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8
26화. 납치 (3)
저런 싸늘한 S급이랑 한 공간에 있기 싫은데…….
“강창호 씨, 생각해보니 저희가 싸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투항할게요.”
나는 두 손을 들고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반면, 강창호는 그런 나를 따라오며 거리를 좁혔다.
“이제야?”
하긴 나 같아도 한 번 탈출한 놈의 말은 못 믿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강창호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 나올 듯이 굴었다.
‘히익!’
그리고 강창호의 무식하게 큰 주먹이 꽉 쥐어진 그 순간.
나는 이 방의 어딘가에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착각인가?
“사장님~ 저 왔어요.”
아니, 착각이 아니다.
진짜로 오른쪽 벽에서 차가운 바람이 숭숭 불고 있잖아.
어눌한 한국어.
그것을 들은 모두의 시선이 휙 돌아간다.
우리가 쳐다보는 그 벽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새로운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정확히는, 게이트와 비슷하게 생긴 황록색의 마법 통로가 말이다.
“이런. 딱 12시군. 자네는 정말 시간 약속 하나는 철저하다니까.”
이어서 마법 통로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온다.
노인이 저리 친근하게 구는 걸 보면, 어쨌든 적군인 거겠지.
나는 갑자기 등장한 각성자를 바짝 경계하며 굳었는데, 강창호의 반응은 이와 대조적이었다.
“아하, 이 사람이 그 운반책?”
강창호는 나와의 기 싸움마저 내팽개쳐버리고 그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공간이동 스킬 소유자 중에선 드물게 사람도 옮길 수 있댔지. 그나저나 이렇게 실물을 보게 되다니.”
헌터들의 정점에 서 있는 S급 각성자가 흔쾌히 고개 숙이며 악수를 건넨다라.
어찌나 후한 대우인지 원.
“한국에 온 걸 환영해.”
“아아, 네에.”
강창호가 인사하자 공간이동 술사는 쭈뼛거리며 상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안녕하세…….”
하지만 이것이 그 술사의 유언이 될 줄이야.
나는 이 직후 벌어진 상황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쾅!
강창호는 그 각성자가 자신의 손을 잡자마자, 비어있던 나머지 손으로 술사의 옆머리를 잡아채 곧장 벽으로 메다꽂았으니까…….
“꺄아아아아악!”
우르르, 벽이 일부 무너진다.
강창호는 확인 사살을 하듯, 공간이동 술사의 머리통을 단단히 움켜쥐어 시멘트 바닥에 한 번 더 내려쳤다.
약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허, 허억! 자네, 자네 지금 무슨……!”
순식간에 붉게 물든 벽과 바닥이 마치 현대미술가가 그린 그림 같다.
모두 경악에 물들어 있는 가운데, 강창호는 운반책의 피가 묻은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이 버러지 하나를 처리한다고 그간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군.”
“뭐라고?”
“공간이동 각성자들은 조금만 방심하면 도망치니까.”
기회를 잡는 게 힘들단 말이지.
강창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죽인 각성자를 내려다보다가, 납치범들을 향해 선언했다.
“이쪽도 원래는 너희가 밀무역을 하든 게이트 불법 점거를 하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
S급 헌터의 말에 노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내 구역 각성자를 해외로 빼돌리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이 말을 끝으로 강창호는 그들을 습격한다.
“으악!”
“게, 게이트 안으로 도망가십…!”
범죄 조직의 일당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협회에서 괜히 S라는 등급을 따로 만들어 뒀겠는가?
원래 이 세상은 알파벳 순서로 만든 A~F 단계의 헌터 등급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술사들로 인해 뒤늦게 새 단계가 생겼다고 한다.
감히 A급 이하와 비교해서는 안 될, 규격 외의 힘을 지닌 헌터.
“끄아악!”
저것이 지구의 먹이사슬 최상위에 존재하는 술사다.
나는 강창호가 납치범들을 하나씩 작살내는 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시의 마법사치고는 꽤 하는군. 역시 강창호에게는 개기지 말자고.
“음?”
그런데 잠깐.
