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25)
#재능만렙 플레이어 525화
“도통 알 수 없는 소리군.”
무명안을 아주 잠깐 활성화시켜 보았다.
느껴진다. 이 백린구슬에는 수많은 원념이 서려 있다. 많은 생명을 잡아먹고 탄생한 아이템이다.
‘못해도 수백 명 이상이, 이걸 만들기 위해 실험체로 쓰여졌다.’
그 끔찍함이 피부로 와 닿았다. 김혁진이 말했다. 선택지를 있는 대로 다 던져줬다.
“뭐. 전면전을 원한다면 해도 좋아. GVG도 상관없고, GVG필드 없이, 그냥 싸워도 괜찮고.”
GVG는 부활이 적용된다. 그냥 싸우면 부활이 적용되지 않는다.
쉬 사우덩이 비웃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진행한 이유가, 결국 GVG를 끌어내기 위함이 아닌가?”
제대로 맞붙으면 무조건 중국 쪽이 이긴다. 그것은 쉬 사우덩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거신이 뛰어난 길드라고는 하지만, 숫자에서 너무 밀렸다.
그래서 거신길드가 일부러 이렇게 진행시키면서, GVG를 유도하고 있다. 쉬 사우덩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김혁진이 대꾸했다.
“그게 네 한계지.”
쉬 사우덩의 생각을 정확히 짚었다.
“난전으로 유도한 다음, 나만 생포하여 [플레이어의 양분]을 어떻게 만들지 알아내려는 것.”
“소설가 했으면 잘했겠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김혁진이 대놓고 등을 돌렸다.
“우리 쪽에 [섬김의 무투가]가 있는 걸 봤다면 말이야.”
김혁진이 걸어가고, 강솜이가 걸어 나왔다.
“[섬김의 탐험가]도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좋았을 텐데.”
강솜이의 품에 작은 구슬이 하나 들려 있었다. 영상 기록 스톤이었다. 그 구슬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하늘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김혁진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책임은 피해가려고, 포션이라고 부르더라.”
순간, 쉬 사우덩의 눈빛이 변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여기서…… 저년을 죽인다?’
죽인다, 죽이지 않는다, 죽인다, 죽이지 않는다.
‘죽이면 파장이 너무 커지는데.’
죽이지 않는다면?
‘파장이 더 커진다.’
‘화학 포션’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명령을 내렸다. 저 ‘섬김의 탐험가’라는 여자가 해당 장면을 모두 녹화해 놓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심복들이 플레이어들 사이를 누비며 백린구슬을 사용할 채비를 끝마쳤다는 사실도 이미 녹화되었을 것이다.
‘김혁진은 등을 돌리고 있어.’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김혁진을 노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해.’
저 영상이 제대로 방영되기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세계의 기자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만약 여기서 백린 구슬을 사용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중국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거다.
‘난 버려지지 않는다!’
도의적인 지탄은 받겠지만,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은 플레이 도중이고 사람을 죽이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네가 내게 등을 돌린 것이 실수다.’
김혁진은 죽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영상 재생에 정신이 팔린 강솜이는 얘기가 다르다. 목표는 강솜이.
‘널 죽이면 영상도 사라지겠지.’
쉬 사우덩이 강솜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김혁진이 검지를 들어올렸다. 어디선가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쉬 사우덩의 가슴을 뚫었다. 방어할 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쉬 사우덩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참. 우리한텐 궁수도 있는데. 내가 말 안 해줬었나?”
* * *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하길드는 순식간에 지휘관을 잃었다. 지휘관이 없으니 사람이 많아봐야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하늘에 파노라마 영상이 재생되었다. 기자들과 ‘슈퍼 망원경’이 그 영상에 집중했다. 슈퍼 망원경은 그 영상이 무슨 영상일지 대충 예측했다.
-아마, 황하 측에서 비겁한 수를 썼다는 것을 밝혀내는 영상 같습…… 어?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깼다. 그런 영상이 아니었다. 영상 속 김혁진이 말했다.
-내가 등을 돌리고, 강솜이 씨가 앞으로 나서면, 쉬 사우덩의 눈이 돌아버릴 겁니다.
-일부러 등을 돌리시는 건가요? 달려들라고?
-네. 그리고 제가 아닌 강솜이 씨를 노리겠지요.
-……저를요?
영상 속 강솜이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위험을 즐기는 타입답게, 약간의 전율을 느낀 것 같았다.
-강솜이 씨를 없애야 증거를 없앨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까요.
모든 것이 김혁진의 말대로 되었다. 쉬 사우덩이 눈알이 뒤집혔다. 일단 강솜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 저 죽으면 어떡해요?
-우리 측 궁수가 강솜이 씨를 보호할 겁니다.
거기서 강솜이는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궁수들 중 누구요?
궁수라고 해봐야 둘뿐이다. 정식 길드원인 슈르트와 명예 길드원인 현정화. 그러나 강솜이가 이렇게 말함으로 인해서, 궁수가 여럿인 것처럼 되었다.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비밀입니다.
영상은 그걸로 끝이 났다. 마상현에게 된통 당했던 장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딴 게 무슨 증거냐!”
사자후였다.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하길드원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저 말이 맞았다. 모든 것이 김혁진의 그림대로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김혁진의 말이 맞다는 뜻은 아니었다.
장비가 쿵! 하고 바닥을 내리 찍었다.
“결국 음모를 주장하는 얘기뿐이군.”
영상 속 김혁진이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럼 누가 될까요? 아마 장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누가 됐든 황하의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이딴 건 증거가 아니다!’라며 소리를 치며 사기를 북돋을 겁니다.
장비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저 자식……!’
눈이 시뻘개졌다. 장기판 위의 말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상 속 김혁진이 계속 말했다.
