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25
“기녀는?”
“음…… 좀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차나 술, 혹은 물 같은 것에 섞인독을 먹은 듯싶네요.”
“……!”
향이의 말에 장일산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차였다. 놀랐을 터라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건넨 차를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하지만 독살당했다고만 했지, 차를 마셨다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찌 알았단 말인가?
“그걸 어찌 단번에 알았소?”
장일산이 놀라서 묻자 향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비밀인데요?”
“뭐, 뭐요?”
“영업 방침이라서요.”
“……”
향이가 눈까지 찡긋하며 웃자 장일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허허, 일산아. 어찌 그러한 것을 묻는 게냐?”
“대사부님.”
“마교엔 마교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걸 굳이 우리가 캐내려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마교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한번 보고 알았다는 사실은……”
“어허! 또 그 소리.”
“……”
장일산이 못내 의심을 거두지 못하자 진산이 꾸짖듯 말을 막았다.
“미안하네.”
“합당한 의심이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고맙네.”
능운비에게 사과한 진산이 향이를 바라보았다.
신기할 따름이다. 저 작은 소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단번에 모든것을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긴가민가한 것을…….
“향아.”
“예.”
“흉수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을까?”
“계속 부려 먹으시게요?”
“니가 최고라니까?”
“……”
능운비가 한껏 치켜세워 주었지만, 향이는 더는 혹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너 준다고 신평장주님께 태백주를 미리 좀 빚어달라고 부탁드렸던 걸 깜박했네? 그렇지요, 신평장주님?”
“예? 아, 아무렴요.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능운비가 쿡 하고 옆구리를 찌르자 황자성이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향이의 울대가 군침을 삼키듯이 움직였다.
동시에 그 눈은 이미 시신을 살피고 있었다.
못 말리는 식충이에…… 술꾼 같으니…….
“어디 보자. 상처로 봤을때 날 폭은 대략 한 치? 뼈를 부수고 단번에 관통한 것을보면 제법 힘이 있는놈이라는 뜻이고, 내력이 있다면 대략 충기에서 현기 사이. 가슴 부분과 등 부분의 상처가 묘하게 비틀려있는것을 보면……흠, 이런식인가?”
어느새 비수를 손에 쥔 향이가 허공에 검을 곧게 찔렀다가 살짝 비틀었다.
팍, 파팍.
수차례의 시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일산이 이내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것인지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어? 그거……”
“왜 그러시죠?”
“아니, 그런 식의 검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듯해서요.”
“응? 봤다구요?”
“예.”
장일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속해 있는 종남의 백운관은 산하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종남의 백운관.
그곳은 종남파와 연을 맺고 있는 상단과 표국, 객점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권이 걸린 모든 곳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었다.
“전에도 그와 비슷한 동작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동작을요?”
“그렇습니다. 흉수를 알수 없는 살변이 있어서 개방의 조사관에게 의뢰를 했더니, 상처를 살핀 자가 분명 그와 똑같은 행동을 취했습니다.”
“호오? 그럼 그놈과 동일범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흐흠.”
장일산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살변은 청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청부요?”
“예. 비슷한 상처를 만드는 검격을 쓰는 놈이 여러 놈일 확률은 낮죠. 또한 향이의 말대로 면식범이라면……아마 술자리에 한 놈이 더 있었다는 뜻이겠죠.”
“아!”
“그럼 대충 상황 파악은 끝난 듯하군요.”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염 대인.”
“예? 예?”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능운비의 말에 염성인이 제 목줄이 옥죄이는지도 모르고 미끼를 덥석 물었다.
사실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가? 모인 모두가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아니라고 하겠는가?
“감사합니다.”
허락을 득한 능운비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빠르게 명을 내렸다.
“왕천.”
“예, 주군.”
“너는 지금 즉시 종남파와 협조해 인근 개방도를 찾아가라.”
“개방을요?”
“근방에서 활동하는 청부 살수에 대해 전부 확인하고, 향이가 말한 흉수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 놈들을 특정해서 삭월대 한 개 조를 데리고 모조리 잡아와라.”
“예!”
답을 한 왕천이 밖으로 나서자마자 능운비의 명령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어졌다.
“주승.”
“말씀하십시오.”
“지금 즉시 삭월대를 이끌고 봉쇄중인 청운목향의 사람들의 지위 고하를 가리지 말고 심문하라. 공태석이 죽던 날,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알아봐.”
“명을 받듭니다!”
주승이 답하며 곧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곽 지부장.”
“예, 주군!”
“그대는 청운목향 이외에 공태석과 연이 있는 그 주변인들을 탐문하라. 금전 관계를 비롯하여 그와 작은 은원이라도 있는 이가 있는지 샅샅이 밝혀 오라.”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명령이 끝나고 곽희영까지 움직이자 살변의 현장이 휑하니 비워졌다.
“허허, 이런 결단력이라니……. 자네는 볼수록 걸물일세.”
“과찬이십니다.”
“아닐세, 아니야. 참으로 냉철해.”
진산이 거듭 능운비를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능운비의 일 처리를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조사의 시작부터, 판단, 결론, 그리고 명을 내리기까지 머뭇거림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교주 담운천이 가장 총애하는 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들었다.
“현아.”
“예, 스승님.”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그래 보입니다.”
“함께하는 동안 그의 행동은 물론이고, 말 한마디조차 놓치지 말거라.”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에 하나하나 각인하고 있습니다.”
