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3)
“바람의 길을 당장 쓰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이 녀석, 너무 한적한 곳에 혼자 오래 있다 보니 제대로 마법을 중재하는 것도 힘들 것 같거든. 적당히 다독여서 바람의 길을 연다고 해도…… 한 사흘은 걸릴 것 같다만…… 음, 그러니까 투란…….”
슬슬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으며 나오는 말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상아탑 대마법사의 그런 태도는 투란뿐 아니라 드라고니아에게도 아주 명쾌하게 그 의도를 전하고 있었다.
―허어? 너한테 마석에 대해 알아보게 하고 싶은가 보네?
‘아, 진짜!’
조금 울컥했지만 투란은 한숨과 함께 홀시딘을 가늘게 노려보면서 소리 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마석을 보상으로 주는 의뢰가 있나 없나 알아봐 달라고요?”
“어? 아니, 의뢰는 있을 거야. 여기까지 왔다면 분명히 있었겠지. 그 헌터 파티가 얼빠진 녀석들이 아니라면 말이야. 하지만 여기 브린에게 보급품이나 장비에 대해 수선을 맡겼다면, 그게 브린이 특별히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한 멀쩡한 일이었다면 제대로 된 헌터 파티일 거야. 그렇다면 의뢰는 분명히 있어. 다만 그게 요즘 새로 전해진 의뢰인가, 아니면 오래된 의뢰를 들춰 낸 것인가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정말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라냐?
투란의 어이없어하는 되물음에 드라고니아도 어리둥절한 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홀시딘은 주저앉은 브린을 한편으로 치워 두고, 그 거처의 풍경을 다시 로열클래스의 마법이 보여 주는 광경으로 변화시킨 다음에야 천천히 말을 이어 대답하고 있었다.
“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어렵구나. 역시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지? 그러니까 어디 보자…… 그래, 거의 오십 년 가까이 된 듯하네. 상아탑과 헌터 길드, 그리고 비슷한 일을 하는 여러 용병단이라든가 독립적으로 다양하게 움직이는 여러 마법 학파에서 편지가 왔다. 마석을 담은 편지였지. 의뢰를 받는 자에게 선금을 지불한다는 얘기였고 의뢰를 마칠 경우 적어도 의뢰할 당시의 마석만큼은 지불하며, 제대로 일이 마쳐질 경우에는 두 배나 세 배까지 기꺼이 내겠다는…… 척 봐도 미끼이고 차분히 봐도 역시 사람을 꼬드기는 미끼가 맞는 의뢰 편지였다. 하지만 함께 전해져 온 마석이 단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확신을 줬지. 마석의 품질이나 수량만 놓고 봐도 그냥 사람을 갖다 팔아 버렸다 쳐도 될 정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어. 그리고 분명히 제대로 된 양식을 갖춘 의뢰이기도 했기에 헌터 길드나 상아탑에서는 간단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양식을 갖췄으니 남은 일은 그 의뢰에 대한 공고를 보는 자가 직접 결정해야 하는 거였어. 이모저모로 수상하다 해도…… 애초에 몬스터 헌터나 마법사에게 들어오는 청부가 수상하지 않은 경우가 있겠냐 싶기도 하잖아. 아무튼 그 편지 의뢰는 이십여 년을 이어졌다. 해마다 새로운 편지와 마석이 도달했지. 내용은 별 차이가 없었어. 그저 가져와야 할 장비라든가 다양한 물품의 종목이 첨삭되는 정도였다더군. 응? 알드바인 같은 곳이야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바쁘잖아. 갑자기 엄청난 거금이 필요한 녀석 아니면 거의 관심 없었을걸? 뭐 그래도 몇 팀이 움직였다는 말은 얼핏 들었다만…… 아무튼! 지금부터 이십여 년 전 무렵까지 그 의뢰를 담은 편지도 이어졌고 의뢰를 찾아가는 이들도 꽤 있었어. 하지만 그게 이십여 년 전에 멈췄고, 이제는 다들 대강 잊고 있는 일이 돼 버렸어. 남은 것은 의뢰의 선금으로 헌터 길드나 상아탑에 남겨진 마석뿐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유혹적이라 할 만큼 큰 벌이는 아니게 된 거야. 그런데…….”
길게 이야기하다가 잠시 쉬면서 홀시딘은 낯을 살짝 구겼다.
그 의미를 투란은 분명히 느껴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여기 와서 연락 넣는 날에 떡하니 오늘로 날짜 잡은 것처럼 나타나 버렸다?”
“매우 공교롭고 괴이하다고 느껴지지 않냐?”
“홀시딘, 지금 내가 무슨 전염되는 저주란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요!”
“음?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만? 아,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거냐?”
“누가 그렇게 느껴요? 느끼긴 뭘 느껴!”
