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SSS급 회귀자의 기연 싹쓸이.
이 소설이 3류 양판소임은 분명했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분명했다.
[무한 회귀의 저주에서 벗어나기>이것은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주인공 오윤남에게 이 무한 회귀는 지독한 저주였으며, 그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다.
다행히 소설의 결말에서 오윤남은 회귀의 사슬을 끊으며 자유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오윤남에게 제시할 거래 조건은 바로 소설의 주제 의식 그 자체였다.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녀석에겐 통하지 않을 테니까.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나는 오윤남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어 갔다.
“보스룸의 도전권을 나에게 넘겨.”
“뭐?”
오윤남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니케의 반지! 그건 어차피 수단일 뿐이잖아.”
순간 녀석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
니케의 반지라 하면, 오윤남이 이 보스룸을 클리어하며 얻게 될 보상.
그 누구도 알고 있을 리가 없는 정보였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군.”
재미있다고?
지금 속으로는 엄청 당황했을 텐데.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당황한 게 다 보인다.
뇌에 땀이 나도록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자신이 소설 속 등장인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결정할 시간 3초 줄게. 셋, 둘, 하…….”
“잠깐!”
“네 말을 들어 줄 여유가 없어. 지금 시간이 촉박해서 말이야.”
남은 제한 시간은 22분.
이곳 보스가 만만치가 않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일반 오크보다 서너 배는 더 강하다고 했으니까.
오윤남에게 보스룸을 클리어시킨 후 아이템만 받고 싶은데, 하필 니케의 반지가 귀속템인 것이 문제다.
“보스룸을 양보했을 때 내가 얻을 이득은 뭐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자기 말고도 미래를 아는 이가 또 나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협상의 주도권은 나에게 넘어왔다.
“회귀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정보를 주지.”
“뭐?”
“일단은 여기까지만! 더는 안 돼. 시간이 없어.”
내 말에 녀석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어차피 오윤남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녀석의 다음 회차 때엔 내가 또 등장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을 테니까.
“좋아. 일단은 양보하지.”
역시 오윤남이었다.
무한 회귀자답게 그는 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오윤남이 보스룸 도전 권리를 이호영에게 양도하였습니다.]“잘 생각했어.”
“만약, 네 말이 장난이었다면 아주 재미없는 일이 있을 거야.”
오윤남은 눈빛으로 위압감을 뿜어냈다.
살벌하다.
놈은 웬만해선 살인을 하지 않는 캐릭터지만, 이번 일로 장난이라도 쳤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다녀올게.”
아직 모든 고비를 넘은 것이 아니다.
이 보스룸 도전은 말 그대로 나에게 도전 그 자체.
부디 보스가 내 계산 범위 내의 존재이길 바랄 뿐이다.
* * *
[보스룸에 입장하였습니다.]예상했던 것처럼 거대한 공간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보스 녀석과 나. 오직 둘뿐이었다.
크오오올!
오크 워리어의 난폭한 울부짖음.
도전자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일종의 정신 공격이었다.
물론 나에게 통하진 않았다.
이미 다 예상하며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절대 감각이 사기적인 게 감각의 증폭뿐만 아니라, 완벽한 차단도 가능하다.
지금 내 귀엔 녀석의 울부짖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채앵!
나는 불굴의 검을 빼 들었다.
저 녀석의 약점은 이미 알고 있다.
강철 같은 상체에 비해 하체 쪽 공격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것.
물론 오윤남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가볍게 제압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초급 검술 Lv.3이 발휘됩니다.]나는 녀석을 향해 검 끝으로 찔러 들어갔다.
쿠오오오오올!
오크 워리어가 더욱 강렬한 로어를 뿜어 대며 나를 위협하지만, 이럴수록 나에겐 고마운 일이다.
놈이 쓸데없는 곳에 마나를 들이부을 때 나는 가볍게 검 끝에 허초를 두었다.
휘이익!
불굴의 검이 방향을 선회하며 오크 워리어의 무릎 부근을 파고들었다.
내 몸은 미끄러지며 녀석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공격이었다.
카아아아악!
다리를 공격당한 보스가 신음을 토해 냈다.
깊게 베진 못했지만, 놈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이 쉽게 풀릴 모양이다.
휘이이익!
휘이이이익!
불굴의 검이 현란하게 춤을 추며 녀석을 혼돈에 빠뜨렸다.
다친 다리에 신경이 가 있으니, 녀석은 자신의 장점을 조금도 살리지 못했다.
사아악!
사아아악!
오크 워리어의 몸에 상처들이 하나씩 늘어 갔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일방적이다.
보스룸에 내가 도전하면서 놈의 능력치가 보정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여유롭게 공격을 퍼부었다.
제한 시간도 꽤 여유 있게 남은 것 같다.
보스가 죽은 자리에 영롱한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작은 반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니케의 반지!”
[니케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템은 양도 불가입니다.]무려 신화급 아이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신화급 아이템은 이 소설을 통틀어 딱 두 개만 등장한다.
지금 오윤남이 소유하고 있는 궁니르와 내 손에 끼워진 니케의 반지.
이 반지의 옵션은 아주 심플하다.
소유자의 행운을 대폭 증가시켜 주는 것.
소설 밖을 나가 탑에서도 이 반지의 효과가 계속 유지될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에선 정말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오윤남은 이제 이 반지 없이 이 소설의 결말을 향해 달려야 한다.
녀석에겐 큰 손실이겠지만, 나는 그에 합당한 정보를 줄 생각이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내가 이 소설 속에 머물게 될 시간은 나흘.
