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 아, 그랬소만.
나를 기준으로 왼편에 선 노인이 되물었다.
“네가 마협이냐?”
“그렇소만. 노인장은 뉘시오?”
노인들은 이번에도 내 질문을 묵살했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다시 물었다.
“나한테 볼일이 있소?”
쌍둥이는 허리에 차고 있던 철곤(鐵棍)을 빼 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기하게도 한 명은 왼손에, 다른 한 명은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파란빛이 감도는 쇠몽둥이를 일견하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대체 누구지?
살막의 살수들일 가능성은 해가 서쪽에서 뜰 만큼이나 낮았다. 그렇다고 백걸방이 초빙한 고수들일 성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오절도의 방수들인 걸까.
아!
노인들의 정체를 추론하다가 불현듯 어제 아침 자하옥관 별채 안마당에서 한판 붙었던 곱상한 외모의 청년이 떠올랐다.
“다리가 부러진 친구의 일로 왔소?”
노인들이 동시에 백미를 찡그렸다. 내 짐작이 들어맞았다는 방증이었다.
“돌발적인 사고였소. 나는 그 친구와…….”
노인들은 내 해명을 끝까지 듣지 않고 뼈다귀를 발견한 들개들처럼 달려왔다.
선택의 기로였다.
튈 것인가. 맞싸울 것인가.
이성은 전자를 가리켰지만 본능은 후자를 요구했다.
나는 본능의 주장에 따랐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달아날 게 무언가. 그리고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피에는 불퇴전의 투지가 깃들어있었다. 노인네는 내 본성을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휘잉. 휘이잉.
노인들이 휘두르는 쇠몽둥이들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내 고막을 두드렸다. 소리에 극도로 민감한 나에게는 음공(音攻)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청력을 줄이며 노인들을 상대했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노인들은 감탄이 나올 만큼 절묘한 합공술을 구사했다. 마치 팔이 네 개 달린 괴물과 싸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노인들은 전후좌우를 번갈아 오가며 나를 공략했다. 몇 번이나 그들의 철곤이 내 어깨와 머리와 몸통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격을 허용했으면 뼈가 으깨졌을 터였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일방적인 수세에 몰렸지만 나는 차츰 쌍둥이 노인들의 힘과 기교와 속도에 적응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손속도 거칠어졌다. 금방 끝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가 이십 초가 지나도록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자 당황한 것이었다.
나는 우수(右手) 노인의 쇠몽둥이를 흘려내면서 좌수(左手) 노인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내 발길질은 노인의 옷자락에만 닿았을 뿐이었다. 아쉬웠다. 조금만 깊었으면 옆구리 터진 개구리 신세가 되었을 텐데.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삼십 초가량 지속되었다. 여전히 내가 불리한 형국이었지만 내심 승리의 확신이 들었다. 노인들이 지닌 내력의 합은 내 건곤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려야 질 수가 없었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전세 역전의 한 방을 노리고 있던 나는 승부수를 던지자마자 역으로 위기에 처했다.
좌수 노인이 헛손질을 한 틈을 타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놓으려다 순간적으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결정타로 삼으려 했던 일권을 포기하고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그 순간 우수 노인의 쇠몽둥이가 내 등짝을 훑었다.
아슬아슬했다. 한순간만 늦게 대처했더라도 큰 부상을 당했으리라.
나는 노인들이 의도적으로 빈틈을 보여 나를 유인했음을 깨달았다.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백전노장인 반면 나는 실전에는 햇병아리나 진배없었다.
진지하게 응전하기로 작심했지만 일단 몸부터 굴렸다. 노인들의 후속 공격이 내가 엎드렸던 자리를 강타했다.
뇌려타곤을 시전한 후 벌떡 일어나 백걸방 담장을 타고 돌았다. 노인들이 지체 없이 나를 쫓아왔다.
커다란 느티나무에 이른 나는 그 뒤로 돌아갔다. 내 의도를 지레짐작한 노인들이 양옆으로 갈라서는 대신 한쪽으로 몰려왔다. 거기까지 내다본 나는 앞선 좌수 노인에게 지풍을 내쏘았다.
설마 내가 지공을 펼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 좌수 노인이 속절없이 왼 손목을 내주었다. 그에게 가일수를 하지 않고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나는 우수 노인의 턱을 무릎으로 가격했다.
우수 노인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내가 공중에 뜬 것을 역이용해 몸을 낮추더니 철곤을 창처럼 내 사타구니에 찔러 넣었다. 가랑이 사이로 쇠몽둥이를 흘리며 공중제비를 돈 나는 우수 노인에게도 지풍을 날렸다. 그는 이번엔 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손목들이 부러져 쥐고 있던 철곤들을 떨어뜨린 노인들이 퇴각을 택했다.
병기까지 버리고 허겁지겁 달아나는 그들의 다리에 지풍을 선사했다. 종아리가 터지며 노인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전투력을 상실하고 전의도 잃은 노인들에게 걸어갔다.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어이가 없었다. 몰라서 두 번이나 물었잖은가.
나는 ‘댁들이 누구요?’라고 반문하지 않고 노인들의 턱을 걷어찼다. 시차가 있었음에도 비명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신기하기도 하지.
턱들이 깨진 노인들이 뭉개진 발음을 쏟아냈다.
“이에 어으 우어아.”
“우어 오아 이 아어.”
뭐라는 거야.
나는 노인들의 아랫배도 가차 없이 밟았다. 단전이 터지는 촉감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지나친 처사라고? 노인들이 발산했던 것은 명확한 살의였다. 나를 죽이고자 한 자들을 봐줄 까닭이 없지 않은가.
불살의 금제만 아니라면 단순히 무공을 폐하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통을 부숴버렸을 것이었다.
