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95
00694 새로운 보금자리. =========================================================================
이전 회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 내용에 앞서 수정 사항을 말씀드립니다.
방향 설정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네 개의 외 도시 중 강철 산맥과 근접한 도시가 북쪽입니다. 그러므로 해밀 클랜이 차지한 도시가 북쪽 도시며 머셔너리 클랜은 남쪽 도시를 차지한 것으로 정정하겠습니다. 각 도시의 콘셉트도 그에 맞춰 따라갑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_(__)_
*
머셔너리는 원래 네 개의 외 도시 중 서쪽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에 걸친 회담이 끝난 이후 합의 과정에서 배분받은 남쪽으로 이사를 단행했다. 그곳이 우리 클랜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도시였기에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각 도시를 잇는 터널을 나와 남쪽 도시로 들어간 우리는 중앙 대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이사할 장소는 정해두었다. 이 대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도시의 중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커다란 성 하나가 나온다. 그 성이 바로 머셔너리의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물론 입맛에 맞게 고를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굳이 성을 고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을 갖는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도시 내 가장 중요한 장소를 차지한다는 건 우리가 이 도시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동이다. 말인즉 상징성을 챙기겠다는 뜻이라 봐도 무방하다.
또 이왕 대표 클랜이 됐으니 가장 괜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게 모양새도 좋지 않을까. 도시의 성이라면 모름지기 고대 거주민 중에서도 최고 권력자가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만 봐도 답이 나온다. 성이 세워진 장소는 도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중앙 부근에서 약간 위쪽에 있었다.
여하튼 여러모로 따져봐도 성을 차지하는 게 가장 나아 보였고 클랜원도 누구 하나 이견이 없었다. 아마 다들 딱딱한 건물이나 냄새나는 여관이 아닌 화려한 성에서의 궁전 같은 삶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뭐 아주 틀린 상상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글쎄. 과연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그때였다.
웅성웅성.
한창 상념에 젖어 걷던 와중 돌연 어수선한 소리가 흘러들었다. 주변을 가볍게 훑어보자 절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중앙 대로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광장을 거치게 되는데, 한산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당한 수의 사용자가 모여 있었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으레 떠들썩하면서 북적거리는 게 아닌, 중앙을 깨끗이 비워둔 채 좌우 방향으로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다. 마치 우리가 이곳을 지나갈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흘긋흘긋 쳐다보는 시선을 헤치며 나는 담담히 중앙에 트인 길을 가로질렀다. 중간중간 사용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셔너리 클랜이다.”
“가장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머셔너리 로드지?”
“우와아아. 그림자 여왕에 검후에…. 봐봐! 군단을 소환한다는 거주민까지 있어.”
“어디어디? 잠깐만. 저기 두 명 섬광이랑 신궁 아니야?”
그러자 클랜원들도 이 많은 사용자가 광장에 모인 이유를 깨달은 듯했다. 처음에는 살짝 주눅 든 모습을 보이던 서너 명이 당장 허리를 곧게 피고 어깨를 넓게 벌렸다. 특히 애들이 가관이었다.
안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는 한껏 무게를 잡았다. 안솔은 눈을 반쯤 감아 초연해 보이는 표정을 짓더니 돌연 한 걸음 한 걸음 모델 워킹을 시작했다. 이유정 거만한 눈과는 다르게 입을 씰룩씰룩 움직이면서 자꾸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었다. 직접 언급된 비비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있었으니까.
뒤를 따라오던 신재룡은 결국 창피함을 견딜 수 없었는지 스리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흘끗 쳐다보자 쓰게 웃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다.
“안솔양이 걱정이군요. 저렇게 걷다가 넘어지지는 않을지….”
콰당!
“으갹!”
말이 씨가 된 걸까. 갑자기 지면에 콩 부딪치는 소리와 새된 비명이 광장을 울렸다. 장내에 킥킥거리는 웃음이 흐르자 신재룡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른 신재룡의 팔을 잡아끌었다.
