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1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11화
균열 안으로 (1)
“뭐? 이걸 하자고?”
차연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미친 짓에도 정도가 있었다.
지구 어디서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균열을 3일 안에 찾아서 닫아야 한다니.
아무리 가디언즈가 세계의 여러 국가를 통제할 권력이 있다지만 성공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인데 단순히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찾을 수 있을 리가.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균열의 장소를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어.”
강우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균열의 위치 자체를 알고 있다.
‘처음 설아를 만난 E급 게이트.’
고블린들이 주로 서식하는 그 게이트야말로 균열이 생겨난 위치가 분명했다.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게이트의 위치를 알았냐는 질문에 ‘내가 사실 예언의 악마거든’이라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균열은 내가 찾으면 안 돼.’
다른 사람의 손에 찾아져야 한다.
그래야지만 완전히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형님, 어떻게 균열의 장소를 특정하실 수 있다는 겁니까?”
김시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강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훈이, 너도 게이트에서 마물이 나타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아… 예, 물론입니다.”
몸속에 마석(磨石)을 품고 있는 몬스터와는 달리, 마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괴물들.
그 괴물들은 게이트 내에서 변종 몬스터라고 불리며 일종의 ‘재해’ 취급을 받고 있다.
마물들은 기본적으로 그 게이트 등급과 상관없이 나타난다.
즉, C급 게이트에 오천, 육천 지옥급 마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다는 것.
심지어 어렵게 잡아도 값비싼 에너지원인 마석조차 떨어뜨리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이 가장 기피하는 존재가 되었다.
마물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온 게이트는 설사 그 마물이 토벌됐다 해도 일부러 가지 않을 정도.
“예언의 악마가 지옥에서 지구로 넘어왔기 때문에 마물이 나타났다고 가정하면, 그 균열이란 것의 영향일 가능성이 커.”
“아, 그렇다면.”
김시훈은 강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듯 눈을 빛냈다.
“마물 출현 보고가 있었던 게이트 중 하나에 균열이 있겠군요.”
“그렇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둘 사이에 확실한 연관성이 있는지는 강우 자신도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를 마치 진실처럼 포장해서 밀고 나가는 것.
물론,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물 출현이 확인되지 않은 게이트도 많잖아. 지구에 있는 게이트를 모두 확인한 것도 아니고.”
차연주가 그 허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녀의 말대로, 마물 출현이 확인된 게이트는 플레이어의 왕래가 자주 있는 게이트에 불과했다.
아직 지구는 격변의 날 이후 몬스터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복구하지 못했고, 플레이어의 출입이 전혀 없는 게이트 또한 수백 개가 넘었다.
리스크가 큰 작전인 이상, 단순한 확률에 기댄 작전을 진행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예상했던 반박이었던 듯, 막힘없이 말을 이었다.
가이아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가이아 씨, 그 지구의 수호라는 것을 3일이 아닌 3시간만 작동해 달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 그건 아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 3시간 안에 균열을 찾지 못하면, 이 작전은 포기하는 거로 하죠.”
“…….”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시훈과 차연주, 우리엘은 고민에 잠겼다.
“3시간 정도라면 외계(外界)의 간섭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 말씀하신 기한이 3일이니, 3시간 정도라면… 아예 영향은 없지 않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이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작 3시간 안에… 찾을 수 있을까요?”
“찾아야죠.”
담담히 답했다.
“예언의 악마와 그 수하들이 점점 몸을 키우는 동안, 손 빨며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강우 말에 찬성이야.”
청발의 소년이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세라핌 님이 무슨 이유로 예언의 악마 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들의 의도되고 있는 거라면, 이건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안 돼.”
아직 세라핌이 악마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최상급 신격을 지닌 여신의 계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벌어야 해.’
지금 이 상황을 미카엘에게 전달하고, 대책을 세우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의 수호가 복구되어 가이아의 힘이 어느 정도 돌아온다면 그 시간을 벌기는 충분할 것이다.
“…….”
가이아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녀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3시간이 넘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 지구의 수호를 가동시켜 달라고 가이아 님에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예.”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몸을 돌렸다.
‘그럼.’
작전을 준비할 시간이다.
* * *
이번 작전을 준비함에 있어 딱히 강우가 직접 움직여야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현재까지 마물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온 게이트들을 대상으로 가이언즈의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나눠 파견되었다
그리고 균열을 발견하는 즉시 지원이 가능하도록 수호의 전당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마도구를 파티마다 지급했다.
물론, 강우가 처음 도착했던 E급 게이트에도 파티가 파견된 상태.
굳이 강우가 말하지 않아도 그 E급 게이트는 마물이 5번 이상 출현한 위험 게이트로 지정되어 있어 김시훈이 직접 그 게이트로 향하기로 했다.
‘시훈이라면 균열을 찾지 못하고 헤맬 일도 없으니.’
게이트마다 넓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균열이 나타나도 찾지 못할 경우가 있었으나, 김시훈이라면 그런 걱정은 없었다.
이기어검을 활용해 제한적이지만 공중까지 날 수 있는 게 김시훈이었으니까.
“자, 그럼.”