“오냐, 좋은 자세니라. 마교면 어떠하단 말이냐? 자고로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하였다. 필요하면 걸인에게 구걸이라도 배워야 하는 법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진산의 당부에 웅현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능운비를 쳐다봤다.
……뜨겁다. 눈깔 좀 치워라.
깊이 한숨을 내쉰 능운비가 염성인을 쳐다봤다.
“염 대인.”
“예?”
“그만 가실까요?”
“어, 어딜 말입니까?”
“남은것은 기녀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아닙니까. 차를 마시고 독살을 당했으니, 필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면 청운목향으로 가시겠다는……?”
“당연한 것을요. 염 대인께서도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테니,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푹 쉬도록 하십시오.”
“예…… 그, 그리하겠습니다.”
푸근히 웃어 주는 능운비였지만, 속으로는 구렁이 열 마리째를 세고 있었다.
일단 숨구멍을 열어 준다.
너무 죄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간간이 숨구멍을 열어 줘야 딴짓을 할 테니까.
조사가 계속될수록 점점 더 불안함을 느낄 것이고, 결국 스스로 움직일것이다.
마음이 급할 테니 아마도 수많은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때부턴 그저 주워 담으면 그만이다.
“향아, 그만 가자.”
“……설마 기녀의 독살 사건까지 제게 조사를 맡기려는 겁니까?”
“왜?”
능운비가 태연히 반문하자 향이가 이를 악물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하긴 그렇다. 향이는 자신의 수하가 아니다.
또한 교주조차도 부탁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짜증을 내곤 있지만, 그사이에도 침을 삼키는 향이였다.
[어허, 그러지 마라. 고운 얼굴 찡그리면 흉해져.] [뭐야?】볼이 살짝 붉어 진다.
역시, 고수니 뭐니 해도 아직은 방년 열여섯 소녀일 뿐이다.
“향아. 도와줄 거지? 그치?”
“……”
눈을 찡긋거리며 배시시 웃어 주자 눈 주변을 씰룩거리던 향이가 홱 하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끝나고, 찐하게 술 한잔하자. 알겠지? 너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이런 조사를 맡기겠니? 이 분야에선 니가 우리 중에 최고잖아. 안 그래?”
“득치세요, 슴긍자님.”
“알았어, 알았어. 딱 이번까지야 알겠지?”
“……”
능운비가 갖은 아부를 하며 향이를 달랬다.
하아, 내 팔자야.
마교의 삼공자면 뭐 하나? 열여섯짜리 사춘기 고수를 달래야만 하는 처지인데.
“신평장주님.”
“예?”
“여기 있는 두 사람의 장례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억울하게 죽은 이들입니다. 가는길이 서럽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례는 제게 맡기십시오.”
“예.”
청운목향의 사람인 공태석과 연도없는 기녀의 사후까지 챙기는 모습에 진산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보게, 능 공자.”
“예.”
“저기…… 향이라는 아이의 직책이 시비는 맞지?”
“예. 제개인시비입니다.”
“허…… 마교란 생각할수록 대단허이.”
“예?”
“생각해 보게. 대충 느껴지는 기도만으로도 나에게 필적할 것 같은 것도 모자라서 사건 현장을 단번에 파악해 내는 실력이라니……. 대체 어떤 시비가 저런 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
진산의 말에 능운비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고작 그걸로 놀라다니.
만약 향이의 인생 최대의 목표가 교주를 죽이는 것이라는 걸 알면 아예 뒤로 나자빠지겠다.
* * *
마교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청운목향이 한바탕 뒤집혔다.
사람들은 연일 불려가 심문 아닌 심문에 고역을 치러야 했고, 이런저런 조사에 청운목향의 민낯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 이게 대체……. 이게 전부 청운목향에서 한 짓이란 말이 더냐?”
진산의 짜증스러운 음성에 장일산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종남이 이런 무도한 자들과 연을 맺고 힘을 보태 주었단 말이냐!”
“그, 그것이……”
“허…… 멍청한 것들 같으니! 무엇하느냐! 지금 당장 장문인과 장로들을 속히 이곳으로 불러오거라!”
“대, 대사부님.”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게야! 속히 전갈을 보내지 못해!”
“……”
진산이 달구어진 쇠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노성을 토해 내고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청운목향의 비리 때문이었다.
능운비는 일부러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진산에게 알렸다.
봐라. 니들이 뒤봐 주던 놈이 이런놈들이다.
정파 어쩌고 거들먹거리던 니들이, 이런 간악한 놈들이 더욱 열심히 비리를 저지르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진산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마교인 자신이 청운목향의 비리를 밝혀 종남에 알리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마교에게 치부가 드러난것이 달가울 리 없을 테니까.
도리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며 한목소리로 능운비를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산은 다르다.
누구보다 종남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무인이 아니었던가?
와중에 큰 어른이다. 매를 들어도 단단히 들 것이다.
그리고 그 회초리가 매서울수록 종남은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진짜 정파로…….
“어르신…… 이걸 보여 드려야 할지……”
“……”
“이것도 있지 뭡니까? 요것도 좀 보시고, 조것도……. 종남과 연계된 것이라 제가 남들 모르게 빼 둔 것입니다. 괜히 소문나면 안 될 듯하여……”
“이, 이…… 이것들이!”
능운비가 내미는 것들을 하나씩 받아 든 진산이 손을 부들부들 떨어 대었다.
청운목향도 청운목향이지만…… 종남아, 니들도 이제 큰일이다.
진산 저 노인네의 소싯적 성격 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