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140
로그인 무림 1140화(1140/1141)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관무(官武) 연합군이 수백 개의 깃발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지원군에 관한 소식을 접한 서녕성의 사람들은 이미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내 살아생전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황실과 무림맹의 연합.
이것만으로도 대륙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안에 포함된 면면 또한 실로 대단했으니까.
“구, 구파일방에 오대세가까지? 전부?”
“그렇다니까. 이참에 저 간악한 암천 놈들이 중원에 심어 둔 사술(邪術)까지 모조리 뿌리 뽑았으니, 이제 무엇이 두렵겠나?”
“그, 듣자 하니 은섬창(銀閃槍) 대협과 태백신옹(太白神翁)께서도 합류하셨다던데.”
“아니, 은섬창 대협이야 그렇다 쳐도 태백신옹 그 늙은이는 흑도 아니었나?”
“……나도 흑도인데.”
“아, 맞다. 깜빡했네. 자네 장강수로맹이었지.”
“그냥 웃게. 분위기 잡치지 말고.”
내로라하는 명문대파(名門大波)의 영수들은 물론 홀로 천하를 종횡하던 대협객, 거기에 더해 이미 오래전 죽었다 알려진 은둔 고수들까지.
정파인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수틀렸다 하면 병장기부터 뽑고 보는 흑도 무림인조차 이번만큼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 삼성(三星)이라 칭해지는 전설들과 함께 전투를 치른 그들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통합이 아닌가.
심지어 그 끔찍했던 정마대전 때조차, 천하 무림의 힘이 이토록 일치단결하여 한곳에 총집결된 적은 없었다.
더불어 이러한 무림인들의 반응처럼, 관군과 백성들 역시 저마다의 이유로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천자(天子).
용의 핏줄.
하늘이 이 땅에 내린 만인의 어버이이며 지배자.
황도(皇都)에 살아도 볼 수 없다는 그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에 그들은 귀를 의심했고, 이내 곧 모든 것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문을 통해서만 들었던 천자의 드높은 위엄과 기품.
그리고.
“오랜만이구나, 상산후(上山侯) 진태경.”
한 사람과의 인연까지도.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천자의 뒷말은, 그 자리의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아니, 이제는 상산왕(上山王)이라 불러야겠군.”
“……!”
“……!”
일순간 사방의 공기가 찌르르 울렸다 느낀 것은, 결코 누구 한 사람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무림인, 관군, 백성.
그들 모두는 잠시 다 함께 환청을 들었나 고민했고, 크게 뜨인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깨달았다.
절대, 절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지금 막 천자는 선언했다.
아니, 선포했다.
고귀한 용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저 새파란 청년을 왕으로 봉하겠노라고.
이미 수백 년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이성왕(異姓王)이, 바로 이곳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 이 사상 초유의 사태 속에서, 어째서인지 텅 빈 허공만을 바라보던 진태경이 문득 입을 열었다.
“와, 업적 달성 경험치 미쳤네.”
“……?”
“……?”
저게 무슨 개소리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모두를 혼란에 빠트린 진태경이, 천자를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폐하.”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기왕 주신 거, 통 크게 왕 자리 몇 개 더 안 됩니까?”
천자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고, 일순간 멍해진 사람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라고.
하지만 왕이 되어 버린 미친놈의 활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 * *
그 후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문하고 상기시켜야 했다.
진태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간에 대해서.
지금껏 알음알음 들었던 그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서.
그리고 머지않아 두 눈과 귀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상산왕으로는 부족한가? 짐의 아우가 맡던 자리이기도 하여 상징성이 클 텐데.”
“어우, 부족하긴요. 좋죠. 그냥 혹시 하나 더 주실 수 있나 해서요. 헤헤.”
무슨 소면에 국물 추가하는 것도 아니고, 왕위(王位)로 넉살을 부리는 진태경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철혈(鐵血)이라 불리는 작금의 천자가 지금 당장 진태경을 엄벌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주 잠깐은.
“이유를 말해 주면 안 될 것도 없지.”
어?
“으음. 자세히 말씀드리긴 좀 곤란한데요. 그냥 시험 삼아 해보는 거라.”
왜지.
“흠. 그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면 하북의 예왕(郳王)도 겸하도록.”
뭐지.
“감사합니, 음.”
“왜 그러나?”
“아닙니다. 예왕은 안 맡을게요. 아, 이거 중복이 안 되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편할 대로 하게.”
……진짜, 이거 뭐지.
이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사람들은 반쯤 넋이 나갔다.
진태경과 웃으며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천자가 금위군과 함께 내성(內城)으로 향한 뒤에도 그들이 느낀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느낌의 충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두두두!
활짝 열린 성문 사이로 물밀 듯이 쏟아지는 인마(人馬)의 물결과 명문대파를 상징하는 무수한 깃발들.
