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333
2013년 5월 13일. 솔트레이크 시티, 유타. 301 웨스트 사우스 템플. 에너지솔루션스 아레나(Salt Lake City, UT. 301 W South Temple. Energy Solutions Arena).
“수고했네, 적당히 참고하도록 하지.”
“……저기, 데니스.”
“그만 나가보게, 고든.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어떤가?”
“…….”
유타 재즈의 새로운 미래로 평가받는 고든 헤이워드이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늘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작년 8월, 새롭게 유타의 단장으로 부임한 데니스 린지(Dennis Lindsey)는 도저히 친해지려야 친해 질 수 없는 남자였다. 만약 정말로 자신을 팀의 미래로 여긴다면, 조금 더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하지 않나 싶었다.
가뜩이나 찝찝한 마음을 한가득 품게 되었던 고든 헤이워드인지라, 그는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회의 중이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트레이드를 요구하고 싶었지만, 현실성 없고 멍청한 행동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자신이 더욱 짜증이 났다.
“헤이, 고든!”
“?”
바로 그 때, 헤이워드가 빠져나온 방향으로부터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오, 저스틴.”
마찬가지로 새롭게 유타의 프런트 오피스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어시스턴트 GM인 저스틴 재닉은 데니스 린지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주위에 사려가 깊은 남자였고, 선수들이 팀으로부터 충분한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을 안겨다 주는 남자였다.
헤이워드를 비롯한 재즈의 선수들은 언제나, 데니스 린지가 아닌 저스틴 재닉이 팀의 단장이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미안하네, 드래프트 플랜이 엉키기 시작해서 말이야. 데니스도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아.”
“하하. 그를 변호할 것 없어요, 저스틴. 데니스가 그런 남자라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
고든 헤이워드의 말에 곤란한 듯 볼을 긁적이는 저스틴 재닉은 몇 년 뒤의 미래가 내심 걱정이 됐다. 다가올 루키-스케일 이 후의 연장계약이야 딱히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팀이 그와 추가 연장계약을 체결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 후의 일이었다. 만약 이대로 고든 헤이워드에게 계속해서 이런 대접을 한다면, 머잖은 미래에 유타는 이 남자를 놓치게 될 것이다.
물론 중요한 부분은 고든 헤이워드가 이 후 추락을 해, 팀이 오히려 그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나 미래는 모르는 것이니, 모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편이 옳다.
신중한 성격의 저스틴 재닉 또한, 권위적인 데니스 린지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깐, 이야기나 좀 할까?”
“그러죠.”
“흐음. 날 따라오게.”
주위를 둘러보던 저스틴 재닉이 고든 헤이워드를 이끌어 비어있는 사무실로 향한다. 불을 키고 의자를 나란히 꺼내어 앉은 유타 재즈의 어시스턴트 GM은 잠깐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질문을 꺼내들기로 했다.
엘리트 스킬 트레이닝 센터로 떠나기 전만해도 괜찮았던 헤이워드의 기분이 잔뜩 저기압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휴우- 그게 사실은. 어떤 꼬마를 만났어요. 그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죠.”
“…….”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인 헤이워드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들어 한 영상을 하나 재생시켰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로 휴대폰을 밀어, 저스틴 재닉의 손에 안겨다 주었다.
화면에서는 지금 낯선 체육관에서의 슈팅 드릴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어울리자는 생각이었죠. 왜냐하면, 샤바즈가 우리의 계획을 알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건 매우 귀찮은 일이죠.”
“그래. 우리도 그걸 원하지 않지.”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어요. 하지만, 음. 그냥 조금만 더 영상을 봐요.”
고든 헤이워드가 던진 30개의 슈팅은 거의 전부 들어간 것 같았다. 약간의 휴지 후 2개의 슈팅을 빗나간 것을 제외한다면 남은 모든 농구공이 림을 갈랐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저스틴.”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는 저스틴 재닉의 말에, 헤이워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음이 진짜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보이는 얼굴은 저스틴 재닉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분명 그것이 틀리지 않다면, 몇 개월 전 유타의 대학을 순회하고 돌아왔던 제프 넬슨과 제프 호나섹이 나란히 거론한 바로 그 선수일 거다.
스치듯 흘러갔던 이야기라, 당시에는 딱히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저스틴 재닉이었다.
