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39
1446화 혼란의 제안 (5)
원래라면 마왕 케만이 대천사 앙겔스와 대천사의 언령을 맺어야 했겠지만.
시스템적인 문제로 대천사의 언령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결국 이 자리에서 대천사 앙겔스와 언령을 맺을 수 있는 건.
마왕 넷을 제외해버리면.
오직 유저인 나밖에 남지 않는다.
뭐 마왕 케만이 마왕군 내 부하들 중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대천사의 언령을 맺어버리면 나 역시 딱히 할 말이 없긴 한데.
의외로 마왕 케만은 내게 직접 대천사의 언령을 맺게 요구했다.
흠.
이건 무슨 의도지?
아무리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와 친하다고 하더라도.
마왕 케만의 입장에서 보면.
엄연히 다른 계열에 속한 마왕의 부하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자신의 부하들을 두고 날 선택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만약 마왕 케만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날 선택했다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강짜를 놓는다든가 하는.
반면에 뭔가 이유가 있어서 날 선택했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전적으로 이 일을 내게 맡긴다는 뜻이 되니까.
일단 그 의도를 확인하고자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마왕 케만을 보면서 기다려봤다.
그러자 마왕 케만이 내게 뭘 하느냐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왜? 마음에 안 드는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흠. 내가 자네를 선택한 것 때문에 그러나?”
역시.
의식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무작정 말한 건 아니었단 거네.
그렇다는 건.
마왕 케만에게도 뭔가의 의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왕 케만이 자신의 속을 털어놓았다.
“마왕과 대천사가 거래를 하는 건. 꽤 위험한 일이겠지. 그리고 그건 저 대천사의 천사군도 그렇겠지만. 마왕군에서도 역시 금기시되는 일이다.”
“음……”
이렇게 말해주자 대충 마왕 케만의 숨겨진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마왕 케만은 지금.
이 위험천만한 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고 싶다는 걸.
내게 은근히 어필한 것이었다.
저 녀석의 말대로.
대천사와 마왕의 계약은.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한 사건이었다.
천사군과 마왕군 둘 다에게.
뭐 대천사 앙겔스야 중간에 죽어 나가면 그만이라고 친다지만.
마왕 케만.
자신은 아니다.
마왕군에 이 거래가 알려졌을 시.
거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가는 둘째 치고.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건.
바로 본인이니까.
“다른 마왕들의 시선…… 입니까?”
내 날카로운 지적에 마왕 케만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게 정답인가.
다소 아쉽다는 표정으로 마왕 케만이 말을 꺼냈다.
“내가 서열 1위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모든 마왕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왕들의 역공이다 이거지?
확실히 이 거래는 다른 마왕들이 알게 되었을 때.
마왕 케만을 찍어누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래였다.
대천사와 손을 잡았다는 빌미는.
충분히 저 녀석을 위험에 빠뜨릴 만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세 마왕들 역시도 마왕 케만과 한 세트로 엮어서 위협받을 테고.
그럼 자신의 세력이 전부 찍혀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어쩌면 이 일을 빌미로 마왕군 4군단이 통째로 공중분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대천사와의 거래는.
위험한 거래였다.
많이 아깝지만.
먹지는 못하는.
딱 그런 음식이랄까.
어떻게 보면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왕 케만의 의도를 알게 되자.
왜 마왕 케만이 내게 이 거래를 넘겨주었는지까지 생각이 닿았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왕 케만을 쳐다보면서 마왕 케만의 의도를 겉으로 끄집어냈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모든 마왕군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까?”
내 지적에 마왕 케만이 슬쩍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니긴.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절대 못 먹는걸.
선심 쓴다는 척.
내게 폭탄을 넘겨준 셈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넘긴 셈이다.
대천사의 언령을 직접 맺는 주체는 나지만.
겉에서 보기에.
그 주체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될 테니까.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가 직접 데리고 온 인물이라는 걸 고려해봤을 때.
이건 확실하다.
결국 마왕 케만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짐을 떠넘겨 놓고.
자신은 한 발자국 떨어져 그 과실만을 먹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니 지금.
내 앞에서 저렇게 시선을 피하지.
마왕이 고작 마왕의 수하에게 시선을 피하는 일은.
그만큼 걸리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
코도 풀지 않고.
이 일을 처리하시겠다?
그것도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걸고 넘어져서?
물론 대천사 앙겔스와의 언령으로 저 대천사를 가지고 놀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차피 누가 해도 얻어낼 수 있는 결과다.
반면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걸리는 부담은.
그냥 무조건 손해지.
이건 넙죽 받아먹는 게 바보다.
입지 않아도 되는 손해를.
굳이 봐가면서 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때 멀리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챠밍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오빠를 이용하려고 하는 거예요?
응. 아마도. 아니. 확실히.
말만 거래지.
이용하려는 건 맞으니까.
그럼 거절하면 어떻게 돼요?
흐응. 글쎄? 나도 이제 그게 궁금해지려고 하네.
대천사 앙겔스라는 패는.
꽤나 유용한 패다.
그걸 냅다 걷어 찬다라…….
마왕 케만 입장에서는 낚싯줄에 팽팽하게 끌려 들어왔던 참돔이 올라오기 직전.
밧줄을 끊고 도망가는 격이니까.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지금은 쉽게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줄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한 번 마왕 케만을 끌어당겨 볼까?
네? 무슨 말이에요?
아. 지금부터는 마왕 케만을 낚을 거야.
이미 다 잡아 놓은 대천사 앙겔스가 아닌.
이번엔 마왕 케만을 엮어볼 생각이었다.
날 이용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게 해줘야지.
감히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이용하려 했다라…….
