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534)
그 곳은 중화의 서쪽에 있다 알려진 대륙이었으며 불교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또한 중화와는 이질적인 거대문명이 존재하고 있으며 범천 등의 서방신을 모시는 독특한 종교가 발달했다고 들었다. 또한 제갈사도 천축의 마도(魔道)는 굉장히 발달되어 있다고 말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었다.
‘ 가 보자.’
어차피 삼장의 흔적을 쫓게 된다면 천축에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후왕 본인의 입으로 삼장이 천축에서 뭔가를 말해줬다는 걸 암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탐색을 빨리 하기 위해서 청장고원에서부터 천축까지 먼저 길을 뚫어두기로 마음먹었다.
타다닷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뛰어서 서방까지 한 번 일주해본 이상, 천축까지 가는 게 두렵지는 않다. 내 경공속도로 달린다면 아마 머지 않아 천축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나는 고원에서부터 험난하기 그지없는 설산과 대맥을 헤치면서 계속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하루 정도를 계속 뛰었을까? 나는 어디인지도 모르는 고요한 산야에서 웬 이민족이 양을 키우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복색은 청장지역 사람들과 크게 달라서 아마 천축의 초입에 들어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 백웅. 너 도대체 어디 있냐?]제갈사가 순어구로 통신을 해 왔다. 나는 순어구로 대답했다.
[ 지금 천축에 가는 중이야.] [ ……]제갈사는 잠시 말이 없다가 킬킬댔다.
[ 크크크…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것 같으니까 일단은 쭉 가 봐라. 천축의 큰 도시에 도착한 다음에 내게 다시 연락해.] [ 알았어.]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나는 내심 가슴을 쓸며 계속 뛰었다.
타다닷
뛰고 또 뛰다가 잠시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자,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일대의 강한 영을 찾던 중 고대 무사의 영혼을 찾아서 불러들였다.
[ 나를 불렀는가?]“당신은 누구입니까?”
[ 나는 살라흐 앗 딘 님을 모시던 맘루크의 대장이다!]“이름은 없소?”
[ 난 노예출신이라서 없다!]살라흐 앗 딘?
맘루크?
영문을 알 수 없는 천축의 언어가 들리자 나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이국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천축의 큰 도시를 찾아가는 중이오. 천축에서 가장 큰 도시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시오.”
[ 가장 큰 도시라… 그 곳은 카이로다!]“카이로? 기억을 좀 보여주시오.”
스스스스…
자칭 맘루크 대장이 내게 기억을 전달했다. 그러자 나는 대략적인 천축 일대의 지도와 지형을 알 수 있었고, 카이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황당해서 말했다.
“… 여긴 천축이라기엔 너무 서쪽 아니오? 말로만 듣던 검은 대륙의 북부에 위치한거 같은데.”
‘검은 대륙’은 나도 제갈사에게 말로만 들은 장소로, 굉장히 덥고 미개한 대륙이라고 들은 바가 있었다. 천축보다 훨씬 서쪽에 있는 곳이기에 나는 단번에 맘루크 대장이 천축사람이라기엔 외지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 그런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내가 살던 곳에서 동쪽의 전장으로 와서 죽었기 때문에 이 곳은 타지(他地)다.]“뭐하러 동쪽의 만리타역까지 와서 죽었단 말이오?”
[ 나는 서양의 마도사와 괴수들이 쳐들어온 대전쟁에서 주군 살라흐 앗 딘의 지휘를 받아 적을 패퇴시킨 후 2차 동방 확장전쟁에 참전했으나 분하게도 전사했다!]“……”
뭔가 복잡한 천축의 역사가 개입된 것 같아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의 나로서는 알기도 힘들고 알 필요도 없는 역사였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천신경의 술법으로 불려왔으면 당신도 생전에 강력한 무사였겠지. 잠깐 몸을 빌려줄테니 일단 근방에 있는 도시에라도 데려다 주시오.”
[ 좋다!]타다닷
이윽고 맘루크 대장이 내게 빙의해서 뛰기 시작했다.
[ 엄청난 차크라군!! 그대는 반신인가? 인간의 차크라가 아니구나!]맘루크 대장이 크게 경탄하며 대번에 십여 장을 뛰어올랐다. 역시 그도 기를 익숙하게 다루는지 손쉽게 신법을 운용해서 달리는 듯 했다. 나는 그가 신법을 발휘하는 걸 보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무공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자 그가 금세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 요가를 통해 차크라를 운용하는 걸 말하는 건가? 차크라와 요가는 고대부터 상급무사들이 기본적으로 익히는 소양이다! 나는 브라만이나 요기 정도는 아니지만 생전에 열심히 무예를 수행했다. 그래서 차크라를 뿜어내어 내 신체의 전투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 그렇군.] [ 이래봬도 살라흐 앗 딘 님 휘하의 맘루크 중에서는 내가 가장 강했다!]나는 그의 말을 듣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모든 세상의 인간들이 기(氣)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서양에서는 카프트(Kraft).
