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0
19. 아트라 추종자 1
-스릉!
미디암은 어느새 단도를 뽑고 화조풍월중 겨우살이의 비법을 써서 그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앗 하는 순간 어느새 그녀는 아자딘의 동기 중 한 명의 등에 올라타 그의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뭣?!”
“이놈이….”
다들 미디암의 당돌함에 경악했고, 아자딘조차 놀랄 정도였다.
‘뭔가 하려고 하는 줄은 알았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하다니!’
모두가 당황할 때 미디암의 어린, 그러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울렸다.
“야. 하인 놈들이 지금 감히 전령님에게 계속 빈정거려?”
“아, 아니 이거 꼬마 아가씨?”
그 순간 미디암의 칼이 떨렸다.
-스윽!
살갗 베이는 소리와 함께 피가 배어나왔다.
“꼬마 아가씨? 지금 상황 분간이 안 되지? 난 에타르 혈족이야. 하인 놈이 지금 내 말이 우습게 들려?”
“아….”
“왜? 지금 전령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 그를 모욕하기 전에 먼저 도전해봐. 이기면 네가 전령이 될 수도 있잖아? 왜 도전하지 않고 음험하게 빈정거리고만 있지? 뭐? 너희들끼리 순번을 정하겠다고? 웃기시네. 전령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미디암의 살기등등한 태도에 보부상 조합원들이 당황했다.
정말 죽일 것 같은 기세다.
원리 원칙대로라면 미디암의 말이 맞다. 전령이 최우선이고 상회는 어디까지나 전령들을 보좌하기 위한 조직이다. 정보와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인 것이다.
그러나 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황제는 죽었고 전령 활동은 저주 때문에 강요받는 것이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돈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역량, 곧 권력이다.
어느 조직이건 돈 벌어오는 쪽이 결국 상전이 되는 법이다.
그래도 상회 쪽에서도 대놓고 전령들을 무시하진 않았는데 아자딘만은 달랐다. 그런데 미디암은 바로 그 점에서 원칙을 들이민 것이다.
“네 사명이 뭐야? 일족을 위해서 황제의 전령으로서의 사명을 지원하는 거지? 그런데 왜 네놈이 뭐라도 되는 양 전령을 모욕하지? 그게 네 사명에 보탬이 돼?”
“아니 그건….”
“네가 아자딘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투를 걸 만큼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티 내지 마. 휘브리스인들에게 장사할 때처럼 기분 좋게 웃어주라고. 그것도 못해? 그렇다면 너는 하인조차도 자질이 없는 거야. 성역에서 농사나 짓거나 아니면 지금 내 손에 죽어. 전령도 아닌 어린애 손도 하나 못 당하는 주제에 헛된 꿈만 꾸고 있군!”
미디암은 코웃음치며 하인의 목에서 칼을 거두고 어느새 아자딘 곁에 돌아왔다.
“윽….”
“제, 젠장!”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아자딘의 옛 동기들은 미디암에게 달려들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야, 쟤… 에타르야.”
“그, 그랬지 참?”
“젠장. 우리 입장에 에타르에 함부로 손댈 수 없지.”
“씁.”
아자딘의 동기들은 미디암이 에타르 혈족의 일원이라는 걸 상기하며 화를 삭였다.
“여기 마침 망토가 있네요. 이거라도 쓰시면 어때요?”
미디암은 자신을 바라보는 아자딘의 동기들을 무시하고 캐러밴에서 팔려고 내놓은 상품용 망토를 집어 들었다.
“그걸로 하지.”
아자딘이 그걸 받아들고 캐러밴 야영지 뒤쪽의 욕장으로 향했다.
*********
“아자딘이 왔다고?”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남부 캐러밴 리더는 데릭이라는 인물로 본래는 전령일족의 창업자 혈족인 사반 가의 일원이며 그 또한 황제의 전령이었다.
