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2)
“흐읍!”
잔뜩 긴장한 채로 숨을 고르는 투란의 눈앞에 불꽃이 새로운 문자를 그려 냈다.
물론 이건 단순히 글자를 투란에게 가르쳐 주려고만 하는 짓은 아니야.
“응?”
투란의 눈이 의아함으로 깜박여졌다.
오러 사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해 준 것을 기억하지? 몬스터 로드가 오러를 끌어낸다 하더라도 오러 사인하고는 다르다고 한 것도 기억하지? 그렇다면 몬스터 엠블럼을 바탕으로 오러를 끌어내는 우리는 어떤 전투 기술이라든가 비술도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일까? 몬스터조차 주고받는데 안 될 일인가? 내게 오러에 대해 알려 주고 단련시켜 준 카엘 아저씨에 따르면 안 될 것도 없다고 했어. 단지 그게 별 쓸모가 있겠느냐고 했지. 오러 사인을 통해 전승되는 전투 기술은 철저하게 오러를 이용한 방법을 장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검토하고 증명해 온 것이라 했어. 몬스터 로드에게는 그런 기술이 필요 없다고 말이야. 오직 자신의 본능, 몬스터의 본능을 바탕으로 오러보다 먼저 몬스터에 대해 알기도 바쁘니까. 그 말이 맞아, 투란.
“엥?”
한층 더 깊은 의아함이 투란의 낯을 구기도록 했다.
이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는 대체 뭘까?
글자가 주르르 이어지면서 쏟아 내는 것을 어느새 자연스럽게 소리라도 듣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 자신이 무척 신기하기는 했지만, 투란은 도무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알 수가 없었다.
귀로 듣는다 해도 딱히 애매한 내용을 알 수 있을 듯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카엘 아저씨도 몬스터 로드가 사용할 수 있는 오러의 비술 한 가지는 확실히 내게 알려 줬어. 몬스터 로드답게 사용하는 방법이지. 카엘 아저씨는 그것 말고도 오러를 끌어내고 나름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많이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게 궁정 무술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서 따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비술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했지. 그게 내가 너에게 전할 것이야, 투란.
필요 없다고 했다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가, 이건 대체 어느 쪽 말이 맞는가?
하지만 곧 투란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걱정 마, 투란. 힘들게 배울 필요는 없어. 이제부터 몸에 확실하게 새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푸르르, 저절로 투란의 몸이 떨렸다.
물론 꽉 움켜쥐어진 몸은 그런 떨림에도 그 자리에 붙들린 채였다.
키린이 불꽃으로 전하는 편지의 이야기는…….
“하, 하지 마, 이 왕자님아!”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새 나왔다.
무엇보다 눈과 귀를 쑤셔 대며 뇌리를 달궜던 그 경험을 온몸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앞에 다가오지 않았는가!
단지 좀 아플 수는 있어. 오래 걸리면 말이야. 그러니까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빨리 끝내는 방법은 말이지…….
화르르!
글자가 춤을 추면서 투란의 몸으로 스르륵 다가왔다.
불꽃이 길게 가지를 뻗으면서 투란의 살갗을 향해 날름거리는 모양이 되었다. 그 속에서 유난히 ‘방법’이라는 글자가 화사하게 춤을 추는 꼴이라니!
투란은 그 꼴을 보며 급히 외쳐야 했다.
“바, 방법!”
오러를 꺼내서 불꽃을 한 점도 남기지 말고 삼켜. 정신을 집중해서 오러로, 내가 남긴 불꽃을 모조리 덮는 거야! 그러면 끝나.
“그런!”
투란은 눈알을 굴리면서 표정을 구겼다.
도대체 주변에 퍼뜨려 놓은 불꽃의 크기부터가 장난이 아닌데, 이걸 전부 삼키라니!
뭘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불꽃이 마구 조여들면서, 단순히 묶고 붙드는 정도를 넘어서 살갗을 들쑤시며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따스한 압력이 아닌 화끈한 열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 불꽃에 저항할 방법을 서둘러 찾아야 했다.
“젠장, 난 몬스터 로드라고욧!”
투란은 일단 잿빛바위의 그랑츄가 지닌 강력한 살갗으로 저항해 보려 했다.
하지만 불꽃이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을 싹싹 핥는 게 느껴지는 순간, 투란은 퍼뜩 키린이 뭘 할 수 있었는가를 기억해 냈다.
