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job Genius top manager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본업천재 톱매니저 (5)
눈이 부셨다.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눈을 비비고 눈앞을 응시했다.
이전처럼 내게 어떤 영상을 보여주는 걸까?
아니면 이대로 끝?
솔직히 말해서 기대감이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한다.
체스판은 제 몫을 다한 게 확실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욕심이 났다.
확실히 게임이 끝난 게 맞나?
그동안 매니저로서 나의 길잡이를 해주었던 이 판세를 과연 떠나야 하나?
내게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체스판을 아직 보내 줄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건 텅 빈 체스판뿐.
게임이 끝나고 말이 정리된 듯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 그때.
내 어깨를 누군가 부드럽게 쥐어 왔다.
뒤를 돌아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몸이 경직된 듯 그럴 수 없었다.
“앞을 봐.”
익숙한 목소리에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 근질거렸지만 시키는 대로 앞을 보았다.
그동안 내가 둔 수를 복기하듯 확확 말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다 기억이 났다.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수를 두었는지, 왜 거기에 둘 수밖에 없었는지.
이 판 자체가 연예계라서, 내가 둔 수는 곧 연예인들의 행보와 같았었다.
맨 처음 송희연을 집고 전진했고, 연세빈이 나타나 상대를 격파시키고, 녹스 멤버들이 나타나 체스판을 휘젓고 다니기까지.
그 외의 다른 말들도 부단히 움직인 행보들이 내 눈앞에 빠르게 보였다.
이 모든 행보는 다 게임의 승리를 위한 것.
연예계에서 내가 ‘매니저’로서 우리 애들을 위해 승리를 거두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빠른 복기가 끝났다.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연예계에서 영원한 승리란 없는데.”
갑자기 든 의문에 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뒤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영원한 승리는 없겠지만, 영원한 전우라는 건 있지.”
촤르륵.
환영인지 신기루인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는 내가 그동안 거쳐 갔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연세빈, 서주아, 녹스 6명 멤버들, 종석이 형, 블루마린 등등.
왜 갑자기 이런 환영을 보는 건지 모르겠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키득거렸다.
“어때 보여, 저들이?”
“제 사람들이잖아요.”
“노빠꾸 직진으로 산 것 치고는 제법 괜찮게 산 것 같아,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붙어 있는 걸 보면. 그럼 넌 인생 성공한 거야.”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에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정곡만 찌르는 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
나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말하는 이 사람은 혹시, 연예계의 신인가?
내게 연예계를 아우르는 이 체스판을 내려준 것도 이 사람일까?
그는 내 혼란스러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는 그동안 네가 네 능력으로 먹고산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너는 사실 이 사람들과 함께 날아오른 거라고. 뭐, 네가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를 따랐겠지.”
“알고 있어요. 나 혼자 힘으로는 절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는 것도, 다 같이 잘되고자 일했다는 것도.”
“그래도 네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는 말고. 여기까지 온 데 네 힘도 컸으니까 말야. 앞으로 연예계를 보여 주는 이 체스판이 없어져도 너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아니다,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구나. 나중에…… 이건 비밀로 해야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을 끝맺는 목소리.
결국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도대체 당신 누구예요?”
절박함과 긴장감, 그리고 일말의 기대감이 뒤섞인 가운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실망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후련했다.
* * *
팟.
눈을 뜨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서 경쾌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오빠, 얼른 가요!”
활발한 승희의 목소리에 이끌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옷을 차려입은 애들과 함께 거리를 걸어 다녔다.
사람들이 다니는 평범한 밤거리일 뿐이었지만 애들과 함께하니 기분이 달랐다.
붕붕 뜨는 기분 좋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하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았다.
이지와 승희, 예서와 희연이 이렇게 둘씩 짝을 지어 사진을 찍어주고 노는 게 보기 좋았다.
그래서 뒤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았다.
“참 행복해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 토크쇼 나갔을 때보다, 미국 진출했다고 좋아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해 보였다.
