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73)
279화. 삼 대 삼 (2)
“그륵… 큭!”
툭, 쿠우우웅.
공진의 날카로운 발끝에 비견개의 목을 조여들던 소매가 툭 끊어졌고, 의식을 잃은 비견개의 거구가 허물어졌다.
콰드득.
동시에 남궁하연의 반대편 소매에 칭칭 감겨 있던 대나무 몽둥이가 두 동강이 났다.
탓.
허나 그때는 이미 공진이 땅에 착지한 후였다. 쓰러진 비견개를 지키듯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이내 남궁하연이 말했다.
“…실례했소. 허나 이미 승패는 명백히 갈라졌거늘… 시주께선 정녕 걸개의 목숨을 앗을 생각이었소?”
“그럼요. 당연한 거 아녜요?”
남궁하연이 눈이 날을 세웠다.
“저기요 스님? 지금 우리가 무슨 친선 비무라도 하는 줄 알아요? 이건 전쟁이에요.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싸움이라구요.”
“…….”
공진의 표정이 흔들렸다.
물론, 할 말은 마땅치 않았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휙, 남궁하연이 뒤를 돌아보았다.
“가주님, 이건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양측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궁천승을 향했다.
기실 이 시점에서 비무는 끝나고 전면전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핫.”
허나 시종일관 태연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남궁천승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아무렴 어떻소? 장로께서 이겼으면 그만이지. 이렇건 저렇건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
“…….”
“무엇보다… 개방주가 뛰어들었다면 나도 참아넘겨 주진 않았을 거요. 허나 상대는 스님이 아니오? 불제자께서 중생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신다는데… 이해해드려야지.”
“…쳇.”
남궁하연이 혀를 찼다.
허나 가주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므로 가타부타 군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뭘 하고 있냐, 이 굼벵이 같은 거지놈들아! 어서 집의당주를 모셔라!”
그때 철면개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개방의 제자 몇몇이 헐레벌떡 튀어나와 쓰러진 비견개를 수습하여 물러났다.
“감사드리오, 스님.”
그리고 철면개가 공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남궁천승의 말마따나, ‘자신은 나설 수 없었다’.
그러한 입장을 알기에.
공진이 대신 나서준 것이다.
“…또한 남궁세가주께도 너른 양해에 감사드리오.”
이어 철면개는 남궁천승에게도 포권했다. 허나 남궁천승은 철면개를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아.”
그때, 남궁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합장하고 선 공진을 곁눈질한 뒤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다음 상대’임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휙.
허나 다음 순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남궁하연의 고개가 다시 뒤를 향했다.
“돼지 같은 거지에 이어… 이번에는 쩐내나는 스님인가요? 원, 아리따운 여협은 한 명도 없고… 가주님, 저 힘든데 이만 물러서도 될까요?”
“……!”
마주한 공진의 눈이 흔들렸다.
“아, 그럼 수고하셨소, 장로!”
허나 다음 순간.
남궁천승은 기다렸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타앗, 그 즉시 남궁하연의 몸이 날아올랐다.
허공을 가른 뒤, 다시 의혈맹 측 무인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술렁.
일순 동요가 퍼져나갔다.
물론, 대표로 나선 남궁하연이 큰 상처 없이 승리를 거두고도 스스로 물러날 것을 자처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양측에는 각각 두 명씩의 대표가 남게 되었으므로 사실상 ‘비긴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허나 물론,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구 무림맹 측에는 침중함이 내려앉는 반면 의혈맹 측에서는 웃음소리가 스쳤다.
“…….”
철면개는 생각에 잠겼다.
설마 첫 번째 순서부터 절정을 넘어 목천의 경지에 접어든 초절정의 고수가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것은 과연.
천하제일검가의 저력이었다.
허나 심지어… 남궁천승은 공진이 승부에 끼어들어 비견개의 목숨을 구한 것을 ‘참아넘겨’ 주었으며.
또한 아직 충분히 싸울 여력이 남은 남궁하연을 순순히 물러서게 했다.
그러한 남궁천승의 ‘여유’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는 개방에 ‘악의’를 지니고 있으며, 결코 피를 보지 않은 채 오늘을 넘길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그때 공진이 불호를 읊었다.
어찌 되었건 남궁하연이 물러섰으므로, 다음 상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단목 가주!”
이내 다시 남궁천승이 외쳤다.
저벅.
