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490)
전지적1인칭시점 490화(490/490)
키친 글루타의 주방장이자, 엔데에서도 유명한 사업가인 소 수인 글루타. 성실과 신의를 모토로 삼은 그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하다. 그나마 손님에게 엄격하게 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그가 손님을 대접하는 직종을 고르지 않았다면 온갖 곳에 쓴소리하는 꼰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라도, 그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늙은 돼지 수인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미그 부인. 자중해 주지 않겠나.”
“자중? 먹는 거냐?”
“그게 아니라.”
“그럼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이렇게 80년을 살아왔다. 앞으로 뒤질 때까지도 그렇게 살 거야!”
그가 어릴 때도 이미 중년이었다. 글루타 역시도 그녀에게 두어 번 대접받았던 적이 있다. 엄격함도 80 넘은 노인 여성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늙은 피기는 국자를 머리 위로 난폭하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는 집 없고 배곯는 아이들 밥 먹인 죄밖에 없어! 그게 죄라면 너희 엄마한테 먼저 죄를 묻지 그러냐? 나한테 하는 것처럼!”
“단순히 밥 먹이는 걸 넘어서 이러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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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타는 미그 부인의 식탁을 둘러보았다. 가정용 탁자 하나에 난간을 걸쳐서 좌석이 몇 개 있다. 좌석 수는 10개 남짓. 가게라고 하기에는 초라하지만, 늙은 부인이 혼자 사는 집치고는 과하게 많다.
“오크의 소울 푸드를 대접한다고 하지만 미그 부인의 집이 식당인 건 분명하다. 실제로 수인들이 찾아와서 식사하고는 대가로 돈을 주지 않나.”
“밥 얻어먹고 음식이나 푼돈 조금 주는 거지!”
“고기를 파는 다른 식당이 오크마 녀석들의 표적이 되어 난항을 겪고 있는 지금, 그나마 장사가 되는 곳은 당신과 같은 돼지 수인들의 식탁뿐. 본의는 아니겠지만…. 보기 좋진 않아.”
“내가 한 푼이라도 벌어가나 봐! 하루 먹고 하루 살기도 급급한데 뭘 남기냐고?”
“최근에는 돼지 수인들이 떼로 들어와서 먹고 가지 않았나.”
쨍그랑. 미그 부인은 국자를 땅에 집어 던졌다. 조금 남아있던 걸쭉한 스튜가 양탄자 위로 길게 자국을 남겼다. 미그 부인은 씩씩거리며 글루타에게 삿대질했다.
“그러면. 나는 장사도 못하냐? 80 먹은 늙은이 써줄 곳이 어디 있다고?”
“…그건.”
“나는 이제 고기로도 못 써. 늙어서 씹을 게 뼈밖에 없거든! 그런데 그마저도 골수 다 빨려서 맛대가리가 없으니.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뒤지는 게 미덕이지! 오냐, 어차피 뒤질 거니까 그냥 지금 죽여! 내 뼈로 사료나 만들어라!”
사정을 빤히 아는 글루타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돼지 수인들이 피우는 난동은 돼지 수인을 비껴나가 있다. 다른 수인들의 커뮤니티가 흔들리는 것과는 달리 돼지 수인들의 커뮤니티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글루타는 이를 미심쩍게 생각해서 미그 부인의 밥상에 찾아온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심쩍기만 하다.
미그 부인이 밥집을 하는 건 원래 알고 있었다. 미그 부인이 밥집을 그만두면 죽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글루타는 미그 부인에게 죽으라고 말할 만큼 모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루타가 죽을 수는 없었다.
“하면, 부인의 고객을 좀 타일러라. 나도 이대로는 더 못 버텨.”
미그 부인은 사납게 글루타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내가 제대로 타이르는 법을 알았다면 내 새끼가 그렇게 객사하진 않았겠지.”
온갖 역경을 다 겪은 미그 부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글루타는 더 말하지 못하고 식탁을 나섰다. 당분간 여전히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야 할 것이었다.
글루타를 내보낸 미그 부인은 밖으로 침을 뱉으며 문을 닫았다.