범상치 않은 기세와 안광을 흩뿌리며 모습을 드러낸 면면들을 본 사람들은 탄성을 흘렸고, 곧 기시감을 느껴야만 했다.
조금 전과 같은 충격도 함께.
“진 시주, 소승을 기억하시는지요?”
“진 도우. 그간 정말로 고생 많았네.”
“오랜만일세. 다친 곳은 없나?”
구파일방에 속한 승려와 도사들은 물론, 오대세가의 명망 높은 고수들까지.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진태경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천하 무림의 거목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제가 무명(無名) 스님을 어찌 잊겠습니까. 그런데 못 본 사이에 근육이 더…… 이야.”
법왕 굉도가 남긴 유일한 제자이자, 암천을 뿌리 뽑을 때까지 소림사의 방장 직에 앉지 않겠다고 천명한 무명.
“천검진인(天劍眞人)께서도 오셨군요. 아, 청풍이요? 저쪽에 있, 었는데 없어졌네요. 그나저나 제자분들도 같이 왔습니까?”
검성 매종학의 제자이기 이전에 화산파 장문인 직을 맡고 있는 천검진인.
그리고.
“진 도우께서는 여전하십니다.”
“사천에서는 큰 신세를 졌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호북에서의 일이 생각나는군.”
또 다른 문주, 가주, 장문인.
그나마 한 발이라도 걸칠 수 있던 이가 명문대파의 장로급이고, 그 밑으로는 진태경에게 아는 척도 못했다.
공간이 없어서.
아미, 무당, 개방을 비롯한 명문대파의 영수‘들’에게 에워싸인 진태경의 모습은 모두의 눈을 의심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성질 더럽기로는 모르는 이가 없다는 사천당가의 가주와 소문으로만 들었던 남만야수궁주의 등장은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수준이었다.
“당가(唐家)의 은인에게 인사 올리겠네. 불가피하게 늦을 수밖에 없었던 점, 부디 용서하시게.”
한마디 말보다 한 방울 독을 선호한다는 만독수라(萬毒修羅) 당사독은 극진한 예를 갖추어 포권을 취했고.
“빌어먹을, 놈들이 사천으로도 올 줄 알았는데…… 그 호랑이 먹이로 던져 줘도 시원치 않을 것들 때문에 발이 묶였었어. 면목이 없군.”
호피로 전신을 두른 거한, 야수묘왕(野獸苗王) 야율척은 고개를 숙인 채 진태경의 눈치를 살피기까지 했다.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정도였나.”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뇌까림에, 이 모든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보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저들이 누구인가.
각 성(省)을 넘어, 천하 무림을 대표하는 거인들이다.
제아무리 진태경이 바로 그 화왕의 제자라 한들, 까마득할 정도의 연배와 휘하에 거느린 세력의 면에서 보자면 하늘과 땅 차이.
하지만 오늘에서야 알았다.
아니, 정확히는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던 실체를 똑똑히 보고 느꼈다.
작금의 이 천하에서, 진태경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불현듯 직감했다.
어느덧 별과 왕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무수한 거목들 사이에 똬리를 튼 저 젊은 신룡(神龍)이야말로, 암천이라는 먹구름을 집어삼키며 아득한 창공으로 날아오를 영웅이라는 것을.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천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 * *
자리를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짧게나마 일면식이 있는 이들은 모두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고, 그건 일면식이 없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 대협!”
“아, 예. 반갑습니다.”
“제 술 한 잔 받으십시오! 일생의 광영으로 여기겠습니다!”
“그 말만 벌써 오십 번쯤 들은 거 같긴 한데…… 우선 주십쇼.”
곳곳에 기쁨이 넘쳐흐르니, 술잔도 넘쳐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포권지례만 수백 번에, 받은 술잔만 수십여 잔.
어느새 서녕성은 하나의 거대한 연회장으로 돌변한 지 오래였고, 나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까스로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머니, 우리 막내가아, 왕이 돼씁니다. 흐흐흑.”
“모신천국 불신지옥! 위대하신 대지모신께서 개씨벌 천주를 벌하시리라!”
“황제 폐하 만만세! 내 당장 사막 너머로 쳐들어가서 저 역도 놈들의 대가리를 박살……!”
“…….”
어지럽네 진짜.
술이 들어가자 엄근진 코스프레를 풀고 울기 시작하는 진위경, 어느덧 남만의 유일신 정도로 자리 잡은 대지모신의 광신도들.
거기에 더하여 충성심으로 무장한 대명국 신민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나는 홀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 모든 소음들이 멀어질 때까지.
온 거리를 가득 메운 서녕성의 불빛이 닿지 않는, 동문(東門) 너머의 강줄기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지난 사흘간 보지 못했던 한 사람과 마주했다.
아니, 수없이 뒤얽힌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찾지 않았던 그녀를.
사박.
천천히 내디딘 발끝을 따라 부드럽게 파이는 젖은 모래알.
궁성(弓星)과 나란히 선 나는, 출렁이는 강물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