그러자 의혈맹의 무리 속에서 다시 인영 하나가 걸어 나왔다. 백의를 걸친 호리호리한 체구의 중년인이었다.
“찾으셨습니까, 남궁 가주?”
“그렇소! 역시… 이다음 차례를 맡아줄 적임자는 가주뿐인 것 같구려. 부탁드려도 되겠소?”
단목 가주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돌려 공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남궁천승을 향했다.
“모자란 실력으로 뭇 동도들께 누를 끼칠까 염려되는군요. 허나 제게 중임을 맡겨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임해볼까 합니다.”
“핫!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소! ‘고작 이런 곳’에서 단목 가주를 잃는 것만큼 뼈아픈 일은 없을 테니 말이오!”
사내가 남궁천승에게 포권했다.
그 역시 일가를 이끌고 있는 ‘같은 가주’임에도 남궁천승을 대하는 태도는 퍽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저벅.
그리고 이내 돌아선 뒤 공진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섯 보가량의 거리를 두고서 이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건이라 합니다. 변변찮은 실력입니다만… 감히 소림의 공진 스님께 한 수 청하고자 합니다.”
단목건이 포권했다.
“…아미타불, 공진이오.”
공진 또한 상대를 살폈다. 허나 사내에게서는 이렇다 할 인상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단목세가?’
철면개 또한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이름 없는 세가는 아니었다.
허나 검가로서 대표되는 남궁세가나 모용세가에 비해서는 한 수 이상 처지는 평가를 받는 무가였다.
또한 당대의 단목세가주가 강호무림에서 특별히 이렇다 할 활약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으며.
고로 절정 이상의 무인이라면 으레 따라붙게 되는 별호조차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허나 이런 자리에… 정말로 ‘변변찮은 실력’의 소유자를 내보낼 리 없는 것이다.
‘…뭐, 생각한들 소용없나.’
허나 철면개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되었건, 상대는 백팔나한의 수좌인 공진이었으며 그는 상대가 무명이라는 이유로 방심 따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두천존이 천년소림을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면, 공진은 그 기둥 아래에서 자라난 가장 올곧은 나무였다.
철컥.
“아, 선공은 양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님. 오히려 제게는 ‘상대를 맞이하는’ 쪽이 편하니까요.”
단목건이 검을 꺼내며 말했다.
유한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면 사양 않고 들어가겠소.”
훅.
다음 순간, 공진이 뛰쳐 올랐다.
탓, 휘익.
“……!”
날아오른 몸이 허공에서 몸을 틀었고, 잔상을 남기며 좌측 방향으로 쏘아졌다.
허나 시작에 불과했다.
휘익, 휘익.
공진이 허공에서 몸을 비틀 때마다 새로운 잔상을 남겼고, 방향이 휘어졌으며, 추진력을 얻었다.
그것은 이름 높은 소림칠십이절예의 하나인 항마연환퇴(降魔連環腿)였다.
“하압!”
그리고.
삽시간에 단목건의 좌측 상단에 모습을 드러낸 공진의 발꿈치가 맹렬한 기세로 내리꽂혔다.
휘이익.
허나 그 정도의 움직임은 충분히 따라잡았다는 듯, 단목건의 검이 마주 뻗어졌다.
허나.
후웅.
“……!”
두 강기가 충돌하기 직전.
공진의 몸이 다시 한번 비틀어졌고, 또 한 번의 잔상을 남기며 단목건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항마연환퇴란.
각법과 경신법 사이의 경계를 오고 가는 기예였다.
고로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공격인지 회피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목천의 경지에 다다른 깨달음과 기의 운용력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휘이이익.
이내 공진의 발이 단목건의 우측 옆구리를 파고 들어갔다.
허나 그때까지도 단목건의 검은 여전히 좌측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승부가 결정지어지는 듯했다.
훅, 콰아아아아앙!
허나 그 순간.
단목건의 검이 ‘직각’으로 휘어졌다. 그대로 횡을 그은 뒤 냉큼 공진의 발을 쳐내었다.
“허어… 아찔하군요! 과연, 이것이 천년 소림의 무학이로군요. 자칫 일 수만에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
휘릭.
공진의 신형이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저만치에 착지한 뒤 단목건을 바라보는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강기를 담아 전력으로 휘두른 검로의 방향을 도중에 직각으로 틀어버린다.
