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노란 머리칼과.
풀밭을 떠올리게 하는 녹색 눈동자.
칼리드는 리안을 본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이나 발데아 영지 내의 유명 인사들은 물론.
웬만큼 중요하지 않은 이들까지도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그다.
그런 칼리드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란 뜻이나 매한가지인데.’
그런데 어째서.
분명 리안이라는 저 여자에 대해 손톱만큼도 아는 것이 없건만.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히는가.
심지어 리안에게는 마력이나 성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형용할 수 없는 동질감 같은 것 정도가.
아주 미미하게 드는 정도랄까.
‘착각이겠지. 그냥 외모가 흔한 외모라 그렇게 느끼는 걸 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칼리드는.
생긋 웃어 보이는 그녀를 보며 그렇게 결론내렸다.
결정적으로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저 컨디션의 문제겠거니.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에게서 보이는 황금빛 안광이.
그녀의 눈에도 미미하게 비치는 모습을 보자.
칼리드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입을 열었다.
“병을 앓는 이를 도와주고 굶주린 이를 먹여 주는 것이야말로 리톤 신교의 가장 기본 된 가르침이요, 순리. 그리 감사할 필요 없다.”
“리톤 신교… 리톤 신교….”
그의 말에 리톤의 이름을 몇 번 되새김질하던 리안은.
재차 칼리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제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녀의 인사에 손을 휘휘 저어 보이는 칼리드.
그가 원하는 건 감사 인사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에, 교주님. 아! 교, 교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나요?”
아직까지 완전히 리톤 신교의 영향력에 잠식되지 않았는지.
그게 아니라면 아르센의 경우처럼 그 힘에 저항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빈민촌의 다른 이들과 다르게 칼리드를 맹목적으로 교주라 부르고 있지 않았다.
“호칭이야 무어라 부르든 상관없느니라.”
“네에, 교주님.”
칼리드의 답에 둥글둥글 웃어 보이는 리안.
그는 덤덤한 얼굴로 자신들이 디디고 있는 바닥을 가리켰다.
“너희들끼리 이렇게 뭉쳐 다닌다는 건 리더가 있다는 건데. 너희들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으음…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에….”
그의 물음에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리안.
특유의 주욱 늘어지는 말투로 중얼거리던 그녀의 주위로.
빈민촌의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리안이지, 리안.”
“우리 대장은 리안 아니었어?”
“딱히 그런 건 없었지만, 앞으로 리안을 대장으로 삼으면 해결되는 일 아니야!”
“행동대장 리안, 그거 좋네! 허허허!”
저들끼리 외치는 모습을 가만히 살피던 칼리드.
이제야 그는 왜 눈앞의 여자가 죽음의 경계를 드나들 때.
모든 사람들이 저리 안달복달했는지 알 것 같았다.
‘리안이라는 이 여자가… 이 무리의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였군.’
수십의 적을 베어버릴 검술도.
대단한 마력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수백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말을 따른다.
그렇다면 사실상의 우두머리는 리안이라 보아야 옳겠지.
“…리안이라고 했나?”
“네에.”
“이곳에서 먹고 자는 것은 어떻지?”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는 그리 풍족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옷을 가리키는 리안.
그녀의 말이 없어도 이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알고 있기에.
칼리드는 진중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리톤의 신도들은 굶주리는 일이 없다.”
“…?”
“또한 잘 곳이 없어 길거리를 헤매는 일도 없고. 입을 옷이 없어 거적때기로 몸을 가리지도 않는다.”
“….”
“이곳에 머물러서는 늘 같은 삶을 반복할 것인즉. 그대들의 희망과 꿈이 이곳에 있지 않은데. 어찌하려 여기에 안주하려 하는가.”
처음에는 얌전히 칼리드의 말을 듣고만 있던 리안은.
이내 눈을 돌려 다른 이들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말마따나 초라하기 그지없는 꼴에.
당장 내일, 모레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칼리드는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스킬의 힘까지 빌려 가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대의 가족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하리니. 이미 리톤의 가호를 입은 자들은 리톤 신교의 보호 안에 들도록 하라.”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온 힘을 스킬에 실어 내보내는 칼리드.
그 덕분인지.
리안의 초록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안광이.
아주 조금 더 진해졌다.
“…맞는 말씀이세요. 저도 이곳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먹을 것과 잘 곳이 있고 희망과 미래가 있는 땅, 리톤으로 가자. 내가 그대들을 책임지고 이끌리라.”
칼리드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리안.
그녀는 결심이 섰는지 자신과 칼리드를 바라보던 주민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어기….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긴! 우린 이미 채비가 끝났어!”
“채비가 끝났다고요?”
“몸만 덜렁 가면 그게 우리 방식이지. 그보다 리안만 결심이 서면 끝나는 일이라고!”
다른 이들에게 같은 말을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짐작하긴 어렵지만.
이미 칼리드의 영향력 안에 절여지다시피 한 이들이라.
