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 응징(1)
“어때, 좀 괜찮아?”
“이런 몸도 중독시킬 정도의 독이라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현이 리코스의 몸을 일으켜 세우자,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언데드의 몸이 고통을 느낄 정도라면 세멜레의 독이 보통이 아니긴 했나 보다.
“이거 치료할 방법이 없을까?”
“도려내야겠네요.”
티타니아의 대답에 이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여길 통째로?”
“어쩔 수 없어요. 이미 독에 침식된 부분은 회복할 방법이 없는걸요.”
디르케와 달리 죽은 몸이기에 약도 먹히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심장이 뛰지 않는 몸이라서 독이 혈관을 타고 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전신에 독이 다 퍼졌겠지.’
그랬다면 리코스를 영영 잃었을지도 몰랐다.
어두운 표정의 이현과 달리 리코스는 덤덤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군요.”
“뭐? 리코스?”
푹!
리코스의 손이 상처 부위를 파고들었다.
“으악! 뭐 하는 거야?”
“치료하는 중입니다.”
리코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독에 중독되어 검게 변한 뼈와 악취를 풍기는 살점을 뜯어냈다.
“이 정도는 징그럽지도 않으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건 그런데…….”
이미 사우레노르의 사체들로 온갖 짓을 다 해본 이현이었다.
격으로 정신이 보호받으니 징그러울 리는 없지만, 자신의 몸을 뜯어낸다는 발상에 잠깐 당황했을 뿐이었다.
“어휴, 됐다. 이번 일 끝나면 잠깐 던전으로 돌아가서 망자의 땅으로 치료하면 되겠지.”
독을 제거한 부분은 격을 조금 소모해서 치료하면 그만이었다.
“저자는 어쩌실 겁니까?”
리코스가 세멜레를 가리켰다.
도끼날이 아닌 도끼 머리에 가격당한 세멜레는 기절해 있었다.
승격을 앞둔 사우레노르치고는 초라한 몰골이었다.
“일단은 데려갈 거야.”
자신을 귀찮게 만든 자이기도 하지만, 이아코스의 원수이기도 했다.
이현은 이아코스의 동의 없이 세멜레를 멋대로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나갈 때가 문제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리코스가 곧 걱정 어린 표정이 되었다.
“왕궁의 수비 병력이 여기 있던 자들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걱정하지 마.”
왕궁 수비대가 못 해도 백은 될 텐데 여기서 이현이 쓰러뜨린 이들은 고작 수십 명이었다.
그러나 이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우리가 제일 위험한 곳에 있었을걸?”
이현은 건물을 나가는 문 앞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짙은 피비린내가 이현의 코를 찌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건물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보다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혈향이 더 짙었다.
“티타니아, 준비 제대로 시켜놓은 거 맞지?”
“그럼요. 보스의 명령인걸요.”
티타니아의 당찬 대답을 들으며 이현은 건물의 문을 열었다.
“이거 참 멋진 광경이네.”
이현이 들어왔던 왕궁의 마당은 피와 사우레노르의 사체 더미로 가득했다.
“우리의 주인에게 경례!”
퉁! 퉁!
60명의 사우레노르 구울 부대가 창과 방패를 짧게 두 번 두드려 경의를 표했다.
“고생들 했어.”
이현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정렬해 있는 부하 몬스터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가 싸우고 있는 동안, 건물 밖에서는 [워터게이트]에서 나온 이현의 부하들이 왕궁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광경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던전 보스 할 맛이 나지.”
이현은 왕궁 수비병들의 피 웅덩이를 찰박찰박 밟으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우레노르에게로 다가갔다.
온몸이 꽁꽁 묶여 두려운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고 있는 사우레노르는 바로 옹케스토스의 왕이었다.
“눈! 무, 무서운 눈!!”
“뭐라는 거야.”
옹케스토스의 왕이 이현의 눈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예언에 나왔던 무서운 눈을 가진 인간.
