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801
00800 수나의 탄생. =========================================================================
그 순간이었다. ‘밉다.’ 라고 말함과 동시에 게헨나의 전신에서 겁화(劫火)가 치솟았다. 샘솟듯 솟구친 염화(炎火)는 사방팔방 뻗어 나가 1층 광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쉼터, 바닥, 계단, 난간을 가리지 않고 깡그리 불태운다. 눈 깜짝할 사이 주변 공간은 시뻘건 불길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고연주나 김유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참아내듯 입을 짓씹는 둘을, 게헨나는 계속 손에 턱을 괸 채 고개를 삐딱이 기울여 응시했다. 선홍빛 눈에는 여전히 요사한 기운이 번들번들하다.
“김수현을 돌려보내기 전,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구나. 혹시 같이 갈 생각이 없느냐고.”
“나는…. 거절했다. 아니. 거절이 아니라 그럴 수가 없었던 게지. 상황상, 법칙상 말이다.”
“허나 그를 떠나 보내고 나서 참으로 감정이 미묘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와 같이 잤던 자리를, 함께 거닐었던 길을 되새기고 있더구나. 그제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됐고, 이어서 후회라는 감정이 찾아오더군.”
“그러자 문득 한 생각에 미쳤다. 같이 있고 싶다면 여기 남으면 될 텐데. 그는 왜 돌아가는 걸 선택했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오더구나.”
“그건 너희 때문이 아닌가.”
문득 게헨나가 눈을 부릅떴다. 한층 가중된 압박에 낯을 찡그리는 두 남녀를 매섭게 노려본다.
“나와의 연(緣)보다, 너희와의 인연을 더 중요시해 돌아간 게 아니냐는 말이다.”
“…….”
“그래서, 너희가 밉다. 너무나 거슬린다.”
“…….”
“너희만, 너희만 아니었다면…!”
“…….”
격정적으로 말을 맺은 게헨나의 음성은 야수의 으르렁거림과 흡사했다. 그에 호응하듯 도처에 타오르는 불길이 춤추듯 거칠게 흔들렸다. 여기서 게헨나가 조금이라고 살의를 품는다면, 그 순간으로 불이 옮아 붙은 곳은 모조리 파괴될 것이다.
고연주와 김유현은 시종일관 침묵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해서였다. 게헨나가 넣는 압력은 입을 열기는커녕 호흡조차도 막아버릴 정도였으니까.
우웅! 그때 붉디붉은 눈동자에 미약한 황금빛이 스쳤다. 게헨나는 잠깐 놀랍다는 기색을 보였다. 의자에 짜부라뜨리듯 묻힌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폭사돼 줄기줄기 뻗어 나온다. 뇌신(雷神)의 힘이 발동된 것이다. 비록 나오는 족족 겁화에 살라 먹히기는 했지만, 꾹 짓눌려 있던 김유현의 입이 덜덜 떨리며 열린다.
“꼭…. 수현이어야 했습니까.”
“그가 나와 짝을 이룰만한 힘을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임신이라는 선택을…?”
“본디 나와 그의 힘은 극과 극의 상성이다. 서로 합치기는커녕 밀어내려는 성향이 강하지. 그러니 수태를 통하여 자연스러운 융합을 꾀하는 것이다.”
납득했다는 듯 김유현이 끄덕였다. 그러나 잠시 밀려났던 불길은 도로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 완전히 뒤덮이기 전, 김유현은 겨우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그 질문에 목숨을 걸 수 있다면, 허락하마.”
“수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
김유현은 뜸들임 없이 직구를 던졌다. 이후 바로 불길에 덮인 걸 보면 옳은 선택이었다. 물론 ‘유효한 질문인가?’ 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듯, 게헨나가 눈을 치뜨며 당황하고 있었으니.
잠시 후, 곳곳에서 이글거리던 불길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물을 끼얹은 것처럼 허연 김을 뿜으며 메말라 없어지고, 종래에는 풍경이 원래의 빛깔을 되찾는다. 인세(人世)에 구현된 지옥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듯,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헉! 허억!”
