착한 수현은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어갔다.
‘아무래도 잠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녀석들이 조금 다친 모양이라.’
불과 몇십 분 전, 준환의 전화를 받은 수현이 다급히 겉옷을 챙기며 그리 말했다.
‘다치다니요?’
‘사실 이번 포항 임무, 언노운 게이트 공략이었거든요.’
그제야 은하는 그들이 향한 곳이 언노운 게이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자리서 멈칫 굳어 버린 은하를 향해 수현이 말했다.
‘함께 가시겠어요?’
‘저도…… 요?’
‘네. 유라 씨께서는 마스터 공인 우리 패밀리니까요.’
─그래서 일단 따라오긴 했는데.
은하는 앞서 뛰어가는 수현의 등을 힐끗 쳐다보았다.
원래 엄살이 심한 녀석들이라고, 이번에도 분명 꾀병일 거라던 말과는 달리, 병원에 도착한 수현은 굉장히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조금 떨어진 곳에 익숙한 녹색 망토 무리가 보였다. 패밀리였다.
수현은 “야, 이……!” 하고 욕설을 억누르며 그들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딱!
그러고는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준환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병원에 있다길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 심장이야.”
수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투는 공격적이었지만, 내내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입매가 이제야 비로소 느슨해지는 것이 보였다.
“봤죠, 유라 씨? 제가 뭐라 했어요? 녀석들 엄살 엄청 심하다니까. 딱 봐도 멀쩡하구만 병원은 무슨 병원.”
뒤이어 수현을 따라온 은하 역시 그들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다섯 명 모두 군데군데 생채기라든지 망토의 흙먼지가 대단하긴 했지만, 딱히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어떻게?’
그들은 A급 헌터로만 구성된 엘리트 집단이긴 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 모두가 S급은 아니란 소리였다.
언노운 게이트는 워낙 수수께끼 같은 곳이라 그때그때 공략 난이도가 상이하다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멀쩡하게 돌아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난 부산 언노운 게이트 때만 해도 불멸은 상당한 인원을 잃었다. 워낙 끈끈한 사이라 호흡이 척척 잘 맞는다고 치더라도, 깊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것이 기묘했다.
더욱 신경 쓰이는 점은, 멀쩡하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이 어쩐지 침울하단 점이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어쭈, 누가 보면 전치 3주라도 나온 줄 알겠다.”
수현이 빈정대듯 가볍게 동료들을 놀렸다. 하지만 그녀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숨통이 막힐 듯한 이 무거운 공기를 말이다.
“뭐야, 진짜 왜들 그러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알았어, 이제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수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겨우 미소를 짜내는 수현 뒤에서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은하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민주는 어딨죠?”
그 말이 방아쇠였다.
적막이 흘렀다. 줄곧 떠들어 대던 수현조차 쩍 얼어붙어 버렸다.
한참 동안 이어진 정적. 그 속에서 준환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스터께서는.”
더듬더듬 움직이는 입술과는 달리, 그의 고개는 한없이 아래로 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