재킷에 손을 넣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나를 툭툭 치며 질문을 던져왔다.
“혹시 저들, 블루마린인가요?”
“……팬이세요?”
그 사람을 시작으로 수많은 팬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적한 밤이라 인파가 이렇게까지 몰릴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멤버들은 다들 당황스러운 내색도 없이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주었다.
내가 따라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런 길가의 사인회가 끝난 후.
인파에 지친 듯한 애들이 나를 졸졸 따라왔다.
“이제 숙소로 가요.”
“왜, 뉴욕 밤거리를 질릴 때까지 즐겨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승희?”
“그것도 체력이 되어야 즐기는 거죠. 저 지금 완전 바닥이에요, 체력. 이지야, 업어줘.”
“엄살도 심하시네.”
말을 툭툭 던지면서도 이지는 투정을 부리는 승희를 냉큼 업어 들었다.
예서는 피식 웃으며 희연이에게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우리 막내도 업혀! 이 언니가 다 업어줄게!”
“그럴까용?”
희연이가 혀끝을 굴리며 애교 있게 예서의 등에 업히는 시늉을 했다.
사실 키가 170인 희연이가 키가 160인 예서에게 업힌다는 건 좀 버거웠다.
그래서 희연이는 업히는 시늉만 하고 냉큼 예서에게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언니야말로 업혀요.”
“응?”
“어서요.”
희연이의 재촉으로 예서는 그녀의 등에 업혔다.
한 명씩 한 명을 업는 진귀한 풍경.
내 앞에 걸어가는 그들을 나는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카메라 소리가 나자 애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찰칵.
그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말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블루마린을 처음 만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희, 정말 그대로구나.”
“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켰다.
나도 너희처럼 항상 그대로이고 싶다고,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노력할 거라고.
이 말을 밖으로 내뱉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 * *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고요한 비행기 안에서 블루마린도, 나도 바쁘게 제 일을 하기에 바빴다.
한국에 가면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일단 우리 배우들한테 온 시놉부터 쫙 훑어보고, 녹스 멤버들 스케줄도 체크하고, 블루마린 스케줄은…….
옆에서 송희연이 나를 툭 쳤다.
“오빠.”
자고 있는 줄 알던 송희연이 또랑또랑한 눈을 깜빡였다.
“여기서도 일하는 거예요? 좀 쉬지.”
말이라도 기특해서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대표로서의 위엄을 유지했다.
“내가 열심히 해야 너희가 먹고 살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 충분히 결과를 내고 있잖아요. 일만큼이나 휴식도 중요한 것 몰라요?”
“기특한 녀석. 걱정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결국 속마음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송희연의 얼굴이 확 발개졌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나를 응시했다.
“날 뭘로 생각했길래…….”
“응?”
결연한 의지에 가득 찬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묶었다.
그리고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냅다 겹쳤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내 손과 비교되는 하얗고 고운 손이었다.
손등 위에 겹쳐진 그녀의 손바닥은 의외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평소 춤에 약해서 춤 연습을 하는데 그 와중에 굳은살이 박인 것이리라.
“제 허락 없이 아프지 마세요. 무조건 건강하고 자기 몸도 잘 살피고요.”
“대범하네, 나한테 그런 명령까지 하고.”
“당연하죠.”
묘한 시선이 오고 가는 가운데, 희연이가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저는 오빠한테 제 인생 다 걸었으니까, 이럴 참견을 할 자격이 있다고요.”
이건 대범하다 못해 용감하기 짝이 없는, 아니, 선을 넘은 참견인 것 같다.
그러나 선을 넘는 게 자연스러웠다.
이건 오랜 시간 동안 다져온 유대감과 동맹,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속은 싫지 않기도 하고.
내 취향이 이상해진 건가.
“대답!”
송희연의 재촉에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생각해 볼게. 그래도 일은 포기할 수 없거든.”
