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4
124회. 절반만 죽여 놓겠습니다
제녕의 광명장원을 드나들던 마두 잔혈도부 곡일기는 한 달 전쯤 운 좋게 십두마병이 되었다.
그 뒤 동쪽으로 이동하던 그는 적염라 장예를 수하로 받아들인 후 구선산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가까운 마을을 털어먹으며 세를 늘려 나갔다.
그러던 중 수하로부터 ‘돈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괴상한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협점촌을 다시 찾은 건 왠지 그게 팔주령인 것 같아서다.
촌장의 표정이 변하자 곡일기가 급히 물었다.
“이제 생각이 났느냐?”
“그게…….”
촌장이 막 토지신묘에 관한 말을 하려는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촌장은 물론 도적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무림인들로 보이는 남자 넷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일순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얼마 전 백검문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때맞춰 그들이 찾아온 것 같았다.
흩어져 있던 열 명의 도적들이 곡일기와 장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곡일기의 무위를 아는 장예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누군지는 몰라도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구나.”
히히힝! 히힝.
넷 모두 기마술이 뛰어난 듯 바람처럼 달려오던 네 마리 말이 멈춰 섰다.
이윽고 네 사람이 가볍게 지면에 착지했다.
목 잘린 두 구의 시체를 발견한 백화검 소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도적 떼가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들까지 죽이는 현장이었다.
소무진에 비해 다혈질인 이신웅이 한 걸음 나서며 호통쳤다.
“웬 놈들이냐! 감히 백주에 약탈과 살인을 일삼다니! 틀림없이 도적 떼렷다!”
장예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그래, 우리는 구선산에 자리 잡은 호걸님들이시다. 그러는 네놈들은 누구냐?”
구선산이라는 말에 이신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나 구선산의 도적들이었다.
그런데 녹림에도 들지 못한 도적들 치고는 너무 당당한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백검문의 사람들이다! 네놈들이 촌민들을 죽였으니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터! 모조리 죽여 살해당한 이들의 넋을 달래 주마!”
말과 함께 이신웅이 검을 뽑았다.
소무진과 그들의 두 제자도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비록 수적으로 열세지만 백검문의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평범한 도적 떼라면 숫자는 큰 의미가 없어서다.
그러자 지켜보던 곡일기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큭큭’거렸다.
소무진과 이신웅이 그에게 시선을 돌릴 때다.
갑자기 곡일기의 신형이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상대의 신법에 놀란 소무진이 짧게 소리쳤다.
“조심해라! 보통 놈이 아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돌연 머리 위에서 광풍이 휘몰아쳐 왔다.
콰콰콰콰-.
거대한 도끼가 풍차처럼 회전하며 네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네 사람은 머리 위로 검을 휘둘러 도끼를 쳐 냈다.
따따따땅.
가장 먼저 주윤성과 원자청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소무진과 이신웅은 비칠거리며 물러나는데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곡일기가 바람처럼 달려가 다시 도끼를 집어 들고는 소무진을 짓쳐 들어갔다.
부우우웅-.
어마어마한 소리에 질린 소무진은 감히 상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도끼는 자연스럽게 그 옆의 이신웅을 향했다.
이신웅은 검으로 도끼를 걷어 내려 했지만 힘이 달려 오히려 도끼에 휘말리고 말았다.
콰아앙.
도끼에 맞은 이신웅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사제!”
소무진이 이신웅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도끼가 그 앞을 막았다.
“크크크! 누가 누굴 죽이겠다고?”
곡일기가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소무진이 빠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곡일기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부우웅-.
다시 한번 도끼가 소무진의 상체로 날아들었다.
그를 떨쳐 내지 못한 소무진은 ‘차핫!’ 하는 기합과 함께 검을 찔러 갔다.
그야말로 양패구상의 한 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육중한 도끼가 검보다 훨씬 빨랐다.
깜짝 놀란 소무진이 눈을 부릅떴다.
이래서는 양패구상이 아니라 자신만 죽게 될 형국이다.
별수 없이 그는 검을 회수하며 도끼를 걷어 올렸다.
치릭.
하지만 전신의 내력으로 쳐올렸음에도 도끼는 방향을 틀지 않았다.
“헉!”
도끼가 가까이 다가오자 소무진은 본능에 따라 땅바닥을 굴렀다. 무림인들이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뇌려타곤을 펼친 것이다.
“크하하핫! 죽어라! 죽어!”
곡일기는 미친놈처럼 광소를 터뜨리며 도끼로 땅바닥을 찍었다.
퍽. 퍽. 퍽.
그때마다 소무진은 이리저리 굴러 다녀야 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구르던 소무진은 뒤늦게 상대가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개 같은!’
도끼질에서 처음과 같은 섬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는 말 그대로 장난하듯 쉴 틈 없이 바닥을 찍어 대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지 말고 그냥 굴러다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때 마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멈춰 섰다.
마치 명승지를 유람하던 중에 잠시 멈춰 세운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곧이어 여섯 명이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부 옆자리에 있던 유근식이 훌쩍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일곱 사람은 살기등등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방을 기웃거렸다.
한창 땅바닥에 도끼질하던 곡일기는 흥이 깨져서 뒤로 물러났다.
“네놈들은 또 뭐냐?”
도끼질이 멈추자 소무진은 이신웅에게 달려가 그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다행히 이신웅의 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소무진은 이신웅을 안고 주윤성과 원자청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경계를 하는 도적의 모습에 소무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들이 한패는 아니었던 모양이로구나.’
