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30
30
아이돌 올림픽. (1)
“나 웜톤이라 보라색 잘 안 어울리는데.”
김 현이 옷의 비닐 포장을 주욱 찢었다. 아림픽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돌들은 협찬사에서 준비해 준 트레이닝복을 입어야 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메컵 실장님이 알려 줬지.”
트레이닝복을 꿰어 입은 멤버들이 저마다 하품을 쩌억 했다. 이번 아림픽은 출근길 생방송도 예정되어 있다.
심지어는 출근길 레드카펫을 깔아 놓고 기자들이 사진도 찍는다.
“실장님 진짜 대박이네. 이게 바로 꾸안꾸인가 그건가?”
그 때문에 숍에 들러 머리와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고 출발한다.
김주영이 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감탄했다.
“형들 뭐 나가요?”
박서담은 잠깐이지만 현장 엠씨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내가 60m.”
“이안이가 달리면 게임 끝났지.”
“이미 메달 땄네 땄어.”
이안이 대답하자 조태웅과 김주영이 추임새를 넣었다. 박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선수를 내보내는 거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냐?”
“선수래 봤자 경기 몇 번 나가지도 못했어요.”
포지션이 러닝백이긴 했다. 하지만 아메리칸 풋볼에서 동양인이 활약하면 얼마나 활약했겠나.
그래도 선수는 선수였으니 이왕 나간 김에 메달이나 도전해 보자 생각해 참여한 것이다.
“태웅이랑 주영이랑 현이가 양궁이지?”
“그리고 단체 계주도 있어.”
“메달 가즈아!”
듣보 아이돌은 한 종목도 간신히 나간다. 그나마 아위는 3종목에 나간다. 확실히 라이징 이긴 한가 보다.
매니저 박동수가 의욕 넘치는 멤버들의 대화에 헛웃음을 지었다.
블랙러시도 그랬고 아마 모든 아이돌들이 아림픽 스케줄이 잡히면 질색팔색을 할 거다.
‘우리 진짜 안 나가요?’
‘어, 너네 대신 아위가 나가.’
블랙러시는 아위를 방패 삼아 드디어 아림픽에 나가지 않는다. 한 소속사에 한 그룹만 나가서 적당히 체면치레하는 게 소속사의 전략이었다. 아위는 그 속사정도 모르고 아주 의욕이 넘쳤다.
“하루 종일 녹화하는데 메달 따면 좋지. 방송에라도 나가게.”
하긴 첫 출연이면 에너지 넘칠 만하지. 박동수가 핸들을 꺾었다.
그는 다음 출연 때부터 축 처져 있을 아위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오늘은 열심히 해. 근데 부상당할 각이 보이면 그냥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마.”
아림픽에 나가 부상을 입은 아이돌들이 꽤나 많았다. 컴백 활동이 코앞인데 부상 때문에 앨범 활동을 중단한 사람도 있었다.
아위를 태운 밴이 대화역을 지나 고양 체육관에 도착했다. 차가 정차해 멤버들이 내리자 주변에서 셔터 소리가 들렸다.
출근길을 찍기 위해 모인 대리찍사 및 홈마들이었다. 이안은 눈앞에 보이는 표식들을 하나하나 둘러봐 주며 손을 흔들었다.
미리 준비된 레드카펫 앞에는 이미 다른 그룹이 서 있었다. 뒤를 이어 들어갈 그룹도 레드카펫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위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주혁의 인사를 받은 그룹도 인사를 하긴 했는데, 그룹 소개는 하지 않았다. 우물쭈물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것이 뭔가 부끄러운 듯한 행동이었다.
“자! 이어서 오는 걸그룹은… ‘물방개’입니다!”
[와 물방개 오랜만이다. 여전히 그룹 이름은 구리네.]그리고 그 행동은 그들이 레드카펫으로 나가자마자 이해가 됐다.
[나 저기 이름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하잖아. 저기 사장 별명이 물방개래서 그룹 이름을 저렇게 지었대.]‘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개너무하네.’
엠씨의 호명에 레드카펫으로 나간 물방개는 그래도 카메라 앞이라고 의연하게 그룹 구호를 외쳤다. 그들은 짧은 시간의 포토 타임 끝에 인터뷰 없이 퇴장했다.
“네 요즘 대세 보이그룹, 아위 입장합니다!”
이안과 멤버들은 레드카펫 중앙에 서서 그룹 인사를 외쳤다.
“좁혀 주세요.”