천축에서는 차크라(chakra).
명칭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기’라는 힘을 이해하고 운용할 줄 알았다. 기는 중원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맘루크 대장도 생전에 기를 이용한 무예에 달통해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기 때문에 천신경에 불려나올 정도의 강력한 영이 된 것이다. 아마 중원으로 치면 절정의 최후반에 도달한 고수였으리라. 나는 방금 맘루크 대장이 했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했다.
[ 당신이 방금 서양의 마도사들이 쳐들어온 전쟁에 참여했다고 말했잖소. 그건 무슨 전쟁이었소?] [ 서양의 무수한 기사와 마도사들이 대군을 이루어 우리의 땅을 침범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맞서싸웠고 오랜 전쟁 끝에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사악한 신을 숭배하는 무리들이었으나 자신들의 성지를 수복한답시고 쳐들어왔다.]그는 약간 아쉬운 듯 말을 이었다.
[ 내가 그 전쟁에서 사자심왕에게 한칼을 먹어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이런 이역만리에서 죽을 일은 없었을텐데… 아무튼 성지를 지키는 전쟁이었다!] [ 성지?] [ 자세한 건 모른다. 나는 전쟁을 하는 군인이었으니 다른 자에게 물어봐라.]타다닷
그는 약 다섯 시진 정도를 계속 달렸다. 그리고 어딘가 거대한 도시에 도착했는데, 먼 곳의 언덕에서 그 도시를 쳐다보며 말했다.
휘이이잉
맘루크 대장이 천천히 내 몸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물러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심지어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 … 이봐, 나 일을 열심히 했으니까 정말 구원해 주는 거겠지?]응?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소리요? 구원이라니?”
[ 이 술법은 구원을 약속하는 거 아닌가. 그것 때문에 저승으로 가는 것도 거부하고 가슴졸이며 기다리고 있었거늘.]“……?”
[ 나는 브라만이나 요기가 날 구해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이국인이 구해주는구나.]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던 맘루크 대장이 밝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 으하하하. 아무튼 나는 구원받으러 간다!]번쩍
그의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현상은 천신경의 술법을 쓸 때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일을 끝마친 영혼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천신경의 술법에는 그 영혼들이 ‘어디로’ ‘왜’ ‘어떻게’ 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구원?
천신경의 술법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에게서 구원받는단 말인가? 그리고 브라만이나 요기라면 천축사회의 상위계급이나 요술사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들 또한 대라신선 전용술법인 천신경의 술과 비슷한 걸 사용할 줄 안다는 말인 걸까?
머릿속에 의문이 쌓였지만 나는 고개를 털었다.
“쳇. 생각해봤자 모르는거면 생각해 봤자지!”
일단은 눈 앞의 도시로 간다!
나는 바라나시로 들어가서 도시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서양과 달리 문물은 그렇게 발달한 것 같지 않았고 사람들이 중원과는 이색적인 복색을 입고 있었다. 도시 중앙에 왕궁이 있는 건 중원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왕궁쪽으로 가서 둘러보았지만 크게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경비병들이 조총으로 보이는 총기를 장비하고 있는 게 특이했다.
‘ 중원 말고는 다들 총을 쓰고 있는 건가?’
어쩌면 중원이 세계 문명발전의 대세에 늦은 게 아닐까?
나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며 비등을 썼다.
파앗
장령곡으로 돌아오자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금 꼭 해야할 일도 아닌데 꼭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거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하지만 일을 미리 해놓는 게 마음이 편해서…”
“뭐 됐다. 아무튼 천축으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면 된 거지. 어디에 도착했지?”
“바라나시.”
“호오, 제대로 갔군. 거기에 아마 베다가 있을텐데…”
뭔가를 중얼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천축 일은 지금은 더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미호를 동영에 데려다주고 와라.”
“미호를?”
“흑요석을 캐야할 거 아냐. 앞으로 흑요석이 필요할 일이 많을테니 흑요석 광산을 찾아서 지배하게 만들어야지.”
“아…”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네가 가져온 빈양남동의 백금을 미호에게 줘라. 아무리 현혹술을 쓸 수 있어도 막부의 쇼군과 교섭하려면 돈이 있는 편이 낫겠지. 그 백금으로 흑요석 광산을 사들이는 게 제일 무난하다.”
“그래야겠군.”