“썩을 것. 나보고 어쩌라고…. 에잉. 못 뒤진 게 죄지, 죄야.”
글루타의 예상은 반쯤 맞았다. 미그 부인은 오크마의 협력자였다. 하지만 미온적인 협력자였다. 그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언제나 하던 일이었다며 스스로 되뇌긴 했지만… 무언가 위험한 일에 연루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곱게 뒤져야 하는데. 에잉, 쯧쯧.”
“에이. 나이가 어쨌든 죽고 싶진 않잖아요.”
낯선 목소리에 미그 부인은 흠칫 놀랐다. 조금 전, 글루타와 대화를 나누었던 탁자.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곳에 낯선 인간이 스튜를 먹고 있었다. 굶었는지 경박하게 스튜를 퍼먹던 그는 입김을 불며 호들갑을 떨었다.
“앗, 뜨거. 맛있는데 뜨거워.”
“어떤 썩을 호로자식이 남의 밥을 훔쳐먹어?”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외치는 그녀였으나, 인간은 태연하게 스튜를 입안에서 굴리며 맛을 음미했다.
“어라, 이 맛은? 돼지고기인데?”
“멋대로 처먹으면서 고기가 어쩌고 어째?”
“신기하네요. 오크마를 지원하는 거점에서 돼지고기를 제공하네? 오크마가 자기 배를 채울 때는 신념도 잊는 걸까요, 아니면 인심 좋은 할머니에게 깜빡 속는 걸까요?”
불길한 느낌은 현실로 찾아왔다.
애초에 인간이 이런 골목 식당에 찾아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위생이니 뭐니 까다로운 인간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미그 부인이 먹이고 재우는 사고뭉치, 오크마들.
“아하. 솥이 두 개? 돼지고기는 다른 수인에게, 돼지 수인에게는 다른 고기를? 오호라. 이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러면… 거래처가 막힌 돼지고기를 독점해서 판매할 수 있겠네요?”
“요즘 것들은 멋대로 지껄이는 게 할 일이냐? 나는 돼지고기를 80년 동안 먹어왔어! 그런 건 신경 안 쓴다고!”
“신경 안 쓸 만하죠. 이런 낡은 집에 사는 피기가 80년 인생 살았다고 고기를 얼마나 드셔보셨겠나요. 최근이겠지.”
숟가락을 내던진 인간은 탁자 위에 발을 올렸다. 그 여유로운 움직임에 압박감을 느낀 미그 부인은 빽 소리쳤다.
“나는 집 없는 것들에게 밥해준 죄밖에 없어! 그게 죄라면, 그래! 그냥 내가 죽어야지!”
“정말 죽기를 바라요?”
그가 팔을 가볍게 휘젓자, 나무로 된 탁자에 카드가 박혔다. 파르르 떠는 카드의 모서리가 칼날처럼 시리다.
숨을 헛들이킨 미그 부인을 향해 인간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요. 저는 당신이 나이 지긋한 할머니든, 역경을 겪은 돼지 수인이든, 얼마나가련한 과거를 갖고 있든, 뻔한 진실을 앞에 두고서도 잡아뗄 정도로 뻔뻔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미그 부인은 미온적인 협력자. 당연하지만, 그녀를 후원하는 이들이 또 있다. 돼지고기를 공급하고, 돈도 지원하고, 여차할 때 쓰기 위해 연락망을 만들어 둔 녀석들.
아마 그조차 오크마의 머리가 아니겠지만… 이렇게 손가락부터 더듬더듬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당신도 제 앞에서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요.”
“영문 모를 소리하지 말고 꺼져! 신고하기 전에….”
“하하. 신고할 건 당신네 오크마 아이들이나, 당신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한 누군가 아닐까요.”
발뺌한다는 건, 그들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것. 미그 부인은 그것만을 바라고 잡아뗐다. 내 말에 억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미 생각은 다 읽었다.
내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다. 회귀자 급으로 자주 까먹는 게 그나마 무언가를 숨길 유일한 방법이지. 정작 자기 자신도 뭘 숨기려고 하는지 까먹겠지만 말이야.