( “오오-!!!” )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15개 연속으로 슈팅을 성공시킨 순간에는 분위기가 잔뜩 달아오르더니, 그것이 22개 연속으로 이어지자 사방에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25개로 이어지는 것을 본 저스틴 재닉의 입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왔다.
“와-우. 이거 정말 굉장하군.”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저스틴. 조금만 더.”
“…….”
고든 헤이워드가 다시 저스틴 재닉에게 인내심을 종용하고, 입맛을 다셔 입술을 적신 그는 약간의 휴지 뒤에 이어질 동양인 포워드의 슈팅을 기다렸다.
이윽고 5개의 농구공이 든 바구니가 놓이고, 다시 슈팅이 손을 떠난 순간.
(철썩-!)
“이런!”
(철썩-!)
(철썩-!)
“…….”
짧은 휴지 뒤에도, 이 동양인의 슈팅 매커니즘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건 매우 놀라운 것이다. 특히나 이 전의 슈팅이 좋았을 경우에는 아주 미세하게 바뀌는 리듬이 많은 것들을 망쳐놓기 때문이다. 만약 25개 연속 슈팅 뒤에 5개가 전부 빗나갔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할 만큼.
하지만 지금 화면 속의 사내는 3개를 다시 연속으로 집어넣었고,
(철썩-!)
기어코 연이어 던진 네 번째 코너 슈팅도 림 안에 꽂아버렸다.
“봤죠? 전 이 꼬마와 계속해서 함께 연습을 했어요.”
“정말인가?”
“네, 그게 이 꼬마의 조건이었거든요. 만약에 절 슈팅 드릴에서 이기면 함께 훈련을 하게 허락해 달라고 했죠. 뭐, 그냥 생각없이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절대로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
사실 저스틴 재닉도 마찬가지였다.
헤이워드가 28개를 성공시킨 이 후의 장면에서 곧장 누군가가 나타나 이 기록을 뒤집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샤바즈에 관한 의견은 전과 같아요. 우린 그를 선택해선 안 돼요. 이 프랜차이즈에 끼워 들이는 건 제가 견디지 못하겠거든요. 곧 있을 컴바인과 워크아웃에서 우린 다른 녀석들에게 집중을 해야 해요. 아니면 트레이드를 계획하던가.”
“그럼 자네의 말은……?”
“저도 알아요. 이건 제 일이 아니죠. 다만, 저도 농구를 충분히 할 만큼 해왔다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죠? 우린 이 녀석을 좀 더 지켜봐야 해요. 그의 학교는 유타에 있고, 관찰을 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에요.”
“…….”
저스틴 재닉은 헤이워드가 지금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타 재즈가 스카우트를 통해 정기적인 체크를 하고, 이를 프런트는 진지하게 보고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데니스 린지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유타를 빠르게 궤도권으로 올려놓고자 하는 남자였고, 이렇게 많은 손질이 필요한 원석의 재능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런 극단적인 현실 추구의 성향을 적절히 통제하고자, 자신이 어시스턴트 GM에 임명이 된 것이고 말이다.
“우리는 당장 이 녀석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어, 고든.”
“……저도 알아요. 저는 그냥……”
“하지만!”
“?”
“내가 이 팀으로 왔을 때 함께 데려온 몇몇은 이용할 수 있겠지.”
조금이나마 고든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느끼며, 저스틴 재닉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보통은 NBA의 선수가 NCAA 신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푸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인데다, 대외적으로도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르브론 제임스나 코비 브라이언트정도 되는 남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무기삼아 프런트를 휘두른다는 인상을 피하진 못한다.
하지만 저스틴 재닉은 화면을 지켜보았을 때 자신이 느낀 본능을 한 번 따라가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고든 헤이워드의 은근한 푸쉬에서 시작 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 판단은 프런트인 자신이 내리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설령 이 동양인 선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충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고든 헤이워드의 화난 마음을 달래는 것이 가능했다.
아주 적은 투자로, 많은 이득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저스틴 재닉은 이런 계산을 순식간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했다.
‘흐음- 그럼. 일단은 하킴에게 연락을 취해야겠군.’
고든 헤이워드와 헤어진 뒤에 자신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던 저스틴 재닉은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데니스 린지의 회의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중이겠지만, 그라면 자신이 없는 것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저스틴 재닉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래성과 같은 본인의 권력이 무너질 것을 걱정한 데니스 린지는 점점 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한 달 여가 남은 이번 드래프트를 통해, 저스틴 재닉은 멋진 반전을 보여 줄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데니스 린지가 저지를 것이 확실한 실책을 본인이 만회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이 이 프랜차이즈의 모든 것을 통제 할 것이라 믿었다.
