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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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 레인저의 리더 레드는 송태산 선생님의 자택 앞에 섰다.
주소랑 연락처는 옛날 인맥을 동원하니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께서는 후배 헌터들과의 만남을 반기신다고 한다.
아예 고립되지 않으신 건 다행이었으나 찾아뵙기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불행이었다.
만약 레드 때문에 선생님께서 더는 후배들과의 만남을 반기지 않게 된다면 최악의 불행이 될 테고.
선생님의 자택은 꽤 컸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남부러운 것이 없도록 커 보이겠지.
그러나 선생님의 명성과 업적을 생각하면 초라하게 보이는 집이었다.
“들어오게.”
대문이 열려서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채소가 자라는 밭이 있었다.
밭이 으로 덮여 있고 이 수도 옆에 있다는 점은 매우 반가웠다.
의 편리함을 아신다면 을 입어달라는 부탁에 다짜고짜 분노하지는 않으실 테니까.
“어서 와요.”
현관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곱게 나이를 드신 여인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드는 인사를 한 뒤 선물로는 이만한 게 없다는 세트를 내밀었다.
“어머, 고마워요.”
여인은 무척 익숙하다는 듯 세트를 받았다.
“들어와요. 그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자 선생님께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구조는 3인용 소파인데 선생님께서 앉아 계시니 조금 커다란 의자 같다.
“어서 와 앉게.”
레드는 선생님의 맞은편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무언가 마시겠나?”
“물이면 됩니다!”
“당신. 부탁해.”
“네. 잠시만 기다려요.”
레드는 마주한 선생님을 봤다.
그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더욱 커다랬다.
어린 시절 본 기억이기에 과장됐을 수는 있지만.
역시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태산 같은 장골을 지니셨던 분인데.
어깨와 등이 굽어 동산처럼 작아졌다.
‘역시 선생님께서는 다시 세상으로 나오셔야 해.’
“이야기는 들었네. 13년이나 기생 몬스터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어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게. 이 나이가 되면 젊은 헌터들의 이야기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거든.”
레드는 천천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도중에 물과 과일을 가지고 오신 사모님께서도 레드의 이야기의 귀를 기울였다.
“고생 많았네.”
“영광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았지? 인사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찾은 건 아니지 않은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내가 은퇴하고 시간은 꽤 지났지만,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 대단한 도움은 못 줘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일 정도는 도울 수 있네.”
레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랜 숙주 생활로 헌터 복귀가 어려워진 그의 사정을 짐작해 직장까지 얻어주려고 하시는 선생님께 그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해야 했다.
“새로운 직장은 이미 얻었습니다.”
“잘 됐군. 잘 됐어.”
“저는 일자리를 부탁드리러 온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어느 일을 맡아주시기를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선생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는 이미 은퇴하고 너무 오래 지났네. 예전의 내 실력을 기대하고 찾아왔다면 미안하지만, 무리라네. 정치 같은 일은 영 성격에 안 맞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부탁받은 낌새를 보이셨다.
“싸움은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주된 일은 아니고 정치와도 관련된 일도 아닙니다.”
“그만 끌고 빨리 말해보게.”
레드는 점점 말라가는 입술을 물로 축였다. 그리고 번쩍 일어나 손을 들고 외쳤다.
“변신!”
붉은색 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저와 함께 이와 같은 옷을 입고 곧 개장할 테마파크인 에서 마스코트를 맡아주십시오!”
그렇게 힘껏 말한 뒤 바로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마치 단두대에 머리가 걸린 것 같은 공포로 몸이 벌벌 떨렸다.
실제로 단두대나 다름이 없었다.
선생님께서 분노하셔서 손을 내려치시면 머리는 몸과 작별할 테니까.
‘제 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아요?’
왠지 사장님께서 한 소리 하신 것 같지만 공포로 인한 환청이 분명하다.
“머리를 들고 설명해 보게.”
레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웃음기가 사라진 선생님을 마주했다.
“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레드는 마치 염라대왕 앞에 선 듯한 심정으로 상황을 털어놓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생님의 표정은 지옥행 판결을 할 것처럼 일그러졌다.
압박감에 위장이 뒤집혀 목구멍을 틀어막는 것 같았지만, 레드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대체 언제까지 겁쟁이처럼 움츠러들어 계실 겁니까!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선생님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평범한 삶은 보낼 수 있단 말입니다! 그 어떤 절망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시던 선생님은 대체 어디 가신 겁니까!”