“학! 하악!”
두 남녀의 몸이 무너지듯이 축 늘어졌다. 몸을 압박하던 기운이 일거에 풀리니 갑작스레 되찾은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헨나는 조금은 가라앉은 눈으로 둘을 응시했다. 그리고 호흡이 정상이 될 즈음,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다.”
마치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처럼, 목소리는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가까스로 추스른 김유현은 겨우 턱을 들어 게헨나를 바라봤다. 내리뜬 눈동자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는 듯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서로 눈이 마주쳤다. 게헨나가 가슴 왼쪽으로 살며시 손을 얹었다. 심장이 있는 부분이었다.
“두근…. 거린다.”
멍한 눈초리에 게헨나는 “그를 생각하면.” 이라 덧붙였다. 그리고 쓸쓸해 보이는 눈을 들어 4층 층계 너머를 바라봤다. 정확히 김수현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심장이 요동치고, 없으면 공허하다. 허나 떠올리면 다시 설렌다. 기대고 싶다. 품에 안기면 아늑하다. 그는 내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에게서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싶고, 그가 나를 위해 분노하는 것이 기쁘다. 그래서 일부러 미물(微物)에게 당한 척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를 깡그리 쓸어버리고 싶지만, 그가 슬퍼할 것을 떠올리니 망설여진다.”
게헨나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길게 이어졌다. 횡설수설이라기보다는, 꼭꼭 숨겼던 속내를 한 치의 가감 없이 토해내는 듯한 절절한 음성이다. 한참을 아련히 바라보던 눈이 이내 김유현에게로 떨어졌다. 삭막하고 적적한 눈이지만, 무언가 애타게 갈구하는 빛이 서려 있다.
“…그러나, 나는 수천 년을 홀로 살아온 존재. 사랑이라는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책하는 목소리가 이어, 게헨나의 눈이 한층 또렷해졌다.
“그러니 그대에게 하문(下問)하겠다. 그대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모릅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게헨나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아직 멍한 빛이 가시지 않았지만, 김유현은 확실하게 머리를 가로젓고 있었다. 그러나 곧 멈추고는 흔들림 없이 게헨나를 직시한다.
“단,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
“당신이 수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제가 수현이에게 느끼는 감정과 엇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무슨…?”
“물론 저는 친형으로서, 즉 혈족 관계로서 수현이를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이성으로는 사랑할 수도, 해본 적도 없으니 모릅니다.”
“…….”
그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걸까. 내내 기울어 있던 게헨나의 고개가 바로 세워졌다. 꼰 다리를 풀고 묻었던 등을 뗀다. 양손은 부푼 배를 소중히 쓰다듬는다. 어느새 게헨나는 대공의 모습을 해제하고 따뜻한 어미로 돌아와 있었다. 입가에 걸린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그 방증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던 게헨나가 돌연 킥킥 소리 죽여 웃었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군. 좋아. 그럼 이만 가보겠다.”
“잠…!”
김유현이 붙잡으려고 했으나 ‘좋아.’ 라고 말할 때부터 게헨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확신을 얻지 못한 두 쌍의 눈을 마주 보며 게헨나는 빙긋 미소 지었다.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너희에게 희소식을 말해주마. 나는 이 세상에, 아니. 그의 곁에 한계까지 머무를 생각은 없다.”
“한계…. 말입니까?”
“아까 말했잖느냐. 이 차원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균형이 어그러지는 터라,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이 걸려 있다. 그러니 어차피 돌아가야 하는 운명, 왕이 탄생하면 스스로 돌아가겠다는 소리다.”
“차원이라는 건 또 무슨 뜻이죠?”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너희가 나를 보고 느끼는 불안감, 그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
“…….”
갑작스러운 말에 두 명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게헨나가 “말인즉 설령 한계까지 일자가 남아 있더라도…. 되었다. 그냥 더 빨리 돌아가겠다는 소리다.” 라고 부연하자 그제야 표정이 변했다.