“갑시다.”
“예? 하,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람일 겁니다. 어차피 광장만 지나치면 돼요. 어서 갑시다.”
“…….”
신재룡은 굉장히 심하게 갈등했지만 결국 내 손에 이끌려 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했으나 잘못 들은 거로 생각하며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빠르게 걸어 광장을 벗어나자 주변에는 훈련장처럼 보이는 건물이나 가지런히 나열된 병영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아직 거리가 있기는 하나, 오른 방향으로 도시의 명물이라 불리는(사실은 그나마 볼만한.) 둥그런 콜로세움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한 풍경은 이 도시가 어떤 목적을 갖고 건설됐는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군사 시설을 가로질러 걸어가자 곧 돌담처럼 보이는 성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와…!”
“도착했다!”
마침내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는 여전하네.’
절로 선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외친 탄성은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지간하면 중세 시대 유럽에서나 볼 법한 성을 상상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 눈앞에 드러난 성은 그런 상상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 예상을 웃도는 규모는 차치하고. 성을 빙 둘러싼 마른 해자와 단단한 성벽. 그리고 모퉁이마다 보이는 드높은 첨탑과 정확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건물 배치는, 아름다운 성보다는 견고한 요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저런 건물이 도시에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분명 돌이나 대리석 등등으로 이루어지기는 했는데, 차라리 험준한 산이나 계곡 지형에 더 어울릴 모습이다. 그래도 외관이 희끗희끗한 게 무조건 요새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죽여주고는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어느새 클랜원들이 조용해졌다.
당최 왜 저렇게 건축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묵묵히 아치형 정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성이라는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는 있다.
입구 부근은 아마 뜰로 사용된 듯싶다. 중앙 성채까지 쭉 이어지는 길의 중앙에는 길고 넓은 수로가 트여 있고, 좌우로 난 붉은 길 옆으로 지금은 말라 비틀어진 정원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음. 밖에서는 몰랐는데 안에서 보니까 꼭 인도의 타지마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오빠 내가 가서 문 열어줄게!”
이윽고 수로를 지나 성채에 다다른 순간 이유정이 득달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낡아 헐거워진 문을 벌컥 열어 허겁지겁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성 외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만큼 내부가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퉤!”
이유정은 5초도 지나지 않아 문을 세게 닫으며 침을 탁 뱉었다. 빙글 몸을 돌려 무언가 대단히 역겹다는 얼굴로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온다. 그 반응을 보자 딱히 눈으로 보지 않아도 내부가 어떨지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살펴볼 요량으로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고대 융성하던 시절에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는 그저 세월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낡아빠진 건물에 불과하다. 좋게 말해서 예스럽고 고풍스럽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은 막막한 기분이 앞섰다. 이걸 언제 멋들어진 보금자리로 만들까. 크기가 작으면 말이라도 안 하지.
하지만 어쩌랴. 비록 기대와 조금 어긋났을지라도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웅장한 맛은 있으니 복원만 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한숨을 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클랜원들은 나처럼 한숨을 흘리거나 이리저리 몸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내가 할 말을 예상한 모양이다.
나는 양팔을 걷어붙인 후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가볍게, 청소부터 시작합시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는 오전의 시간을 몽땅 투자한 결과 전혀 가볍지 않은 1차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1차에 불과하다. 방은 왜 이렇게 많고, 공간은 얼마나 넓고, 천장은 얼마나 높고, 층은 또 어디까지 있는지. …아니. 애초 이 정도 규모의 성을 하루 안에 청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 1층을 중심으로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공간을 먼저 청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예를 들어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나 식당 등등.