그녀의 얼굴에 으이그, 라는 표정이 떠오르는 것 같다.
손등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따스했다.
* * *
미국을 다녀온 후, 그동안 쌓인 일을 바쁘게 처리했다.
회사가 규모가 커진 덕분인지 투자 건도 많이 들어왔고, 제작 건도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은 영화 ‘숙적’.
칸에서 성과를 거둔 영화인만큼 미국에도 현지 진출을 했는데, 제법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렌달 브라더스 본사 측은 스크린 개수를 늘린 지 오래였다.
한국에서만 흥행할 줄 알았던 영화는 미국에서도 공감대를 얻어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그리고 덩달아 아웃플렉스에서 공개되었던 하원준 피디의 다큐멘터리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었다.
“편세이셔널. 강렬하게 무엇을 열망하면 그대로 된다. 요즘 이 말이 유행이라네요, 들어 보셨어요?”
“……안 들어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편세이셔널!”
“필선 씨, 부끄럽게 왜 이래요.”
연예스타일에서 나를 단독 취재를 온 명필선.
나를 놀리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내가 듣기 부끄러워하는 나의 수식어들을 몇 번이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진지한 이야기로 곧장 돌아가고는 하는 그녀였다.
“QVN 측에서 역수입한 셈이네요, 아웃플렉스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프로그램을 편성하다니. 하원준 피디님 어깨에 힘이 실렸겠어요.”
“원래 QVN에서 정규편성을 하려고 했던 프로그램이니 제 자리를 찾아간 셈이죠. 하 피디만 그동안 마음고생 했죠.”
“마음고생이라고 하기에는 아웃플렉스에서 너무 월드와이드급으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그 프로그램.”
명필선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대표님, 예전보다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그게 무슨 소리죠?”
“뭐랄까, 예전에는 음……. 꼭 이 판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부담감? 긴장감에 쫓기는 대장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물 흘러가는 듯 편안하네요.”
“늘어져 보인다고요?”
“에이, 그런 것 아니라니까요. 편안해 보인다고요.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명필선이 머리를 긁적거리는 모습에서 예전의 그녀가 오버랩되었다.
맨 처음 블루마린의 기사를 거절당하고 난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만났었다.
중고 신인에 무명인 블루마린의 홍보 기사를 아무도 써 주지 않겠다는 그때, 그녀가 나섰다.
-제가 쓸게요, 그 기사.
그때보다 지위도 격도 높아졌지만, 저 또랑또랑한 눈빛은 그때와 똑같다.
“나 말이에요, 예전에 필선 씨 처음 만났을 때랑 지금이랑 변한 것 같아요?”
뜬금없이 던진 질문이었지만 명필선은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눈빛 하나는 똑같아요, 대표님도. 블루마린 매니저 할 때도 그 열정적인 눈빛은 똑같았어요.”
“그럼 됐어요.”
그 말을 듣고 싶었거든.
쑥스러워서 삼킨 말을 곱씹었다.
어떤 일이 있든 그 ‘눈빛’만 지키면 어떤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 곁에 미래를 알려주는 체스판이 없어도, 할 수 있다고.
* * *
10년 후.
핸드폰을 들고 바쁘게 어딘가로 움직이는 남자가 보인다.
긴 다리로 촬영장을 오고 가는 그를 본 스태프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네, 안녕하세요.”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데도 예의 바르게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남자.
전화가 연결되자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냈다.
“세걸아, 너 수빈이하고 연락 되냐? 얘가 내 전화를 왜 피하는 거야. 뭐? 승희하고 또 낚시 갔다고? 둘이서? 하…… 매니저하고 같이 가라고 몇 번을 말했냐. 너네 둘이 열애설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다고.”
수화기 저편에서 웃음을 참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즘에 수빈이 형이 많이 외롭대요. 이게 다 대표님 때문이라네요, 달달하신 도원이 형님.
“뭐가 달달해.”
편도원이 반박을 하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