-황하길드원들은 정신을 차렸을 거고, 길드장의 억울한 죽음에 원통해하고 있겠죠. 아마 당장이라도 거신을 치려고 들 겁니다.
슈퍼 망원경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저거 진짜 예전에 찍어놓은 거 맞아?’
모든 것이 김혁진이 말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었다. 장비의 사자후로 황하길드원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거신길드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던 중이었다.
영상 속 김혁진이 씨익 웃었다.
-처음부터 증거 공개하면 되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궁금할 겁니다.
슈퍼 망원경도 궁금했다. 어차피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빨리 공개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쯤되니 김혁진이 선동가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가 슈퍼 망원경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
이 타이밍.
‘이 타이밍도 철저하게 계산된 타이밍인가?’
선동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그 시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의심을 품는 그 결정적인 타이밍. 그 타이밍을 노려 반전기법을 주는 것 같았다.
‘연출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냐.’
만약 여기서 결정적인 증거가 터져 나와 준다면? 모든 것은 김혁진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될 거다.
영상 속 김혁진이 여유로이 말을 이었다.
-원래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게 제일 아프거든요?
그리고 나서야 공개되었다. ‘화학 포션’을 뿌리라는 은밀한 명령이. 그리고 ‘화학 포션’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백린 구슬’을 들고 돌아다니는 최측근들이.
김혁진이 얄밉게 웃었다.
-아참. 우리 쪽에 뛰어난 도적 클래스도 있다는 얘기는 안 했었죠?
베텔루 북극 평원에서 한 번 거신길드의 저력을 드러냈다. 거기에 마상현의 힘을 보여준 뒤, 섬김의 탐험가를 등판시켰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실력의 궁수까지 등장시켰다. 이곳은 그야말로 거신길드의, 거신길드를 위한, 거신길드에 의한 필드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진짜 김혁진이 말했다.
“참고로 황하길드장은 안 죽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겠지만.”
즉사한 줄로만 알았던 쉬 사우덩의 몸이 꿈틀거렸다. ‘슈퍼 망원경’은 중계도 잊고 잠시 제자리에 멈췄다.
‘뭐야, 이거?’
완전히 죽은 것처럼 연출했었다. 의도된 것이었다. 독으로 저렇게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황하길드원들의 공적은…….’
원래 황하길드원들의 공적은 거신길드였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쉬 사우덩을 ‘믿는 도끼’로 만들어 놓고, 배신감에 치를 떨게 만든 다음, 사실 쉬 사우덩이 죽지 않았다고 밝혔다.
‘쉬 사우덩이 공적이 되어버리잖아?’
황하길드원들 눈에 거신 길드가 들어오겠는가. 자신들을 그저 버리는 패처럼 죽이려고 했었던 ‘믿는 도끼’를 한순간에 공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살인은 피했다는 명분을 챙길 수 있어.’
결국 거신길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플레이를 하면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살인은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좋았다.
“백린구슬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시험하고 싶은 분들은, 가져가도 좋습니다.”
김혁진이 백린 구슬이 담긴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원하는 것은 이미 ‘베텔루 북극 평원’에서 다 얻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장비가 쿵쾅대며 달려왔다. 그는 뛰어난 플레이어였지만, 이 음모에 연관된 건 아니었다. 이런 음모와 계략은, 그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다주었다.
“이런 시X! 이 개 같은 새X야!”
장비는 유리병에 담긴 백린 구슬을 쉬 사우덩의 몸에 쏟아냈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으아아아악!”
쉬 사우덩은 불타 죽었다. 결국 쉬 사우덩을 죽인 사람은 김혁진이 아니라 장비였다.
두 수호자가 감명 깊게 상황을 지켜본 듯했다.
[‘속삭이는 악마’가 즐거워합니다.] [‘소음의 지휘자’가 감탄합니다.]쉬 사우덩이 죽고, 황하길드는 자멸했다. 간부급 플레이어들은 황하길드원들의 손에 맞아 죽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황하길드’라고 보기 어려웠다.
김혁진은 쉬 사우덩이 죽어가는 것. 그리고 황하길드가 무너져 가는 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끔찍한 물건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려던 단체를, 저는 용서할 생각이 없네요.”
어차피 악몽과는 척을 졌다. 더 이상 사이가 나빠지기도 어렵다.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얘기를 해놓는 편이 좋았다.
“앞으로 백린구슬을 만들거나 사용한 이들. 그리고 이들을 도운 이들은 거신길드의 적으로 간주합니다.”
예전의 거신길드가 이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거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슈퍼 망원경‘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완전 선전포고잖아?’
그 단체가 누군지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았다. 저건 단순히 악몽에게 하는 선전포고가 아니었다.
슈퍼 망원경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악몽이든 뭐든. 아무튼 걔네랑 손도 잡을 생각하지 마라. 이런 얘기 아닙니까?
세계에 말한 거다. 줄 똑바로 서라고. 앞으로 악몽 측에 줄을 대는 놈들은, 무조건적으로 거신길드의 적이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얘기의 무게감이 상당했다.
-전 세계 플레이어들에게 전하는 경고 같네요.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
어찌 보면 오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오만함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실력이 뒷받침되는 오만은 더 이상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슈퍼 망원경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쉬 사우덩과 그 최측근들을 악의 축으로 만들면서, 영웅적인 이미지와 명분까지 챙겨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압승이네요.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거신길드를 욕하지 않았다. 실력에서도, 명분에서도, 실리에서도, 모든 부분에서 거신길드가 이겼다.
슈퍼 망원경은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이게 코리안 스타일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때 김혁진의 눈에 강렬한 노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에게서 말이다.
‘장비?’
장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백린 구슬 포션의 뚜껑을 열고 있었다.
쉬 사우덩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