대천사 앙겔스를 저기에 무릎 꿇려놓은 게 나라는 걸 잠시라도 고려해봤다면.
마왕 케만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수였다.
쯧.
자신도 저기 대천사 앙겔스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건지…….
살짝 혀를 차면서 마왕 케만을 쳐다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럼, 그냥 대천사 앙겔스. 목을 날려 버리죠?”
내 말에 더 놀란 건.
마왕 케만보다 오히려 대천사 앙겔스였다.
그가 화들짝 놀라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확 돌렸다.
방금 내 발언은.
자신의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니까.
대천사 앙겔스가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마왕 케만을 쳐다보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마왕 케만! 이건 약속하고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당황한 건 마왕 케만도 마찬가지였다.
대천사 앙겔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분명히 당황했는지 나와 대천사 앙겔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설마 내 입에서 대천사 앙겔스의 목을 그냥 날리자는 말이 나올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곧 날 보면서 애써 당황함을 감추며 물었다.
그것도 위압감을 넣은 말투로.
당장 당황함을 감추기 위해서였겠지만.
내겐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네 지금 내 제안을 거절하는 건가?”
“글쎄요. 거절이라기보다는. 귀찮은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는 아주 당당하게 마왕 케만에게 말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우리 계획은 대천사 앙겔스를 이곳에서 죽이는 것이지 않았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만.”
대천사들을 헤르마늄 광산에 고립시키고.
마왕 케만을 비롯해 세 마왕들을 투입시켜서 고사시키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마왕 케만에게 만들어준 계획은.
여기가 끝이라는 거다.
한 마디로.
당장 지금부터 내가 이 일에서 손을 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왕 케만도 이걸 잘 알기에 차마 내게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날 억지로 어떻게 하려다가는.
마왕 헤르게니아와 틀어지게 된다.
당장 그녀에게 원하는 게 있는 마왕 케만 입장에서는.
이 선택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뭐 놀리는 건 이쯤 해두고.
빠져나갈 문을 열어줘 볼까.
너무 마왕 케만을 궁지로 몰고 가면.
이 녀석의 머리가 돌아서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니까.
슬쩍 모르는 척 마왕 케만에게 한 마디를 흘렸다.
“목적을 달성했는데. 추가로 일이 생겼네요. 보통 이런 경우 뭘 받아야 할까요?”
“음…….”
잠시 내 말을 해석하는 듯 하던 마왕 케만이 곧 납득했다는 듯 답했다.
“일을 더 하면 추가 수당을 받아야겠지.”
“현명한 대답입니다.”
뭐 마왕군에서 추가 수당이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위에서 까라고 하면 다 하니까.
하지만 우린 아니다.
엄연히 마왕 케만의 4군단과 별개의 집단이니까.
“그리고 이 일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그걸 아니까 이 거래를 모르는 척 넘긴 것 아닙니까.”
내 지적에 마왕 케만이 뜨끔한 표정으로 다시 내 시선을 피했다.
“위험수당. 주시죠.”
“흠.”
“물론 추가 수당보다 이쪽이 훨씬 클 겁니다. 잘못하다가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군에서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왜? 싫으십니까?”
“흐음…… 잠시 기다리게.”
아무래도 공짜로 먹으려다가 갑자기 내가 돌변하니 아무래도 배가 아픈 듯한데.
그렇지만.
마왕 케만은 내 제안을 절대 거절하지 못한다.
이미 대천사 앙겔스라는 달콤한 패를 봐버린 이상.
뭐 영 마음에 안 들면 대천사 앙겔스의 목을 날리고 끝나겠지.
어차피 우리 쪽에서도 아쉬울 게 없었다.
대천사 앙겔스를 살린다는 계획은.
원래 없었으니까.
살리면 살리는 대로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제 선택은 마왕 케만에게 넘어갔다.
잠시 가다리자 마왕 케만이 결정했다는 듯 내게 말을 꺼냈다.
“뭘 원하나?”
“대답이 깔끔하시네요.”
“이제 와 돌아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렇긴 하죠.”
나와 마왕 케만의 대화가 긍정적으로 흘러가자 듣고 있던 대천사 앙겔스도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자신의 목이 이 자리에서 날아갈 뻔 했으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서 대천사 앙겔스를 보면서 말했다.
“잘 봤죠? 방금 제가 당신의 목숨을 살린 겁니다.”
“큭…… 내 자네의 성의를 잊지 않지.”
죽이려다가 살려준 걸 가지고 성의까지야…….
뭐 당하는 대천사 앙겔스 입장에서는 정말 목숨을 살려준 셈이니.
그리고 난 이런 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공짜로요?”
“뭐……?”
“목숨을 살려줘서 고맙다면서요. 방금 성의를 잊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러자 대천사 앙겔스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마왕 케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무슨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딱 그런 눈빛이었다.
“그건 대천사의 언령으로…….”
“아, 그건 그거고요. 어차피 대천사의 언령은 여기 마왕 케만에게 줄 보상이죠. 제가 아니라.”
따지고 보면 다 같이 퉁 칠 수도 있겠지만.
아니.
대천사 앙겔스는 반드시 그러고 싶겠지만 난 절대 아니다.
“싫으면 여기서 그만둘까요? 난 전혀 안 아쉬운데?”
내 능청스러운 말에.
지금 칼을 들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걸 바로 떠올린 듯 대천사 앙겔스가 이를 꽉 깨물었다.
당장 내가 안 한다고 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
결국 두 손을 든 대천사 앙겔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 좋다. 원하는 게 뭔가?”
보자.
이러면 양손의 꽃이 되는 거려나?
마왕 케만.
대천사 앙겔스.
어디 둘 다 한 번 제대로 뜯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