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romancer Infinite Skill Player RAW novel - Chapter 59
59화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에 쩌억 달라붙는.
불쾌한 초록색 액체와 갈가리 찢어진 몬스터들의 사체.
로이 발데아는 주머니에서 하얀 장갑 하나를 꺼내 착용하더니.
그것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사령술이나 검술을 이용해서 이런 상처가 만들어지긴 하던가?”
줄 서듯 바닥에 엎어진 몬스터들.
녀석들의 가슴팍엔.
희한하리만치 같은 위치에 뻥 하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보통 창 류 무기에 적중당하면 이런 상처가 생기지 않습니까?”
뒤편에서 그를 호위하던 기사 하나가.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말을 보냈지만.
로이 발데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몬스터 네, 다섯 마리가 같은 위치에 상처가 났는데. 창으로 그랬다고? 몬스터들이 예쁘게 맞아주겠답시고 줄 서서 맞아준다더냐?”
마치 꼬치에 꿰인 고기처럼.
같은 부위에 똑같은 상처를 지닌 몬스터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 그렇긴 합니다….”
“게다가 이놈들을 꿰뚫은 단면을 보라고. 창을 써선 절대로 이렇게 깔끔하게 나오지 않는단 말이지.”
예리한 눈으로 시체를 살펴보는 로이.
그 말에 그를 따라온 기사들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유별나긴 하다고는 해도.
로이는 4성 사령술사다.
그것도 단순히 마나를 쌓는 것에 그친 샌님이 아니라.
십 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변방 전장에서 보낸 베테랑.
제아무리 1급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로이의 경험과 실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무어라 떠들어댈 수 없었다.
“어이, 그쪽은 어때?”
한참 동안 몬스터들의 시체를 뒤적이던 로이 발데아.
그는 고개를 쳐들어 반대편으로 보냈던 기사를 향해 물었다.
“마, 마찬가집니다. 이쪽에 있는 시체들도 보신 것처럼 창에 찔린 듯한 상처가….”
“그쪽에도?”
어림잡아도 수백이 넘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하나같이 같은 수법으로 죽어 있다는 건.
결국 한 명이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절대로 일반적인 검술이나 사령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흔적은….’
만약 누군가가 로이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완벽히 똑같은 방법으로 몬스터들을 죽일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절대로 안 돼. 임프 로드나 데빌 스피어맨 같은 고위 소환체를 불러내더라도, 이렇게 깔끔하고 정교하게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사체 더미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몬스터를 감당해 내는 상황이었다면.
필시 쉬지 않고 어지러이 싸우는 난전의 형태였을 텐데.
도장을 찍은 것마냥 일정하게 만들어진 상처라니.
‘죽이는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은 다음에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그림인데.’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벨톤의 얼굴.
로이의 얼굴이 일순 확 일그러졌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대동했던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걸까.
한참을 저들끼리 떠들어대는가 싶더니 로이를 향해 우물쭈물 입을 떼자.
로이 발데아는 쯧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찬가지다. 발데아 가문이나 인근 가문 중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군.”
발데아 가문 내에서 굳이 꼽아야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면 가문의 5대 사령술사들 정도일까.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사령술이나 저주 술법에 의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더럽게 강한 놈이라는 건데.’
이 정도라면.
인간이 개미 떼를 짓밟는 일과 흡사할까.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싸움이나 전투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상황이었으리라.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위험… 하군.’
로이는 일순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공자님! 로이 발데아 공자님!”
“뭔가 발견한 게 있나?”
“여기, 이쪽입니다!”
“뭘 발견했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지?”
“오크 로드, 레드론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뭣이?!”
레드론이라니.
정찰을 보냈던 수하 기사의 말에.
로이 발데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레드론이 죽었다고?!’
믿기 힘든 보고에.
다급하게 기사가 왔던 곳으로 달려간 로이.
한참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말도 안 돼…. 정말로 레드론이….”
다른 몬스터들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붉은 오크 한 마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사체 사이에 턱 하니 엎어져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어떤 괴물 같은 놈이 이 골칫덩어리를 쓰러뜨린 거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그럴 만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자 거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신성 제국. 그것도 관리자급의 사제가 직접 나서지 않은 이상은….’
“이 녀석의 시체에도 아까 보신 것과 비슷한 상처가 나 있습니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보고에.
고개를 홱 쳐드는 로이 발데아.
그는 수하가 가리킨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과연 그 말대로.
레드론의 머리통에는 아까 몬스터들의 가슴팍에서 보았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같은 사람인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상처의 크기나 모양이 앞서 본 것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머리만 정확하게 노린 공격이라니….”
레드론에 대한 악명은.
발데아를 오래 떠나 있었던 로이 역시.
꽤 오래전부터 들어 왔었다.
대화나 평화로운 수단 따위는 일절 통하지 않는.
예측 불가의 거력을 지닌 오크.
녀석이 지닌 힘과 무력은 평범한 오크들과는 궤를 달리했기에.
광산 지대에 인접한 영지의 군주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상대로.
머리만 정확하게 노려 벌집을 만드는 공격을 해냈다는 건-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물 같은 놈이 이 일에 개입하고 있는 걸지도.’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움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로이 발데아.
몬스터들의 시체에 남은 흔적만으로도 이 정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일진대.
그 당사자를 눈앞에서 직접 맞닥뜨린다면 어떨까.
괜스레 입이 바싹 마르는 기분에.
