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86)
086 큰일 났어요, 라파씨
차랑 차랑,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뭐야… 대체 뭐지….
그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분명히.
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내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지자, 발목에 매끈한 느낌의 뭔가가 걸려 있었다.
그게 뭔지 모른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것은 어린 마음에도 알았다.
어린 마음… 어리다고?
그녀는 스무 살이다.
새해가 되면서 스물한 살이 되어 이미 혼인까지 했다.
‘그래, 나는 결혼했어.’
조금 험악하게 생겼고 웃는 얼굴은 무섭지만, 그래도 다정하고 누구보다 강한 남편이 있다.
마녀의 칙칙한 삶에 처음으로 색을 입혀준 남자.
타티아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설마 그건 모두 환상이었을까.
그녀를 보고 웃으며 정말 귀엽다고 말해주는 남편은 단순히 그녀의 바람이었나.
사실은 없는 사람인가.
‘아니야… 아니야… 그 사람은 있어. 분명 지금도 내 옆에….’
문득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모습조차 잘 보이지 않는 공간만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지금의 자신은 뒤죽박죽이다.
어린 것 같은데 어른의 기억이 있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곳에 와 있다.
대체 뭐지.
스승님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에는 곧잘 꿈을 꾸다 깨곤 했다.
어떤 꿈인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너무 두려워 울고 있었다.
‘왠지 지금과 비슷한 것 같은….’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캄캄하던 공간이 약간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에 걸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내리자, 은으로 만든 고리가 보였다.
장식이 덧대어 있지만 죄수의 발에 끼우는 것 같은 구속구였다.
발목에 낀 은고리는 긴 사슬에 연결되어 있었다.
사슬의 끝은 길게 늘어져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어디에 연결된 건지 보이지 않았다.
불쑥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부인께서는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님이십니다. 그… 마녀라는 의혹으로 어리셨을 때 마녀 도로테가 인수한 것으로 파악..]사라문즈… 공주… 마녀… 도로테….
남자의 말속에 들어있는 몇 개의 단어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목소리를 덮어쓰는 것처럼 다른 남자가 말했다.
[… 내 딸… 너를 … 놓지 않는다… 절대로… 절대로….]남자의 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마치 그 목소리가 가득한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목소리는 분명….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이번에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쿵쿵 울렸다.
[…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언젠가 이 기억이 필요한 날이 올지 모릅니다. 내 능력은 타인을 해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내가 개입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린 공주님을 위험에 내몰 생각은 없습니다. 공주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 기억은 필요해요.]스승님의 목소리가 왠지 다르다.
타티아나에게 말할 때는 항상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갑고 냉정하게 들렸다.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감정이 없는 느낌이었다.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잠시 뒤 더해졌다.
[저 아이가 우리 공왕가 혈통이라는 건 밝혀져서는 안 돼. 공주가 아무리 우리 피를 잇고 태어났어도, 마녀라면 이미 외부인이다. 그런 자에게 기억을 남겨둘 수는 없어. 우리 왕가에 마녀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건 변하지 않는 확고한 사실로 남아야 해. 마녀 도로테, 저 아이의 기억을 지워라.] [공왕비 전하. 당신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내 도움은 바라지 마십시오. 공왕 전하의 기억은 비틀지 않습니다. 내가 아니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분의 집착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공주를 그 옆에서 떼어낼 수 없어요. 그래도 좋다면.]스승님의 목소리를, 공왕비라는 여성이 찢어지는 비명처럼 덮었다.
[내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건가. 정 그렇다면….]여성의 목소리가 스승님을 위협한다.
‘스승님….’
내가 도와야 하는데, 그런 생각에 마음이 심하게 안타깝다.