하지만 전령일족의 유망주인 아라엘을 습격했다가 오히려 그녀의 반격으로 중상을 입었다. 특히 복합분쇄골절을 일으킨 발목은 다 나은 뒤에도 원래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전령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했다.
사반 가는 그 사건 때문에 데릭을 방계 가문의 양자로 보내 버렸고, 전령의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 여겨 전령 직도 내놓게 했다.
이는 치욕스러운 징벌이지만 또한 관대한 처분이기도 했다.
본디 전령들끼리의 다툼은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데릭이 아라엘을 공격한 것은 명백히 사적인 이유였으며 역공 당해 패배했으니 본래 죽어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사반 가의 강력한 후원 덕분에 데릭은 전령에서 상인이 되어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예, 아자딘이 찾아왔습니다. 간단한 정비들을 요청해서 일단 들어주고는 있습니다만.”
“들어줘. 전령을 돕는 게 우리 보부상 조합의 사명이니까.”
“괜찮겠습니까? 그 녀석은 3개월 전 갑자기 절차도 무시하고 전령이 된 놈입니다. 다들 싫어하고 있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그 녀석이 전령이라고 나댈 수 있는 것도 얼마 안 남았잖아? 에타르 혈족의 딸이 그 녀석의 종사를 자처하며 근처를 지나지 않았었나? 그거 틀림없이 결투를 걸려고 한 걸 거야. 참 당돌한 꼬마지? 자기도 아라엘처럼 13세에 전령이 되는 기록을 세우고 싶었나?”
데릭이 음흉하게 웃었다.
아라엘이 세운 기록과 동률의 기록을 아라엘의 남매인 아자딘에 의해 세우게 된다. 단 이번에는 아자딘이 당하는 쪽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라엘을 미워하는 데릭에게는 아주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데릭에게 보고하던 하인이 당황했다.
“그, 그게 말입니다.”
“뭐가?”
“바로 그 에타르의 딸이 지금 막 막사에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난동을? 무슨 소리야?”
“아자딘을 모욕하던 아자딘의 동기들 목을 칼로 그어 버렸다던데요?”
“뭐?”
데릭은 그 말을 듣고 신음했다. 그 상황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에타르의 딸 미디암이 아자딘의 종사가 된 것이다.
“흐음? 낙오한 멍청이 놈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에타르의 딸 정도는 물리쳤나? 아니면 에타르의 딸이 그놈의 실력을 확인하고 확실히 하기 위해 아직 결투를 걸지 않았을까?”
데릭은 미디암의 속내를 헤아려 보았다.
결투로 전령 자리를 따내기 위해 찾아온 당돌한 소녀. 데릭이 보았을 때 미디암은 아자딘 정도라면 자신의 실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오만한 소녀였다.
아무리 아자딘이 전령일족에게 미움받는 처지라 해도 황제의 전령은 존중받아야 하는 법. 이제 막 훈련을 종료한 어린 소녀가 전령에게 도전하겠다는 건 일족의 위계질서를 해치는 행동이라 보수적인 이들이라면 탐탁치 않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데릭은 그 소녀에게 적극적으로 길 안내를 해주었다. 아자딘이 미디암에게 깨지면 그건 아자딘의 망신이고 아라엘의 얼굴에도 덩달아 먹칠을 하는 게 될 테니까.
그런데 아자딘의 종사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니.
“아마 결투를 걸자니 너무 막나가는 짓이라 잠시 상황을 보려고 하는 거겠지요. 아니면 아자딘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녀는 이번 하지 축제가 되면 전령이 될 만한 인물이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흠. 대책 없는 천방지축인 줄 알았는데 나름 눈치는 있나 보구만. 그래서 아자딘은 뭐하고 있지?”
“목욕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저녁식사는 같이 할 거냐고 하고 식사 자리에 불러.”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데릭의 말을 아자딘에게 전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
캐러밴의 야영지는 여러 개의 천막으로 되어 있는데 아자딘은 그 천막 중 두 개에 목욕통을 놓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하인들에게 빨랫감들을 넘겨주고 목욕통에 몸을 담구었다.
