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295)
〈 295화 〉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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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그쳤으나, 쌓인 눈은 아직도 세상을 하얗게 덧씌워놓은 상태였다. 지긋지긋한 겨울이다. 새하얀 눈들이 마치 지옥의 뼛가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시간은 이른 아침.
클라우디랑 위니아에게 입힐 방한 장비를 구매한 뒤에 성문 바깥으로 나왔다.
“후우, 상쾌하네. 조금 춥긴 하지만.”
새하얀 입김이 하늘로 흩어진다.
추위를 호소하던 클라우디도 방한 장비를 갖추니 어느정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눈밭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몸 상태를 체크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러시아 털모자 같은 것을 쓴 상태라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뭐, 나도 버틸만은 하네. 옷 꽉 끼는거 빼면.”
위니아도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는 것 같다.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한데, 괜찮다니 괜찮을 것이다. 잠시 옷을 고쳐 입은 위니아가 앞장서서 출발했다.
지금부터 아울베어를 사냥하러 가볼 생각이다.
대충 알아보니까 상인들이 아직도 비싼 값에 가죽을 매입하고 있단다. 생각보다 물량이 없던 탓이다. 아마 한 마리만 잡아도 20실버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리라 기대되었다.
ㅡ뽀드득.
아직도 눈이 밟히지만, 어디 두 여자가 평범한 여자인가. 움푹움푹 들어가는 눈밭을 밟으면서도 그냥 평지를 걷는 것 마냥 힘차게 걸으면서 이동을 시작했다.
“눈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렇게 신기해?”
“응. 역시 사막이랑은 많이 다르구나. 눈이 마치 모래처럼 쌓여있어.”
ㅡ푸욱.
“발도 차갑고.”
그녀의 긴 다리가 눈밭에 파고든다. 각반을 차긴 했지만 차가움은 면치 못할 것이리라. 이런 제길…! 당장이라도 업어주고 싶었다.
“업어줘?”
“후훗, 괜찮아.”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은 클라우디가 내게 몸을 기대었다. 서로의 장비 때문에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마음이 뜨거워졌기에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깜둥아. 업어줄거면 나나 좀 업어줘.”
“이리 와라.”
“깜둥이가 와.”
걸어간 나는 즉시 위니아를 업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이동을 했다. 오르막길이 나타날 때까지만 업어주도록 하자.
“위니아. 근데 뭐 아울베어 서식지나 그런건 알고 있는 거냐?”
“그럼 모르겠니?”
“어딘데?”
“조용히 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나 해.”
눈으로 뒤덮인 가도를 따라 쭉 걸었다. 옆쪽에 난 산길로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조금 멀리까지 갈 생각인 것 같다.
이대로 5일 동안만 걸어가면 크라스하임이 나온다.
아마 위니아는 그동안 살아가면서 이 근방에서 쭉 일을 해왔을 테니, 이 부근 지리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더 익숙할 것이다.
“이제 내려오자.”
“싫어.”
“나 뒤질 것 같애.”
“존나 허약하네.”
“아니, 개오래 업었거든?”
슬슬 힘들어져서 위니아를 내려줬다.
“캇트를 너무 괴롭히면 못써. 힘들어하잖니.”
“깜둥이한테는 이 정도는 해 줘야 돼, 언니. 내가 봤을 땐 언니가 너무 무른 거야. 깜둥이한테 필요한건 바로 채찍질이라고.”
“어머?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 다가오지 마.”
역시 클라우디가 최고다.
한참을 걷다 보니 괜찮은 포인트가 나와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래도 눈이 쌓인 탓인지 생각보다 멀리 오지는 못했다. 즉시 눈을 치우고 망토를 깔아서 자리를 만들었다.
마법사인 위니아가 있었기 때문에 불을 피우는 것에는 별다른 수고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불을 피우고, 나는 이것저것 돌덩이를 주워와서 간단한 받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배낭에서 작은 냄비를 꺼냈다.
“깜둥이 그런 것도 챙겨왔어?”
“놀랍지?”
“아니.”
“아 시발 그럼 왜 물어봐.”
“그냥.”
냄비를 세팅하고 수통을 따서 물을 부었다.
이럴 때 믹스커피라도 하나 있으면 딱인데, 그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냥 육포나 구우면서 뜨거운 물로 몸 좀 녹이고 출발하면 될 것이다.
“캇트.”
“응? 왜?”
달군 돌을 하나 꺼내서 손을 녹이며 평평한 돌 위에 앉아 있으니, 클라우디가 와서 내 무릎에 앉으려 했다.
“귀가 너무 차가워.”
“흐흐흐, 그럼 내가 녹여줄게.”
털모자를 벗은 클라우디가 내게 머리를 기대왔다.
긴 귀는 추위 때문인지 끝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거 귀걸이 때문에 더 차가워지는거 아닌가?