투란이 억울함을 가득 담아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작은 반향이 반짝이는 풍경 속에서 한층 더 일렁이는 빛무리를 일깨웠다.
영롱하고 맑고 밝은 그 풍경을 보며 투란은 괜히 홀로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숨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췄다.
“사람 억울하게 만들지 말고, 굳이 자세히 파고들 필요가 있어요? 뭔지 모르지만 의뢰가 엉터리일 수도 있잖아요? 그냥 왔다가 허탕 치고 갈 수도 있고…… 그 남은 선금인 마석을 받았다면 최소한 여기까지 오는 성의를 보인 정도로 충분할 수도 있어서 와 본 걸 수도 있다고요. 알잖아요, 헌터가 공고를 보고 선금 챙겨 의뢰를 받으면 최소한 지정된 조건을 갖춰야 하는 거. 그러니까 아닌 줄 알면서 와 본 사람들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열심히 말하는 투란을 홀시딘은 미묘한 웃음을 띤 채로 지켜봤다.
그 웃음이 거슬려서 투란이 다시 발끈하려 했다.
“멀쩡하구나, 다행이야.”
홀시딘이 먼저 안도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으흠? 사리를 따지는 네 모습에 진짜 안심한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보태듯 말했고, 투란은 울컥 치솟는 기분을 억지로 누르면서 나지막하게 말을 이어야 했다.
“홀시딘, 나 정말 알드바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요! 힘들었다니까요! 쉬고 싶단 말이에요! 이 지긋지긋한 모래바람 가득한 곳에서 얼른 떠나고 싶다고요!”
“사흘 뒤. 그건 어쩔 수 없어. 여기 망할 녀석이 비컨도 방치해 둔 탓에 내가 원격에서 손을 대려 해도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적당히 지켜만 봐 달라고. 진짜로 의뢰를 시작하는지, 아니면 그냥 선금만 챙겨서 돌아갈 것인지. 그 정도만 해 줘.”
“로열클래스 마법으로 바로 어떻게 안 돼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투란이 정말 지치고 힘들다는 표정으로 간절히 물었다.
홀시딘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리면서, 왠지 투란의 지치고 힘든 일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전에 줬던 설명서, 다시 읽어 봐. 제대로 갖춰진 상아탑 근처가 아니면 내가 원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굉장히 많은 제약이 붙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럼, 일단 브린은…… 귀찮네, 너 여기 들어선 순간부터 기억을 막아 두도록 하지. 그냥 슬쩍 나가 있어. 들른 적도 없는 척해. 응? 아, 걱정 마라. 비컨은 이 녀석이 사흘 동안 최우선으로 손보게 암시를 걸어 버릴 테니까. 비컨이 점검되고 제대로 교정 처리까지 끝나면 내가 직접, 사흘 뒤에 널 불러 줄 테니까.”
“왜 그렇게 기분 좋게 웃으면서 여기서 사흘 굴러 보라고 심술부리는 표정인데요?”
가만히 듣는 시늉을 하다가 결국 못 참고 투란이 으르렁거리듯 묻고 말았다.
홀시딘은 매우 당당하게,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답한다.
“응, 당연히 심술부리고 싶지! 네가 없는 사람 시늉하다가 삼 년째 불쑥 불러 대서 엉뚱한 일에 날 끌어들이고 있으니까! 내가 한가할 때면 관대하겠는데, 지금 케이라한테 한창 시달리고 있거든? 그런데 그 시달리는 까닭도 너 때문이야!”
“지금 시달리는 일이 대체 어떻게 나 때문인데요? 난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고 구박하면서!”
“그야 네가 어떻게 무쇠뿔 오우거를 정리했는가라든가, 몰튼노트를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말을 못 해 주니까! 케이라가 그래도 적당히 알아내려 하다가 결국 모르겠다고 물어봤는데, 스승인 내가 아무 말도 못 해 주잖아! 너의 그 비밀을 지켜 주려고 말이야!”
“그걸 내 탓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옷! 그건 원래 할 일이었으면서!”
“아, 그만 가 봐야겠다. 그럼, 사흘 뒤에 보자. 그 전에 마석의 출처를 알아내거나 하면 이 근처에 와서 비컨에 신호를 보내. 그럼, 너도 얼른 나가 있어. 여기 정리될 테니까.”
홀시딘의 형상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브린의 거처가 선명해지며 투란을 밀어냈다.
어리둥절한 사이에 투란은 브린의 거처, 그 건물의 한편 벽에 기대있는 자신의 몰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깔끔하군. 안 보는 사이에 홀시딘의 마법이 한층 더 높은 수준이 된 모양이다. 아무리 로열클래스의 시크릿키퍼라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감탄하지 마! 상아탑의 대마법사잖아! 아우읏! 대체 그 마석이 뭔데 저렇게 혹해서 저런 핑계를 대면서까지 알아내란 거냐고!’