강우는 작전의 개시 시간을 기다리기에 앞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중지에 끼워져 있는 검은색 반지에는 다섯 개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중 세 개 희미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네 번째 열쇠를 얻기 위해서는….’
강우는 한설아가 타천했을 때 떠올랐던 메시지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상태창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해의 네 번째 열쇠 ‘탐욕(貪慾)’을 얻기 위한 선행 퀘스트를 수행해야 합니다.] [선행 퀘스트: ‘빛을 탐하는 악마’] [성력과 마기를 조합한 기술을 한 개 이상 만드시오.]“와, 시바. 퀘스트 이름 봐라, 진짜.”
몇 번을 봐도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찌그러져 사라질 것 같다.
퀘스트의 내용을 보자 강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처음 퀘스트를 봤을 때, 두 번째와 세 번째 열쇠를 얻었을 때보다 오히려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성력이든 마기이든, 몸 안에 자리 잡은 기운을 제어하는 능력만큼은 자신을 따라올 존재가 없을 거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신조차 그의 어처구니없는 마기 제어력에 다시 마해의 심연으로 처박혔을 정도로 기운을 제어하는 그의 능력은 경이 그 자체였다.
심지어 그 제어력은 한설아와의 동침을 통해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도중.
‘그런데.’
막상 직접 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성력과 마기를 조합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차가운 불꽃을 만들라는 급의 개소리였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동시에 다루는 것은 가능하다.
마기 따로, 성력 따로 기술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개를 합쳐 기술을 만들라는 건.’
불가능하다.
위력이 어쩌고를 떠나 둘이 섞으려고 하는 순간 서로 강하게 반발하는데 뭐 어쩌란 말인가.
“짜증 나네, 이거.”
대체 깨라고 만든 퀘스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활용법이 있긴 한데.’
딱 한 가지.
두 개의 기운을 합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두 기운을 섞지 않고, 그냥 강하게 충돌시키는 것.
그러면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공격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게 기술이냐는 거지.’
말만 번지르르했지 그냥 서로 상극인 화학약품을 한 곳에 쏟아놓고 집어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시스템은 이것을 ‘기술’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일단 접어두는 방법 외에는 없나.”
솔직히, 방법을 모르겠다.
마기 제어력을 더 올리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마기 제어력이 그렇게 쉽게 오른다면 탈태라는 눈물의 똥꼬쇼를 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탈태랑 좀 증상이 비슷하네?”
마기와 성력을 억지로 섞으려고 했을 때.
탈태를 했을 때처럼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며 끔찍한 고통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한설아가 그 모습을 봤다면 바로 다시 타천하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끔찍한 모습.
‘마기와 성력을 섞을 때 나오는 게… 탈태랑 비슷하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떠오를 것처럼 떠오르지 않는, 답답한 감각.
“쯧.”
강우는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작전을 검토하면서, 가이아의 연락을 기다렸다.
-끼익.
“강우 씨.”
“응, 임자.”
“거실에 다 모였어요.”
“알았어.”
강우는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원래 강우가 맡은 역할은 중동에 있는 SS급 게이트 안에서 균열이 나타나는지를 조사하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강우는 그쪽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균열은.’
김시훈이 있는 E급 게이트에서 발견될 테니까.
“왕이시여. 부름을 받고 이 발록, 왕의 검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왔….”
“강우!”
“강우니이이이임!!”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던 발록의 말을 자르며 한 소녀와 (여)인이 달려들었다.
“오랜만이네. 다들 수련은 잘했어?”
“강우, 나 정말 열심히 수련했어.”
에키드나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강우는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흐아아앙! 보고 싶었어요, 강우 님!”
“어, 어어.”
부담스럽게 달려드는 할키온을 슬쩍 밀어냈다.
할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높게 뛰어 강우의 목에 대롱대롱 달라붙었다.
강우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
‘시바.’
한설아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 가는 것이 보인다.
“끄윽… 끅. 가, 강우 님도 저, 저 보고 싶었죠?”
‘아니.’
“헤, 헤헤헤. 오, 오랜만에 저, 저랑 주무실래요?”
‘너 그러다 죽어.’
나 말고 저기 식칼을 쥐러 간 임자한테.
“크흠.”
강우는 달라붙는 할키온을 떼어내며 헛기침했다.
한설아의 눈에 빛이 점차 돌아왔다.
그녀는 손에 쥔 식칼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곧 작전이 시작할 상황이네. 다들 모여봐. 설명해 줄 게 있으니까.”
강우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 한설아와 발록, 에키드나와 할키온이 섰다.
김시훈을 비롯한 가디언즈와는 달리, 강우의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존재들.
이번 균열을 닫는 작전을 수행할 멤버였다.
“리리스랑 발자하크는?”
“수호의 전당 쪽에서 정보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발자하크는 루시스를 감시 중입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 넌 전에 말한 거 성공했어?”
“예, 이제 인간의 몸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했습니다.”
그는 오른손에 검은 갑주, 패왕갑을 만들어내며 말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너희는….”
이번 작전의 개요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우우웅!
강우의 통신 수정이 울렸다.
김시훈에게 온 통신이었다.
-형님!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보라색 균열이 나타났습니다!
“알았어.”
강우는 짧게 답한 후, 고개를 돌렸다.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