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35
#734.
도주하다 (4)
덜컹!
밴의 뒷문이 열린다.
과격하게 달리는 와중에 문이 열리자, 차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폭발적으로 밀려 들어왔다.
“잘 안 보이는군.”
시선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밴의 뒤쪽으로 수많은 트레일러들이 따라붙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뒤쪽에서 확실한 악의(惡意)가 느껴지고 있었다.
“영화라도 찍을 생각인 모양이군.”
“촬영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쉽지만 말이야.”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바토르가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 위쪽으로 뭔가 날아다니고 있다.
까마득한 높이이지만, 확실하게 보인다.
“저게 뭐지? 무척 작은데?”
처음엔 헬기가 굉장히 높이 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아주 작은 기계가 허공에 떠 있다.
“드론인 것 같다.”
“드론?”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강진호의 반응에 바토르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주인.”
“왜?”
“아니, 그…….”
바토르가 장민을 돌아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주인이시여, 저건 드론이라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장착한 무선조종 헬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작은데?”
“무선조종이다, 무선조종. RC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면 된다.”
“RC?”
“……아니, 됐다. 그냥 그런 게 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지는 못 알아먹겠지만, 여하튼 개념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홍왕계라…….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는군.”
“쟤들이 만든 게 아니라고!”
바토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인간은 마트도 안 가나?
대형 마트만 가도 애들 장난감용으로 드론이 넘쳐 나는 세상인데, 대체 뭘 하고 다니면 드론이 뭔지도 모른단 말인가.
“그래서 저걸로 뭘 할 수 있지?”
“감시하겠지.”
“카메라로?”
“그렇다.”
그 순간, 강진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핑!
날카로운 소음이 울리고, 그들을 쫓던 드론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며 추락한다.
“동전이 있어서 다행이군.”
“…….”
동전을 튕겨 드론을 박살 내버린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인사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내가 가겠다, 주인.”
“너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닌 것 같군.”
바토르의 무위는 강진호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바토르가 활약하기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바토르는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이었다.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 실력의 반의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럼? 장로들을 뒤쪽으로?”
“아니.”
우우우우우웅.
강진호 앞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바토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저건 위긴스들이 보여주던 신기(神技)가 아닌가. 강진호가 언제 저 기술을 습득했단 말인가.
일그러진 공간에서 강진호가 뭔가를 끄집어냈다. 길쭉한 무언가가 강진호의 손에 잡혀 나온다.
‘검?’
적루, 그리고 청루.
강진호의 두 애병이 허리춤에 고정된다.
“객이 찾아왔으면 주인이 반기는 게 예의겠지. 다녀오지.”
강진호는 두말없이 뒤쪽으로 뛰어올랐다. 바짝 붙어 따라오는 트럭 위로 올라선 강진호의 모습이 빠르게 뒤쪽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바토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환영 한 번 거창하군.”
“……죽겠네, 진짜.”
주강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벌써 이 망할 컨테이너 안에서 여섯 시간째 이동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삼십 분도 버티지 못할 가혹한 환경이지만, 쉼 없이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이 망할 상황을 버텨내게 만들고 있었다.
쿵! 쿵!
“으아악! 빌어먹을 도로, 진짜!”
서스펜션이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낡은 트럭이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날 때마다 컨테이너 안은 마치 숙련된 바텐더의 손에 들린 셰이커처럼 뒤흔들렸다.
한 번 컨테이너가 요동칠 때마다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찬 마인들이 얽혀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빡빡하게 사람이 들어차 있다 보니 쓰러질 수조차 없다. 서로에게 불쾌함과 짜증을 전달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거야?”
“한 열 시간 간다는 것 같던데.”
“그럼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았어?”
“엄청 달리고 있으니 그것보다는 빨리 가겠지. 이러다 차 퍼질까 봐 겁날 수준이니까.”
“차 퍼지면 다행이지. 빌어먹을, 차라리 뛰어가는 게 낫겠다.”
“그런데 휴게소는 언제 가지?”
“어느 미친놈이 휴게소 소리 하고 있어?”
개판이다.
그 말이 아니고서는 이 컨테이너 안의 혼란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후우우우.”
주강이 낮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주강은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는 중이었다.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은 서로 가까워질수록 불쾌감을 느낀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주강은 오늘 그 사실을 확실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어깨와 어깨가 마주치면 살인 충동이 인다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하는 중이었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
딱히 다혈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 그는 인내의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몇 가지 이유만 아니었으면 이미 이동이고 뭐고 컨테이너를 부수고 탈출했을 것이다.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토르의 경고였고, 그 이상으로 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마존의 존재였다.
‘괜히 사고 쳤다가 찍히면?’
죽는 게 낫다.
바토르에게 얻어맞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마존이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후우우우우.”
그러니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조금만.’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길어봐야 하루다. 이 하루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힘든 수련을 참아낼 수 있겠는가.
육체적인 고통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고통이지만, 여하튼 고통은 고통이다.
