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방송사고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하나의 지칭.
아이돌.
처음으로 대형 보이밴드가 등장했던 90년대를 1세대라 칭했다.
지금에 와서 정의하기로는, 젊고, 잘생기고, 밝은, 10대와 20대의 ‘우상’을 뜻하기도 했고,
조금 더 정리된 사전적 의미로는,
거대 연예 기획사의 기획을 바탕으로, 무대나 음악 방송 등에서 여러 명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는 어린 가수 혹은 배우를 가리켜 아이돌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한국 아이돌이 가진 구조적인 부분이 보였는데,
바로 ‘엔터테인먼트의 기획’이었다.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컨셉을 바탕으로만 앨범이 만들어졌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감정이나 실제 성격이 끼어들 어떠한 틈도 용납되지 않았고, 철저하게 ‘아이돌 캐릭터’를 연기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컨셉을 덮어쓰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노래를 잘하는 이는, 노래를 잘하는 ‘캐릭터’가 되어야 했고, 춤을 잘 추는 이는 춤을 잘 추는 ‘캐릭터’가 되어야만 했다.
또는, 입담이 좋아 ‘재미’를 담당하는 ‘캐릭터’도 존재했다.
훗날, 아주 유명해진 이후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음악을 쫓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미 씌워진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해 좌절하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둔 채,
예쁜 표정과,
멋진 몸짓과,
밝아야만 하는 성격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래야,
‘우상’이 될 수 있었으니까.
흔히들 쓰는 ‘양산형’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매달 새로운 ‘아이돌’들이 쏟아졌고, 음악으로서의 가치 보다는 매력 있는‘캐릭터’로서의 컨셉을 잡는 것에 더욱 집중했다.
아티스트라 불리기보다는 연예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들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예전처럼 앨범을 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새 앨범을 내고 나면 대중에게 얼굴을 비춰야 할 매체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양산형’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억되려면, 오를 수 있는 무대는 모두 올라야만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무대 위에 서서 ‘캐릭터’를 연기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행복하게 미소 띤 그들, 또는 그녀들은,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연습생들은 그렇게라도 무대에 오르고 싶어 했고, 안정적인 수요는 항상 충분했으며, 시장성을 확인한 기획사는 상품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1.5세대 아이돌 출신인 진훈은, 이런 체계가 만들어지게 된 ‘과도기’를 겪었었다.
그랬기에, 지금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새파란 후배 그룹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발버둥 치는 데에는,
1.5세대 당시, 모든 조명을 독차지했던 ‘비투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었으니까.
“후···.”
“자신이 선택한 거야.”
“알죠.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도록 화려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우리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그럼, 오늘 뭘 해야 할지 알겠네?”
진훈이, ‘악마 같은 미친 천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저 화려함이 허상이었음을 알려줘야죠.”
연기하며 만들어낸 열정은,
훗날 엄청난 탈력감을 주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훈이 그 번아웃에 무너진 장본인 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진훈이 고개를 숙였다.
며칠간의 강행군은, 그를 엄청나게 성장시켰다.
가장 큰 성과는···.
한참이나 잊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찾게 된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돌’로서의 진훈과 원래 본인 사이에서 혼란스럽기 시작했었다.
그랬기에,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테일과 어울리며, 겨우 본 모습을 떠올리곤 했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자신의 모든 감정을 진실로 내뿜을 수 있게 만들어준 진혁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다다음이 우리지?”
“네. 그런데···. 그 영감님이···.”
“왜?”
“우리 부탁을 들어주실까요? 그래도, 어쩌면 어렵게 얻은 직장이 걸린 일인데···.”
“아···. 하긴, 요새 취직했다고 신나 하시긴 했다.”
진혁이 컨트롤 박스에서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는 공씨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활짝 웃는 영감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하실걸?”
“예?”
“저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사고 치는 거 엄청나게 좋아했거든.”
“그래도 생계가···.”
“그거도 걱정 없어.”
진혁이 방긋 웃었다.
“그 전파사 건물이랑 그 옆 건물까지 다 저 할아버지 거야.”
“아···.”
진훈이 바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출연자 대기실로 오시라고 합니다.”
복도 끝에서 추지훈이 외쳤다.
잔뜩 상기된 얼굴.
그도 엄청나게 신나있었다.
“가자.”
“네.”
