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0
제10장 작은 사건 (2)
“내일 아침까지 끝내주게.”
툭.
눈앞에 떨어진 업무일지를 보며 조현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관주님.”
“그럼 나는 먼저 퇴근해보겠네.”
휘적휘적 걸어가는 충현을 보며 조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까지라니, 딱히 급한 일도 아닌데.’
뭐,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니다.
신무학관에서도 가장 낮은 동천관의 업무 특성이기도 했다.
언제나 상급 관주가 원하면 재빨리 자료를 내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느긋한 일도 언제나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촤르르륵.
일지를 살피자 오늘 있었던 비무에 대한 평가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조현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각 교관이 평가한 관도에 대한 의견과 비무의 결과를 간단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잘못 기재했다가는 동료 교관들의 불평불만이나, 상급자의 호통을 뒤집어써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유등에 기름을 채운 조현이 슥슥 일지를 정리해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저도 가볼게요.”
하나둘 교관들이 몸을 일으키고 혼자만 남았다.
슥슥.
퇴근 시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붓을 쉬지 않던 조현은 밤이 깊어서야 붓을 놓았다.
“후우. 이제 간신히 끝났네. 이제 어쩐다….”
원래는 관주가 해야 했을 일이다.
떠맡아 억지로 정리하기는 했지만, 신입 교관이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모든 교관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지도 못했고, 간혹 이름이 잘못된 무공의 이름도 있었다.
식견 있는 상급자의 검토는 필수.
하지만 이 밤중에 상급자가 있을 턱이 있나.
“내일 아침에 일찍 나와야겠네.”
마지막 검토를 끝마친 후, 일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는 술에 불콰하게 취한 염광과 권법 담당 구백철권 양 교관이었다.
“어어. 아직도 안 가고 있었나?”
“이제 막 가려던 참입니다.”
“에헤이. 이 근면·성실한 사람 같으니라고.”
“하하. 많이 취하셨습니다.”
구백철권 양 교관이 어깨동무한 채로 부축하던 염광을 교관실 한쪽에 마련한 간이 침상에 내려놓았다.
“에헤라~”
침상에 누운 채로 술김에 허공에 몇 마디 가락을 뽑아낸 염광이 딸꾹거렸다.
“끄윽. 우리 예쁜 조 교관 아냐? 어디 이리 와봐.”
“교두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마! 내가 우리 조 교관이 예뻐서 그래!”
왁 성을 내는 염광에 조현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비척비척 다가갔다.
“여윽시! 우리 조 교관밖에 없어!”
술 냄새가 진동한다.
어서 발을 빼려던 찰나였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일 잘하고! 어? 또!”
딸꾹거리던 염광이 왁 소리쳤다.
“암튼! 이 씹어먹을 초운휘 놈과는 다르단 마리쥐!”
“여기서 갑자기 초 교관이 왜 나옵니까?”
“그 쉐↗에엑↘끼는 진↘짜↗!”
“어휴. 또 이러시네.”
“조만간! 날 잡아서! 그놈 가만히 안 둘 거야! 콱 그냥!”
안색을 찌푸린 양 교관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조현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오늘 비무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그럴 것이다.
꽤 공들인 관도들이 줄줄이 깨지고 말았으니까.
신입 교관이 가르친 관도에게 당한 탓에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무엇보다 남궁윤호나 교관 사냥꾼 제갈탄은 모르겠지만, 백리설이나 모용소혜 정도는 이겨 보이겠다며, 공들여 가르친 아이들을 상대로 내세웠는데 하나같이 떡이 되도록 박살이 나고 말았다.
‘심지어 몇몇은 중간시험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고 했나?’
승부 상대 조작이 비수로 돌아온 격이다.
자업자득이지만 어쨌든 상사의 마음고생은 꽤 심했고, 뒤처리를 양 교관이 해준 모양.
“고생하셨어요.”
“늦게까지 고생하시는데, 이게 뭐라고 고생이겠습니까?”
적당히 염광을 침상에 밀어 넣고, 이불을 덮어주는 양 교관에 감사를 표하며 물러나려는데.
“우리 조 교관! 고생했는데 조만간 같이 술이나 한잔해야지!”