오러 몽거를 어쩌지 못했던 투란을 사람 꼬락서니로 돌려놨다!
‘아차!’
과연 투란의 의지와 무관하게 몬스터 엠블럼은 매우 평온했다.
투란이 그랑츄를 느끼기는 하는데, 그 전에 불꽃의 날름거림에 그냥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 형태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키린의 불꽃이 확실하게 몬스터 엠럼러을 제압하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후끈거리면서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느낌, 투란은 곧 몸이 그냥 잘 익고 구워질 수 있다는 위기를 뼛속까지 절감했다!
키린은 진짜로 몸에 낙인이라도 새길 작정으로 이 불꽃을 남겨 둔 것일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투란은 ‘천칭의 문장’을 마음에 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불러냈다.
오러의 감각이 뼛속에서 핏줄, 힘줄을 거쳐 살갗으로 배어 나왔다.
불꽃이 이를 핥는 듯하면서 더 깊이 스며드는 것이 선명해졌다.
‘으아아아!’
투란은 이를 꽉 물고 어떻게든 키린의 말처럼 오러를 마구 뿜어내 보려 했다.
쉽지 않았고, 정신이 나가 기절하는 것이 더 빠를 듯했다.
불꽃이 위, 아래, 앞, 뒤,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들쑤시고 찌르고 할퀴면서 덤벼드니 대체 오러를 어디로 먼저 보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곳에 집중하면 그 집중한 곳은 좀 나아지지만 다른 곳이 바로 불꽃에 휘둘린다!
‘어쩌라고! 대체 어떻게 하라고!’
투란은 키린이 좀 더 알기 쉽게 설명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멍청이가……! 오러는 너의 정신에 의해 그 형태와 성질이 결정된다. 마음으로 네가 뿜어내는 오러의 형상부터 확실히 잡아! 불꽃을 잡아 재우고 삼키는 형상을 마음에 품고 거기에 맞춰서 오러를 끌어내라고!
‘에?’
누가 하는 말인지 투란은 알 수가 없었다.
그보다 온몸을 푹푹 쑤시고 할퀴는 불꽃을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괴상한 말이 뭔가 이해하기 전에 실행에 옮겨 보는 쪽이 먼저였다.
‘불을 잡아 삼키고, 재우고…… 끈다?’
그런 것은 투란에게 딱 한 가지만 떠올랐다.
물결, 거대하고 큰 폭포같이 쏟아져 내리는 물결이라면 불길을 잡지 않던가?
그러나 당장 하늘에서 그런 폭포 같은 물결이 쏟아져 내릴 리가 없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번에는 투란이 먼저 깨달았다.
자신이 뿜어내는 오러, 거기에 형상을 부여한다는 것, 마치 몬스터를 느끼고 그 형상을 끌어내는 것과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가?
필요한 것은 크고 많은 물결이다!
물에 대한 투란의 심상은 곧 기억을 더듬어 한 가지 광경을 끌어냈다.
‘작은 돌…… 그 샘!’
이제는 그가 멋대로 ‘작은 늪’이라 부르는, 심장 깊은 곳에 형성되어 조그마한 늪을 뿜어내는 중심이 된 작은 돌이 있던 곳. 그 샘의 기이한 풍경이 저절로 투란의 심상을 차지해 갔다.
작은 돌을 중심으로 물살이 흘러나와 샘을 이루던 것, 그 물방울이 거대하게 주변을 휘감던 광경, 거세고 끊임없던 그 모습…….
누군가 말한 것처럼 투란은 심상으로 이를 새겼고, 자신이 끌어내는 오러에 이 형태를 속삭였다.
두근!
갑작스럽게 투란은 ‘천칭의 문장’이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 깊은 곳에 담긴 몬스터, 이제까지 삼켰던 몬스터가 한꺼번에 호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
의아해하는 것과 상관없이 투란의 마음은 물의 형상을 품기 시작했다.
크고 거대한 물방울, 땅에 떨어지면 단숨에 구멍을 파고 샘을 만들 수 있는 무겁고 강인하며 주변의 불길 따위는 바로 집어삼켜 꺼뜨릴 수 있는 물의 형상이었다.
오러가 그의 정신이 품은 형상에 반응하며 세차게 발출되기 시작했다. 느릿하고, 두껍게 살갗을 투과하며 뼈와 힘줄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이 고동치듯이 흘러 나가는 것처럼.