그 인간이 바로 이현이었다는 사실에 왕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리코스.”
“예.”
아직 부상이 심했지만, 꽁꽁 묶인 상대를 죽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언이 맞았어!”
퍽!
리코스의 손이 휘둘러지는데도 이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왕의 머리가 그대로 으깨졌다.
인간이 아닌 사우레노르의 손에 죽었으니 예언은 결국 빗나간 셈이었지만.
겁도 없이 이현 일행을 건드린 대가로 옹케스토스는 이현의 손에 왕실을 잃었다.
* * *
“이건 예상외의 소득이네.”
이현은 자신의 뱃속에서 뭉클거리며 솟아나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규격 외의 격이 늘었어.”
페르세우스가 검기를 쓰기 위해 빌려 쓴다는 힘은 규격 외의 격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페르세우스가 쓰고 난 다음, 조금이지만 규격 외의 격이 늘어있었다.
‘자극을 받아서 그런 걸까?’
지금껏 던전의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으로만 쓰던 규격 외의 격이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그걸 전투용으로 사용했다.
사념 에너지로 역천강기를 뽑아내는 나진처럼.
‘생각보다 얻는 법과 사용법이 다양할지도 모르겠어.’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기존의 획득법과 사용법 외에는 다른 시도도 하지 않았던 이현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이현은 규격 외의 격이 가진 가능성과 유연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더 연구를 해봐야겠는데.”
“뭐가요?”
티타니아가 사우레노르 구울 부대를 지휘하다가 이현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돌아와서 물었다.
“나중에 말해줄게. 수거는 잘 되어가?”
이현은 복잡한 설명을 뒤로하고 물었다.
에키온 가문의 전사들과 왕궁 수비병의 사체를 사우레노르 구울 부대가 수거하는 중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던전의 병력 증가였다.
“전에는 이런 식으로 병력 늘릴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우릴 먼저 공격했으니 상관없어.”
침략을 먼저 하지 않겠다는 거지, 호구처럼 당해주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감히 이현 일행을 위협한 대가로 옹케스토스의 전사들은 언데드 부대가 되어 던전을 지키게 될 것이다.
“아, 티타니아. 이것 좀 초기화해서 줘.”
이현은 품에서 분석의 안약 통을 꺼내 티타니아에게 건넸다.
던전이 처음 열리던 때부터 애용해왔던 안약의 횟수가 모두 떨어졌다.
세멜레와 일전을 치르기 전에 한 차례 넣으려고 했지만, 마침 그때 떨어진 터라 넣을 수가 없었다.
“여기요.”
티타니아가 안약 통을 받아들곤 던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왔다.
미리 던전에 분석의 안약을 등록해놨기 때문에, 100회라는 횟수 제한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마 던전의 사념 에너지가 고갈되는 날이 오기 전까진 무한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든든하네.”
“하여튼 규격 외라니까.”
다시 찰랑거리는 안약 통을 받아든 이현은 티타니아의 구시렁대는 소리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생 많았어.”
“주인님도 몸조심해요. 더 사고 치지 말고요.”
던전에서 나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기겁할 만한 일들을 벌였다며 티타니아가 투덜댔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4일째구나.’
던전을 벗어나고 연이어서 터진 일들 때문에 체감상으론 한 달이 넘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들은 이다음부터였다.
“사고는 이제부터 칠 건데.”
“……주인님을 붙잡고 밤새 이야기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일단 들어가 볼게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은 티타니아가 ‘난 왜 이런 주인님이 걸린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워터게이트로 들어갔다.
남은 구울 부대도 사체를 모두 챙겨서 던전으로 돌아가자 옹케스토스 왕궁은 고요해졌다.
남은 것이라곤 이현과 리코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세멜레와 피 웅덩이뿐이었다.
“아, 이게 남아 있었지.”