레드는 내뱉고 후회했다.
겁쟁이는 아니었다.
진짜로 아니었다.
“겁쟁이라···.”
“죄송합니다! 말이 너무 심했습니다!”
레드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우선 고개를 들게.”
“죄송합니다.”
“한 가지만 확인하게 해준다면 용서하겠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말로 할 건 아니고.”
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셨다.
등과 허리를 펴시자 레드는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박력에 다시 고개가 아래로 꺾일 것만 같았다.
송태산 선생님께서 주먹을 움켜쥐셨다.
“그 옷을 입으면 아무리 나라도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다고 그랬지? 실험해봐도 되겠나?”
“아니, 이건 제 사양으로 만든 물건이라서 송태산 선생님의 일격을 받아낼 수 있을지는···.”
“겁쟁이 같은 말 하지 말게.”
“조, 좋습니다! 제가 버티면 선생님께서도 이 옷을 입으시는 겁니다!”
“생각해보겠네.”
레드는 양팔을 벌리고 배에 단단히 힘을 줬다.
주먹이 휘둘러졌고.
쿵.
거인이 발을 내디딘 듯한 소리가 집에 울렸다.
“끄으으으으···!”
레드는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삼켰다.
‘그거 봐요. 제 은 튼튼하다니까요.’
왠지 사장님께서 으스대는 목소리를 내신 것 같지만, 아픔으로 인한 환청이 분명하다.
“버텼습니다!”
“버텼군. 심지어 뒤로 밀려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힘을 쓴 일격을 가뿐하게 막아낸 모습에 송태산은 자기 주먹을 봤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다고 해도 저렇게 막힐 공격은 아니었다.
“한국에 그런 연금 제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가 생긴 건가.”
그가 활동했을 때 그런 연금술사가 있었다면 덧없이 사라진 목숨은 훨씬 줄어들었을 거다.
지금도 그 당시 무리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헌터들은 많다.
그 대가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간 사람은 더욱 많고.
송태산 역시 후유증에 고생하고 있다.
은퇴하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내의 손을 함부로 잡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면 으스러뜨릴 수도 있으니까.
집에 있는 집기들도 전부 내구성을 극한까지 올린 것들뿐이다.
“네. 연금슬라임 사장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선생님께서 을 써보셨으니까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다른 건 전부 쉽게 부서져도 그것들은 꽤 멀쩡했지.“
각성자인 아내는 물론이고 물건조차 쉽게 잡지 못하는데.
아이는 어떨까.
손주는 어떨까.
각성자의 결혼 상대는 대체로 각성자다.
근력이 강한 각성자라면 흥분하여 상대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척추를 분지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도 무심코 부딪치기라도 했을 때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하려면 상대의 몸 역시 튼튼해야 한다.
또 일반인은 헌터의 생활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치안이 좋은 지역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폭력은 머나먼 이야기.
폭력이 가까운 구역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매일 같이 생명과 생명을 교환하는 헌터 생활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비슷하게 살아왔어도 사고방식의 차이로 다툼이 일어나는데.
강아지와 공룡 정도의 차이가 있는 일반인과 헌터가 함께 살면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성자와 각성자가 결혼하는 일이 잦은데.
그렇게 각성자끼리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행복이 찾아오라는 보장은 없다.
각성자의 아이라고 해도 반드시 각성하지는 않는다.
각성자라고 해도 각성하기 전에는 일반인처럼 몸이 연약하고.
함부로 껴안았다가는 수수깡처럼 부서질 것만 같은 자그마한 아이.
당연히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다치게 할까 봐 멀리하게 된다.
이때쯤 각성자 부부 두 명 가운데 하나는 헌터 생활을 포기하게 된다.
더 강해지면 아이를 기르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헌터 생활을 이어가는 각성자는 아이는 물론이고 아내나 남편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멀어지는 몸의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기 마련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헌터들이 많은 지역이 치안이 나쁘다는 이유로 기러기 생활이 시작된다.
아이가 성인이 돼 독립하고 나면 더욱더 만날 일은 없어진다.
자식도 그러한데 손주는 어떨까.
아이조차 부서질까 걱정돼서 못 만졌는데.
시간이 흘러 레벨이 올라 더 강해진 상태로 손주를 안아줄 수 있을까.
모든 헌터들이 이런 곤란을 겪는 건 아니다.
레벨이 올라가도 멀쩡하게 힘을 조절할 수 있는 각성자들도 많다.
