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75
75. 모두 무정검의 말대로입니다.
청해에는 수많은 군소 사파인들이 난립하고 있다. 절강(浙江)이나 귀주(貴州)처럼 구파일방에 버금가는 사파들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한 지역 전체를 다스릴 정도의 사파는 청해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는 변방이라는 특징 덕에 곤륜파 외에 별다른 정파가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며 황실과 거리가 떨어져 관부가 부패한 탓도 있을 것이다.
태도신풍(太刀迅風)이라는 이명을 얻은 오박 역시 청해에서 황중(湟中)이라는 중소 도시를 차지한 나름 이름있는 사파인이었다.
태도라는 묵직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신풍이라는 말까지 붙은, 피를 잔뜩 머금은 태도와 함께 빠른 발을 자랑하는 무인. 그게 태도신풍 오박이었다.
오박은 발뿐 아니라 뭐든지 늘 빠른 편이었다. 남들이 망설일 때 하나라도 더 행동에 나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그가 사파 무림에서 살아남은 생존법이었으니까.
이런 신속한 움직임은 여태까지 오박이 세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태까지만 말이다.
늘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는 그의 성정이 결국 저승도 먼저 보내줄 거란 걸 오박은 알지 못했다.
“튀, 튀어라! 뒤도 보지 말고 황중으로 달리거라!”
오박은 당황하며 한마디만 남기고 발을 움직였다. 그의 뒤로 살벌한 병장기를 든 수 십의 사파인이 함께 발을 내젓는다. 모두 도망가는 것이다.
이들은 공동이 혈영문과 전쟁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서녕에 발을 들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혈영문과 공동, 그 둘 중 하나는 크게 전력을 잃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틈을 타 이득을 보려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박의 신속함이 독이 되었다. 차분히 정보를 수집했다면 들었을 소식을 서녕에 닿기 전까지 듣지 못한 것이다.
‘저, 정파 연합이라니···’
공동 아니면 혈영문이 자신을 맞을 거라던 예상은 단숨에 깨어졌다.
분명 멀리서 권풍을 날려대던 승려가 황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림이 왜?’
그뿐이 아니다.
자신의 수하 이십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정신을 잃었다.
이는 당혼독(唐倱毒)에 당한 것.
당문의 짓임이 틀림없었다.
– 서서서섯!
– 푸욱!
왔던 길로 달려나가던 사파인들의 후미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추격이 붙은 것이다.
“이런 젠장!”
자신이 잡힐 걱정은 없다.
신풍이란 말이 괜히 붙었겠나.
그저 부하들이나 많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며 오박은 발만 열심히 내달린다. 구할 생각은 전혀 오박을 스치지 못했다.
– 끄아아악!
– 아아악!
– 큰 형님!
점점.
점점 비명이 가까워진다.
후미를 잡던 정파의 무인들이 어느새 허리 부분까지 쫓아온 탓이다.
본디 한 단체의 수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대열을 재정비하거나 스스로 적들을 막는 등 책임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허나, 사파인은.
거기에 군소한 사파의 인물은.
그런 자각이 있는 자가 아닌 법이다.
오박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뒤를 보지 않고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다. 이런 행동이 그에게는 수치가 아니란 뜻일 것이다.
– 툭.
그런 오박의 앞으로 한 무인의 신형이 내려선다.
미리 퇴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어린놈?’
애송이일 것이다.
처음 든 오박의 생각이다.
앞에 선 무인은 이립도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심한 표정에 검을 움켜쥔 검수가 조용히 오박을 응시했다.
본디 무림에서 조심해야 할 건 무심한 젊은 검수와 성격 좋은 노인이건만, 사파인들은 매번 이를 알지 못한다.
“비키거라!”
오박의 태도가 뒤로 젖혀진다. 크게 휘두르려는 준비 자세였다.
오박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처음 뱉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베어버리면 그만.
부동을 유지하는 젊은 무인을 향해 오박의 태도가 예기를 뿜었다.
투박한 파공음이 사방에 퍼졌다.
– 후우우우웅!
거칠게 바람을 가르는 오박의 태도.
살벌하게 날아오는 저 태도에도 젊은 무인은 무심하기만 하다.
– 쩌르르릉!
일반적인 금속에서 나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불안한 기분에 오박은 서둘러 태도를 회수했다.
– 슉.
평소보다 조금은 가볍게 돌아오는 태도.
늘 태도를 지니고 다니는 오박은 단박에 작은 차이를 알아챘다.
태도가 가벼워진 것이다.
자신의 오른쪽 대각선으로 오박의 시선이 향한다.
!!
“이게 무슨···?”
반으로 박살 난 태도를 오박이 전부 훑어보기도 전에.