“네, 교두님. 그럼요.”
정말 싫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내일 아침에 이것 좀 확인해주세요. 관주님이 급한 일이라고….”
“아, 알겠어. 알겠어.”
“부탁드립니다.”
몇 번을 간곡히 부탁한 후에 조현은 교관실을 나올 수 있었다.
어지럽다.
피곤함에 지친 상황에 어질어질한 주향에 술주정까지 겪고 나니 당장이라도 침상에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
터덜터덜.
지친 몸을 이끌고 동천관 숙소로 돌아온 길.
가장 위층에 있는 신입 교관 전용복도에 들어선 그녀는 어둠이 까맣게 물든 복도의 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초 교관이 끝 방이라고 했나?’
덜컥.
문을 열고 들어와 간단한 야의로 갈아입은 조현은 쓰러지듯 침상에 몸을 뉘었다.
폭신한 침상에 잠기운이 몰려오는 가운데, 문득 아침에 마주친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에 비해 훨씬 앳된, 아니 어려 보이는 인물.
가슴께에 밖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얼굴은 긴 머리카락으로 가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스물다섯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외모에 청년이라기보다는 악동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부러웠다.
“그게 웬 거에요?”
“후후. 선물로 받았죠.”
“어머. 예쁘기도 해라.”
“흠흠.”
얼굴을 붉힌 채 소매로 검을 가리는 여매홍의 검에도 똑같은 붉은 수실이 매달려 있었다.
“검의 장식이라….”
고개를 틀어 어둠 속에 아스라이 보이는 자신의 검을 흘겨보았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밋밋했다.
사실 장식을 사두기는 했다. 교관실 서랍 안에 있어서 그렇지.
‘그게 뭐야? 나이에 안 맞게 뭘 그런 걸 달고 다녀?’
‘하하. 보기보다는 꽤 귀여운 것이 취향이야?’
‘애들이 보고 있는데 너무 화려한 것은 좀 자제하지.’
몇 번이나 낙방한 끝에 입관에는 성공했지만, 벌써 서른에 가까운 나이.
간신히 꿈을 이루었나 싶지만, 입관하고 보니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눈칫밥 먹기도 바쁜 괴로운 초년생이 된 그녀에게 초운휘라는 괴짜는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었다.
“초 교관, 어디 있어!”
무섭기 짝이 없는 관주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로 제멋대로에.
“초운휘. X새끼 진짜!”
교관들 사이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염광 또한 초 교관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거기에 가르치는 아이들마다 일취월장, 그리고, 저 유명한 십대세가인 백리세가의 감사까지 받아내다니.
“부럽다….”
동료에게 무시당하고.
업무 떠넘김을 받고도 한마디를 할 수 없으며.
장신구조차 눈치가 보여 챙기지 못하는 그녀에게 초운휘는 무척 부러운 사람이었다.
“혹시 관주의 숨겨둔 아들 아닐까?”
그럼 나도 내세에 관주의 딸로 태어나면 가능할지도.
뭉게뭉게 피어나는 감정에 조현은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금은 망상할 때가 아니지.”
다시 야무진 신입 교관의 눈빛으로 돌아온 조현이 중얼거렸다.
“내일은 나아질 거야. 내일은….”
채 몇 번을 되뇌기도 전에.
“쿠-아.”
조현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늦잠을 잤다.’
화들짝 몸을 일으켜 정복을 챙겨 입은 조현은 후다닥 달려가 교관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쌔- 했다.
고개를 빼 보니, 자신의 자리에 등을 보이고 앉은 충현 관주가 검지로 책상을 똑똑 두들기고 있었다.
‘이런. 벌써 나오셨나?’
깜짝 놀란 조현이 잰걸음으로 들어가며 구십도로 고개를 꺾었다.
“느, 늦었습니다! 교관 조현! 출근했습니다!”
늦진 않았다.
정식 출근 시간까지는 한 식경(30분) 정도가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상사가 출근한 이후 들어가면 무조건 지각인 것이다.
신입 교관이 상사보다 늦게 출근하는 것은 간 큰 한 명이나 가능한 경우다.
