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54
154. 불꽃의 핵.
서기수는 대량의 몬스터가 있는 지역에 몸을 던졌다.
양손에 든 대검으로 몬스터의 목을 날렸다.
멈추지 않고 다른 몬스터를 반으로 갈라 죽였다.
주변의 몬스터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으나 완전히 포위된 상황.
틈은 새길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가 발톱으로 기수의 몸을 긁었다.
갑옷이 찢어지고 몸에 상처가 났다.
그 상처는 깊지 않았다.
기수는 아픔 따위 느끼지 않는다는 듯 몬스터를 찔러 죽였다.
사방이 몬스터였기에 기수는 쉬지 않고 대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갑옷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마시고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갑옷 아래의 몸도 이미 치유된 뒤였다.
몬스터 무리는 기수의 손에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거기서 튀어나온 피로 갑옷이 더럽혀진 것도 잠시.
갑옷은 곧 그것들도 흡수했다.
게걸스럽게 생을 탐하는 갑옷을 입고 자기 몸보다 적의 죽음을 우선하는 그를 대체 누가 성기사라고 생각할까.
대중에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대외적으로 그는 용감하고 명예로운 성기사였으니까.
특히 어머니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분명히 걱정하실 테니까.
친구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었다.
‘바보냐.’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걱정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을 테니까.
친구의 생각에 몬스터를 향한 증오로 가득했던 표정에 잠깐 미소가 깃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야에 몬스터가 들어왔고 모든 감정은 증오로 덧칠됐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잊지 않았다.
가슴 속에 몬스터를 불태우는 강력한 화염을 품었으나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화염을 사용한다면 다칠 일도 없었을 거다.
몬스터의 무리 따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겠지.
화염보다는 다른 스킬을 주로 사용하며 스킬 레벨을 올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불꽃을 사용하면 몬스터 소재는 물론이고 마석도 얻을 수 없다.
뒤쫓아 오는 회수반을 생각하면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 게 맞았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불길이 너무 강해지면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조차 불태울 위험이 있었다.
불길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런 던전은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매일 던전을 전진하는 그는 이미 불길이 없어도 세계에서 손꼽히도록 강한 헌터였으니까.
이주형 던전의 공략을 마친 기수는 설치된 임시 거점으로 들어가 갑옷을 갈아입었다.
누가 봐도 성기사라고 여길 법한 갑옷으로.
던전이 생겼던 지역 근처에 있는 마을의 광장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전부 그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바리케이드는 이미 설치돼 있었다.
젊고 강한 세계의 수호자.
서기수는 평화 길드의 얼굴도 맡고 있었다.
여느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기수는 바리케이드 사이를 걸었다.
투구를 벗고 친구가 자본주의 머리색이라고 하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얼굴에 투구만큼이나 단단한 웃는 가면이 장착한 채로.
“꺄아아아아악!”
“던전을 없애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여기! 여기 좀 봐주세요!”
모두의 성원에 가볍게 응하며 서기수는 길을 걸었다.
도중에 조금 독특한 소녀를 발견하고 잠시 시선이 멈췄다.
으로 만든 안대를 얼굴에 쓴 소녀였다.
별이 가득한 우주 같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가면 아래에 숨겨둔 것들이 파헤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를 가져요!”
바리케이드를 넘으려는 사람이 있어서 그쪽으로 잠시 정신을 빼앗겼다.
기수가 소녀가 있던 곳을 다시 봤을 때.
소녀는 사라진 뒤였다.
***
슬라임랜드는 촬영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으며 틈만 나면 새로운 놀이기구가 추가된다.
깊게 파고들면 몰랐던 것들도 속속히 밝혀지면서 콘텐츠가 끊임없이 나온다.
거기에다가 슬라임랜드의 소유주인 연금슬라임이 툭하면 화제의 중심에 서기까지.
사람의 관심을 먹고 사는 자들에게 슬라임랜드는 끊임없이 금이 샘솟는 땅이었다.
슬라임랜드에서 살다시피 하는 방송인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방송국이 언제나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한국의 TV 방송국도 슬라임랜드를 탐구하고 체험하는 예능을 정규 편성으로 넣었고 이는 쏠쏠한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힐링 방송이 있는가 하면 출연자를 괴롭혀서 시청자의 웃음을 뽑아내는 방송도 있었다.
전에 연예인 관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슬라임랜드 사랑과 선명하게 빛나는 을 보여준 남자 가수.
그는 어느 악독한 PD가 기획하는 예능의 고정 출연자가 됐다.
남자 가수는 PD와 회의했다.
오늘도 살짝 꿈틀거리며 빛 가루를 흩뿌리는 을 쓴 그에게 PD가 말했다.
“슬라임랜드의 일부는 아니지만, 새로운 놀이기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셨죠?”
“설마 그거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네. 그거요.”
여기서 말하는 ‘그거’란? 로드 투 스페이스 중간에 뻗어 나온 가지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을 뜻했다.