그 때가 올 때 까진.
‘아주 잠깐, 태풍을 피해가는 것뿐이야.’
지금 막, 유타 재즈의 레이더에 WSU의 동양인 포워드가 포착되었다.
++++++++++++
2013년 6월 21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
몇 분 전, 20이던 숫자가 21로 바뀌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사무실을 지키던 한 남자는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아, 미니바의 앞으로 걸어가 두꺼운 유리병을 하나 집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게, R.C. 베스가 걱정을 할 거야.”
“……오- 아직 계셨습니까?”
“웬 바보 하나가 날 걱정시키고 있어서 말일세.”
“훗,”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단장인 R.C 뷰포드는 눈앞의 사내가 말한 바보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없었던 그는 두꺼운 크리스탈 두 잔을 술을 담아 소파 테이블로 걸어왔다.
어두침침한 사무실 안에 달빛이 비춰지는 공간은 극히 일부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발을 움직인 사내. 아니, 윌리 팔라치오는 술잔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액체를 싱크대에 쏟아 부었다.
소파에 앉아 액체가 배수구를 타고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뷰포드는 담겨 있던 호박 빛의 술을 한꺼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탁!
그리고 술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 온 윌리 팔라치오가 잔을 다시 채워주며, 흘끗 뷰포드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돌아왔군, 그래.”
“뭐가 말이죠?”
“작년에 우릴 기억하나? 우린 OKC 녀석들에게 완전히 에너지 레벨에서 압도를 당했지. 처음 두 번을 이긴 뒤에, 내리 네 번을 패했어.”
“오-! 하필이면 오늘 그런 기억을 상기시키려는 겁니까?”
윌리는 다소 비꼬는 듯한 말투의 뷰포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했으니까 말이다.
“그 시리즈에서 정말로 우린 잘 했었지.”
그리고 윌리는 어차피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티미, 마누, 토니. 모두가 다 돌아가며 활약을 했어. 하지만 우린 결국 패배했지. OKC의 러스와 KD가 우릴 압도했으니까. 그들의 젊음이. 그들의 에너지가 우리를 향해 외쳤었네. 너희는 이제 끝이라고.”
“…….”
다시 술을 모두 털어 넣은 뷰포드의 잔에 세 번째 술이 채워진다.
“하지만 우린 어땠나? 다음 날 이곳의 분위기가 어땠지? 우리는 마치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었네. 자네와 난 짧은 통화를 마치곤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졌지. 그게 몇 시였지?”
“……이 무렵이었죠.”
“맞네. 경기가 끝난 지 고작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의 시즌이 끝났다는 것이 전 세계에 알려진지 고작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윌리와 뷰포드 모두가 자신들이 이젠 완전히 이 바닥에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었다. 매년 우승이라는 것을 목표로 뛰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열정을 프런트에서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선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현대 NBA에 속한 관계자들 모두는 프런트의 역량이 때로는 현장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NBA는 우수한 단장(프런트 오피스)과 뛰어난 감독이 지배하는 리그이다.
“하지만 오늘을 보게. 우린 이렇게 다시 패배의 씁쓸함을 곱씹으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 인생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걸세, R.C.”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뷰포드는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윌리 팔라치오가 보여준 마지막 불씨가 거의 사그라지어가던 자신의 가슴에도 불을 붙인 것이라고 말이다.
지난 반년 간, R.C 뷰포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이는 바꿔 말해, 작년의 패배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열심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전에 마이애미 히트에게 NBA 우승 타이틀을 내어준 순간, 뷰포드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자신은 좀 더 팀을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R.C. 아니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겠지. 자네와 내가 그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때가 언제였지?”
“…….”
“그렉은 정말로 위대한 남자야.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고 평가를 받지만, 그것이 과소평가라고 느껴질 만큼 위대하지.”
“저도 공감이에요, 윌리.”
뷰포드는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로는 그렉 포포비치의 여전한 열정을 보며, 큰 자괴감에 빠졌다고 말이다. 그가 자신을 찾아와 팀 던컨과 마누 지노빌리에게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이어가도록 설득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뷰포드는 늘 이젠 그들에게도 휴식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렉 포포비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보며 말했었다.