– 쩌러엉!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리더니 이내 오박의 상체에서 피가 솟아오른다.
“크흑!”
– 턱!
쓰러지는 오박.
젊은 무인은 여전히 무심하게 검을 검갑에 밀어 넣었다. 신뇌검(新雷劍)이라는 별호에 잘 어울리는 그런 검술이었다.
오박이 달려온 길에서 다른 무인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들의 가슴에는 창천(蒼天)이란 자수가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소가주,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다친 분은 없습니까?”
“크게 저항하지 않더군요. 어중이떠중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예···, 모두 무정검의 말대로입니다.”
“······.”
무정검의 말대로다.
이 말이 묵직하게 남궁수룡의 가슴을 짓눌렀다.
정문이 사제들에게 전하진 않았지만, 전날 전각 안 회의에서 나눴던 의제 중에는 어떻게 청해를 빠져나갈지에 대한 안건 역시 있었다.
청해는 사파의 영역.
서녕의 혈영문을 제외하고도 주변의 중소 도시에는 모두 사파들만이 가득한 지역이 바로 청해였다.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발을 들인 정파 연합을 온전히 보내 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정파의 중진들은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지원이 올 때까지 서녕을 수성하며 기다리자는 측과 서둘러 서녕을 빠져나가 청해를 돌파하자는 측의 대립으로.
고암과 오봉학은 수성을 주장했고 당천정과 운양은 돌파를 주장했다.
둘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정과 남궁수룡은 두 의견 모두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조금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언제든 한쪽의 편을 들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대화는 끝이 없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공동의 대제자이자, 무정검이라 불리는 정문이 말이다.
– 잠시 수성하다, 지원이 오기 전에 난주로 향하는 건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모두가 무정검이 괜히 나서는 것이라 그렇게 여겼다.
대충 말만 들어도 적절히 반반을 섞은 평범한 중재안이 아닌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 비겁한 중립이라, 남궁수룡 역시 그렇게 평가했었다.
하지만.
– 선배님들이 예상하셨던 경우와 지금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부상자도 없고, 전투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렇기에 서녕을 수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단기간이라면 말입니다.
정문이 서서히 근거를 대기 시작하자, 다들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사람을 빨아들이는 화법 같은 것이 무정검에게는 있었다.
– 사파인들은 아직 이를 모를 겁니다. 이를 이용해야 합니다.
– 어찌 말인가? 아직 모를 때, 더더욱 치고 나가 승기를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지금 나가면, 저들은 무조건 달려들 겁니다. 서둘러 떠나려는 모습이 오히려 저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수성하면, 그런 시선이 바뀐다? 어불성설 같네만.
– 수성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중이떠중이들이 서녕으로 숨어들 겁니다. 그들을 처리하며 우리가 건재함을 밖으로 조금씩 새어 보내야 합니다. 적당히 풀어주면서 말이지요.
댕-!
딱.
무정검의 저 말이 입을 타는 순간 남궁수룡은 그런 소리를 머리 안에서 들었다. 그저 무공만 뛰어나고 성격은 제멋대로라 생각했던 무정검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이다.
– 허면, 더더욱 저들이 결속하는 구실을 주는 게 아닙니까? 그저 수성을 계속하는 것이···
아마, 고암이었던 거 같다.
정문의 계속되는 열변에 고암이 던진 저 질문은 그저 정문의 말에 더욱 힘만 실어주고 말았다.
– 사파는 결속하지 않습니다.
!!!
정문이 그 말을 던졌을 때, 누구는 섣부르다 여겼고 누구는 그럴듯하다 느꼈다.
남궁수룡은 그럴듯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 멀쩡한 무인들을. 그것도 이렇게 명성이 높으신 분들을. 감히 그들이 먼저 공격하려 하겠습니까?
통찰.
무인의 성정과 상황에 대한 통찰을 계책으로 이었다고 남궁수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파는 정파와 다르다.
정파는 더 큰 어려움이 닥칠수록 손을 맞잡고 함께 맞선다. 그게 설사 다른 문파라도 말이다.
반면 사파는.
큰 어려움이 올수록 이를 피하려 하며, 제 몸 하나 건사하려는 자들이 넘친다.
그런 사파의 무인들이.
아무런 피해 없이, 그것도 이름난 고수가 있는 명문 정파의 행군을 감히 막아설 리는 없을 게 분명했다.
– 소문을 퍼트려야겠군. 공동이 대승을 거뒀다고. 별다른 피해도 없이 말일세.
오봉학은 개방의 장로답게 정문의 의중을 이해하고 해야 할 일까지 파악했다.