기자의 요구에 바짝 붙어 포즈를 취했다. 레드카펫 진행자가 마이크를 건네며 물었다.
“오늘 첫 참가인데 각오 한마디 하신다면?”
“오늘 금메달 하나 정돈 따야겠습니다.”
마이크를 받은 조태웅이 비장한 표정과 함께 사극톤으로 대답을 했다.
그 순간 상황극 성애자인 모든 멤버가 전부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진행자가 웃으며 질문을 이어 갔다.
“만약에 우리 아위가 메달을 따서, 회사나 사장님한테 뭔가 받을 수 있다면 뭘 요구하실 겁니까?”
“저희가 3월에 컴백하는데, 그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든요. 오랜만에 치킨 먹고 싶습니다.”
마침 주차를 하고 다른 문으로 들어온 박동수가 늦지 않게 아위의 인터뷰 현장을 염탐하고 있었다.
글쎄… 치킨은 블랙러시가 사 주지 않을까? 아육대 참가가 그렇게 극혐이었는지 안 간다고 좋다고 난리가 났었다. 잘만 말하면 한우까지도 가능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던 박동수는 어느샌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이안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을 귀신같이 잘 찾는다더니 정말이었네. 박동수는 괜히 소름이 돋았다.
사실 진짜 귀신이 알려 줬다는 건 이안만 아는 사실이었다.
* * *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자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돌들은 저마다 팬석을 찾아가거나 스태프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위는 당연히 팬석을 찾았는데, 이안은 진의 표식 도움이 없어도 팬들을 찾을 수 있었다.
흰 바탕에 궁서체로 간결하게 쓰인 현수막이 난간에 걸려 있었다.
아이돌의 아림픽 참가 소식을 어디서 제일 빨리 알 수 있냐면, 바로 공식 카페였다.
공식 카페에 아림픽 응원 현수막 안내 공지가 올라오면 팬들은 시안을 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낸다.
회사는 최종 결정된 시안을 가지고 현수막을 제작한다.
-내돌 아림픽 현수막 공지떴어ㅠㅜㅠㅠ
-현수막 공지 이제 다 뜬건가?
-지금 안 뜬거면 우리 애들 안나가는거지?
그 때문에 자기 최애그룹이든 다른 그룹이든 간에 현수막 공지가 올라오는 순간 SNS를 비롯해 여러 커뮤니티에 중계가 된다.
“우리 저기 잠깐 올라갔다 올까?”
“그래.”
이안이 팬석을 가리켰다.
좌석은 맨 앞 구역은 비우고 중간 구역부터 채워진다. 이안과 멤버들이 객석 쪽으로 다가오자 팬들의 환호성이 더 커졌다.
“안녕하세요.”
아위가 현수막이 걸린 난간에 바짝 기대서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팬들은 소리를 지르다가도 핸드폰을 꺼내 녹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거의 전부가 얼굴 대신 핸드폰을 보이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고개만 옆으로 해 줄래요? 저흰 여러분 핸드폰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싶어요.”
팬들 몇몇이 숨을 삼켰다. 그새 뒤까지 전달됐는지 다들 고개를 옆으로 했다. 핸드폰을 아래로 내린 사람도 있었다.
이안이 과장된 고갯짓으로 모두의 얼굴을 기억하려 하자, 앞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안은 진이 띄워 준 파란 표시는 무시했다. 자주 오는 사람을 너무 잘 알아보는 것도 좋진 않았다.
진에게 듣기론, 가수와 자주 오는 팬이 고인물화되면, 처음 온 사람은 그걸 보고 현타 맞아서 탈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뭐든 적정선이 중요했다.
“얘들아 다치지 마!”
좌석 맨 뒤쪽에서 목소리 총대가 소리를 높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모든 멤버가 웃었다.
개인 멘트가 운을 틔우니 여기저기서 대충해도 된다, 그냥 누워서 자라 한마디씩 말을 했다. 나중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열심히 할게요. 이따 아침 나오니까 꼭 챙겨 먹어요.”
박서담이 옆에서 말했다. 역시 한국인은 밥을 챙겨야 미덕이지.
이안이 뒤를 돌아 경기장 쪽을 바라보니 가수들이 중앙으로 모이고 있었다. 이주혁이 그만 가자며 먼저 내려갔다.
“이따 또 올게요.”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등을 돌렸다. 이안이 팬석에 손 인사를 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팬들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가 양 옆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어떡해. 다정해, 미친….”
