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53
#1152.
약진하다 (2)
“언니, 저 왔어요.”
“왔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은영을 보며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참 특이한 캐릭터라니까.’
아마 강은영도 최연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만, 최연하가 보기에도 강은영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녀의 오빠가 강진호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상했다.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
강진호가 살짝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강은영의 무척이나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강진호가 카메라 등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인 반면, 강은영은 화면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연예인이 되었다.
그리고 어투나 행동거지 같은 여러 가지 면에서도 딱히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남매가 반드시 닮아야 하는 법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절대 남매라는 말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둘은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름 사이가 좋다는 게 특이하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일반적인 남매들에 비하면, 둘의 사이는 꽤나 좋았다. 좋다고 해봐야 강은영이 일방적으로 강진호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지만.
“인사해. 구면이지? 여기는 은솔 씨. 앞으로 전반적인 업무 볼 분이라 자주 마주칠 거야.”
“안녕하세요!”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강은영 씨!”
한은솔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가벼운 인사가 오가고 최연하가 강은영에게 자리를 권했다.
“개업식엔 왜 안 나왔어?”
강은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빠가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아, 그래?”
강진호의 생각도 이해는 간다.
강은영은 불만이 많은 모양이지만, 사건을 피하기 위해선 그게 옳다.
“그런데 여기…… 건물 엄청 좋네요?”
“그렇지?”
“오빠가 어디서 돈 잘 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좀 놀랐어요. 언니는 알고 계셨어요?”
“……나도 몰랐지.”
강은영이 놀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최연하도 놀랐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입주할 건물이 이렇게 크고, 이렇게 직원이 많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기에 있는 사람이 전부도 아니었다.
‘삼백 명이 넘는 것 같은데 일부라니…….’
이 정도면 가히 중견 기업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최연하의 표정이 살짝 새초롬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강진호에게 거의 모든 것을 오픈했지만, 강진호는 여전히 그녀에게 숨기는 것이 많은 느낌이었다. 약간 섭섭하기도 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뭐.’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언니랑 같이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이게 엄청 큰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이상해요.”
“그렇지.”
최연하도 같은 마음이었다.
‘쫄려 죽을 뻔했지.’
“여기 맞아요?”
“여기 아닌 것 같은데?”
“누나, 여기 지금 벌써 세 번 돌았어요. 주소도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건물이 이상한데? 뭐가 저리 커?”
“저 앞에 사람 몰려 있는데요? 엄청 많은데? 여기 맞는 것 같아요. 저 앞에 댈까요?”
“자, 잠깐만! 약국! 약국!”
“약국은 왜요?”
“처, 청심환 하나만 사 먹고 가자.”
“…….”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악을, 악을 썼다.
게다가 모여 있는 사람 중에서 총리와 황정후를 발견했을 때는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아니, 강진호와 총리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조합인가.
“이제 와 이런 걸 묻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한데…….”
“네, 언니?”
“은영 씨 오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강은영이 어색한 얼굴을 했다.
“저한테 물으셔도…….”
“하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매번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근데 언니.”
“응?”
“생각보다 오빠가 대단한 사람인 거예요?”
“……그런 거 같지?”
강은영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가 보는 강진호는 집에서 엄마한테 구박받고, 강은영에게 치이고, 아버지에게 알바로 부림당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보여주던 포스에 비해 요즘 너무 평범해져서 되레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뒤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뭔가 의욕이 생기는 것도 같고, 싱숭생숭한 것 같기도 하고…….”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호사에 겨운 소리다.
남들이야 누리지 못해서 안달인 것들인데, 갑자기 주어지다 보니 어리둥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밖에서 한다면 욕 들어먹기 딱 좋있다.
“안 그래도 그래서 말인데…….”
“네.”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어. 생각보다 지원이 빠방한 모양이야.”
“지원이요?”
“응. 지원.”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돈이야 내가 내면 어디에도 안 꿀리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인식과 인력의 문제가 있거든. 그래서 전 방위적인 공세는 좀 어렵다고 봤는데, 여기서 지원해 주면 상황이 달라지지.”
최연하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일단은 협의를 해봐야겠지만, 현주 씨가 말하는 걸로 봐서는 꽤나 지원이 되는 모양이야. 기본적으로.”
“현주 씨요?”
“응, 현주 씨. 나중에 소개해 줄게. 그리고 내가 들었는데…… 은영 씨, 재경 쪽에서 지원받았었다며?”
“네. 오빠가 재경이랑 알아서.”
“그것도 끌어 쓸 수 있는 모양이더라고. 사업적으로 봤을 때는 재미있는 게 많아.”
강은영이 묘한 눈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 또 다르네.’
그냥 성질 더러운 여배우라고 생각했다. 강진호와 얽히는 것도 딱히 좋게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강은영이 크게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최연하의 다른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강진호라면 여자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본 최연하는 조금 달랐다.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에서 젊고 당당한 사업가의 이미지가 미묘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은영 씨가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 할 것 같아. MK 엔터테인먼트의 포문은 은영 씨가 열어줘야 하거든.”
“지금 소속이 저뿐인 거 아니에요?”
“배우는 몇 더 들어올 거야.”