유혈 사태에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문득 고개를 드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위용위용- 하고 시끄럽게 반복되는 사이렌 소리.
“경찰?”
이곳의 사장을 반쯤 죽여놓던 강창호는 행동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본다.
“너 경찰 불렀어?”
아, 맞다.
“그랬었죠.”
내가 곧장 긍정하니 강창호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든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강창호는 의식을 잃은 사장을 버려두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볍게 언질을 줬다.
“김기려 헌터, 미리 말해두는데 날 이 조직이랑 엮으려 들진 마.”
“네?”
“난 그냥 웬 놈들이 한국의 각성자를 해외에 팔고 있길래 막은 거야. 이해해?”
그가 납치범들을 배신한 것쯤은 나도 봐서 안다.
아마 강창호가 VIP가 된 이유는, 그들을 방심시켜 운반책을 만나기 위함이었을 터다.
“그건 경찰들이 할 일이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김기려의 지식에 따르면 이 행성은 범죄자를 처단하는 직업이 따로 존재했으니까.
직접 나설 필요가 없지 않나?
“저들이 평소에 얼마나 굼뜬지 알면 그런 소리 못할걸.”
“네?”
“딱히 경찰을 탓하려는 건 아니야. 공직자 출신 각성자는 대부분이 헌터 업계로 이직해버렸으니 인력난으로 어쩔 도리가 없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
강창호가 눈을 가늘게 뜬다.
“원래였다면 여길 찾는 데에만 며칠은 걸렸을 놈들이라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간담이 서늘하다. 뭐라고?
“그런데 이번에는 지나치게 빠르군.”
“….”
“아무래도 우리 김기려 헌터께서 뭔가 손을 쓰신 모양인데.”
그 S급 헌터는 나를 슬쩍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작은 코웃음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꽤 궁금하지만. 시간도 늦었으니 굳이 묻진 않을게.”
복도로 향한 강창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3초가 지난 뒤에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상대가 워낙 자연스럽게 행동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저 자식 지금 어디 가냐?
위웅-. 위웅-. 위웅-.
나는 지척에서 들리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사색이 되었다.
머리가 박살 난 공간 이동 술사의 시체.
피를 철철 흘리는 노인.
덤으로 3명 정도 되는 중상자가 의식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것이 이 방의 상태인데.
저 썩을 S급이 재빠르게 도망가버렸다.
그럼 당연히 상황은 이렇게 된다.
“손들어! 경찰이다!”
“허, 여긴 또 뭐야. 완전 피투성이잖아!”
“지금부터 각성 능력을 사용할 경우 가중처벌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얼마 안 가 도착한 사람들이 근처를 포위했다.
경찰은 쓰러진 사람들과 나를 번갈아 보다 경악하며 외친다.
“이 새끼, 납치한 피해자는 어떻게 한 거야!”
이게 단순히 ‘강창호 대신 혼자 증언을 다 하느라 힘들었다’라는 해프닝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말이다.
“제가 신고자입니다.”
“움직이지 마! 당신은 현 시각부터 각성 범죄 특례법 위반으로…….”
“제가 신고자라고요.”
경찰들은 뭔가 오해해도 아주 단단히 했는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거칠게 연행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이가 없네.”
선량한 외계인을 이렇게 다루다니.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범죄자 취급이 오래가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몇 분 뒤. 경찰들의 인도로 건물 밖으로 나오게 된 나는 익숙한 얼굴을 만나게 됐다.
경찰차 앞에 있는 저 헌터는 분명…….
“김기려 헌터, 왜 수갑을 차고 계십니까?”
나는 당황한 표정을 하는 지구인을 향해 여상스레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선우연 씨.”
아무래도 안윤승이 무사히 내 문자를 받은 듯하다.
***
[윤승아 나 기려인데 미안하지만 지금 납치됐다.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연락했어. 혹시 협회에 선우연 같은 사람 알면 나 좀 찾아달라고 해줄래?] [너는 A급이라 협회랑 연락이 될 거 같아서 물어봤어.] [(전면 카메라 사진 첨부)]
***
약 20분 전.
