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2
2화. 미안해, 누나
피로 흥건한 소파.
그 밑으로 흘러내린 피가 바닥까지 적시고 있다.
현장을 보던 박인섭은 감식반이 알려준 정보를 적은 수첩을 빼들었다.
그의 입을 바라보는 선배, 강정식 때문이었다.
“인섭아, 감식반에 확인해봤어?”
“예, 선배님. 겉으로 보기에 피해자에게는 두 개의 상흔이 있었다고 합니다. 후두부에 둔기로 가격당한 타박상과 왼쪽 목덜미의 자상입니다. 자세한 건 국과수에서 부검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직접적인 사인은 어느 쪽인 것 같데?”
“자상으로 보인답니다. 경동맥을 찔린 탓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흐음······”
강정식은 뒷짐을 지고 현장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계속 말해보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흠흠, 자수한 용의자의 진술에 따르면 살해도구인 과도는 미리 준비해서 소파 밑에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와중에 찔렀고요.”
“용의자가 몇 살이라고 했지?”
“열일곱 살입니다.”
“그러니까 고1이 강간을 당하면서 소파 밑의 과도를 꺼냈고, 피해자의 경동맥을 정확하게 찔렀다?”
“네.”
“흐음, 뭔가 좀 이상한데……”
강정식은 진열장 앞에 서서 말을 이었다.
“둔기는 여기 빠진 자리에 있던 수석인가보네, 맞아?”
“네, 상흔과 대조해보니 일치했고 피가 묻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 여자애, 공범에 대해서는 말 안 하던가?”
“혼자 했다고 합니다.”
“수석에 대해서는 뭐래?”
“진열장에 있던 게 저절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강정식은 피식 웃고는 진열장에서 등을 돌려 소파까지 거리를 보았다.
성인 남자의 보폭으로 딱 한 걸음 정도.
그리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석이 자연적으로 굴러떨어졌다면 소파까지 갈 수 없는 거리이기도 했다.
“공범이 있었어. 그놈이 강간 중이던 피해자를 수석으로 내리쳤고, 그 틈에 공범이나 용의자 중 한 명이 칼로 목을 찌른 거야.”
“선배님, 저도 그렇게 생각되긴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CCTV요.”
박인섭은 수첩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고아원에 유독 CCTV가 많더라고요. 아니, 실제로는 몰카라고 해야겠죠. 화장실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까요. 피해자 그 X새끼가 겉으로는 선량한 사회복지가 행세를 하면서 온갖 변태 같은 짓은 다 한 모양입니다. 여하튼 그걸 확인한 결과 사망추정시각을 전후로 원장실에 접근한 사람은 용의자와 피해자를 제외하고 딱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놈이 공범 아냐?”
“아닙니다. 복도 CCTV를 보면 원장실 앞에서 안을 살펴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여덟 살짜리 어린앱니다. 들어왔더라도 진열대까지 손이 닿지도 않았겠죠.”
“창문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미리 들어와서 숨어있었을 수도……”
강정식은 말끝을 흐렸다.
원장실 내부에 숨을 곳이라고는 집무용 책상 아래 쪽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림막도 없이 휑한 저곳에 사람이 숨어 있었다면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여자애를 강간하기 전이었다면 더 철저하게 주변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럼 누가 수석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다는 거지······ 그 꼬마는 못 봤대?”
“여자애와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저절로 돌이 굴러떨어졌다고.”
“나참, 그게 말이 되냐고.”
강정식은 머리를 박박 긁었다.
골치 아플 때 나오는 그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돌겠군. 미심쩍은 걸 보고서에 그대로 썼다간 공범을 잡으라고 할 거고, 그렇다고 수사를 진행하기엔 증거도 없고 너무 깔끔하잖아.’
CCTV가 조작이 아니라면 괜히 공범에 대해 언급했다가 잔소리나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삐걱. 삐걱.
그때 발밑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그의 귀에 거슬렸다.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니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누군가가 접근했다면 이 소리를 들었겠지. 아무리 그 짓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말이야.’
강정식은 확인 차 원장실 내부를 몇 바퀴 더 돌았다.
어디를 걸어도 삐걱거리는 소리는 발생했다.
크고 작음이 있을 뿐, 공중을 날아다니지 않고는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섭아.”
“네.”
“마룻바닥 소리 들리지? 공범은 없어. 그러니까 용의자와 목격자 말대로 수석이 저절로 떨어졌다고 보고서 적어.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진열장과 소파 사이의 거리에 대한 건 빼고.”
“예? 하지만······”
박인섭의 표정이 굳었다.
마음속에 걸리는 게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삐걱. 삐걱.
강정식은 직접 보여주기 위해 체중을 실어 진열장 앞 마룻바닥을 눌렀다.
발끝에 힘을 준 채 반복해서 누르자 진열장이 들썩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여?”
“……”
“피해자 그 X새끼가 워낙 힘이 좋았던 거야. 그러니 그 짓을 하면서 바닥이 눌렸고, 진열장이 흔들리면서 수석 하나가 반동을 타고 소파까지 날아온 거지. 어때?”
억지가 섞였음은 강정식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다른 수석은 가만있었는데 그것만 반동을 타고 여기까지 떨어졌다고요?”
“그 자리만 힘을 많이 받았나보지! 국과수 뺨치게 설명을 해주는데 못 알아듣겠어?”
“……”
“그러고 보니 너 인마, 모쏠이라고 했지?”
“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요?”
“모쏠이니까 이해를 못하는 거잖아.”
“선배님!”