“아가한테 며칠만이라도 아비의 얼굴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머무르는 동안, 그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건 내 욕심이라고 봐도 좋다.”
“그럼.”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떠나겠다. 이게 내가 너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요, 유일한 서약이다.”
“…….”
이윽고 “적어도 너희는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라 말한 게헨나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휘적휘적 자리를 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계단을 올라, 서서히 멀어졌다. 거의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으나, 쉼터에 남은 두 명은 어떻게 잡을 힘도 없을뿐더러 움직일 생각도 못 했다. 한 번 지옥을 겪었다가 나오니 온몸이 물 젖은 솜처럼 노곤해진 탓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사용자 고연주.”
고연주가 망연한 눈으로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상념에서 깨어난 김유현이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잿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 것은 앞선 짧은 한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 미안해하는 어조 때문일까. 고연주의 고개가 녹슨 로봇처럼 삐걱삐걱 돌았다.
차마 못 할 말이라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김유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
어두운 밤, 고요한 복도에 애끓는 신음이 간헐적으로 울린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앓는 소리, 허덕거리는 소리에 숨 쉬는 것조차 미안한 기분이다.
“후우우우….”
…벌써 몇 가치째일까. 바닥에는 연초가 벌써 한 무더기로 쌓여 있다. 가만히 있어 보려 해도 지금의 나로서는 서성거리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 게헨나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힘내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실제로 그러려다가 방해된다고 두어 번 쫓겨나기는 했지만. 물밀듯 차오르는 불안을 억누를 길이 없어,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부모님이 나를 낳으실 때도 이런 기분이셨으려나.
게헨나의 진통이 시작된 직후, 침대에 고인 하얀 액체를 보며 나는 멍청하게도 혼란스러워하기만 했다. 전투라면 몰라도 출산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게 양수라는 걸 알지 못했을 정도로. 결국 한동안 허둥대다가 미친 듯이 호출석을 눌렀고, 기다리지 못해 뛰쳐나가 상남 형님과 노노 누님을 찾아 깨웠다. 출산 경험이 있는 만큼 나보다는 익숙하리라는 생각이었다.
‘뭐? 임산부를 혼자 두고 오면 어떡해! 이 멍청이!’ 라 대차게 욕을 먹은 후, 노노 누님은 신속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상남 형님의 도움을 받아 몇몇 클랜원과 하녀들을 부를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쭉 기다리기만 하는 신세였다. 중간중간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 가져다주거나 깨끗한 천 등을 구해오기는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복도 끝쪽에서 줄 연초만 태우는 신세였다.
사실 정신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청력을 한껏 집중하는 것밖에 없다. 끙끙대는 소리가 귓전을 스칠 때마다 가슴이 쿡 찔리는 기분이다.
“형. 저…. 들어가 보시면 어때요?”
눈을 들자 어색한 얼굴을 한 안현이 보였다.
“이번에 쫓겨나면 세 번째입니다.”
대답은 벽에 기대 쭈그려 앉은 진수현에게서 나왔다. 두 명 모두 마구잡이 호출의 피해자(?)였다. 자다 헐레벌떡 나와서 그런지 눈에 졸음이 가득했다.
“흐아아암. 이것 참, 몇 시간이나 지난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입 조심하지 그래.”
늘어지게 하품하는 찰나 건너편에서 날아온 날 선 음성이 귀를 찔렀다. 매섭게 노려보는 허준영의 눈초리에 진수현은 딸꾹거리며 입을 가렸다. 내가 그렇듯 모두가 신경이 예민해진 모양이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여러 군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푹푹 한숨을 흘리며 호젓한 복도를 가로지른다.
아으으윽!
그때였다. 근근이 이어진 신음이 갑작스레 복도를 반으로 찢는 비명으로 변했고,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고 동시에 문을 바라본다. 그러나 더 이상 게헨나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어지는 잠시간의 적막함에 뜻 모를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왜, 왜 그래?
아, 아기가 이상해요!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기척이 들리는 동시, 심장이 쿵 떨어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살그머니 고개를 치켰다.
“김수현!”