가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번지점프 수준으로 낮은 곳도 있었고.
“적어도 대류권은 벗어나셔야죠?”
“PD님! 그건 너무 높잖아요!”
대류권을 벗어나는 곳에 있는 가지도 있었다.
특수한 을 입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이었다.
“을 믿으시는 거 아니었나요?”
“믿어요! 당연히 믿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층권에서 뛰어내리라는 건···!”
그때 PD는 화이트보드를 돌려서 이번 기획의 테마를 보여줬다.
[하늘 콘서트.]“신곡 홍보하셔야죠?”
최근 남자 가수는 신곡을 발매했다.
“자, 고르세요.”
PD는 가지 높이에 따른 낙하 시간을 보여줬다.
이번 신곡의 길이를 생각하면 4분은 넘어야 했다.
여유시간까지 생각하면 5분은 필요했다.
남자 가수는 눈을 질끈 감고 꽤 높은 곳에 있는 가지를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남자 가수는 슬라임랜드에서 하늘 높은 곳으로 떠나는 엘리베이터 탔다.
슬라임랜드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는 우선 을 통해 바다를 통과했다.
“밖의 풍경이 멋지지 않나요?”
PD가 남자 가수에게 말을 걸었다.
“멋지네요.”
과 다르게 실제 바다의 풍경이 보였다.
아직은 크게 긴장할 이유가 없었기에 남자는 바다와 관련된 곡을 가볍게 흥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동하는 방향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었다.
“보세요. 지상이 굉장히 빠르게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상이 멀어져 가는 모습에 남자 가수의 멘탈도 함께 멀어졌다.
순식간에 구름이 떠다니는 곳 이상의 높이에 도달한 그는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성층권에서 뛰어내리겠다니.”
“도착했습니다.”
“네? 벌써요?”
“빨리 내리세요.”
남자 가수는 덜덜 떨면서 옷 대여소로 갔다.
맨몸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다이빙이기 때문에 특수한 옷이 필요했다.
대여소 입구에는 대문짝만하게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을 믿으세요. 그러면 날 수 있습니다.]은 하나같이 새를 본떠 만들었다.
그런데 대체 왜 펭귄, 닭, 타조 같은 에 [추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일까.
“여기서는 근본인 펭귄이죠.”
“펭귄은 날지 못하잖아요!”
“믿으면 날 수 있어요.”
악독한 PD는 기어코 남자 가수에게 을 입혔다.
“이거 받으세요.”
그리고 그에게 을 건넸다.
“이제 뛰어내리시면 됩니다.”
“저···. PD님. 낙하산은 어디에 있나요?”
“없습니다.”
“네?”
“낙하산이 있는 코스가 있고 없는 코스가 있는데 없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낙하산이 없는 스카이다이빙이라니! 그게 줄이 없는 번지점프랑 뭐가 다른가요!”
“줄이 없는 번지점프라면 여러 번 해보셨잖아요.”
순간 남자 가수의 말문이 막혔다.
줄이 없는 번지점프는 슬라임랜드에서 해 봤으니까.
“줄이 없는 번지점프라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니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겠네요.”
“아니···.”
남자 가수는 아래를 봤다.
지상이 까마득하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는 11m라고 합니다. 그 이상이 되면 20m나 20km나 별로 차이 없습니다.”
“차이가 있거든요! 그리고 20km 위에서 떨어지면 죽잖아요!”
“안 죽습니다. 펭귄은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니,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괜찮습니다. 여기 숙련된 조교도 있으니까요, 안전은 절대적이랍니다.”
한 마리가 찰싹 남자 가수의 등에 붙었다.
“아니면 연금슬라임 연금술사님과 을 못 믿으시나요?”
현재 연금슬라임의 인기는 절대적.
저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반대했다가는 안티 수가 대폭발한다.
“그렇게 걱정되신다고 하니 하는 수 없네요.”
PD는 옷 대여소로 갔다. 거기서 을 빌려 입었다.
“먼저 갈 테니까 빨리 쫓아오세요.”
그리고 PD는 단숨에 밖으로 뛰어내렸다.
카메라는 PD가 뛰어내린 뒤의 모습을 잡지 않았다. PD는 메인 출연자가 아니니까.
그저 멍해진 남자 가수를 비출 뿐이었다.
메인 PD가 저렇게 솔선수범했는데 출연자인 그가 망설일 수는 없는 노릇.
“에라 모르겠다!”
남자 가수는 눈을 감고 가지 밖으로 뛰었다.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잠시.
“어?”
이곳은 상공 20km. 스카이다이빙 낙하 속도가 자세에 따라 180km/h에서 300km/h 사이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최소 4분은 더 낙하해야 했다.
또 적절한 정도의 바람만 통과시켜 줘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실감이 적었다.
“생각보다 안 무섭네요.”
지상이 너무 까마득해서 추락의 공포는 바람에 씻겨나갔다.
마치 세상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느낌에 남자 가수는 잠시 넋을 놓았다.