이현은 던전으로 보내지 않고 남겨둔 옹케스토스 왕의 사체를 툭툭 쳤다.
“그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기절한 세멜레가 혹시라도 일어나지 못하게 그 위를 깔고 앉아 있던 리코스가 물었다.
“경고용?”
이현은 땀에 젖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경고라니요?”
“우릴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이스메이아는 이미 한 차례 이현의 경고를 받았다.
그 경고에 이스메이아는 이현의 던전을 공격할 생각을 버렸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알려줄 수 있을까.”
“하, 하하.”
이현의 고민에 리코스가 난처하게 웃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잔인하게 하시려고.’
그때의 살벌했던 광경을 떠올린 리코스가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경악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암흑가의 두목이었다.
리코스의 통역을 듣고 난 이현이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아직 안 갔어?”
“가족들만 먼저 보냈습니다. 저는 사업장을 정리하고 가려고…….”
이현의 충고대로 가족과 부하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낸 두목은 뒷정리하기 위해 옹케스토스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왕궁에서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와 본 것이었다.
그런데 와서 본 것이 피바다가 되어 있는 왕궁이었다.
거기다 왕궁을 지켜야 할 수비병들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현의 발치에 놓인 사체는…….
“누굽니까?”
“옹케스토스의 왕.”
“네?”
한때 그의 고용주이자 작은 도시였지만 옹케스토스를 호령하던 왕이 머리가 으깨져 있는 꼴이라니.
두목은 숨이 턱 막혀왔다.
“보스께서 하신 일입니까?”
두목이 벌벌 떨면서 물었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왕궁을 뒤집어 놓을 줄이야.
“날 건드리려고 했을 때,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혹여 잘못 대답하면 자신의 머리도 으깨질까 봐 두목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은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기에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겁먹기는.’
이현은 웃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두목을 바라보았다.
“너 마침 잘 왔다.”
“시키실 일이라도……?”
“너 오늘부터 왕 노릇 좀 해라.”
“예?”
“왕 하라고.”
옹케스토스 왕실이 무너진 지, 30분 만에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정말 저 작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두목을 왕으로 세운 것이 불만인지 리코스가 투덜거렸다.
“그래도 한 도시의 암흑가를 다스렸던 사우레노르인데 불안해?”
“능력은 어떻게든 된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리코스는 이전부터 묘하게 두목을 견제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스라고 부르게 한 게 두목이라서 그런 건가?’
이현은 묘한 데서 충성심을 보이는 리코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 도시에서 뭘 하든 상관없어. 우리 던전만 건들지 않으면 돼.”
애초에 두목과 그의 조직에게 맡기려던 정보수집의 임무는 바다의 노인을 만나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그들을 이용해서 옹케스토스를 장악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데이터베이스]라는 스킬과 조직을 운영했던 경험이라면 오히려 그 무능한 왕보다는 더 잘 운영할지도.’
이현이 일전에 경고했던 선만 넘지 않는다면 의외로 제대로 된 왕이 될지도 몰랐다.
‘기대가 너무 큰가?’
이현이 기절한 세멜레를 짊어지고 리코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실레누스의 집에 도착했다.
“이현 씨!”
대문 앞에서 오매불망 이현과 리코스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나진이 서둘러 달려왔다.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다친 곳은 없어요?”
“보다시피 멀쩡해요.”
이현이 괜찮다는 듯 멋쩍게 웃었다.
사실 목숨이 위험한 고비도 있었지만, 이현은 걱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나진의 물음에 이현은 왕궁에서 벌어졌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질렸다는 얼굴로 나진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이현 씨는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제가 받은 대로 돌려준 거죠. 실망하셨습니까?”
이현이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나진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이 사건의 주범인 세멜레와 왕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만, 왕궁 수비병들까지 몰살시킨 것은 과도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현의 우려와는 달리 나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하셨어요. 제가 그 자리에 없어서 아쉬운걸요.”
나진이 진심 분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