―흐음…… 상아탑의 고위층 중에서도 고위층이랄 홀시딘까지 혹하게 할 정도라면…… 스페셜 랭크의 마석이지 않을까?
‘그게 뭔데?’
―맨땅에 상아탑을 꽂아 넣을 수준의 마석, 이라면 납득이 가냐?
‘그런 게 있기는 해?’
―있다면 대마법사가 분명해진 홀시딘이라도 혹할 만하니까. 물론 홀시딘은 반쯤은 너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솔직히 이런 일에 널 쓸 수 있다면 기꺼이 쓰는 것이 맞는 판단이기는 하지.
‘크엉! 그냥 날 이 모래바람 속에 더 뒹굴게 하려는 거겠지! 내가 힘들다니 더 힘들라고 그러는 걸 거야!’
울분을 소리 없이 토해 내면서 투란은 벽을 짚고 건물의 지붕을 타고 넘어 제법 높은 쪽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헌터들의 위치를 찾아 이리저리 눈길을 던져 보는데…….
―그래도 궁금한 모양이군.
억울한 척은 했지만 자신의 말을 따르는 투란의 호기심을 엿본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머금은 말투로 중얼거렸다.
입술을 삐죽하면서 투란이 바로 둘러댄다.
‘상아탑을 맨땅에서 바로 치솟게 할 정도라며? 네 말이 그런 뜻이었잖아? 그런 마석이 궁금하지 않을 리가 있냐! 정말 그런 수준의 마석이란 것이 있었던 적은 있는 거야?’
―기록 속에 몇 번 등장한 적이 있다. 드래곤이라든가 대마도사 카엘이 엮인 전설의 기록 속에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차분히 하는 대답이었다.
‘헐.’
어이없다는 생각과 함께 헛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면서도 투란은 열심히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이에서는 헌터들의 그림자도 없어 보였다.
다시 우물가 연못 쪽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여관 쪽을 둘러볼 것인가.
‘야, 어느 쪽이야?’
―아직 합류하지 않았다. 브린과 함께 왔던 쿨람 쪽은 마을의 시장과 여관 주변에서 보급을 하려는 모양이고, 루헬은…… 응? 누구랑 만나는데? 어라?
프로브를 이용해 추적하고 관측하던 드라고니아가 당황하고 있었다.
투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의 낌새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쪽이냐고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바로 투란은 옥상을 건너뛰고 들키지 않게 지붕 위를 내달리며 루헬 일행이 있는 마을의 우물, 연못 쪽으로 내달렸다.
‘혼자 보지 말고, 나도 좀!’
달리며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투란의 시야 한편에 루헬 쪽의 풍경을 비춰 주면서 거기서 나는 소리까지 들리게 해 줬다.
루헬 일행 앞에 두건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 두른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눈가만 겨우 드러낸 채로 코와 입은 먼지와 바람을 막는 차림새…… 수상한 사람 뽑기를 하자면 바로 뽑아낼 듯한 모습으로 루헬과 마주 보는 모습이었다.
마침 루헬이 그를 향해 꺼내는 말을 투란도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이 정말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란 증명이 필요하오만?”
이제 막 만나서 대화를 하려는 참인 듯했다.
때문에 투란은 내달리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널 뭘 보고 놀란 거야?’
뭔가 진행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나타나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확인하려는 듯한 상황인 모양인데 뭐가 드라고니아를 당황시킨 것인가?
드라고니아는 짧게 대답해 왔다.
―마석.
‘응?’
―갖고 있다고.
‘어?’
―밀봉이 완전하지 않아서 마력이 새는 중이다.
‘마석의 마력이?’
―그래.
‘그 마력 때문에 놀랐다고? 네가?’
투란은 평소와 다른 짧은 말투를 통해 드라고니아 스스로 자제하는 중이란 것을 느끼고 희한해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스페셜 랭크의 마석이 아닌가 싶거든.
‘야, 난 전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한쪽 지붕 위에 내려서면서 주변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납작 엎드리면서 저쪽과의 간격을 확인하는 투란이었다.
들통날 일은 없어 보였지만 새고 있다는 마력도 투란은 느낄 수가 없었다.
―감지한 것이 아니야. 프로브의 구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알아차린 거니까. 모래왕이라든가 미궁의 지독한 환경에서나 일어날 일인데…… 저 인간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어. 순수한 마력으로 이렇게 프로브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은 너랑 함께하면서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더듬거리며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금방 이견(異見)을 꺼내고 말았다.
‘마석 맞아? 마법 아냐?’
오러의 시각, 더불어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담은 시각 속에 포착되는 기묘한 현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