“저, 아자딘 님?”
하인 한 명이 다가왔다. 태도가 공손한 게 이 사람은 전령일족 아라가사가 아니라 그 밑의 고용인인 듯했다.
“무슨 일이지?”
“데릭 님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만.”
“데릭? 알겠어. 마침 할 말도 있고.”
아자딘은 데릭과의 식사 자리에 응했다.
캐러밴 중앙의 화려한 천막에서 데릭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초대였잖아? 손님이 오는 걸 기다리지도 않다니.”
아자딘은 자신을 초청해 놓고선 먼저 식사를 하고 있는 데릭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음, 먼저 먹고 있었다. 자리에 앉지 그래?”
데릭은 태연하게 입을 닦으며 아자딘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것도 하석이었다. 아자딘은 자신을 공공연하게 모욕하는 데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데릭.”
“그 정도는 참아. 네놈의 종사가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원들을 공격했지? 그들이 사반 가의 직원이라는 걸 알고 건드린 거야?”
이게 문제다.
분명히 전령일족에게 전령은 최우선. 혈통을 초월하는 지위다.
말하자면 과거제, 실력으로 등용되어 귀천을 초월하는 관직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대 창립자 혈족과 그들의 사업체에 일하는 이들은 돈과 이익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에 집중한다. 전령의 명예와 권위보다 가문의 권위를 더 우선시한다.
문제는 이걸 무시하자니 반발이 너무 강해서 뭔 일을 제대로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아. 오늘은 미디암이 무례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니 나에게 행해지는 무례도 참지.”
사실 미디암은 아자딘의 종사도 뭣도 아니지만 아자딘은 그녀의 행동을 책임지기로 하고 데릭이 내온 음식을 입에 넣었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지. 최근에 오우거와 고블린 떼를 처리했는데….”
“네가?”
“이런 걸 구했어.”
아자딘은 뼈 완드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혹시 이거 본 적 있어?”
“아 이거.”
데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장님이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부른 거다, 아자딘. 쿠르트 신족 사교도 놈들이 신왕진서 사본을 찾고 있고… 이게 바로 그들이 신왕진서 사본을 찾는 도구지.”
“다들 알고 있었나 보군.”
“그래. 네가 지역장님께 잘 보고하지 않으니까 너만 모르는 거 아니냐.”
“보기만 하면 다들 날 모욕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데 보고 싶겠어?”
“그런 것 치고는 잘도 찾아왔군 그래.”
“오다가다 있으니까.”
“어쨌건 이 완드를 가져온 건 꽤 괜찮은 공로다. 칭찬해주지. 그놈들에게 신왕진서는 있었나?”
“없었어. 그놈들에게는.”
“그래? 마치 다른 곳에서 신왕진서를 구한 것처럼 말하는군.”
“구했는데? 다른 전령들은 못 구했나 보지?”
“…….”
데릭은 아자딘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왜?”
“시, 신왕진서 사본을 구했다고?”
“한 장이지만.”
놀란 데릭이 입을 벌리다 힉 하고 딸꾹질을 했다.
“어, 어디서 구했는데?”
“흠, 반응을 보니 다들 지지부진한가 보군?”
“어디서 어떻게 구했냐고!”
“동부 내륙지 쪽의 버려진 개척 마을 우물 아래 있더라고.”
“그래? 젠장. 그렇게 쉽게 얻었단 말이지?”
“마냥 쉽게 얻은 건 아닌데.”
아마 유령들이 인도해 주지 않았다면 설령 우물을 그냥 퍼도 신왕진서 사본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아 그래서 말야, 신왕진서 사본을 가지고 있으면 이 완드에 추적당하잖아? 신왕진서 사본을 모을 거면 이 완드에 추적당하지 않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 그것보다 신왕진서 사본이 있다면 넘겨줘.”
데릭이 아자딘에게 신왕진서 사본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데릭이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는 것에서 이상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