그들의 리더가 앞장섰고,
마흔을 바라보는 진훈이 그 뒤를 따랐다.
저 멀리서는 잔뜩 흥분한 서른여섯의 추지훈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저렇게 신날까.’
평균 이하의 외모와 ‘특별함’이 없다는 이유로, 아티스트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사내가 해맑게 웃으며 걸어왔다.
“와. 기대되네요. 진짜.”
지금 그가 느끼고 있을 가슴 벅참이 진훈에게까지 전달되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추지훈이 진훈의 뒤에 합류했다.
둘은 자신들의 앞에 당당히 자리한 넓은 등을 바라봤다.
어쩌면 굉장한 무대를 앞뒀는데도,
태연히,
아무렇지 않게,
휘적휘적 걸어가는,
‘악마 같은 미친 천재’ 선생님의 뒷모습은 정말로 든든했다.
지금이라면,
그래미 어워드 오프닝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떨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와, 공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장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를 내둘렀다. 처음 해본다는 음향 지휘는 완벽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진짜 ‘재야의 고수’였다. 그것도 ‘초 고수!’
“어뗘? 들을 만 한겨?”
“물론입니다. 선생님.”
옆에 서 있던 음악감독 추본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디지털 음향이란 태생부터 컴퓨터로 시작되었고, 출력 역시 컴퓨터가 모든 것을 제어했다.
사람이 직접 관여하는 것이 점점 줄어든 세상이었다.
그런 시스템을 ‘공 선생님’이 ‘수동’으로 건들기 시작하자, 알게 모르게 뭉쳐있던 음역들이 깔끔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메인 사운드 컨트롤 바는 생방송에서는 건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다.
그때그때 음량을 맞출 수도 없었고, 미디로 제작된 음악들은 애초부터 음을 분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분리하여 만들어서 합친 음악이었으니까.
하지만, ‘초고수’는 원음을 더욱 깔끔하게 분리해 버렸다.
그것도, 수동으로.
어차피 실수가 나온대도 음 분리 작업일 뿐이었고, 아차 하면 그대로 원 MR을 틀어버리면 되었기에, 조금 미심쩍었어도 그가 하는 대로 놔둔 것이었는데···.
시험 삼아 맡긴 무대들의 ‘소리’는 정말 완벽 이상으로 깔끔했다.
구본철과 장창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될 밴드 전용 무대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각도에 자리한 공씨 할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운,
묘하게 비틀리며 올라간 입꼬리를 확인하지 못한 그들이었다.
‘이제 나오는가.’
공씨 할아버지의 눈빛이 번득였다.
***
뮤직 스테이션의 관객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만을 응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시간 투표까지 있는 프로그램 특성상, 자신들이 더 크게 응원해서 돋보이게 만들어줘야만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아이돌이 나오면 목이 터질 듯 소리쳤고, 다른 팀에게는 냉정했다.
그래도, 적당히 반응은 보여주는 편이었다. 만일, 노골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부터는 자신들에게 자리를 할당해주지 않을 테니까.
단,
오늘 객석의 반 이상을 차지한 팬클럽은 예외였다.
대한민국 어느 방송사도 그들을 천대할 수는 없었다.
‘차일드 애플’의 ‘아기 사과’들은 일부러 반응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괜찮은 아이돌에게는 손뼉은 쳐 주며 그냥 적당히 즐겼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1위는 자신들의 ‘아이돌’차지일 테니까.
처음에는 적당히 즐기던 그들이었지만, ‘차일드 애플’의 차례를 기다리며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몇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기도 했다.
방청석의 절반 가까이 그런 상태가 되자, 열심히 자신들의 무대를 뽐내야 했을 신인 아이돌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실수를 연발했다.
십 대도 둘이나 있었던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 멤버들은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소를 잃어서는 안 됐고,
무대에 오른 이상,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끝까지 ‘연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마지막 구절이 끝났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감사합니다!”
냉정한 관객들에게 허리를 접어 인사했다.
마지못한 박수와 김빠진 환호를 들으며, 흐릿하게 번진 시야를 더듬어 무대를 벗어났다.
관객과 완전하게 분리된 순간, 꾹꾹 눌러 담은 울음을 터뜨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계단으로 향하는데,
“고생했어. 마지막까지 진짜 잘했다.”