***
노인들을 폐인으로 만든 나는 대문 뒤에 숨어서 나와 그들의 일전을 관전하고 있던 자를 불러냈다.
“이리 나오쇼.”
왼뺨에 칼자국을 새긴 오십 대 중반의 중년인이 주춤거리며 문을 넘어왔다. 왼쪽 귀는 문드러졌고 다른 오른쪽 귀는 반만 남아있었다. 백걸방의 두목인 짝귀일 터였다.
제멋대로 내 앞에 오체투지한 짝귀가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을 쏟아냈다.
“저 노물들은 본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협. 반 시진 전에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나는 짝귀의 말을 잘랐다.
“됐고, 명단에 든 이들은 잡아놓았소?”
“무, 물론입니다. 한 놈도 빠짐없이 형당에 처박아두었습니다. 대협의 협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만생의 영광이옵니다. 앞으로는 수하들 단속을 철저히 해서 다시는 대협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어허! 누구 밥줄을 끊으려고!
“알았소. 그자들을 마차에 태워 사당으로 데려갑시다. 이 노인들도 같이. 사람들을 부리지 말고 직접 하도록. 일각 주겠소.”
“대협의 명을 받드옵니다.”
펄쩍 일어난 짝귀가 쏜살같이 대문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반각도 안 되어 크고 화려한 마차를 몰고 나오더니 바닥에 널브러진 쌍둥이 노인들을 실었다. 마차 문을 열 때 얼핏 보니 안에 흉한들이 짐짝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마부석에 올랐다. 내가 옆에 타자 짝귀가 얼어붙었다.
“뭐 하오? 어서 가지 않고.”
내 독촉에 짝귀가 허둥지둥 고삐를 잡아당겼다.
***
사실 마차를 이용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발굽에 기별도 오지 않았는데 멈춰 세우자 말들이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말들의 심사까지 읽느냐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사당 앞에 마차를 세운 짝귀가 마부석 반대편으로 뛰어내리더니 마혈이 찍혀 통나무가 된 제 부하들을 양어깨에 하나씩 걸치고는 사당 입구로 걸어갔다.
“그럴 필요 없소.”
“아닙니다, 공자님. 맡겨주십시오. 이렇게나마 공자님께…….”
말끝을 흐린 짝귀가 운반하던 짐들을 내팽개치고는 냅다 달아났다.
흠, 내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건가. 용병으로 이십여 년을 굴러먹었다더니 제법 눈치가 빠르군.
나는 돌멩이를 주워서 벌써 칠팔 장이나 멀어진 짝귀의 등허리에 던졌다.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솜씨의 소유자답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목표했던 지당혈(志堂穴)에 돌멩이를 적중시켰다.
물론 강도도 세심하게 조절했다. 사혈이자 마혈인데 자칫 세게 던졌다가 즉살의 우를 범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퀙!
괴성을 토해내며 짝귀가 고꾸라졌다. 나는 느긋하게 그에게로 걸어갔다.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저놈들을 갖다 바치면 저는 살려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짝귀의 항의를 묵살하려다 대꾸해주었다.
“내가 언제? 내가 보장한 건 백걸방의 존속이지 당신의 안위가 아니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공자님.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견마지로를 다해…….”
솟아날 구멍이 없음을 자각했는지 구명을 간청하던 짝귀가 느닷없이 암기를 뿌렸다. 독(毒) 모래였다.
언제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지? 그것보다 마혈이 찍혔는데 어떻게 손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행여나 즉사할까 봐 돌멩이를 살살 던진 탓인가?
여하간 짝귀의 암수를 가볍게 흘려낸 나는 재차 그의 혈도를 찍었다. 짝귀가 악다구니를 썼다.
“이 개만도 못한 놈. 야비하고 교활하고…….”
짝귀는 도중에 욕설을 멈춰야 했다. 혀가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조용하니 좋았다.
흠, 애초에 아혈부터 점할걸.
나는 짝귀부터 지하 석실에 던져 넣었다.
살진 돼지를 본 아귀들처럼 수십 명이 일시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주태가 성난 무리를 가로막았다.
“자자, 진정들 하고 내가 이른 대로 하시오. 앞사람이 제 욕심만 차리면 다른 이들은 먹을 게 없잖소? 정한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손을 봅시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놀랍게도 사람들은 주태의 통제에 따랐다.
수십 자루의 비수에 의해 무참히 찢기는 짝귀를 잠시 지켜보던 나는 나머지 먹잇감들을 가져오기 위해 지하 석실을 나갔다. 그러고서 마차 문짝을 떼어내어 열한 명을 한꺼번에 싣고는 돌아왔다. 그들에게도 원한에 사무친 칼질이 시작되었다.
감사 인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아직 때가 이른 듯해 마차에 두었던 쌍둥이 노인들도 데려왔다.
그들을 본 주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가 노인들의 정체를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십중팔구 그럴 테지.
무력으로 보건대 무명소졸은 아닐 터인데다 쌍둥이라는 특징이 있으니 몰라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저들은 살막의 살수들인지요?”
노인들을 힐끔거리며 주태가 물었다.
“그건 아닌 것 같소.”
“그럼 뭐 하는 자들인지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모르오. 백걸방 정문에서 마주쳤는데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듭디다.”
주태가 노인들 앞에 쪼그려 앉더니 그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판에 박은 듯 똑같은데 뭐 하러 둘 다 보지?
살로 덮인 눈을 씰룩거리며 주태가 중얼거렸다.
“설마……, 아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뭐가 말이오?”
주태는 답을 주지 않고 질문으로 받았다.
“혹시 이들이 청광이 감도는 철곤을 쓰지 않았는지요?”
“아, 그랬소만.”
주태의 누리끼리한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