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9
9화 흑도맹 (2)
어두운 얼굴의 청화루주가 들어서고, 나는 그의 안색을 살피곤 물었다.
“무슨 일 있나?”
“예……. 그,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게 며칠 전부터 기루에…….”
그의 말에 따르면, 요 근래 인상이 험악한 놈들 수십이 쳐들어와 기루를 점거 중이라고 한다.
“그걸 왜 이제 말하나? 진즉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것을.”
“사실 제가 나름대로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한데, 그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저보다 고수였습니다…….”
“이미 한번 깨졌다는 거야?”
부아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청화루주가 자라목이 되어 몸을 움츠렸다.
청화루주는 엄연한 이류의 무인이었으니 그보다 고수라면 두목이란 놈은 십중팔구 일류 고수라는 소리였다.
“떨거지 놈들 실력은 어때?”
“두목 놈 하나 빼고는 별거 없었습니다…….”
그가 말꼬리를 늘이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목적이 제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맹주님을 뵈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알아먹게 이야기를 해 봐.”
약 일각에 걸쳐 이야기가 오갔고, 나는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창에서 이름을 날리던 상응방주, 대오방주가 죽고, 거기다 진씨세가까지 멸문 당했으니 놈은 이곳을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 판단하고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청화루주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것으로 보아 나를 불러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 두목 놈이 주변 지역에서 침 좀 뱉던 놈이라는 거군.”
“예,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알았어. 내일 날이 밝으면 찾아가서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말고 들어가.”
도와주겠단 확답을 내려 주자 청화루주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가, 감사합니다. 맹주님! 감사합니다!”
청화루주를 돌려보낸 뒤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두목이란 놈…….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네? 이거 흑도의 정석을 밟고 있잖아. 이름을 알았다면 누군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전생에서 죽을 때까지 흑도에 몸담았으니 어지간한 놈들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지금 놈이 하는 행동은 오래된 흑도(黑道)의 전통 중 하나로, 일단 다짜고짜 쳐들어가 그곳의 대장이 나타날 때까지 뻐기는 것이었다.
아직 사람을 해치지 않았고 나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일대일 대결을 펼쳐 상대의 세력을 털도 안 뽑고 꿀꺽하겠다는 소리다.
“실력에 자신이 있다 이거지……? 내 기억상으로 이 근방에서 모진평보다 강한 놈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일 보면 알겠지.”
* * *
날이 밝은 뒤.
나는 두이와 청화루주 이철, 그리고 서른 정도의 떨거지들을 이끌고 청화루로 향했다.
시비를 걸어오는 놈이 흑도의 기준으로 정정당당을 논하고 있으니 나 또한 떼로 덤벼들지 않고 비슷한 전력을 이끌었다.
기루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이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맹주님.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조금 더 전력을 갖추는 편이…….”
내가 입을 열기 전, 두이가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루주. 괜한 걱정 하지 마십시오.”
“그, 그게, 저는 그저…….”
“누구도 맹주님께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적당히 하십시오.”
“예, 예.”
두이는 내가 무시당했다 싶었는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고작 여섯 살 차이 형제지간이지만 나는 녀석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 왔다. 정신 연령이 삼십 대였던 나완 달리, 멸문 당시 두이의 나이는 고작 일곱에 불과했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 나인 셈.
“가자.”
“예, 맹주님.”
기루 앞에 도착해 보니 과연 청화루의 무인들은 쫓겨난 지 오래였고 문지기마저 처음 보는 놈이 서 있었다.
내가 수십의 무인을 뒤에 세운 채 버티고 서자 문지기 놈은 기다렸다는 듯 도병으로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약속된 신호음을 듣고 내부에 있던 떨거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뒤이어 흑의(黑衣)를 입은 분위기 있는 놈도 나타났다.
“당신이 흑도맹주요?”
부리부리한 눈매에 툭 불거진 턱 근육으로 보아 제법 심지가 굳건한 놈으로 보였다.
놈은 어깨 위에 도 한 자루를 얹은 채 내게 물었고, 나 또한 놈의 기백에 밀릴 수 없다 판단하고 답했다.
“그래. 내가 흑도맹주 장두철이다. 넌 누구냐?”
“하하하. 나는 평산의 신마평이외다. 만나서 반갑군.”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이전 삶에서 신마평이란 이름은 철혈방주로 유명했다.
허구한 날 흑도 놈들과 싸움을 벌여 미친개로도 통했던 놈.
자신과 뜻이 다른 놈들을 가차 없이 죽여 없애는 철혈방주.
다만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인지라 놈의 무공 실력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양 세력의 대장끼리 마주 보고 서니 휘하의 무인들이 넓게 간격을 벌려 판을 깔아 줬다. 모두가 곧 대결이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고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생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네가 청화루를 무단으로 점거했다고 들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내가 원하는 것이라……? 당신이 상납금을 없앴다고 들었소. 사실이오?”
“그래.”
“돈을 받지 않으면… 이 많은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린다는 거지?”
내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하는 꼴에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거기다 내가 가장 증오하는 상납금까지.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
“상납금을 왜 받아야 된다는 거냐! 무공 몇 줄 익히면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며 살아도 되는 건가? 그 넘치는 힘으로 일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객잔에서 밥을 팔든, 기루에서 술을 팔든 하다못해 표국의 쟁자수가 되어 짐을 나르면 되는 것 아니냐!”
“…….”
갑자기 분노가 폭발한 내 모습에 신마평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놈을 배려할 마음이 없어 틈을 주지 않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명백히 맺혀 있는 붉은 검기.
적운(赤雲).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운을 보며 놈의 눈에 놀랍다는 기색이 비쳤다. 그러곤 어깨 위에 얹혀 있던 도를 휘둘러 받아쳤다.