‘마존께서 의도가 있으실 거야.’
그 마존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이 이리 몰아넣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 그분께서는 지금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정도도 참아내지 못하는 이는 감히 그분의 아래에서 수련을 받을 자격이 없다 말씀하실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불만을 토했다가 수련 대상에서 탈락하는 꼴만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자, 마음을 다스리고, 조금만 더…….”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우웅!
지금까지와는 종류가 다른 거대한 충격이 컨테이너 안에 휘몰아쳤다.
“으아아아아악!”
“아, 씨발! 뭐야!”
“아악!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아악!”
컨테이너를 채우고 있던 마인들이 말 그대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운전을 어떻게!”
“아냐! 아니다! 저거 봐! 뒤쪽!”
주강이 눈을 크게 뜨고 뒤쪽을 바라보았다.
‘빛?’
빛이 들어온다.
단련된 무인의 눈으로도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어둠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말은?
‘뒤틀렸어?’
빛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차가 흔들리는 정도로 틈이 생길 리는 없다. 그렇다면?
쿠우우우웅!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다시 충격이 컨테이너 안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다들 입술을 꽉 깨물고 뒤쪽을 노려보았다.
문이 한 번 더 뒤틀리면서 이제는 사람의 손이 들락거릴 만큼 틈이 벌어졌다.
“비켜! 비켜봐!”
주강이 사람들을 밀치고 뒤쪽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이었다면 사방에서 욕설이 날아들었겠지만, 지금은 다들 군말 없이 길을 터주었다. 겨우겨우 뒤쪽으로 붙은 주강이 힘을 줘 문을 걷어찼다.
쾅!
한 번 더!
쾅!
세네 번 걷어차자, 잠금장치가 비틀리며 문이 살짝 열린다.
그와 동시에 주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보인다.
뭔가 다가오는 것이.
비틀려 열린 문틈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에게로 돌진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빌어먹을! 온다! 꽉 잡아!”
잡을 것이 있다면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앙!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차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났다.
“으아아아아아아!”
주강의 입에서 참지 못한 비명이 터졌다. 몸이 뒤쪽으로 튕기듯 날아간다. 등 뒤를 받쳐 주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저 끝까지 날아갔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이들이 모여 타고 있었기에 충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기들끼리 얽히는 것만으로도 팔다리가 부러져 나갈 정도의 충격이지만, 단련된 몸뚱아리는 이 정도의 충격은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덜컥! 덜컥!
완전히 우그러진 문짝이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젖혀진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광경이 주강이 이를 꽉 깨물었다.
커다란 트럭들.
주강이 알기로 그가 탄 트럭은 가장 후미에 배치됐다. 그렇다면?
“이 개새끼들!”
누군가 그들을 쫓고 있다.
따라붙은 트럭으로 그들이 탄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는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강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들을 태우고 있는 트레일러는 엔진이 터져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이 속도로 달리고 있는 트레일러 안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도 좀 적다면 어떻게 운신의 폭이라도 넓혀보겠지만, 지금 그들은 제자리에 서 있는 것도 버겁다.
그런데 이대로 전복이라도 된다면?
‘잘못하면 죽는다고!’
일반인이면 즉사다. 그나마 무인이니까 살아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뒤쪽으로 멀어졌던 트레일러가 속도를 올려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웅!
트럭이 내뿜는 엔진 소리가 귀를 울린다.
“밟으라고! 이 병신 같은 운전자 새끼야! 밟아!”
“밟고 있겠지!”
“왜 저 새끼들이 더 빠른 거야!”
“차가 다르잖아, 이 병신아!”
“아, 안 돼! 더는 못 버틴다!”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덜그덕대는 소리가 나고 있다. 이대로 한 번 더 강하게 들이받는다면 박살이 날 것이다.
“뛰자!”
“바닥으로? 미친놈아, 뒤에 차가 몇 대가 오는데! 밟혀 죽어!”
“저 트럭으로 뛰자고! 방탄유리는 아닐 거 아냐!”
“여기 사람이 한둘이냐!”
머리가 미처 대처 방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트럭이 그들을 들이받아 왔다.
“으아아아아! 이 미친 새끼야아아아!”
주강의 입에서 절망과 분노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탓!
제한된 시야 사이로 무언가가 뛰어들었다.
마치 영화관의 화면처럼 사각형으로 제한된 그 시야 위쪽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아?”
주강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청바지와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어디선가 많이 본 뒷모습이다.
좌우로 길게 뻗은 두 개의 검.
달빛을 받아 요요로이 빛나는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파아아앙!
공기를 찢는 소음과 함께 그들을 향해 달려들던 트럭이 쩌억 갈라진다. 정확하게 중간이 반으로 갈린 트럭이 좌우로 쓰러지며 커다란 소음을 만들어냈다.
“마, 마존이시여!”
주강의 커다란 고함 소리를 뒤로한 채 강진호가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그의 등으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온다.
어둠 속에서 검은 날개를 펼친 악마처럼.
축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