허준영이 황급히 나를 떠밀었다. 시야가 새하얘지는 와중에도 나는 비틀비틀 달려가 금빛 문고리를 힘껏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러 냄새가 혼합된 이상한 내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시야로….
“수, 수현아….”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무언가 작달막한 것을 팔로 안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임한나였다. 멍하니 주저앉은 노노 누님, 마찬가지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박다솜, 울먹이는 안솔, 이어서 침대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는 게헨나가 차례대로 눈에 들어온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어찌 보면 감격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애, 애가 울지 않아! 그, 그러니까….”
“시, 신성 주문을…!”
상황은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눈앞이 핑핑 돈다. 그러나 나는 침착해지려 애쓰며 품에서 엘릭서를 꺼냈다. 일이 잘못 돌아가는 것 같으니 우선 먹이고 볼 작정이었다.
“이리…!”
“엉덩이! 엉덩이를 때려봐요!”
황급한 와중에도 그 말이 옳다고 여겼는지 임한나는 작은 것을 팔에 비스듬히 눕혔다. 곧바로 내리쳐진 손바닥이 작고 포동포동한 볼기를 힘차게 때렸다.
찰싹!
차진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에!”
불현듯 작고 가냘픈 것이 화들짝 움찔하며 뾰족한 육성이 튀어나왔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이윽고 작은 것의 정체를 바라본 순간 나는 매우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갓 태어난 아기가 상상처럼 예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시뻘겋게 주름진 피부나 적은 머리숱 등등. 그러나 눈앞의 아이는 내 상식을 완전히 깨부쉈다.
윤기가 찰찰 흐르는 시커먼 머리카락, 약간 얼룩졌으나 흰 살결, 앵두를 연상케 하는 도톰하고 빨간 입술, 맑으면서 강렬한 황혼빛 눈동자…. 그래. 이 정도는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 마르의 경우도 있거니와, 생각해보면 완전한 인간의 아이도 아니니까. 그러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정작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아기가….
“…….”
굉장히, 근엄하다. 갓 태어난 주제에 표정이나 기색 같은 것이 너무 점잖고 엄숙하지 않은가. 당최 무어라 형언할지 모르겠다. 빽빽 울어 젖히는 것도 아니고. 꼬물거리는 고사리 같은 손이나 통통한 볼살에서는 귀여움이 뚝뚝 묻어나는데, 지긋한 눈동자나 굳게 다문 입술은 정말 근엄하기 그지없다.
“이이이익~!”
게다가 무에 그리 심기가 거슬렸는지. 임한나에게 기를 쓰며 바락바락 성난 소리를 지른다. 마치 ‘감히 내 엉덩이를 쳐!’ 라고 지엄하게 호통치는 것 같다. 아니. 무슨 아기가 저렇지? 나는 응애응애 아기 울음이 들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 안는 이런 감동적인 상황을 꿈꿨는데. 이건 좀 아니잖아.
끝없는 의문이 솟았으나 나는 주춤거리는 임한나에게서 얼른 아기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아기는 힐끗 나를 보더니 앙증맞게 한쪽 눈을 치켜떴다. 거, 건방져. 건방진데 귀여워.
“사내냐, 여인이냐?”
문득 게헨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바로 아래를 확인했다.
“여인…. 아, 아니. 딸이네.”
“호오. 수나야, 수나야. 그 사내가 네 아비란다. 어서 인사해야지?”
게헨나는 달램 반, 기특함 반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이름이 수나인가. 과연 수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하며 수나를 꼭 안아 들었다.
그러나.
한동안 나를 빤히 응시하던 수나는.
“…부우.”
폭, 한숨짓는 모양새와 함께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녀석이?
============================ 작품 후기 ============================
수나야….
네가 태어나던 날.
온 독자 분들이
네 이름을 속삭였단다….
*
그간 연재에 신경 쓰느라 쪽지를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쪽지 답신은 먼저 온 순서부터 차례대로 답신을 드리는 중입니다. 많이 쌓이기도 했지만, 하루에 많은 답신을 드리지 못하니 너른 양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