화르르!
불꽃의 창도 그의 오러에 반응했다.
원뿔 천막처럼 그를 휘감고 있던 불꽃의 장막부터 오러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의 몸을 촘촘히 감싸며 불꽃 기둥을 관통하듯이 밀어 올렸다.
물방울 짓는 듯한 오러의 범위가 불꽃 기둥보다 작은 상태에서 투란은 높이 치솟았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더 큰 물결의 형태를 마음에 품으며 오러를 끊임없이 뿜어내 확산시키며 범위를 넓혔다.
불꽃의 창이 물결의 껍질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오러가 선명한 색채를 띤 채로, 단지 불길을 밀어내는 범위로만 일렁이며 보이던 것보다 분명한 광채와 함께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중심의 불꽃 창은 그의 오러를 완전히 뒤집어썼지만, 꺼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오러 속으로 스며들며, 물방울 속에 이글거리는 붉은 광채와 불꽃의 형상에 섞여 하나가 되어 갔다.
‘아, 새겨지는구나!’
그 감각이 투란을 깨닫게 했다.
키린이 남긴 불꽃이 그의 오러 속에 선명한 기억, 각인을 남기고 있었다.
투란이 겨우 품기 시작한 물의 형상 속에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그 형상을 잊지 못하게 새겨 넣고 있었다. 그와 함께 투란은 살갗을 들쑤시던 불꽃의 뜨거움이라든가 뼈를 녹일 듯이 스며들던 잔혹한 열기가 더 이상 괴롭지 않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완전히 그의 오러와 섞인 불꽃은 더 이상 키린의 것이 아닌, 그 자신의 것이었다.
이 깨침, 느낌이 투란을 그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키린이 말한 그대로, 투란은 하나의 창만 삼키고 끝낼 수 없었다.
불꽃의 창은 모두 아홉 개였고, 이제 겨우 하나를 삼킨 것뿐이다!
콰아앙!
높이 치솟았던 사람이 기묘한 물거품에 휩싸여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땅이 파이고, 일렁이던 불길이 모두 물거품에 휩쓸려 들어갔다.
방금까지 땅에 박혀 하늘 높이 불기둥처럼 솟구치던 불길이었다.
땅을 스쳐 가는 융단처럼 일렁였지만 물결의 흐름에 모두 휩쓸리면서 땅속 깊이 감춰졌던 불꽃의 뿌리까지 모두 거품 속으로 삼켜졌다.
그러나 불꽃은 그 형상을 잃지 않았다.
하늘에서 크게 떨어진 거대한 물방울, 그 속에서 아홉 가닥의 불꽃이 일렁이며 뒤엉키고 언제라도 어딘가에 뿌리를 박으면 다시 불기둥이 되어 치솟을 것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물방울의 중심에서 천천히 투란이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불꽃의 압력이 만들어 낸 사슬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과 다르게 투란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몸은 천천히 제자리에서 맴돌 듯이 돌았지만, 눈동자는 위, 아래, 앞, 왼쪽, 오른쪽을 모두 몇 번씩 훑어갔다. 그리고 한 바퀴 맴도는 몸짓은 투란의 주변이 모두 그 눈길에 할퀴어지도록 했다.
땅거죽마저 굵고 둥글게 파인 흔적의 중심에서 투란은 느릿하니 숨을 골랐고, 그 숨결에 따라 그를 감싼 오러의 색채가 옅어지면서 더 크고 멀리 물방울의 형상을 확산시켰다.
좀 더 감각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주변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그러다가 투란의 눈동자가 멈칫했고, 몸도 함께 멈췄다.
눈앞에 글자가 보였다.
이전과 다르게 눈동자 속에 글자가 스며든 것처럼 보였다.
성공했구나. 마지막 불씨 하나까지 모두 오러 안으로 삼켰으면 이게 보일 거야. 이걸 보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되풀이해야겠지만.
“크엑!”
침착하던 투란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몸을 휘청했다!
키린에 대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기분이 팍 치솟은 탓이었다.
하지만 오래 그 기분에 젖을 수는 없었다.
—독한 것…….
투란 자신만큼이나 키린에 대해 울컥하고 짜증을 내는 이상한 말이 다시 느껴진 것이다.
‘이게 대체…… 뭐지?’
더 이상 누구냐고 묻기가 애매한, 소리 내지 않는 말이 다시 투란의 마음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착각은 분명히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