“그걸 어떻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손뼉을 쳤다. 쇠로 된 카드가 마찰하며 잠깐 불꽃이 일었다. 겁을 먹고 눈을 질끈 감은 미그 부인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나는 엔데의 혼란 속으로 몸을 숨긴 이후였다.
그와 비슷한 시각.
돼지 금고. 돼지 수인의 커뮤니티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
돈도 없고 박해당하는 이들은 점차 폐쇄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기 수중에 놓인 돈조차 믿지 못한다. 밑바닥에서는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치고 돈을 훔쳐 가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피를 나눈 클랜끼리 모이게 되고,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는 재산은 그들만의 은신처에 꼭꼭 숨겨둔다. 가장 믿음직스러운 클랜원에게 금고를 지키게 시킨다.
이게 돼지 수인들의 작은 은행, 돼지 금고였다.
“킁. ‘식탁’이 공격당해?”
“대모님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 낯선 인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시더군요.”
나름 사회가 발전하고, 금융에 대한 지식이 퍼진 지금. 돼지 금고는 예전만큼 폐쇄적이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돈을 굴리는 법까지 익혀서 나름대로 수익도 내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에 조금 더러움이 묻었을 뿐.
금고지기 샬록이 불쾌한 듯 코를 씰룩였다.
“하나? 고작 인간 한 명?”
“듣기로는 그렇다 합니다.”
“인상착의는?”
“그, 그건 잘 모르겠다고….”
“외부인인가? 혹시 그 저택에 새로 들어온?”
엔데가 넓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현금으로 저택을 산 인간의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뭔가 이상한일이 생기면 남다르게 등장한 외부인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부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그와는 인상착의가 다릅니다. 무엇보다 그는 그 시각에 오벨리에 있었습니다.”
“크응. 밖을 안 돌아다녔나? 인상착의를 아는데도 찾질 못해?”
낯선 인간 하나가 커뮤니티를 어지럽히고 있다.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하다못해 인적 사항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안갯속에 빠진 듯 갑갑하다.
무엇보다, 고작 인간 하나가 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속하고 치명적이었다. 내부자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을 정도로.
기분 나쁜 예감이 든 금고지기가 코를 킁킁거렸다.
“‘엄니’를 풀어라. 냄새 잘 맡는 놈들로 골라서 그 녀석을 잡으라고 해.”
“네. 전하겠습니다. 그럼 자금은…”
금고지기는 그를 해치우기 위해 금고를 열기로 결정했다. 열쇠를 꺼낸 샬록은 금고 자물쇠에 끼워 넣으며 단단히 일렀다.
“많이는 못 준다. 일의 진행을 보고 더 얹어줄지 말지 고민해 보겠다. 그렇게 전해….”
철컥. 걸리는 느낌에 열쇠를 돌려 당기는 순간.
금고가 와르르 무너졌다.
너무나 당황하면 몸이 멎는다. 바짝 굳은 그의 앞으로 금고 문이 힘없이 미끄러진다. 언제나 안심되게 피기의 돈을 보호해 줬던 강철 금고가 헤프게 안쪽을 보여주었다.
금고 문과 함께 바닥에 쏟아진 건 수백 장의 카드. 마치 금고를 가죽 한 장만 남기고 다 카드로 바꾼 것처럼, 지지대가 사라지자 금고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금고지기의 황망한 눈동자가 금고 안쪽을 향했다. 돈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할 금고에는 연금화 대신 돼지고기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돼지고기의 언덕 꼭대기, 웃고 있는 카드 한 장이… 비웃듯이 돼지 수인을 반기고 있었다.
엔데에 조금씩 목소리가 들렸다. 겁 먹은 수인의 중얼거림이 겹치며 점차 괴담과도 같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없다. 강력한 힘이 아닌, 미지를 무기로 삼으며 엔데를 헤집는 그를 누구도 찾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되뇔 뿐.
다만, ‘그걸’ 한 번이라도 겪은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술사가 나타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