– 예, 또 서녕에서 최대한 여유롭게 지내야 합니다. 우릴 막아설 사파에 대한 근심이 없는 것처럼요.
끝이었다.
여기까지 정문이 제시한 이상, 저 중재안을 거절할 무인은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회의가 있고 딱 하루가 지난 지금.
서녕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군소 사파인들의 습격으로 제법 시끄러운 중이었다.
딱.
정문의 말처럼 모든 상황이 착착 들어맞아 갔다.
남궁과 소림, 화산의 무인들은 이들을 적당히 상대하며 물리쳤다. 청해에서 공동이 멀쩡히 혈영문을 지우고 정파 연합이 그 후처리를 하고 있음이 서서히 퍼지기를 바라며 말이다.
‘아마 귀환길에도···’
막아서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남궁수룡마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정검···.’
– 꾸욱.
검을 쥔 남궁수룡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남궁수룡의 나이는 이제 이립에 겨우 가까운 나이. 정문과 차이를 생각한다면 고작 네다섯 차이가 전부일 것이다.
처음에는 같은 또래에 좋은 맞수가 생겼다며 호기심이 가득했다.
허나, 지금은.
그저 거대한 벽을 만난 것 같은 기분만이 가득했다.
* * *
공동이 서녕에 닿은 지 닷새.
다른 정파의 무인들이 닿은 지는 나흘이 지났다.
이제는 서녕을 떠나도 될 거라 판단한 정파 연합은 서둘러 채비를 마치는 중이다.
남은 무인들은 모두 관아에 넘겼다.
정파가 사파를 쓸어간 상황에서 그간 방관하던 관아는 쌍수를 들고 이들을 옥에 가둬버렸다.
뒤늦게라도 무언가 하려는 모습을 최대한 연기하는 것이다. 아마 한동안은 사파인들이 서녕에 감히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재산은 소림이 나서 적절한 곳에 베풀었다. 주로 명망 있는 사찰에 일을 맡겼고 그들은 소림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일이기에 부정한 짓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공동은.
지난 시간을 모두 들여.
약재 창고를 지켰다.
“다들 확실히 챙겼겠지?”
“옙! 걱정 마십쇼! 다들 약재를 가득 등에 짊어지고 준비를 마쳤습니다!”
사제들은 이 모든 게 자신들의 입으로 향할 거란 정문의 말을 듣고는 팔을 걷고 나섰다.
정문은 가끔 말과 행동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없는 말을 하는 사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다 챙겨가야겠느냐?”
흡사 산적들이 민가를 털고 짐을 챙기는 모습과 같아 조금은 꺼림칙한 자정이 슬쩍 말을 던져본다.
제자들의 눈빛이 너무도 빛나기에 자정은 ‘조심히’ 말하는 중이다.
“사형. 그저 약재일 뿐입니다. 재물도 아니지 않습니까? 열심히 싸운 아이들입니다. 이 정도는 이해하시지요.”
그런 자정을 자준이 막아 선다.
평상시 자정을 누구보다 지지하던 자준의 태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사실 자준 역시 처음에는 모두 가져가려는 것을 반대하고 적당히 챙기자는 입장이었으나, 정문이 슬쩍 동방삼(東方蔘)을 몇 뿌리 소매에 찔러 주자 이내 입장을 바꿔 버렸다.
“맷값 정도는 벌어야지요. 흡흡.”
사숙질간의 정은 역시 현물로 오가는 것이다.
“뭐···, 자네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요즘 들어 사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정도 알 수가 없다.
“다들 채비는 마치셨소?”
“소림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미타불-.”
“남궁 역시 준비되었습니다···.”
“당문은 완벽하오.”
“화산 역시.”
“허면, 난주로 가봅시다.”
오봉학의 말이 떨어지자 이내 각 문파가 급하게 만든 깃대에 사문의 상징을 내건다.
소림(少林), 매화(梅花), 창천(蒼天), 독문(毒門), 복마(伏魔)에 개방을 상징하는 넝마까지.
각 문파를 상징하는 것들이 깃대를 장식했다.
이 역시.
정문의 계책이다.
– 최대한 천천히 행진하되, 당당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이 아닌, 개선(凱旋)하는 군세. 그런 모습을 외부로 표해야 합니다.
옳은 말이다.
모두가 동의했다.
당당히 걸어 나가는 이들을 보면, 사파인들도 감히 덤빌 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다.
급한 마음에 달려올 때는 고작 이틀이 걸렸던 거리. 이제는 원래 소요되는 닷새를 꽉 채워 행군해야 한다.
무인들의 발이 움직인다.
서두르는 것도 없이. 당당하게.
결연한 표정의 정파 무인들이 서녕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