자정을 앞둔 늦은 밤.
침대에 파묻힌 선우연 앞으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발신자는 A급 헌터 안윤승.
일 때문에 자주 만나 평소에 친분이 있는 관계였다.
“뭐라고? 누가 납치됐다는… 김기려? 김기려 헌터가 납치됐어요?”
그런데 안윤승이 전한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F급 헌터가 피랍되다니.
아무리 세상이 게이트로 혼란해졌다고 한들, 사람이 납치되는 사건이 흔하진 않다.
“안윤승 헌터, 침착하세요. 지금 바로 서랑 연락해볼 테니까.”
안윤승은 예의 바른 대학생이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늦은 시간에 연락하지 않을뿐더러, 장난 전화를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
그래서 선우연은 사태의 심각성을 확신했다.
이후의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연락받은 즉시 스킬을 발동했다.
‘위치가 여기에서 멀지 않아. 이거라면 내 차로 출발해도 경찰과 합류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가 선우연이 나타나게 된 계기이다.
“정말 이 방향에 실종자가 있는 겁니까?”
또한 선우연의 참가는 다른 의미로도 훌륭한 한 수가 되었다.
“이대로 쭉 길을 타고 들어가세요. 확실해요.”
김기려가 끌려간 곳은 건물 부지가 전파도 닿기 어려운 깊은 산골짜기에 있어 추적이 번거로웠기에.
하마터면 아무도 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색이 종료될 뻔한 상황.
“이 건물이에요! 여기 1층, 저기 튀어나온 곳 보여요? 저 방이에요.”
이렇게 다 무너져가는 폐건물이 여태 돌아가고 있다니.
불안감이 엄습하는 풍경이다.
“어서 가주세요!”
선우연은 B급 헌터치고 전투에 적합한 요원은 아니었다.
쓸 수 있는 기술이 추적 마법뿐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구조 작전에 방해되지 않게 바깥에 남았는데….
‘제발, 무사하기를.’
이러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걸까?
“아!”
다행히 조사대는 성공적으로 피랍자를 구출했다.
과정에 작은 문제는 있었지만.
“김기려 헌터, 왜 수갑을 차고 계십니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선우연 씨.”
어차피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될 일. 김기려는 어렵지 않게 구속에서 풀려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윤승이는 왜 안 보이죠?”
“안윤승 헌터는 지금 시외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를 제압 중이에요. 출동 중에 당신 문자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이쯤 되면 모든 게 잘 풀렸다 싶었지.
하지만 잠시 뒤.
어느 경찰에 의해 납치범의 신원이 밝혀진 순간부터는, 현장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잠깐만, 이 자식들 설마 그 지명수배 중인 인신매매범 아니야?”
근래에, 경찰은 큰 골칫거리가 있었다.
각성자를 납치해 해외로 인신매매하는 신종 범죄 조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선우연과 같은 서쳐들의 추적을 피하고자 수뇌부의 신원을 교묘히 감췄다.
이름도, 국적도 진실이 아니니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
어렵사리 조직원을 찾아내도 꼬리 자르기로 이어질 뿐. 결국 한동안은 지지부진한 수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곳이 다름 아닌 그들의 접선 장소였다니!
‘게다가 조직은 이미 괴멸 직전?’
선우연은 속속들이 발견되는 증거에 당황했다.
도망치다 검거된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 이 건물에 있던 모든 납치범들은 의식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내가 아니라 강창호 그 미친놈이 한 짓이에요.”
김기려는 초반에 이렇게 변명했지만.
이어서 2층 부근에서 기절한 각성자가 무더기로 발견되자 슬그머니 발언을 바꿨지.
“제 몸을 지키려다 보니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상처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뭐지?’
누군가에 의해 쓰러진 조직원.
유혈이 낭자한 조직 보스의 방.
출구 쪽이 아니라, 그 문제의 방에서 발견됐던 F급 헌터…….
생각을 정리하던 선우연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김기려는 과연 진짜 납치된 것이 맞는가?
이 모든 일에 정말로 그의 의도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