그것은 물론 쉬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며, 억지로 시도한다면 자칫 어깨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단목건의 안색은 멀쩡했다.
그것은 비록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또한 절정 수준의 운용으로는 펼칠 수 없는 초상승의 기예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군.”
이내 공진은 납득했다.
“시주야말로 대단하시구려.”
“핫, 별말씀을요 스님!”
단목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잠시, 공진은 여유가 흘러넘치는 단목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윽.
이내 공진이 합장한 손을 풀었다.
* * *
콰콰콰콰콰콰콰아앙!
“하아아압—!!”
맹렬한 외침과 함께 공진의 두 주먹이 연신 뻗어지며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건을 마구 몰아붙였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두 개의 주먹’이라는 말로 쉬이 설명될 만한 공격은 아니었다.
뻗어지는 팔은 분명 두 개에 불과했으나, 단목건을 두드리는 주먹은 언뜻 보기에도 무려 열 개를 웃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손의 잔상이 허공에 남아.
이내 주먹의 모양을 본뜬 그림자가 되며, 그 모든 그림자 하나하나는 충돌의 순간, ‘강기를 품은 실체’가 되었다.
그야말로.
소림칠십이종절예의 하나인 나한십팔권의 완성이자 극치에 이른 모습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앙!
허나.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와중에도, 공진은 이 싸움이 쉽게 풀리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자신의 우세이며, 끝없이 이어지는 공격 앞에 상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였다.
콰콰콰콰콰콰앙!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충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이유는 명백했다.
고작해야 검 한 자루가.
나한십팔권에 의해 펼쳐지는 십수 개의 주먹을 능히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목건의 검로는 한없이 자유로우며, 심지어는 내뻗고 회수하는 ‘진퇴의 제약’조차 없었다.
전력을 다해 내려찍어진 검이, 다음 순간 수직으로 꺾이며 횡을 그으면서도 힘과 위력이 전혀 반감되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순간, 모든 방향을 향해 오롯이 전력을 담아 휘둘러지는 검 한 자루는 마치.
‘…절벽과 같군.’
공진은 문득, 눈앞에 선 호리호리한 사내에게서 단단한 절벽을 느꼈다.
최소한 그 깨달음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낮게 가라앉은 단목건의 눈빛에서는 아무런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눈은.
자잘한 충격들을 참아넘기는 한편, 어떻게든 나한십팔권의 초식을 ‘읽어내어’ 호시탐탐 역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눈빛이었다.
“…….”
허나.
그것이 공진에게 있어 암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절벽 따위는.
이곳 숭산 일대에 수도 없이 널려있으며, 소림의 제자가 된 이래 맨손으로 오르내리기를 수도 없이 거듭해온 몸이었다.
“크아아아압—!!”
타아앙.
다음 순간 공진이 뛰쳐 올랐다.
훅, 몸이 잔상과 함께 휘어졌다.
다시금 항마연환퇴가 펼쳐진 것이다. 허나 그 와중에도 나한십팔권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콰콰콰콰콰콰콰아앙!
항마연환퇴와 십팔나한권이 ‘함께’ 펼쳐졌다.
공진의 움직임은 허공에 잔상을 남겼고, 십수 개의 주먹들 또한 잔상 속에 섞여들며 순식간에 몇 배로 늘어났다.
“…!”
“어디, 숨긴 패를 꺼내 보시오!”
공진의 입에서 격정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쾅, 퍼억!
심지어는 나한십팔권의 주먹들 사이사이로 칼날과 같은 발차기마저 섞여들기 시작했다.
“…허어!”
피아를 막론하고, 주변을 둘러싼 무인들 곳곳에서 탄성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팔방에서 쏟아지는 공격.
그 현란한 모습은 그야말로.
소림무학의 집대성이었으며, 마치 열여덟의 무승이 모여야 펼칠 수 있는 소림의 십팔나한진을 단신으로 펼쳐내는 것과 같았다.
“…크읏!”
그리고 그 정도의 공세가 몰아치자, 단목건으로서도 마침내 수비의 한계를 느끼는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휘청.
이내 신형 또한 위태롭게 흔들렸다. 끝없는 두드림으로 말미암아 절벽이 깎이기 시작한 것이다.
콰콰콰콰콰앙!
어떻게든 수비를 유지했으나.
‘흘려내지 못하는’ 공격이 점차 늘어나며 충격이 쌓였고, 검결에 초조함이 섞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