어쩌면 정말 정의맹과 남궁세가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도끼를 든 도적의 무위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뛰어났다.
성급 고수인 사제와 자신을 패퇴시킨 자를 저들이 당해 낼 수 있을까?
청운검 남궁천이 벌벌 떨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을 지키고 있던 적염라 장예는 사내의 기도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노인장, 여기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촌장이 죽었다가 살아난 얼굴로 답했다.
“저들은 구선산의 도적들입니다. 며칠 전에 한 번 약탈해 간 적이 있는데, 오늘 다시 와서는 뭘 내놓으라고…….”
“뭘 내놓으라고 하던가요?”
“팔방에 여덟 개의 방울 모양이 조각된 둥근 물건이랍니다. 모른다고 하니 다짜고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팔방에 여덟 개의 방울 모양?”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그게 무엇이기에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빼앗으려 한단 말인가?
그때 화용독심 남궁연이 중얼거렸다.
“팔주령.”
그 한마디에 장내 분위기가 돌변했다.
곡일기가 살기를 풀풀 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 하는 연놈들이냐고 물었다!”
구천노도 심통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네놈도 유명교의 밥버러지냐? 백정검 일행을 저 지경으로 만든 걸 보니 십두마병쯤 되는 모양이로군. 맞느냐?”
곡일기가 기막힌 표정으로 심통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십두마병이라는 걸 알고도 저렇게 광오한 소리를 해 댄 사람은 없었다.
“크큿! 노망이 난 늙은이로구나. 본좌가 유명교의 십두마병인 것을 알았으면 달아날…….”
심통이 그의 말을 끊었다.
“으흐흐. 십두마병이 맞구나. 너는 오늘 임자를 제대로 만났느니라. 공자님, 소인이 딱 절반만 죽여 놓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미친…….”
곡일기는 황당한 눈으로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염소수염을 한 늙은이가 유명교 십두마병을 절반만 죽이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늙은이의 일행 중에서 청년 하나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답한 것이다.
“쳇! 어디서 약을 팔려고 그래? 어차피 반밖에 못 죽이는 주제에.”
참다못한 곡일기가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래, 실컷 떠들어라. 좀 전에 저 두 늙은이는 네놈들보다 더 큰소리를 쳤지만, 결국 본좌에게 개처럼 처맞았다. 십두마병이 허투루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님을 알게 해 주마.”
“흐흐흐. 다 떠들었으면 이제 죽자. 우리 공자님 손에 죽은 십두마병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말과 함께 심통이 유엽도를 뽑아 들었다.
이윽고 곡일기와 심통이 서로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갔다.
차차차창. 파파팟.
도끼와 도가 현란하게 얽혔다.
소무진, 이신웅 때와 달리 심통의 도는 뒤로 튕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도에 맞을 때마다 도끼는 움찔움찔 궤도에서 벗어났다.
곡일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도 자신이 힘으로 도를 찍어 누르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십두마병이 된 뒤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젠장! 생긴 건 딱 좀도둑인데…….’
점차 숨이 가빠 오자 곡일기는 자신의 구명 절초인 광풍파랑을 펼쳤다.
휘우우웅-.
이름 그대로 도끼에서 일어난 거대한 돌풍이 심통에게 몰아쳐 갔다. 돌풍은 그 자체가 유형화된 기운인 듯 꽤나 강맹해 보였다.
“오냐 이놈! 누구의 바람이 더 센가 보자!”
심통이 정면으로 유엽도를 뻗으며 거칠게 흔들었다.
구천세법의 삼 식 운룡풍호를 펼친 것이다.
콰콰콰콰-.
그야말로 힘과 힘의 대결.
도끼의 돌풍과 유엽도가 일으킨 용권풍이 중간에서 맞부딪쳤다.
콰자자자작.
뭔가 갈리고 부서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도낏자루가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용권풍에 휘말린 파편이 우두커니 서 있는 곡일기의 상체를 쓸고 지나갔다.
도기(刀氣)와 파편에 갈기갈기 찢긴 곡일기는 눈을 부릅뜬 채로 절명하고 말았다.
“어이쿠! 한 번에 죽이고 말았네!”
심통이 호들갑을 떨며 뒤로 달아났다.
소무진과 주윤성, 원자청은 멍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그의 도법은 그들이 꿈꿔 본 적도 없는, 천외천의 세계였다. 칠파이문의 장문인이라고 해도 저 정도의 무위는 아니리라.
그러나 정작 그들을 놀라게 할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빠드드득. 투둑. 툭.
선 채로 죽은 도적의 몸에서 심하게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옷과 피부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고 그 속에서 검붉은 피부의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고치를 찢고 나비가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비가 아니라 검붉은 피부의 괴물이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기사에 소무진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노인의 무공도 놀랍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은 기함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특이하게도 이번 곡일기의 몸은 이전처럼 거대해지지는 않았다.
대신 정수리에 한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크라라라라-.”
곡일기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듯 하늘 향해 입을 벌리고 소리 질렀다.
그러고는 천천히 심통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시커먼 눈에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적의를 보니 자신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아는 듯했다.
괜히 오싹해진 심통은 슬그머니 연적하 뒤로 몸을 숨겼다.
“왜, 좀 더 하지. 딱 절반만 죽이겠다면서?”
“앞부분은 제가 처리했으니 이제 공자님께서 마무리해 주시면 됩니다.”
“하여간 보통 입이 아니야.”
졌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연적하가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