아무튼 나는 달궈진 돌의 온기를 손에 집중시키고 그녀의 귀를 잡았다.
“흐읏.”
곧바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따뜻해?”
“응… 좋아.”
나는 얼어버린 연인의 손을 녹여주듯, 정성을 다해 그녀의 귀를 주물렀다. 확실히 귀가 많이 차갑다. 긴 만큼 추위에 취약한 것이다. 계속 만져주니, 클라우디의 신음은 점점 달뜬 교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흐읏…! 하아…”
아예 움찔거리면서 허리까지 비트는 중이다.
역시 엘프는 귀가 약점이지.
“어떠냐.”
“응… 추운 곳에서 만져져서 그런지 더 자극이 심한 것 같아…”
“귀는 좀 녹으셨나?”
“아직 안 녹았어. 더 해줘.”
“얼마든지 더 해주지.”
슬슬 물이 끓으려고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와서 앉은 위니아가 말했다.
“깜둥아 물 끓는다.”
“클라우디, 이제 내려와. 물 끓는다.”
클라우디에게 털모자를 씌워주고 냄비를 눈밭에 내려놓았다. 잠깐 식히고 마시면 될 것이다. 육포를 꺼내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에 데우면서 손을 녹였다.
여러모로 겨울이라 그런지 귀찮은 점이 많다.
빨리 봄이 와야 할 텐데… 뭐, 곧 오지 싶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움직였다. 뱃속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까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위니아를 따라서 산을 탔다.
위니아 말하길, 중턱쯤을 수색하다면 보면 아울베어의 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깜둥아. 이게 다 경험이에요, 경험.”
몇 번 정도 잡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우월한 기억력으로 습성까지 외우고 있다고 하니, 역시 마법사는 마법사였다.
“나랑 깜둥이는 본질적으로 경험의 차이가 있는거라구.”
“이거 머리로는 따라갈 수가 없겠구만.”
앞장을 선 위니아가 눈밭을 헤쳐나가며 말한다.
“당연하지. 나는 마법사인데. 뭐, 내가 똑독하니까 깜둥이가 조금 바보라도 괜찮아.”
“아아 물론이고 말고. 나는「바보」다.”
“아니, 병신이야.”
“「씨발」”
“그 기묘한 강조는 대체 뭐야?”
능숙하게 움직인 위니아는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주변을 스캔했다. 나보다 관찰력은 물론이고 공간지각 능력도 좋은 것이다. 쭉 둘러보다가 다시 걸어나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 뒤를 따르면서 진행이 되었다.
“흐음, 이런 곳에 있는거구나?”
클라우디도 주변을 살폈다.
나도 다른 모험가 무리나 강도는 없을까 하면서 경계를 했다.
“그래, 언니. 이참에 언니도 이런 것도 좀 배워 둬. 견문을 넓힐 기회라고.”
“후훗, 고마워라. 그래. 그러면 아울베어는 어디 있는 걸까?”
“조금만 기다려 봐. 딱 이런 곳에 있는게 걔들 습성이거든. 뭐, 없어도 어쩔 수 없기는 한데.”
그 후로 1시간 정도 셋이서 두리번거리면서 움직이니, 돌연 위니아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멈춰 섰다.
“…저기, 봐봐.”
그녀가 스태프로 가리킨 곳에는 적당한 크기의 굴 같은 것이 나 있었다. 눈으로 뒤덮인 굴의 안쪽은 흙으로 되어 있었고, 그 바닥 쪽에 말라비틀어진 수풀 더미가 보였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고드름이 마치 감옥처럼 굴의 입구를 막고 있었다.
“모양이랑 크기를 보면 딱 저거야.”
드디어 굴을 발견한 것이다.
새삼 콥슨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큰 놈인가?”
“아니, 저 정도 규모면 깜둥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큰 정도. 젊은 놈인가 보네. 아울베어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커지거든.”
ㅡ스릉.
두 자루의 곡도를 뽑아든 클라우디가 눈을 빛내고는 천천히 굴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을 위니아가 제지했다.
“언니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깜둥아, 저기 고드름 나 있지? 그럼 아마 있을거야.”
어 시발?
생각해 보니까 납득이 되었다.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 뒤로 잘 움직이지를 않았을 테니까 아마 고드름이 길게 늘어진 것이다.
역시 위니아다.
나는 생각도 못 했다.
“오. 시발 그렇겠네.”
“깜둥아. 그냥 그런가부다 하지 말고 눈에 들어온 걸 제대로 살필 줄 알아야지. 이걸로 신기해하면 어떡하니?”
“다음부터 그럴게. 좋은거 배웠다, 야.”
모험가로서의 경험치가 올라갔다. 언제 콥슨과 같이 행동하면 뻐기듯이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는 충동이 샘솟았다.