“왔나?”
돌아앉은 충현의 표정이 좋지 않다.
‘뭔가 잘못되었구나.’
몸을 바로 한 채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고성이 터져 나왔다.
“자네 뭐 하는 사람이야!”
“네, 넵??”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놀라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충현의 노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그렇게 틀리지 않고 잘 확인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그-.”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는.
“시정하겠습니다!”
바짝 엎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충현의 노성이 이어졌다.
“교관 이름도 두 군데나 틀렸고!”
“관도의 이름도 잘못 써진 게 있잖아!”
“제대로 점검하고 가지고 온 것 맞아?”
아차. 시선을 틀어보니, 염광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확인 안 하고 대충 관주 책상에 일지를 던져 놓은 모양이다.
“내가 이거 가지고 은천관 올라가면! 얼마나 쪽이 팔리겠어!”
“시정- 하겠습니다.”
“자네 나 엿 먹이고 싶어 일부러 이러는 것 아냐?”
“아닙니다.”
“아닌데 왜 이러는데!”
“시정하겠습니다.”
“아닌데 왜 이러는데? 진짜 나 엿 먹이고 싶어서 일부러 이러는 것 아냐?”
“아닙니다!”
“아닌데 왜 이러는데?”
몇 번이나 허리를 접었는지 알 수도 없게 되었을 때 즈음, 충현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찰나에 염광이 슬쩍 끼어들었다.
“에헤이. 관주님. 우리 조 교관이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화 푸시지요.”
“흠흠.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나?”
“다시 잘 타일러 자료 올릴 테니, 이만 화 푸시지요. 학무원 쪽에 알아보니, 은천관주께서는 중간시험 준비로 출타 중이시랍니다. 빨라야 닷새 후에나 돌아오신다니, 천천히 지도하며 자료 수정하겠습니다.”
“흠흠. 그런가? 자네만 믿지.”
쌩- 하니 사라지는 충현 관주를 보는 조현의 눈이 암담함에 물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동천관의 실세이자, 처세술의 달인 염광이 멋쩍은 듯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내가 잘 보려고 서랍 안에 놔뒀는데, 관주님이 멋대로 열어 보신 모양이야.”
그럴 리가.
염광의 서랍을 멋대로 열어 볼 정도로 관주는 성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꼼꼼하지도 않고.
물론 그것을 지적할 수 있을 턱이 있나.
“이번 일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기운 차리고 잘하자. 알겠지, 조 교관.”
“크흡. 네.”
“울지 말고. 조만간 기분 전환할 겸 자리나 만들자고.”
정말이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싫은 사람뿐이었다.
***
이틀 후.
간신히 자료 정리를 끝마친 조현은 홀가분해졌다.
애초에 미리 은천관주의 출타 소식을 알았다면 시간을 더 주면 될 일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간 일이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기에 마음에 두고 있는 쪽이 패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뇌며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염광이 일어나 박수를 짝짝 쳤다.
막 충현이 자리를 비운 때였다.
“자! 자! 다들 주목!”
교관실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염광을 향했다.
그리고 오늘은?
‘특이하게도 초 교관이 있네?’
현장에서 관병에게 발각당한 전과 삼십범의 현행범처럼 순식간에 도망치던 사람이 웬일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의 눈에 문득 염광이 다른 교관들과 시선을 나누는 것이 보였다.
하나 같이 초 교관을 혼내주겠다고 벼르던 사람들이다.
‘설마…. 오늘이….’
이틀 전 염광이 떠들던 목소리가 귓가에 떠올랐다.
“초운휘! X 자식! 조만간! 날 잡아서! 그놈 가만히 안 둘 거야!”
화들짝 놀란 조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염광은 꽤 지독한 사람이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물고 놓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어떻게 알릴까 하던 찰나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본 것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이쪽을 돌아보며 검지를 세우는 초운휘의 모습이었다.
– 쉬-잇.
비밀이에요.
라고 말하는 듯 입술을 오므려 검지에 가져다 대는 모습이 어쩐지 뇌리에 박혀 들었다.
세상의 흐름이 느려지고 오직 그 모습만 세상에 가득 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