채앵!
적운을 무리 없이 받아 내는 것으로 보아 놈은 확실한 일류 고수였고 일전의 대공자와 마찬가지로 무리를 해서 검기를 끌어올린 게 분명했다.
놈은 잠시 나와 무기를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다 자신이 불리한 것을 깨닫고 일순간 힘을 쏟아 내 나를 밀어냈다.
촤앙!
적운공이라는 신공을 익힌 나.
반면 평범한 무공을 통해 기(氣)를 실체화시키는 놈은 효율성에서 비교할 수 없었다.
같은 내공을 보유했을지라도 내가 배 이상은 유리할 터.
“흑도맹주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어부지리를 통해 북창을 꿀꺽했다는 건 전부 헛소문이었군.”
“헛소리하지 말고 죽어라.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더러운 놈!”
나는 놈에게 달려들어 검을 맹렬히 휘둘렀고 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받아 내기 급급했다.
챙! 챙! 깡!
“으윽……! 이런 젠장!”
거의 십 합이 넘어서자 놈은 내공 소모가 부담스러운지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놈을 도발했다.
“왜? 죽을 때가 되니 후회가 남나? 어딜 감히 내가 있는 북창에 손을 뻗어!”
한 달 동안의 특훈을 통해 초식의 숙련도를 끌어올렸고 내공 또한 내가 우세했기에 밀릴 이유가 없었다.
놈의 실력은 잘 쳐줘야 일류의 초입을 갓 벗어난 상태.
그렇기에 나는 독이나 암기를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놈을 몰아붙였다.
“잠깐, 잠깐만 멈춰 봐라……! 아, 이 씨X!!”
나는 문답 무용으로 놈의 허점에 검을 들이밀었고 대경실색한 놈은 바닥을 구르며 물러섰다.
그리고 재빨리 일어난 채 한 손을 내게 뻗어 싸움을 중지했다.
“맹주.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오해? 무슨 오해 말이냐. 죽는 게 두려워 이제 목숨을 구걸할 생각인가?”
비아냥거리는 내 말을 듣고 신마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죽는 게 두렵다. 하지만 나는 양아치로 살아오진 않았다. 신가에서 태어나 내가 가장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것이 바로 돈을 뜯어 가는 양아치들이었다! 그런 내가 상납금을 원해 여기로 온 줄 아는가?”
“음……. 일리 있는 말이군. 한데 당했으니 자신도 똑같이 하겠다는 놈들이 많던데?”
내가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자 놈은 가슴을 두드리며 제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무어냐!”
그러자 싸움을 지켜보던 떨거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답했다.
“체면은 버리더라도 인의(人義)는 지키자!”
머뭇거림 없이 답하는 놈들.
그 모습에 마침내 나도 의심을 거두고 검을 내렸다.
“크흠……! 오해가 있었나? 알고 보니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처지였군. 하하하.”
“…….”
내가 코를 긁적이며 말하자 신마평의 턱 근육이 다시 불거졌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
대화를 시도한 상대에게 다짜고짜 검을 내질렀으니.
나는 멋쩍어져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러게 왜 기루를 점거하고 지랄이야!”
곧바로 상황은 정리됐고, 구경하던 양민들 또한 해산시켰다.
그들은 나와 신마평의 사상 검증을 확실히 거쳤다는 것에 기쁜 나머지 서로의 객잔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했다.
“하하하! 두철이. 이번엔 우리 가게도 좀 팔아 줘야지?”
“한바탕했으면 진하게 한잔해서 풀 것 아닌가. 나를 따라오게!”
“무슨 소리! 자네 가게는 벌써 두 번이나 들렀지 않은가?”
“이번엔 나도 양보 못 해!”
물론 절대 공짜는 아니다.
어찌 된 것인지 북창의 양민들은 험상궂은 흑도 놈들을 벗겨 먹으려 작정한 듯했다.
거칠게 굴러먹는 흑도 놈들 수십이 한 번에 객잔으로 몰려가면 하는 것이라곤 술을 마셔 대는 것뿐.
거기다 항상 누구의 주량이 대단한지를 두고 술 싸움이 벌어졌기에 끝도 없이 매상이 올라갔고. 그리하여 지금 객잔 주인들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죽하면 싸움이 벌어졌다 싶으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게 객잔 주인들이었다.
신마평은 겁도 없이 방방 뛰는 양민들의 모습에 얼이 빠진 모습이었고.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 자! 다들 조용히 하쇼. 강 씨 아저씨는 지난번에 돈 좀 만졌을 텐데 왜 그래요? 그러고 보니 요새 도박장에 얼굴 비친다는 소문이 들려?!”
은근슬쩍 면박을 주자 강 씨의 얼굴이 붉어지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참, 신 씨 할아버지도 평산 출신 아닙니까? 이쪽도 신씨라던데 할아버지 가게로 가는 게 도리에 맞겠네. 다들 불만 없지?”
나는 강호의 도리를 언급하며 호객꾼들을 물리쳤다.
그 와중에 신마평은 신 씨 할아버지가 자신의 가문 어른일지도 몰라 다소곳이 섰고 의복의 먼지를 털어 단정한 모습을 꾸며 냈다.
“어르신께서도… 평산 신씨이십니까?”
공손한 물음에 객잔 주인 신씨가 당황한 듯 손사래 쳤다.
“으, 응? 아니, 난 그저 오래전에 그곳에서 일하던 하인에 불과하네……. 어르신께서 내게 성(姓)을 내려 주셨을 뿐이야. 하하하.”
“제 조부님과 인연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웃어른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휘하의 떨거지들을 객잔 이곳저곳에 공평하게 풀어 놓고 수뇌부들은 신 씨의 가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