그때 시야에 무언가 끼어들었다.
뒤에 붙은 이 내민 팻말이었다.
[신곡]“아!”
남자 가수는 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그가 낸 신곡의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높은 하늘 위에~ 너와 함께하는 꿈을 꿨어.”
쓸쓸한 이별곡이 많은 가을.
실험적으로 시원하고 희망찬 노래를 만들어봤다.
하늘에서 부르기 참 적합한 노래였다.
하는 짓만 보면 참 악마가 따로 없는 PD지만, 기획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와 함께라면 나는 날 수 있어~!”
클라이맥스에서 목소리가 깔끔하게 나왔다.
남자는 명장면이 되리라 직감했다.
소리 명문의 답게 녹음되는 소리의 품질도 꽤 좋게 느껴졌고.
“기다릴게.”
노래를 깔끔하게 마친 뒤 남자 가수는 그제야 자기가 얼마나 지상과 가까워졌는지 자각했다.
어느새 땅이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낙하산! 낙하산! 낙하산 없잖아!”
남자 가수는 위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렸다.
[을 믿으세요. 그러면 날 수 있습니다.]‘믿습니다. 연금슬라임 님 믿습니다. 라멘. 라멘.’
하지만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남자 가수는 팔을 퍼덕였다.
날갯짓하자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래에 열중하는 바람에 지상이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이대로는 늦겠다 싶었던 남자 가수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으아아아악!”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날갯짓하자 낙하하는 감각이 아예 사라졌다.
“어? 날았어?”
남자 가수는 눈을 떴고 바로 앞에 PD가 보였다.
PD는 팔을 퍼덕이지 않았다.
“PD님은 어떻게 날고 계시는 거죠?”
“날지 않고 서 있습니다.”
슬쩍 내려보니 땅에서 불과 10cm 떨어진 위치였다.
남자 가수는 날갯짓을 멈췄다.
툭. 땅에 착지했다.
“아니, PD님! 위험하잖아요! 저 늦는 줄 알았다고요!”
“날갯짓하지 않아도 속도는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정말요?”
“네. 위에 적혀 있었잖아요. 을 믿으면 된다고.”
남자 가수는 방금 보인 추태가 떠올랐다.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가.
“혹시···. 편집···.”
“안 됩니다.”
그리고 PD는 모든 장면이 아주 잘 살아나도록 편집해 방송했다.
멋지게 노래를 불러놓고서는 바로 미친 듯이 날갯짓하는 모습의 짤은 대유행했다.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스카이다이빙하는 것도 유행했다.
***
쪽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신제품 만두도 아니고 빠르게 팔릴 리가 없다.
관심을 두는 상대가 많아야 가격이 오르는 법이라서 그렇게 빨리 팔려서도 안 되고.
한스가 세계를 돌아다닐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은 로드를 완성하는 것에 주력했다.
우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직 미완성.
그래서 아직은 접근을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껏 세워놓은 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계속 막으면 원성이 계속 쌓일 테니까.
슬라임랜드 때와 마찬가지로 우선 준비된 부분만 열기로 했다.
스카이다이빙.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해 뒀다.
사실 이건 너무 높은 곳에서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지상에 내려올 때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비행기에서 하는 창문 밖 구경도 몇 분 지나면 그만두게 된다.
1시간이나 낙하하면 도중에 질린다.
중간 높이까지만 여는 게 좋다.
그러니까 스카이다이빙은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일을 슬라임랜드에서도 할 수 있었는데 역시 장소가 달라서 그럴까.
무료가 아니라 유료인데도 상당히 인기가 많다.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같은 체험이라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슬라임랜드는 안전하고 닫힌 공간이라는 인식은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을 테니까.
진짜 세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뭐.
노래 부르면서 스카이다이빙하는 게 유행을 타기도 했고.
당연히 안전장치는 여러 가지 해뒀다.
[연결+] 스킬과 [압박+] 스킬로 로드에서 멀어질 수 없게 해놓기도 했고.설령 몸을 수직으로 두고 최고 속도로 낙하해도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해뒀다.
슬라임랜드 바깥이라도 안전은 확실하게 지켜야지.
이것을 시간은 약간 벌었지만, 오래 끌 생각은 없다.
가능하면 개천절까지는 로드를 완성할 예정이다.
하늘이 열리는 날 우주로 올라가다니.
멋지잖아?
“응? 아···. 왔구나.”
세계를 눈에 품은 아이.
베로니카가 돌아왔다.
마중 나가야지.
“어서 와.”
“다녀왔어요.”
“그래. 고생했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가기 힘들었을 텐데.”
을 쓰고도 너무 많은 게 보이는 눈이니까.
“나를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마워.”
“괜찮았어요.”
“그러면 다행이고. 어려움이나 문제는 없었고?”
“네.”
“그러면 무엇을 보고 왔는지 들려줄래?”
베로니카는 그녀가 기수에게서 본 것들을 내게 알려줬다.
그렇구나.
거기가 그 불꽃의 핵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