“오?”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뭘 놀라고 그래? 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 굴러먹은 게 얼만데, 당연히 따라오고 싶어 하는 애들 있지.”
“네. 그래서 놀랐는데요?”
“…….”
“…….”
‘저거, 강진호 여동생만 아니면’이라는 눈으로 강은영을 바라보던 최연하가 헛기침을 했다.
한은솔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덜 오기도 했습니다.”
“뭐, 인마?”
“사실이잖아요.”
최연하의 눈 밑이 경련을 일으켰다.
“망할 년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잘해줬지.
정말 잘해줬지.
다만, 조금의 문제가 있다면, 최연하 기준에서 잘해준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잘해준다는 것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뿐이지.
후배가 건방지고 연기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휴게실에 쳐들어가 테이블을 걷어차고 쌍욕을 퍼부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잔뜩 쫄아버린 후배가 벌벌 떨면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 평이 좋아진다면?
결과적으로는 도움을 준 거다.
최연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쌍욕을 퍼먹고 벌벌 떤 후배의 입장에서는?
미친년도 그런 미친년이 없다.
한은솔 같았으면 절대 상종하지 않을 것이다. 100미터 전방에서 최연하의 그림자만 보여도 몸을 돌려 버렸겠지.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라니까.’
그게 상식이고, 그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식을 유지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상식을 비껴 나가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최연하식(?)의 호의에 피습당한 이들 중에서 대배우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되어 있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백 명 있으면 백 명이 다 다른 법인데.
덕분에 최연하가 회사를 만든다고 하자 계약이 끝나는 대로, 혹은 남아 있는 계약을 파기하고 이쪽으로 이적하겠다는 후배들이 몇몇 있었다.
한은솔의 입장에서는 감동에 겨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최연하는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따라붙는다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거두신 적 없잖아요.”
“은솔아.”
“예?”
“세상에 바른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알아?”
“그, 글쎄요?”
“싹 다 죽었거든.”
“…….”
한은솔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그 ‘싹 다’에 포함되고 싶지 않다. 생명은 소중한 거니까.
“여하튼 그래서 여배우들은 좀 더 들어올 거야. 이상한 애도 하나 들어올 모양이더라.”
“이상한 애요?”
“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저번에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길래 뭐라고 좀 했거든. 근데 이번에 연락이 와서 이쪽으로 옮기고 싶다는데?”
“왜요? 욕먹는 취미가 있나?”
“그러게.”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나름 이름은 있는 모양이니, 나쁠 건 없다. 한 번만 더 그런 데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콧구멍에 담배를 쑤셔 박아버리면 될 거고.
“여하튼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친분 있는 가수 중에 옮겨올 만한 애 없을까?”
“저 친구 없는데요?”
“…….”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강진호 동생 맞네. 확실하네.
“여하튼 그런 사람 있으면 연결해 줘. 최대한 실속부터 다지고 싶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네, 그래볼게요. 그런데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저 친구 없으니까.”
“……참고할게.”
한숨을 내쉰 최연하가 어깨를 쭉 폈다.
“활동에 필요한 모든 건 회사에서 지원할 거야. 일단 매니저부터 붙여야겠지. 그전에 회사에서 같이하던 매니저는 어때?”
“나쁘지는 않은데, 뭐, 굳이 데려올 필요까지는 없다는 느낌?”
“그럼 이쪽에서 새로 붙일게.”
최연하가 살짝 몸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은영 씨, 아니, 세아 씨.”
“네, 이사님.”
활동명이 나오자 강은영도 직함을 불렀다. 공식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회사에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할 거예요. 최고의 작곡가, 최고의 안무가,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지원. 그러니까 세아 씨도 이번 앨범 준비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저희 쪽이 가수 전문은 아니라서 분명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어떻게든 빨리 정상화시킬 거라 약속할게요.”
“이사님 믿어요. 그러니 여기로 왔죠.”
“제대로 한 번 돈 벌어서 세아 씨 오빠 입 찢어지는 거 한 번 보자구요.”
“네. 저도 제2의 전성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나이가 몇인데 제2의 전성기야?”
“……요즘 좀 시들하긴 하거든요.”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이쪽도 이제 시작이네.’
예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이다. 하지만 강진호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시작하게 됐다. 예상보다 규모도 커지고, 생각 이상으로 판이 커졌지만…… 나쁘지 않다.
‘최고로 만들어야지.’
설사 최고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강진호가 사심으로 MK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는 소리를 나오지 않게 할 것이다.
일단은 그게 최연하의 최대 목표였다.
“그리고 은솔아.”
“예, 이사님!”
“사내에 내가 진호 씨랑 관계있다는 소문은 다 퍼졌어?”
“…….”
한은솔이 떨떠름한 시선으로 최연하를 바라보았다.
“그거 꼭 해야 합니까?”
“……야, 지금 여기 시커먼 남자밖에 없지?”
“예.”
“곧 여직원도 뽑을 거 아냐. 문제 생기기 전에 해결해 둬야지.”
“아니, 그러면 스캔들이…….”
“좋네, 홍보도 되고. 그냥 차라리 기자들한테 뿌려 버릴까?”
한은솔이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이 회사, 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