“아무튼… 어떻게 처리할래? 가죽 값 제대로 받으려면 깨끗하게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언니. 단번에 끝장낼 수 있겠어?”
“본 적이 없는 몬스터라 잘 모르겠어. 그리고 단번에 끝장내고 싶지도 않고.”
“으음, 그러면.”
위니아가 간단히 개요를 설명했다.
놈이 뛰쳐나오면 자신이 전격 마법으로 마비를 시킬 테니 최대한 손상 없이 죽이자는 계획이다. 역시, 마법사가 있으면 모든 작업이 수월한 법이다.
마비된 몬스터를 잡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을 테니까.
“그럼 깜둥아. 가서 깨워봐. 직접 들어가지는 말고.”
“내가 저길 뭔 정신으로 들어가.”
저런 굴에 기어 들어갔다가 안쪽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볼 것도 없이 삼도천이다. 나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고 클라우디와 함께 천천히 굴 앞으로 다가갔다.
위니아가 스태프를 치켜들고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그럼 던진다.”
“응. 기대되네.”
자세를 잡은 나는 그대로 물수제비를 던지듯, 아울베어의 굴 안쪽으로 힘껏 돌을 던졌다. ㅡ빠악. 그런 소리가 났고, 나는 즉시 굴의 입구에 입을 대고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엨ㅡ!!!!!!!!!!!!”
ㅡ휘익!
잠깐 동안 비명을 터트리고 민첩하게 몸을 날려 굴의 주변에서 탈출했다. 잠에서 깨어났다면, 이제 곧 나올 것이다.
“…캇트.”
“그래!”
클라우디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ㅡ
ㅡ호오오오오오옭!!!!!!!!!!!!
끔찍한 포효성을 터트린 아울베어가 네 다리로 기면서 엄청난 기세로 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은 지극히도 비인간적으로 생긴 잔혹한 괴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마치 조류의 그것과도 같은 머리통에는 길고 단단해 보이는 부리가 나 있었고, 전신은 갈색 깃털과 짐승의 털이 혼재된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거기에 강인해 보이는 긴팔에도 큰 깃털들이 나 있어서 전반적으로 새처럼 보이는 외양이었다.
ㅡ오옭!!! 오로로로로록!!!!
손에 달린 발톱은 완전한 살인괴수의 그것이다.
네발로 뛰쳐나온 아울베어는 머리를 180도씩 회전시키면서 일어섰다. 말 그대로 조류와 곰을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키 역시 나만큼 컸다…. 몸의 안쪽도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다. 딱 봐도 날수는 없는 것 같으니,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뼈가 강인하겠지.
확실히 일대일로 싸운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놈이다.
“위니아!”
그러나 지금은 셋이서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이다.
“체인 라이트닝!”
ㅡ파치지직!!!
영창의 끝남과 동시에 시퍼런 전격의 줄기가 폭발적으로 뻗어져 나왔다. 잠깐 생긴 섬광. 체인 라이트닝은 그대로 아울베어에게 꽂혀 들어갔다.
ㅡ오오오오오오오옭!!!!!!
발작적으로 비명을 토해낸 괴물이, 전격에 마비가 된 것인지 엎어졌다. 들썩들썩 떨리는 어깨만이 아직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잠깐 기다려.”
잔류 전기를 피하기 위해 일단 정지를 하고 아울베어를 살폈다.
ㅡ오오오옭…!
“흐음, 신기하게 생기긴 했네. 목이 그렇게 돌아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듯한 자세를 잡은 클라우디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신기하기는 했다. 머리가 저렇게 자우롭게 돌아가니 사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나는 분석을 하면서 발을 내딛었다.
과연 어디를 찔러야 할까? 일단 목을 베면 될까? 위니아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는 클라우디와 함께 아울베어에게 다가갔다.
“캇트. 일단 목을 찌르는거야.”
“그래야겠지.”
괴물이 일어나기 전에 신속하게 작업을 해야 했다. 즉시 전신에 마나와 힘을 집중 시켜서 엎어져 있는 놈의 뒷목에 참격을 내리꽂았다.
ㅡ퍼억!!
“쯧.”
단번에 절단하진 못했다.
실장베기를 사용하지 않은, 큰 마나의 소모 없이 단순히 도움만 받으며 근력과 검술을 이용한 베기로는 이것이 한계였던 것이다.
조금 더 근육 사이사이에 마나를 스며들게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며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캇트. 이번엔 내가 할게.”
“그래.”
ㅡ쐐액!
가볍게 떨어진 곡도는 아울베어의 머리통을 깔끔하게 절단했다. 그로서 괴물은 죽음을 맞이했다.
대자연의 강력한 몬스터는 숙련된 마법사의 마법을 당해내지 못했다. 콸콸 뿜어져 나오는 피가 새하얀 눈을 붉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