[ “그럼 대체 이 팀은 뭘 믿고 가라는 건가?” ]부끄럽게도, 여전히 스퍼스는 1997년에 커리어를 시작한 팀 던컨과 올 해 7월이면 36살이 되는 마누 지노빌리의 팀이었다. 오랫동안 높은 순위를 지켜온 스퍼스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정말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에 대단히 취약했다.
팀 던컨의 시대가 가진 후광에 본인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짓눌러진 탓이다. 뷰포드는 자신도 이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스퍼스에 영원한 영광을 안겨 줄 것이라 믿었다.
“이보게, R.C.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젠 우린 정말로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만 하네. 이번 파이널에서 카와이가 그것을 증명해 줬다고 보네. 그의 코트 밖 모습은 정말로 티미와 판박이야. 요즘 젊은 녀석들과는 전혀 다르지.”
“하하. 그야, 그렇죠. 오죽하면 제가 노인네라고 부르겠어요.”
“그가 이 팀의 미래가 될 걸세. 우리가 지금까지 끔찍해서 외면하고 있었던, 팀 던컨이 없는 스퍼스의 미래가 말이야.”
“…….”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라고 말한 윌리는 꼭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 지켜보던 뷰포드는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다짐한 네 번째 술을 잔에 따라 한 모금 기울였다.
이번에는 전처럼 한꺼번에 들이키지 않고, 제대로 된 술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이미 얼큰하게 술이 올라온 탓에, 그 맛을 알 수는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뷰포드에게 있어서, 윌리와의 대화를 곱씹는 것만큼 좋은 안주는 없었다.
“다음……이라.”
톡. 톡. 톡.
술잔을 쥔 손의 손가락으로 소파의 팔걸이 부근을 두들겨대던 뷰포드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미 여러 차례 윌리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왔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일은 뷰포드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또 다시 두려워하고 있었던 거야.’
팀 던컨이 없는 스퍼스를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윌리 팔라치오가 없는 스퍼스를 떠올리는 것도 뷰포드에겐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윌리가 자꾸만 다음(NEXT)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에겐 어쩐지 그것이 은퇴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윌리는 이 팀에 미래를 위한 자산들을 쑤셔 박은 후에 미련 없이 은퇴를 결정할 것이다.
그제야 뷰포드는 자신의 마음에 옮겨 붙었던 불씨가 누구에게서 시작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대체 그 꼬마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 겁니까, 윌리?’
물론 자신은 여전히, 그 이유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
2013년 6월 25일. 샌안토니오, 텍사스. AT&T 센터 파크 웨이. AT&T 센터.
“트레이드에요!”
“어디?”
드래프트 데이 당일의 사무실 풍경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에 임시로 차려진 사무실에는 수십 대의 전화기가 놓여있었고, 그것들은 각각 다른 NBA의 팀들과 핫라인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진 각자의 휴대폰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지금, 트레이드 정보를 획득한 스퍼스의 바스켓볼 오퍼레이터. 랜슬롯 링컨(Lancelot Lincoln)이 사무실을 향해 큰 목소리를 외친 참이었다.
“유타요!”
“또?!”
“네. 이번 덴버의 픽은 유타로 갈 겁니다.”
“…….”
2013년 NBA 드래프트의 23번째 픽을 지닌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솔로몬 힐의 이름을 호명했을 때, 스퍼스의 관계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켜봐 온 재능들 중에서 최우선 순위의 이름이 자신들까지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후 뉴욕 닉스는 팀 하더웨이 주니어(Tim Hardaway Jr.)를. 클리퍼스는 레지 불록(Reggie Bullock)을 선택하는 예상대로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26번째 픽을 앞두고 오클라호마가 미네소타의 드래프트픽을 가져가며 잠깐 긴장을 안겨다주었지만, 샘 프레스티는 안드레 로버슨(Andre Roberson)이라는 뛰어난 퍼리미터 수비수를 지목해 스퍼스를 안심시켰다.
허나 그것도 잠시, 또 한 번 27번째 지명을 앞두고 트레이드가 일어났다.
그리고 스퍼스는 바로 이 다음 28번째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다.
띠리리링- 띠-리-링.
(데이비드 스턴)
“2013 NBA 드래프트. 27번째 픽입니다.”
.
.
엄청난 야유 속에서 등장한 데이비드 스턴이 유타 재즈로 향하게 될 덴버 너기츠의 픽을 호명하는 순간, 스퍼스의 사무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부디 이번에도 그들이 지목한 선수가 보드에 남아있기를.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뿐이었다.
.
.