맨 앞을 걷던 리더가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선명해진 시야로 확인하니,
‘아이돌’계의 전설이 방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멤버들이 서둘러 허리를 굽혔다.
“안 바쁘면, 우리 거 보고 가라.”
“예?”
신인 아이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 거?’
분명히, J.H는 솔로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냥 ‘신인’이라고는 했었지만, ‘솔로’라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관객석 분위기 보니까, 우리도 개판 칠 거 같은데···.”
진훈이 방긋 웃었다.
“니들이라도 여기서 응원해라.”
맙소사, J.H가 듀오였다니.
그러고 보니, 진훈도 J.H이지 않은가?
SJ 엔터테인먼트가 그냥 밀어준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은퇴한다고 연막을 뿌려 놓고, 이걸 이렇게 터뜨리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럼 두 분이 함께 나가시는 겁니까?”
리더가 진훈의 옆에 서서 무대를 바라보는, -지금까지 ‘솔로’로 알고 있었던- ‘J.H’에게 시선을 보냈다.
“응? 아···. 벌써 나갔어. 우리 막내.”
“네?”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자,
아직 조명이 들지 않아 깜깜한 무대의 정 가운데, 키가 좀 작은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듀엣이 아니라 트리오?’
황당해진 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
추지훈은 이번 생에는 절대 오지 못할 줄 알았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무대.
그것도, 아이돌들만이 밟는다는 뮤직 스테이션의 투명한 아크릴 바닥 위에 선 것이다.
조명을 기다리며,
발로 바닥을 슥 문질러봤다.
‘생각보다 흠집이 많네.’
수많은 아이돌의 땀방울들이 만들어낸 흠집 위에 자신의 흠집을 살짝 올렸다.
예쁘고, 잘생긴 ‘우상’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콜로세움과도 같은 무대 위에서, 어두운 관객석을 둘러봤다.
좌절로 가득했던 20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슴이 뭉클해졌고, 턱이 떨려왔다.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조명이 켜지면,
관객들이 얼마나 놀랄까?
키도 작고, 평범 이하의 생김새를 가진 얼굴, 게다가 흉하게도 울고 있기까지···.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 기적과도 같은 무대를 선사해준 ‘악마 같은 미친 천재’를 떠올렸다.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는데,
떨리던 가슴은 멈췄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적막 가득한 무대에,
그토록 받고 싶었던,
한 줄기 빛이,
지훈을 향해 쏟아졌다.
키는 작았고,
얼굴은 못생겼으며,
그나마 했던 분장은 흘러내린 눈물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방긋 웃는 표정은 너무나도 해맑았고, 아직도 눈물이 고인 그의 눈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
뭐지?
저 사람이 J.H야?
조명이 비쳤고,
관객석이 웅성거렸다.
아닌데? 저 사람보다는 그래도 잘 생기지 않았었나?
키도 더 크지 않았나?
어찌 되었건, 심드렁한 관객들의 시선이 모였다.
자신이 J.H라며 무대에 오른 이가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응?
반주도 나오지 않는데?
“아마 모를 거예요. 제가 이 만남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와, 목소리는 좋다.
그가 무반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절하기까지 한 맹목적인 사랑이 이어졌다.
저런 외모여서 그런 걸까?
왠지 더욱 잘 어울리는 ‘찌질한 사랑’이었다.
상대방은 하나도 몰라주는데,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
상대방이 밀치고, 상처입혔는데도 매번 웃으며 다시 다가가는 사랑.
그 상대방은,
그런 그의 모든 행동을 당연한 듯 여기며 자신밖에 몰랐지만, 그 무조건인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다.
뭐야.
호구야?
미쳤어?
왜 아무 대가도 없는 사랑을 주기만 하는 건데?
다 퍼주고, 결국 아무것도 받지 못했잖아.
불쌍해.
그의 외모가 그래서였을까?
감정적으로 몰입한 관객들은 지금 반주가 없다는 것도 잊은 채,
그 ‘상대방’을 저주하고 있었다.
어느새,
호구 같은,
일방적인 사랑은 불쾌감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 노래를 부르는,
저 작고 볼품없는 사람에게 몰입하게 된 것이었다.
짜증 나.
도대체 왜 그딴 사랑을 하는 건데?
모두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표정의 그가 양팔을 벌렸다.