박인섭이 목소리를 높이자 강정식은 이때다 싶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검지와 중지가 후배의 눈깔을 향한 채였다.
“어디 하늘 같은 선배한테 도끼눈을 떠? 팍씨!”
“……”
“그리고 인마, 죽어도 싼 쓰레기가 뒤졌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너 고아원 애들 못 봤어? 폭행에다 성적학대까지 온갖 개짓거리는 골라서 다 했더만.”
“언제는 수사할 때 감정을 배제하라면서요.”
강정식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가? 언제?”
“……윽.”
“아무리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그렇지. 형사도 사람이야 인마. 넌 애들 그 꼴을 보고도 감정이 배제가 되냐?”
박인섭은 한숨만 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자수한 여자애, 열일곱이라고 했지?”
“……네.”
“휴우, 세상이 X발 왜 이렇게 X같냐. 그 꽃 같은 나이에 강간, 살인이라니……”
강정식은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말을 이었다.
“인섭아, 계획 말고 우발적인 걸로 하자.”
박인섭은 반박하려다 멈칫했다.
선배의 딸이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
살인사건과 더불어 밝혀진 미소고아원의 실태.
한동안 세상이 시끄러워졌고, 고아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간의 지옥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한 끝맺음이었다.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곳곳의 기관으로 맡겨졌다.
나 역시 국가에서 관리하는 보육원으로 가게 되었다.
모든 일이 너무 정신없이 진행되었기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늘 오전 10시, 미소고아원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한모 양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한설아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워낙 어려운 말이 많아 왜 누나가 저 자리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살인자가 되어 있었고, 살해방법이 칼로 찔렀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푸욱하는 소리가……’
한설아였던 것이다.
그녀도 나처럼 원장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고.
‘너무 안일했어.’
제대로 마무리를 했어야 했다.
그 정도 돌에 뒤통수를 맞으면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한설아가 직접 칼을 든 것이고.
나는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이 엉뚱하게 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여겼다.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한 내 탓이야.’
나는 뉴스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누나.”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거라 다짐할 뿐.
***
15년 후,
서울 주택가의 어느 골목.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그 시간, 편의점만이 환하게 밤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고, 주변은 적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알바생 최태현은 느긋하게 스마트폰으로 너튜브 방송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만취한 상태였다.
알바생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X발, 저 진상새끼 또 왔네.’
인근에서 유명한 주정뱅이였다.
술만 얌전히 먹으면 또 모르겠는데 어떤 때는 폭력적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취했다는 핑계로 온갖 행패는 부리는 쓰레기 같은 놈.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야, 알바! 가서 쐬주 서너 병 가꼬 와.”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술은 더 판매가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돈……돈, 주면 될 거 아냐!”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 원짜리 동전을 서너 개를 꺼내 카운터 위에 던졌다.
동전은 카운터 위를 구르다 못해 바닥에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휴우, 안 되니까 그만 나가주세요.”
“왜? 부족해? 나머지는 내일 갖다 줄 테니까 가꼬 와.”
“……”
“아, 가꼬 오라니까! X새끼가 지금 사람 무시해?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최태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반말과 욕설에도 참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결국 주정뱅이는 갈지자로 걸어가더니 기어코 술 두 병을 꺼내왔다.
“간다, 쉐끼야.”
“휴우, 안 된다고 했잖아요!”
최태현은 주정뱅이에게 다가가 막아섰다.
“아까 돈 줬잖아! 이 쉐에끼가 진짜!”
“그 돈으로는 한 병도 못 사니까 술 주세요, 빨리.”
“나머지는 내일 준다잖아! 말귀를 못 알아 처먹냐, 카악 퉤!”
“하······”
그때였다.
-띠링.
문이 열리며 또 한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머리에 후드를 눌러 쓴 남자였다.
그는 잠시 상황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의 물음에 최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주정뱅이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최태현은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주정뱅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거 어서 주세요.”
“카악, 퉤!”
“아씨······”
“뭐? 씨? 이 X부럴 노무 새끼가 어디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게! 야이 새끼야, 너 몇 살이야?!”
주정뱅이는 소주병을 거꾸로 들고 내려칠 듯 위협했다.
“어, 어······”
최태현이 뒷걸음질 치자 주정뱅이는 더 의기양양해졌다.
“X도 아닌 새끼가……카악, 퉤!”
“아 진짜, 미친 또라이 같은……”
“뭐 인마!”
소주병이 다시 올라간 그때였다.
후드를 쓴 남자가 오만원권 지폐 두 장을 내밀며 말했다.
“사장님. 저분 들고 있는 소주, 제가 계산할게요.”
“네?”
“이러다가 일만 커지니까 이걸로 계산하고 그만하세요.”
그 말에 주정뱅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주병을 겨눴다.
“끄윽, 당신이 뭔데 대신 계산해? 돈 많다고 자랑해? X발!”
“네, 돈 많아요.”
“……뭐?”
남자는 냉장쇼케이스 앞에서 도시락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너비아니? 치킨? 뭐가 좋으세요?”
“근데 이 새끼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니면 둘 다 드실래요? 빈속에 술 드시지 말고 안주도 같이 드세요. 사장님, 이것도 같이 계산해주시고요 레쎄 한 갑도 주세요. 아, 혹시 담배도 하세요?”
“……”
주정뱅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피우시는데요?”
“……나도 레쎄.”
“사장님, 레쎄 한 보루 더 계산해주세요.”
최태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계산을 하며 그를 힐끗거렸다.
‘나야 혹 떼서 좋긴 한데…… 저런 놈한테 돈을 왜 쓰는 거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
최태현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