두 사람의 날 선 대화가 몇 번 더 이어진 뒤 새로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스무 살이 되면 수호의 별이 공주에게 도착합니다. 그 별에 닿으면 공주는 괜찮아요. 공왕 전하의 집착도 그 별에 먹힐 겁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걸 파괴할 만큼 강한 힘을 가졌으니까.]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공주님 앞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놓여 있고, 그것은 하나같이 매우 비참한 미래가 될 겁니다. 사라문즈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 전체를 휩쓰는 불행이 될 거예요.] [그런!]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시며 작게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아마 공왕비일 것이다.
달래는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예지의 마녀는 그렇게 선언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는 그녀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공주님, 괜찮아요. 당신에게 머무는 수호의 별은 내가 본 어떤 별보다 강한 것, 그 아래 있다면 반드시 행복해질 겁니다. 마녀는 짝없는 별로 태어나지만, 그대는 달라. 마녀도 누군가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세요.]부드러운 숨이 귀를 간질인다.
마녀 특유의 약초 냄새가 쏟아져 코를 메웠다.
마치 스승님 같다.
그때 진짜 스승님의 목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내가 당신을 맡습니다. 내 제자가 되세요. 나는 이미 늙어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는 조금 불안하지만 기합으로 이겨내죠.]스승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언젠가 필요로 할 때 당신은 기억하게 될 겁니다. 당신은 리아나 마르게리타 빠붸지, 사라문즈 공왕국의 정통을 잇는 공주이며 마녀, 그리고 나의 제자입니다. 내 모든 마음을 담아, 부디 행복하기를.]마지막 단어는 정령의 축복 중 하나였다.
최면을 걸 때 보통 축복의 말은 담지 않는다.
스승님은 최면이 풀리기 전 당신이 죽을 가능성을 마음에 담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곁에 없을 때 기억이 되살아나더라도, 혹은 갑자기 내일 죽게 되더라도, 정령의 가호가 타티아나를 지킬 수 있도록 축복해 준 걸 거다.
스승님, 기억했어요. 기억났어.
아주 어릴 때였기 때문에 많은 것은 알지 못한다.
그저 약간의 단편적인 장면과 최면을 담는 그 순간의 말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말만으로도 대강 어떤 처지였는지 알 수 있다.
매료 때문에 아버지인 공왕이 집착한 거겠지.
원래 매료는 여러 번 만나 접촉이 늘어나면서 효과가 강해진다.
하지만 왜인지 몰라도 공왕에게는 처음부터 매료가 강했던 것 같다.
아니, 남자에게는 모두 그랬을까.
스승님이 말한 적이 있다.
너의 매료는 유난히 강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어릴 때 봉인해야 했다고.
잘못하면 정신이 붕괴될지 모르는데 그래도 해야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문득 발 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사슬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을 하게 된 건 스승님을 만나기 얼마 전이었다.
그전에는 발목에 아무것도 없었다.
공왕인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득 머릿속에서 울렸다.
[리아나, 내 귀여운 공주야. 이것으로 너를 내게서 빼앗을 수 있는 자는 없다. 열쇠는 나만이 가지고 있으니 괜찮아. 너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아. 아버지가 지켜주마.]그 목소리는 자애로 가득차 있었다.
분명 그는 아버지로서 타티아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이 비정상적으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나를 지켜준 거야, 스승님은.’
마녀는 보통 버려진다.
저주를 두려워해 직접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가족의 손으로 숲에 버려졌다.
보통은 짐승에게 물려 죽거나 숲을 헤매다 굶어 죽는다.
운이 좋으면 다른 마녀에게 발견되어 길러지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다.
타티아나는 자신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더욱더 운이 좋았다.
아무리 마녀가 두려움의 존재라 해도 한 나라 왕의 뜻을 거스르면 죽을 것이다.
마녀 중에는 실제로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화형당한 사람도 있었다.
마녀는 그냥 죽이면 저주받지만 화형으로 정화하면 괜찮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스승님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스승님은 공왕에게서 그녀를 빼내 자신의 품에 안았다.
최면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쩌다 풀리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 위험을 알면서, 스승님은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구했다.