관객석을 쭉 훑어본 뒤,
모든 걸 아낌없이 준 나무라도 된 양, 멈춘 채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있는 대로 몰입한 관객에게 있어서는,
마치 영원 같았던 순간은 지나갔고,
그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마이크를 가져가,
“사랑해. 나의 아가야.”
그의 양 볼에 굵은 빛줄기가 반짝였다.
“너와 함께한 순간순간이 나에겐 행복이야.”
눈을 감은 그가 나지막이 속삭이듯.
“나에게 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맹목적으로 주기만 하던 그가,
‘감사’를 읊조렸다.
***
“어때?”
진혁이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는 아이돌들에게 물었다.
“재밌겠지?”
저런 묵직한 감정을 직접 코앞에서 본 것이 처음인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억지로 눈물 참지 않아도 돼.”
진혁이 방긋 웃었다.
“앞으로는 마음껏 울어도 되는 무대만 살아남게 만들 테니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따스했고,
너무나도 강렬해서,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억눌렸던 감정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왔고,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진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하네. 우리 막내.’
무대 정 가운데,
자신만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를 마음껏 만끽하는 막내에게 첫 칭찬을 보냈다.
***
사방은 어두웠고,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딱 하나였다.
그 하나의 빛줄기는 너무나도 밝아서,
그 작고 초라했던 남자가 더욱 빛나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반전은 심장을 때려댔다.
찌질하고, 호구 같기만 했던 그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자, 모두의 가슴이 미어졌다.
10대와 20대였기에 더 큰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아직, 부모의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할 나이였으니까.
그가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펼치자, 관객 모두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만큼, 지금 객석 가득한 감정은 너무나도 짙었고, 무거웠다.
그리고,
그가 마이크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우리 사랑하는 중이죠?”
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반주가 없다는 것 따위는 머릿속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만큼, 방금의 목소리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악기였으니까.
‘진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독차지하던 조명에, 뚜벅뚜벅 들어온 남자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20년이나 쉬지 않고 활동했기에,
너무나도 익숙한,
그의 얼굴이었다.
관객들은 넘쳐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다시 그의 얼굴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만큼 엄청나게 뜬금없는 등장이었으니까.
“맞아요, 우린 사랑하는 중이에요.”
와,
진짜로 진훈 맞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가 따스하게,
눈물 가득한 객석으로 내려앉았다.
***
“어···. 공 선생님?”
“응?”
장창이 자신의 ‘인이어’와 지시용 마이크를 빼앗은 뒤, 무대 마이크만 남긴 채 모든 음량을 줄여버린,
‘소리 초고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지금 이거 라이브예요! 방송 사고···.”
공 선생님께 다가가려는데,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라이브라서 다행이다. 잘리지는 않겠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황지선의 캔버스’ 총연출 백민부 선배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와, 추지훈 노래 잘하네. 주가 또 오르겠다.”
“선배. 이거 뭐죠?”
“선배‘님’ 새끼야!”
“이거 라이브라고요! 지금 제가 지시를 못 내리니까 조명도 가운데 고정이잖아요!”
“응. 알아. 내가 방금 말했잖아. 라이브라서 안 잘릴 거라고.”
“제가 잘린다고요!”
“만약에 너 잘리면, 내가 배 째고 누울게. 이런 무대 평생 다시 없다.”
“어···.”
“슬슬 감 오지 않냐?”
“지··· 진훈?”
조명이 비추는 원 안으로 등장한 남자를 확인한 장창의 눈이 동그래졌다.
벗어나려는 힘이 맥없이 풀리자, 꽉 안고 있던 백민부의 팔이, 그대로 장창의 어깨를 둘렀다.
“어때? 진짜 전설로 만드는 거?”
장창의 표정을 살피던 공 선생님이 씩 웃으며 인이어와 마이크를 내밀었고,
뮤직 스테이션의 총연출이 서둘러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뮤직 스테이션 무조건 뜬다. 너 옛날에 가요톱텐 알아? 시청률 20% 새끼야!”
“말 시키지 말고! 거기 카메라나 체크해요!”
“너 한잔 사라.”
“아! 알았으니까. 그거 좀!”
“새끼가 선배한테.”
장창이 땀을 뻘뻘 흘리며 조명팀에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보는 후배의 똥줄 타는 모습에, 백민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똥줄 타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저리 눈빛이 빛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완전히 멈춰 있던 무대에 스포트라이트 몇 개가 더 추가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