하지만 필사적인 싸움을 할수록 더 심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그리고 수십 년 전의 한국은 누구나 필사적인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송태산은 고개를 돌려 아내를 봤다.
그런 그의 손 위에 아내는 다정하게 손을 올려놨다.
”정말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건가? 손주를 안을 수 있는 건가?“
“무언가를 부술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부 이 막아주니까요.”
레드는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송태산은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여주는 레드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늙어서 은퇴하고 조용히 사는 사람까지 끌어내 일을 시키려고 하다니. 자네 사장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못됐군.”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까지 사람들 앞에 나설 생각은 없네.”
“네! 그 점은 확실히 지켜주실 겁니다! 오히려 사장님께서 허락해주시지 않을 겁니다.”
한국의 전설적인 헌터 송태산이 알케미슬라임 컴퍼니에 합류했다.
“그런데 왜 내게 마스코트를 시키려는 거지? 더 적합한 일이 있지 않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괴짜에게 고용됐군.”
송태산은 미래가 기대되는 동시 불안해졌다.
***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새싹이 고개를 드는 것처럼.
집이라는 아늑한 장소를 벗어나 학교로 끌려가게 되는 3월.
나는 이번 학기도 휴학이다.
A 등급 연금술사인 나는 놀랍게도 아직도 대학생이다.
내게 학위는 의미가 없다. 학교생활로 소모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대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마이너스다.
그래도 휴학하는 동안은 혜택만 누리고 시간은 조금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여기저기 할인도 많이 받을 수 있고 논문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굳이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포기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직 유지하고 있다.
휴학할 수 있는 한계까지는 해야지.
쾅!
구멍이 뚫리고 수맥에 물이 콸콸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수맥을 뚫었다고 하면 이미 흐르는 수맥에 구멍을 뚫었다고 냈다고 생각하겠는데.
나는 물리적으로 물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냈다.
세계 최대의 물웅덩이 바다와 통하는 물의 길을.
땅에서 질량을 확보하려면 계속 파야 하는데 바닷물은 수압으로 알아서 흘러들어온다.
유입된 물은 계속 소모되기 때문에 막히는 일 없이 계속 흐른다.
흐르는 물은 운동 에너지를 지녔으니 [변환+] 스킬로 마나로 바꿀 수 있다.
이것으로 무한한 질량과 에너지 확보 완료.
자금원이 다양할수록 기업이 탄탄해지는 것처럼 에너지 보급로가 다양할수록 슬라임랜드의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이것으로 주변의 흙을 너무 많이 소모하여 곤란해질 일도 없고.
눈이나 비가 와 태양을 가려도 에너지가 부족해질 일이 없다.
단점이라면 미래의 사람들이 해수면 하강 때문에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
그런데 그런 것을 고민할 지경에 다다를 정도라면 대지 대부분이 슬라임으로 뒤덮여 있지 않을까? 해수면을 걱정할 때가 아닐 것 같은데.
너무 먼 이야기라서 벌써 고려할 단계는 아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해산물들과 함께 기나긴 통로를 이동해 마더에 도착했다.
마더는 그대로 내 몸을 안쪽으로 받아들이고 바닷물은 즉시 흡수했다.
그러면 위쪽으로 올라가 볼까.
오늘이 처음으로 은퇴 헌터 전원이 모이는 날이다.
가서 구경해야지.
레드가 송태산 헌터님을 낚아오자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송태산 헌터님을 고용했다고 하자 다른 은퇴 헌터들도 줄줄이 고용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쪽에서 연락해야 했는데 나중에는 저쪽에서 연락이 왔고.
을 입은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붉은색 모자를 쓴 레드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즉시 펭귄들이 폭발했다.
“야 이 새X야! 나무에 오래 갇혀 있었다고 눈구멍이 옹이구멍이 됐냐? 여기 너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 하나도 없어! 어디서 말을 그따위로 지껄여?”
“그 분노를 억눌려야 합니다! 아이들은 지금 제가 하는 것보다 훨씬 짓궂습니다.”
그딴 소리가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즉시 펭귄들이 들고 일어났다.
“네가 애새X냐?”
“애들이 상대라면 우리도 자중할 수 있어!”
“저 새X 밟아!”
“이 옷을 입고 때리면 하나도 안 아프다며? 잘됐네. 봐주지 않고 밟아도 되니까!”
“자, 잠···. 혀, 형님들!”
“누가 네 형님이냐!”
개판이네.
펭귄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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