그러고보니 미호는 동영의 권력자였다. 미호가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면 앞으로 필요할 흑요석을 많이 공급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호를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는 장령곡에 돌아와서 수행을 시작해라. 수행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때부터 황궁을 견제하고 무명제사서와 전국옥새를 얻으러 움직일 거다.”
“알았어.”
그가 히죽 웃었다.
“최선을 다해서 널 도와주지. 그러니까 이번 생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원없이 수련이나 해 봐.”
00535 암천향(暗天鄕)
나는 미호를 동영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백금을 미호의 방에 가득 쌓아두자, 그녀는 흡족한 듯 백금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백웅. 이쪽 일은 맡기거라. 흑요석을 많이 캐서 주겠다.”
“잘 부탁해.”
나는 문득 생각나서 질문했다.
“음양사나 막부의 암살자들이 귀찮게 할 텐데…”
“걱정 마라. 지금까지는 귀찮아서 하지 않았지만.”
미호가 백금괴 한 덩이를 손에 집어들며 말했다.
“이거 5덩이 정도만 있으면 코우가(甲賀) 전체를 내 편으로 고용할 수 있다. 그들이 내 호위가 되어준다면 앞으로 암살이나 음양도 따위는 두렵지 않아.”
“코우가? 그건 닌자 아닌가?”
“이가류와 함께 최대의 닌자세력이지. 이능력(異能力)을 타고난 자들이 많다고 한다.”
미호가 저 정도로 자신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미호를 데려다준 후 나는 곧장 장령곡으로 복귀했다. 하려고 한다면 할 일이야 많겠으나 지금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련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오자 제갈사가 말했다.
“절대지경에 도달한 고수를 스승으로 삼아야 절대지경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그러니 이번 생에서는 이청운을 되살리자. 백련교주나 무사시는 스승으로 삼을 상황이 아니니까.”
나는 불안해서 말했다.
“괜찮을까? 흑패의 권능은 한 번밖에 쓸 수 없는데…”
제갈사가 핀잔을 줬다.
“지닌 게 많으면 잡념도 많아지는 법이지. 지금 너는 너무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되려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 어차피 안 되면 자살이나 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말고 가진 걸 팍팍 써.”
“……”
“목표가 수련이라고 하지 않았냐? 이번 생에는 끝을 못 보는 게 이미 전제되어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다른건 신경쓰지 마.”
안되면 자살이라니 너무나 내 목숨을 대충 말하는 제갈사였다. 하지만 그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고 제갈사가 말하는 거였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태산의 마을로 찾아갔다. 그리고 흑패를 써서 암천향의 밀림으로 가서 그를 대면했다.
[ 환영한다… 환몽의 땅에 각별한 자가 찾아왔구나…]“아.”
[ 말하라… 나에게 주어진 반전(反轉)의 권능으로…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삶으로 바꿀 한 번의 권리를 주겠노라… 그 누구라 할지도… 이 권능을 피할 수는 없다…]나는 저 존재를 몇 번째나 대면하는 중이었기에 복잡한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분명히 내게 신살의 의지를 생기게 할 정도로 재수없고 극악한 신이었지만, 동시에 내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도우미 중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 쳇. 할 수 없지…’
마음같아서는 당장 19번째 전생의 빚을 갚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최대한 저 놈을 이용해먹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청운을 되살려달라고 하기 전에 평소에 궁금해했던 걸 몇 가지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신이시여.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 하라…]생각해보니 눈 앞에 있는 놈도 천하에서 제일가는 신격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게 크게 과정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옛 지배자]들은 500여년 후에 찾아올 종언(終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종언에서 [계시]를 받는다고 했는데, 계시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꾸르륵
밀림의 지배자의 몸통 여기저기에 돋아있던 눈알이 깜박이며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인간이여.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가 뭐지…?]“궁금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옛 지배자]는 만물을 초월하는 막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으니 뭔가에 매달려 탐욕스러워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죠. 무엇 때문에 그 계시를 갈망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 흐흐흐… 신의 비밀을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실로 흥미로운 자로군…]두웅
밀림의 지배자가 갑자기 날개를 팔락여서 조금 떠올랐다. 여태껏 이런 반응은 지난 회차의 죽음 막바지에서밖에 볼 수 없었으므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내 쪽으로 조금 다가오며 말했다.
[ 흥미로워… 크흐흐.]나는 그가 말할 때마다 엄청난 마력과 권능이 느껴지는게 부담스러워서 힘겹게 대꾸했다.
“종언이 다가온다는 건 이 세상의 웬만한 존재라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게 그렇게 신기해하실 일입니까?”
[ 내가 신기해하는 건 두 가지 이유지…]그 존재가 허공에서 멈춰서며 눈알을 내 쪽으로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