로이는 슬쩍 윗입술을 낼름거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실력이 좋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괴물입니다, 괴물. 이쯤 되면 어느 쪽이 몬스터인지, 참….”
“창을 다루는 사람 중에 이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던가?”
기사들 또한 같은 마음인지.
시체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도.
연신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울티마 상단의 사람들이 잡혀 있었다고 했으니… 아마 그쪽 사람이 손을 쓴 것 아니겠습니까?”
이 경이로운 광경을 빚어낸 이가 누구인지.
오랫동안 떠들어댄 기사들.
그들 중 하나가 제법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로이 발데아는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 게다가 울티마 쪽에는 쓸 만한 검수나 마법사가 없다. 기껏해야 소드 마스터 급 검사 몇이 전부지.”
“아니면… 혹시 칼리드 발데아 공자니-”
“칼리드?! 하! 그거야말로 요 몇 년 사이에 들은 농담 중에 가장 우스운 이야기구나!”
갑작스레 튀어나온 칼리드의 이름에.
들으라는 듯 픽 콧방귀를 뀌는 로이.
그는 가당찮다는 듯 허공에다 대고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 등신 머저리 같은 놈이 수백이 넘는 몬스터들을 썰어버렸다고? 거기에다가 레드론까지? 너는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그,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사령술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십몇 년을 헤맨 놈이다! 그런 놈이 설쳐 대는 꼴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네놈도 아직 멀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전 그저….”
“됐다. 더 들을 필요도 없어. 아마 제국 쪽에서 사람을 보내 정리하도록 했겠지.”
벌집이 되어 버린 레드론의 머리통을 지그시 밟던 로이 발데아.
그는 시종이 끌고 온 자신의 말 위로 훌쩍 올라타더니.
기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건 상황은 종료되었으니, 더 지체할 필요는 없지. 지금 이 시간부로 복귀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무언가 찝찝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맴돌았지만.
한껏 솟은 로이의 눈썹을 보고서는.
기사들 중 누구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말대로.
신성 제국의 대단하신 어떤 분이 나타나서.
쓱싹쓱싹 몬스터들을 썰어버렸겠거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돌아가자!”
***
“정말로 감사합니다, 공자님!”
“공자님 아니었으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음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저를 찾아와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자님을 돕겠습니다.”
“이 레젤, 피도 눈물도 없는 용병이라지만…. 공자님의 은혜만큼은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칼리드를 필두로.
광산 지대에서 발데아 영지까지 무사히 복귀한 울티마 상단 일행.
그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칼리드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이 기다릴 테니 빨리 복귀들 해. 상단장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리지.”
“감사합니다, 공자님!”
“감사 인사는 그쯤 해 둬.”
어차피 광산 지대를 들른 건 칼리드의 탈태환골을 위해서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그 과정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울티마 상단의 주인인 레베로.
그리고 레젤을 비롯한 용병들이거늘.
칼리드는 멋쩍은 표정을 한 채.
사람들을 모조리 돌려보냈다.
“후아! 정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도련님!”
“아직 안 갔냐?”
“그럼요, 도련님! 아직 인사도 못 드렸는데, 가긴 어딜 가요?”
“너도 저 사람들 사이에서 인사했었던 것 같은데.”
“에헴, 자고로 용병의 임무는 계약자가 완벽히 끝났다 할 때까지 계속되는 법이거든요!”
검지 손가락을 눈높이까지 치켜들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아르센.
칼리드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 지었다.
“어차피 상단장님께 보고하는 과정에서 내가 말씀드리면 되니까. 너도 이만 돌아가.”
“…정말 그래도 되나요?”
“보수는 절대 까먹지 말라고 말씀드리지. 잘하면 보너스도 달라고 말해 볼 수도 있고.”
이번 광산 행에 있어 일등 공신을 꼽으라면.
단연 아르센일진대.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물론 1급 기사 수준에 해당하는 보수이니만큼.
그 금액이 큰 건 아니었지만.
그간의 공을 생각한다면 레베로에게 귀띔해 얼마간 더 얹어 주는 것도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와아! 감사해요! 그러잖아도 이번 기회에 검을 조금 손볼까 했었는데….”
칼리드의 말에.
간만에 활짝 웃어 보이는 아르센.
길잡이는 허리춤에 찬 칼을 툭툭 쳐 보이더니.
보물이라도 된 것처럼.
검집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검?”
“네. 제 검이 조금 특별… 특이한 물건이라서, 자주 만져줘야 하거든요.”
검이 특이하다라.
그러고 보니.
아르센이 검을 쓸 때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뭣 때문이었더라?’
녀석의 검을 볼 때마다 들었던 의문.
칼리드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성큼. 성큼.
아르센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 도련님?”
그러고는 다짜고짜 그의 검집을 부여잡는가 싶더니.
“잠깐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어엇?!”
검을 뽑아 드는 칼리드.
스릉.
서늘한 금속음과 함께.
눈을 어지럽히는 은빛 섬광.
칼리드의 시선은 검신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타고 흐르는가 싶더니.
가장 아랫부분에서 턱 하니 멈추었다.
‘이제야 알겠다.’
사령명가의 무한스킬 플레이어
지은이
: 대왕생
제작일
: 2022년 11월 24일
발행인
: (주)에이시스미디어
편집인
: 에이시스미디어 편집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428 11F 125호
전자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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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76-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