“사실 하얀 옷 입길 바랐는데 보라색도 괜찮네요?”
“애들 옷걸이가 다 좋잖아요.”
맨 앞에 있던 사람들은 핸드폰 타자를 빠르게 치고 있었다.
-(영상)애들 입장하자마자 우리쪽 와줬어ㅠㅠㅜㅠㅠㅠㅜ
우리 얼굴 보고 싶다고 고개 옆으로 해달라는데 미친 개존잘 개다정함ㅠㅠㅜㅜ
팬들이 썰을 풀자 마자 좋아요와 리트윗이 빠르게 올라갔다.
가수들이 모여 스태프의 지시에 같은 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갔다.
웅장한 소리가 끝나자, 중계석의 사회자 목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2018년 설날 특집! 아이돌 올림픽을 시작합니다.”
개회식을 처음에 하지 않고 바로 경기부터 진행된다. 처음은 60m 달리기였다. 남녀 예선과 결승을 치른다.
각 조의 짧은 인터뷰 끝에 진행되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었다.
[너 쳐다본다.]이안은 주변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팬들이 다 보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 하고 옆을 쳐다보는 척 보거나, 뒤를 쳐다보는 척 눈을 마주친다.
뒤에서 그 시선을 눈치챈 조태웅이 이안의 어깨를 툭 쳤다.
“이열~ 인기남.”
“조용히 해라.”
앞에 앉아 있던 김 현이 뒤를 돌아 이안을 쳐다봤다.
“매니저 형이 너 단속 잘하래.”
“네? 왜요?”
그가 첩보작전을 하듯 이안에게 밀착해 소근댔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을 보니 또 상황극 예열 중인가.
“이안 동무, 이렇게 남녀가 떼로 모이는 자리는 조심해야 하디 않갔서?”
“긴데, 내래만 조심할 게 아니라 동무들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갔소?”
“동수 동무가 이안 동무는 특별 감시하라는 지령이 내려왔습네다.”
조태웅까지 합세해 상황극을 하고 서로 낄낄 웃자 이주혁이 “간첩신고 몇 번이냐?”라며 박진혁과 떠들었다.
나이 대 비슷한 청춘남녀가 떼로 모이면 발생하는 돌발 상황이 뭐겠는가. 바로 친목, 연락처 교환, 연애다.
음방 1위 못 해서 핸드폰 없어도 알음알음 연락하게 하지 않는가.
전에 쪽지도 받은 만큼 매니저와 멤버들의 집중 관리 대상은 이안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도리어 멤버들을 감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연애를 할 리가.’
과거에 연애 터져서 전 방위로 까이고 인기 하락세를 탄 연예인을 본 게 한둘이 아니었다.
팩트픽스가 밝혀 낸 루어와 러블리데이는 이미 구축해 놓은 팬덤이 워낙 탄탄해 빠지는 게 티가 안 날 뿐이지,
좀만 깊게 들여다보면 팬들이 탈퇴하라고 해시태그 총공에 팩스 총공까지 하면서 난리가 나고 있었다.
하물며 데뷔 만 1년도 안 됐는데 연애를 하고 그게 밝혀진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때마침, 첫 예선 조가 인터뷰를 마치고 경기를 시작했다. 1등 기록은 7.79였다.
“이안아 메달 가능하지?”
“글쎄… 운동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네. 잔디 코트도 아니고.”
이안이 입으로는 자신 없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내심 질 자신은 없었다.
[메달 안 따는 게 좋을 텐데….]‘왜? 그래도 방송에 나오는 게 좋잖아?’
[메달 땄다가 운동 예능에서 너 섭외 들어가는 거 아니냐? 군대 예능이라거나.]예선을 치르러 일어난 이안이 멈칫했다. 악마 같은 방송국 놈들이라면 그럴 만도 한데?
‘설마… 그 프로가 아직도 있어? 폐지된 거 아냐?’
[시즌2 하잖아.]‘맙소사.’
이안이 싸해지는 기분에 괜히 팔을 쓰다듬었다. 예능에서까지 군대라니!
같은 예선 조 사람들이 트랙 위로 걸어가 저마다 자리를 찾고 있었다.
이안은 상념에서 벗어나 무릎을 굽혀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다.
인터뷰에는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이런 예선 인터뷰는 편집 돼서 방송에 안 나갈 것이다.
“준비!”
스태프가 신호를 주자 예선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빵! 화약총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이안이 발사되듯 확 앞으로 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