스승님과 함께 한 날들은 조용하고 행복했다.
구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랑받았다는 것을 안다.
출렁 출렁 몇 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가운데, 스승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강하게 들렸다.
[명심하세요, 공주님. 당신의 매료는 너무 강해서 내 능력으로도 쉽게 구부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응?
스승님, 뭐라구요?
스승님… 그건… 어….
타티아나는 머리를 쿵쿵 울리는 스승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번쩍 떴다.
“스승님, 그러면!”
외침과 함께 커다란 얼굴이 불쑥 그녀의 시야에 뛰어들었다.
흡!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숨이 멈췄다.
그랬던 것 같아.
엄청나게 무서운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깝게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괴물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얼굴은.
‘수호의 별… 그거 진짜였어.’
그래, 이 정도의 파괴력 있는 얼굴이라면 뭐든 박살 내고 말 거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스승님, 만났어요.
나만의 수호의 별을 만났어.
나는 행복해질 거예요. 아니, 지금 행복해요.
예지의 마녀가 말한 대로, 스승님이 행운을 빌어준 대로 지금 행복해.
“아니! 그게 아니야! 큰일 났어요, 라파씨.”
타티아나는 몸이 짜부라져 숨 쉴 수 없을 만큼 그녀를 꽉 끌어안은 남편의 등을 탕탕 쳤다.
스승님의 목소리가 잔향처럼 머릿속에서 울렸다.
[… 공왕을 만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내가 심어둔 거짓이 깨질 거예요. 어느 정도는 남을지 모르지만 그는 매료되었던 당시의 감정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타티아나는 하루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죽은 듯이 잠들었다.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바위처럼 머리를 눌러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라는 것을 알았다.
마의숲에서 곰한테 습격당할 때도 이렇게 두렵지 않았다.
아프고 괴롭고 조금은 무서웠지만 내 투쟁심은 공포를 웃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무섭다.
타티아나가 없으면 나는 평생 혼자.
다시는 이렇게 좋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아니야.
나의 이기심이 아니라, 정말 좋아한다.
언제 이렇게 좋아하게 됐는지 모를 만큼 좋아한다.
첫눈에 사랑하게 됐다고 자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깊이 빠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정말 좋다.
좋아해.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나는 손을 잡고 계속 곁에서 지켜보았다.
이 도시에도 의사가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의사는 아무래도 돌팔이인 것 같다.
타티아나를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피를 뽑겠다는 것이었다.
쓰러진 원인을 알고 싶어서 부른 거였는데 다짜고짜 무슨 소리야.
드릴처럼 커다란 기구를 들고 타티아나한테 다가서길래 쫓아버렸다.
공작가 사무관은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미안해하면서 공작가에 연락을 보냈다.
공작가 의사를 부른다고 한다.
원인이 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이 뭔가 방아쇠가 된 것 같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최선은 불사조라고 생각해 우선 보관하고 있던 깃털을 달였다.
그걸 숟가락으로 조금 입에 흘려 넣었지만 넘기지 못했다.
영화 같은 걸 보면 키스로 먹인다던데 그렇게 해도 삼키지 못한다.
공연히 튼튼하기 그지없는 나만 깃털물을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날, 꼬박 하루 정도가 되자 그녀가 번쩍 눈을 떴다.
“스승님, 그러면!”
타티아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방금 전까지 물레에 찔려 잠든 숲속의 공주처럼 누워 있었다구.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런데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벌떡 일어나다니….
좋아, 됐어, 정말 잘됐다. 일어나서 정말 좋았어.
그녀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서 얼굴을 들여다보자 엄청나게 놀란다.
꼭 괴물 본 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나를 잊어버린 걸까.
정말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아 나는 겁먹고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무섭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있는데 그녀가 나를 탕탕 치며 외쳤다.
“아니! 그게 아니야! 큰일 났어요, 라파씨.”
아, 잊어버린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고여 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