오윤남과는 이 기간 내내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 * *
던전을 클리어한 뒤 우리는 기분도 낼 겸 뒤풀이를 가졌다.
본래 미성년자는 술은 마실 수 없지만, 아카데미 내의 클럽에서는 약간의 알코올이 섞인 음료도 팔았다.
뭔가 이상하긴 해도 소설의 설정이 그렇다면 그런 것.
게다가 우리 모두는 본래 성인이었으니 알콜 섭취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가위, 바위, 보!”
김세용은 가위.
나는 주먹을 냈다.
이로써 11연승.
“와 씨! 형, 사기 치는 거 아니야?”
김세용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냥 하는 가위바위보가 아니었다.
무려 골드를 100씩 걸고 하는 야바위판.
“가위바위보에 사기가 어딨어, 인마! 그리고 여기 보는 눈이 몇이냐?”
나는 우리 그룹원들을 가리켰다.
“동시에 내는 거 저는 봤어요!”
곧바로 채이설이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11연승이긴 하지만 속임수는 절대 아니었다.
니케의 반지.
이게 진짜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조건 없이 하는 가위바위보에서는 승률에 약간의 보정을 주었지만, 골드가 걸리니 가차 없었다.
여기서 몇 번을 더 해도 질 거 같지가 않았다.
“골드 내놔, 인마.”
“아놔!”
“한 판 더?”
“안 해!”
그래, 열한 판이면 호구 노릇은 충분히 했지.
“혹시 또 도전하실 분 계세요?”
씨익 웃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물론 내 제안에 응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김세용이 미련한 호구인 것이다.
“이호영 씨. 그냥 비법이나 공개 좀 해 보세요. 뭡니까? 계속 이길 수 있는 이유.”
서준호가 비결을 요청했다.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술사의 트릭 공개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비결 없다니까요! 그냥 오늘 작두를 좀 탔나 봐요.”
나는 반지가 보이도록 턱을 괴며 힌트를 주었다.
눈썰미가 있다면 내 손가락에 낯선 반지를 알아챌 만도 한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물론 그걸 발견했어도 행운과는 연결시키지 못했겠지만.
“치사한 녀석.”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음료수만 마시던 손서연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치사하다고?”
“그래. 상식적으로 11연승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될 건 또 뭐냐?”
“확률이 2048분에 1이야.”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매주 누군가는 로또에도 당첨이 되는데.”
내 말에 손서연이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 장을 건넨다.
“받아.”
“뭘 하려고?”
“가위바위보. 도전해 주지. 단, 글씨로 써서 내는 것으로.”
손서연은 내게 속임수가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받아 주지. 그 대신 1000골드 내기.”
감히 나를 의심하다니, 판을 좀 키워 봤다.
손서연 성격에 물러날 리도 없을 테니까.
“3000골드.”
“뭐?”
손서연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3000골드면,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아직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한 금액.
“겁나는가 보군.”
손서연이 나를 도발하자 다들 각을 잡고 나를 바라본다.
세기의 매치를 무산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았다.
물론 거절할 이유는 1도 없다.
“5000골드.”
내가 더 크게 지르자 손서연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쫄았구나.
하지만 분위기상 여기서 물러나지는 못할 것이다.
“좋다.”
손서연의 대답에 다들 환호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내심 판을 더 키워 주길 바랐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다.
* * *
“호영이 형.”
“왜 인마.”
“우리 평생 가자.”
“미친놈.”
김세용이 내심 개평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내 사전에 그런 건 얄짤 없다.
기숙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니케를 얻은 것만 해도 배가 부른 데, 기대도 안 한 골드 러시에 배가 터질 지경이다.
현재 보유 골드는 26,300.
이번 5층 미션을 다 클리어하고 로비로 돌아간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할 만큼 골드가 모일 것도 같다.
지금까지 자린고비처럼 골드를 아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탑의 다른 어딘가엔 형보다 강한 플레이어도 있을까?”
김세용이 뜬금없는 질문을 해 왔다.
“당연한 거 아니냐?”
놈은 손서연의 강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살성은 그녀 혼자일 리가 없다.
다른 어딘가엔 그녀 말고도 다른 살성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갑자기 왜?”
“종말의 게임이잖아. 약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이놈은 전체 탑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것이었다.
본인이 어느 정도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도.
“벌써부터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장 강하다고 말은 못 해도, 오래 살아남을 자신은 있다.
아직까진 주변인들을 챙길 여유 또한 있고.
“젠장. 술은 괜히 마셔 가지고는.”
김세용이 비틀거렸다.
뭐야. 지금까지 취해 있던 거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술이 약한 놈이었다.
이런 곰 같은 놈이 길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콰당!
그리고 불안한 예감은 보통 빗나가질 않는다.
이런 덩치를 업고 가는 건 질색인데.
이미 김세용은 인사불성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호영!”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절대 감각을 뚫고 지척까지 접근할 정도라면 상당한 고수라는 의미.
아카데미에서 이럴 놈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오윤남.
“뭘 굳이 그렇게 기척을 숨기고.”
“참 이상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
“이호영. 너는 내 기억에도 거의 없을 만큼 존재감 없는 놈이었는데 말이지.”
오윤남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빚 받으러 온 건가?”
“그래. 부디 너에게 상환할 능력이 있길 바라며.”
오윤남은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빚쟁이의 포스가 좔좔 흐른다.
미안하지만 빚 상환은 좀 미뤘으면 하는데.
내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새로운 나비효과를 가급적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오윤남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건 최대한 미루고 미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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