허나 그 정도만 해도 청소해야 할 면적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그나마 몇 가지 다행인 건 한 번 청소를 해본 클랜원들이 알아서 클래스별로 조를 짜 효율적인 청소 작업을 실행했다는 것. 그리고 정하연의 고대 마법이 청소에 무척이나 쓸모 있었다는 것이다. 정작 자신은 상당히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즈음 우리는 식당에 모여 휴식 겸 점심 시간을 가졌다. 식당은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서 매우 다른 풍경으로 변해있었다. 오직 더럽다는 이유로 배치된 탁자나 의자를 깡그리 태우고 부순 탓에 이제는 휑뎅그렁한 공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임한나가 끓인 스튜로 배를 채우고 있었을 즈음.
“젠장. 설마 도시 안에서 야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던 우정민이 힘없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더러운 기분으로 일어나느니, 침낭에서 자고 상쾌한 아침을 맞는 게 좋겠지.”
마찬가지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선유운이 스튜를 한 숟갈 퍼먹으며 대꾸했다. 그런 둘의 얼굴에는 상당한 피곤함이 그늘지어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정신적인 피로가 더 큰 듯했다. 왜냐면 둘은 비비앙과 같은 조였으니까. 아까 슬쩍 보니 비비앙이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던데 그 끊임없는 수다에 질려버린 모양이다.
“으응? 다들 왜 그래? 왜 그렇게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어? 이거 이거, 이래서야 오후 청소에 힘을 쓸 수나 있겠어?”
그에 반해 비비앙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비비앙은 단순하다. 애초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지금 매우 들뜬 기분일 것이다. 그 여파가 저 둘에게 미치고 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비비앙은 여전히 헤실헤실 웃더니 갑자기 짝 손을 마주쳤다.
“아하. 알겠다. 너희 젖소의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렇구나?”
그 순간 옆에 앉은 임한나가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음식 맛이 없다는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 다른 이유에서 그런 듯하다.
“어휴. 어쩔 수 없지. 오늘 인심 좀 썼다. 그거 먹기 싫으면 내가 너희만 따로 만들어줄까? 오직 연금술사만이 만들 수 있는 특제 체력 회복 음식!”
비비앙이 자랑스럽게 외쳤으나 우정민은 심드렁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쉬기까지. 그래. 무시가 상책이지.
하지만 선유운은 아니었다.
“싫습니다.”
매우 단호한 음성으로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축제 때 남다은과 비비앙이 만든 음식을 먹고 게거품을 물었던가. 그때의 일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다.
“왜, 왜? 맛있을 텐데. 효과도 좋고.”
“아니요. 효과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일단 당신 음식은 굉장히 맛이 없습니다.”
선유운은 초췌한 얼굴과는 다르게 또렷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생각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절레절레 머리를 흔든다. 화색 만연한 비비앙의 얼굴에 떨떠름한 빛이 스쳤다.
“아니. 그냥 맛이 없는 정도면 괜찮습니다. 어쨌든 배만 채우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당신이 만든 음식은…. 음식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결함이 많은 일종의 결함투성이 결과물입니다.”
“뭐…. 야!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 물론 그 음식을 섭취함으로 차후 치명적인 독을 먹었을 때를 대비해 체내 내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있을지도 모를 일 때문에 지금 목숨을 거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
말을 들은 비비앙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곧 두 눈을 크게 치뜨더니 벌컥 화를 냈다. 이제야 이해한 모양이다.
“킥.”
임한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죽여 웃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그리고 흠흠, 헛기침을 한 후 얌전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수현아.”
“응?”
“나 방금 생각났거든. 혹시 북 대륙에 연락 한 번 해봐야 되지 않아?”
“아.”
아차. 말을 듣고 나서야 생각났다. 요새 하도 바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걱정 마. 우선 생환했다는 사실은 말해놨으니까.”
임한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숟가락으로 스튜를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깜빡 잊고 있었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대?”
“응?”
“거기서 별다른 일은 없고?”
“아. 으, 으음. 그게….”
그 순간 임한나가 묘하게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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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에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앞 부분은 곧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