어찌 보면 맹목적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가 두 번째로 택한 능력의 힘이 제대로 발동하고 있는 건지.
저들은 칼리드의 말을 100% 신뢰하고 따르려 하고 있었다.
“으음…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저도 당연히 함께해야겠죠?”
그리고 저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일대는 순식간에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다.
“가자아!”
“가자! 약속의 땅으로!”
“리톤 신교의 땅, 리톤으로 갑시다!”
“리톤! 리톤! 리톤!”
“리톤의 가호를 받으러!”
그녀의 결정이 증폭제가 된 건지.
아니면 칼리드의 말이 저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황금빛 안광을 빛내며 외치는 모습은.
당사자인 칼리드조차도 살짝 소름이 돋게 할 만큼 광신적이었다.
‘…두 번째 능력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고작해야 1,000포인트를 얻은 대가인데.
다음 세 번째 능력이 열린다면 어느 정도로 센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인지.
천하의 칼리드조차도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쉽게 통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칼리드는 하나둘씩 짐을 꾸리는 빈민들과.
움막 어딘가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집어오는 리안을 향해.
예의 그 진중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약속의 땅으로 앞장서리니. 너희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라.”
그렇게 툭 던지고선.
아무렇지 않게 뒤돌아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칼리드.
그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놀랍게도 리안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리안의 움직임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그 뒤로.
또 그 뒤로.
기다란 줄을 그리며 한 줄로 칼리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아아, 공자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 수배한 물품들과 마차가 준비되어… 저, 저건 뭡니까?”
“네?”
울티마 상단으로 돌아가자마자 퀭한 눈으로 칼리드를 반기는 레베로.
그는 칼리드에게 인사말을 건네려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다란 행렬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 저 사람들! 도대체 뭡니까?”
“아아.”
그냥 평범하게 무리 지어 와도 되건만.
칼리드의 스킬이 주는 영향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에.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형상이 되고 말았다.
‘하긴. 그냥 보기엔 조금 기괴하긴 하네.’
“저와 함께 리톤으로 갈 사람들인데. 짐마차에 함께 탈 수는 없겠습니까?”
“어음… 그야 수레 남는 칸에 몇몇이 올라타는 거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꾀죄죄한 행색 때문인지.
저들 무리가 가까워지자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서는 레베로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께서 생각해 두신 것이 있는 듯하니….”
어림잡아도 그 수가 2, 3백 명이 넘는다.
영지 주변의 빈민들을 모조리 데려온 듯한 모양새니.
아무리 칼리드가 하는 일에 대해 깊게 신뢰하는 상단장이라지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칼리드 공자님이시니. 무언가 다른 안배가 있으시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울티마 상단장 레베로는 물론.
칼리드도 본래 예정에서 고작해야 이들 무리만 더해질 것이라.
그리 생각했다.
“갑시다.”
“이럇!”
그러나 칼리드가 발데아로 들어올 때와 달리.
한없이 길어지고 느려진 행렬 덕에.
그의 리톤 행 소식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무엇보다 리안의 존재가 발데아 근방의 다른 빈민 무리에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야? 리안이 리톤으로 떠난다고?”
“나도, 나도 갈래.”
“저기로 따라가면 먹을 것도 주고 집도 준다던데?”
“갑시다! 나도 같이 가요!”
본래부터 챙겨갈 재산도, 집도 없는 이들이니.
결정은 빠르고 신속했다.
칼리드의 허락하에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 수가 점점 불어나더니 본래 데려가려던 수의 두 배가 되어버렸고.
짐마차에 옹기종기 붙어 타던 것도 모자라.
짐마차 행렬을 따라 걸어가는 이들까지 생겨나 버렸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상적인 영지의 모습을 갖추려면 사람의 머릿수는 필수 조건이니.
칼리드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상황임에는 분명하지만.
저들을 먹여 살릴 음식과 집이 당장은 마련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네?”
“공자님께선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아무래도 제 일이 예측하고 손익을 따지는 일이다 보니. 제가 공자님에 대해 이런저런 예측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공자님이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꼭 예측이 빗나가더군요.”
뭐, 저렇게 얘기할 만도 하지.
지금의 상황은 칼리드조차 예견하지 못한 일이니까.
“그거 아세요?”
“어떤….”
“저도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하질 못했어요.”
“….”
하지만 상황이나 사건이야 늘 예측 못 한 타이밍에 벌어지는 것이고.
그걸 통제하는 건 신의 영역.
하지만 예측 못 한 상황을 제 것으로 만들고 활용하는 건 능력 아니겠는가.
‘오히려 좋아. 이 정도 숫자가 확보되었으니. 제대로 다스릴 수만 있다면 오히려 빠르게 성장할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리톤 행을 재촉하던 칼리드.
장장 열흘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칼리드와 레베로는 패배하는 땅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고.
리톤으로 들어서자마자 처음 그를 반기는 광경에.
그는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이건.”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2년 11월 24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 본 작품은 (주)에이시스미디어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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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