(데이비드 스턴)
“덴버 너기츠의 선택은. 루디 고베어! 프랑스국적의 숄레 바스켓 소속입니다!”
.
.
“What the……”
루디 고베어의 이름이 들려온 순간, 스퍼스의 프런트 오피스에는 충격이 찾아들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고, 안경다리를 씹어대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남자도 있었다.
겨우 하나의 고비를 남겨두고, 스퍼스가 가장 바래왔던 재능이 앞서 뽑혀나가게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고베어를 지명 할 경우, 자신들이 보유한 젊은 빅맨을 활용해 트레이드를 하려던 계획도 송두리째 가로막힌 셈이었다.
스태프를 빠르게 진정시킨 뷰포드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고, 그는 곧장 윌리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누굴 뽑아야만 하죠?”
“아치 굿윈. 아니면 알렌 크랩도좋겠지.”
“?”
하지만 대답이 들려 온 방향은 전혀 다른 쪽이다.
바스켓볼 오퍼레이터인 랜슬롯 링컨이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는 이 두 남자가 팀에 즉각적인 보탬이 되어줄 거라며 지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려고 했다.
“윌리?”
허나, 뷰포드는 윌리 팔라치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리비오. 본래 그가 우리의 계획이었지.”
“뭐라고요?! Come On, 윌리! 올 해는 작년과 달라요! 보드에 이렇게나 많은 재능이 남았는데, 정말로 그러겠다고요? 그는 제 2의 지아니스가 아니라고요!”
“…….”
“R.C? 사무국이에요. 선택을 했느냐 묻는데요?”
스태프의 말에 고개를 돌린 뷰포드가 커다란 TV 화면을 확인한다.
시간은 약 2분이 남아있었고, 그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손짓을 했다. 스태프가 여전히 수화기를 붙잡은 채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뷰포드는 다시 한 번 윌리를 돌아봤다.
“랜슬롯의 말이 옳은 부분도 있어요. 아치 굿윈이나 알렌 크랩이라면, 분명히 즉각적으로 팀에 보탬이 될 겁니다.”
“윌리!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봐요! 루키 스케일로 로스터의 한 자리를 채워내는 일은 정말로 값진 장사라고요!”
“…….”
잠깐 침묵을 지키던 윌리 팔라치오는 이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뷰포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은 뭐였지?”
“…….”
어느새 이 두 남자에게 다음이라는 단어는 마법을 걸어주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뷰포드가 마음을 정했다는 듯, 스태프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리비오! 우리가 리비오 쟝-샤를을 지명할 거라고 전해줘.”
“R.C!! 진심인가, 자네?!”
“진정해요, 랜슬롯. 그는 본래부터 우리의 옵션에 들어있었다고요.”
“……난 이해를 정말 못하겠어.”
고개를 가로저은 랜슬롯이 회의실을 떠나고, 잠시 뒤에 화면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데이비드 스턴이 방금 전의 선택을 발표했다.
.
.
(데이비스 스턴)
“2013 NBA 드래프트. 28번째 픽입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선택은. 리비오. 쟝-샤를. 프랑스의 ASVEL 바스켓 소속입니다!”
.
.
이내 스퍼스의 사무실에서 작은 박수가 터져나오고, 그들은 한참 뒤에 있을 2라운드 픽의 추첨을 위해 자료를 싸그리 갈아엎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분주함 속에서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던 윌리 팔라치오는 정신없이 움직이다 다시 곁으로 다가온 R.C 뷰포드를 보며 말했다. 이제야 겨우 한 걸음을 내디딘 것뿐이라고 말이다.
“저도 알아요, 윌리. 저도 안다고요.”
“훗. 난 잠깐 밖에서 이야기를 좀 하고 오지.”
“누구와요?”
“랜슬롯. 그 머저리를 달래줄 사람이 나 아니면 누가 있겠나?”
“…….”
복도로 빠져나가는 윌리를 지켜보던 뷰포드는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29번째 선택을 지켜보았다.
.
.
(데이비드 스턴)
“2013 NBA 드래프트. 29번째 픽입니다. 오클라호마 씨티 썬더의 선택은. 아치. 굿윈. 켄터키 소속의 프레쉬맨 가드입니다!”
.
.
“휴우- 제발, 윌리. 제발.”
자신의 선택이 틀린 것이 아님을, 간절하게 바라는 뷰포드였다.
============
& 고든 헤이워드와의 만남은 121-124화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