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0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01화
불나방 (1)
문이 열렸다.
벌어진 틈으로, 검은 바다가 범람했다.
아득한 힘이 끓어올랐다.
한계까지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전신에 강렬한 압박이 느껴졌다.
-찔꺽.
피부가 검은 점액질로 변했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강우는 몸을 숙였다.
허공을 짓밟듯, 거칠게 발을 굴렀다.
-터엉!
검은 파동이 원형으로 퍼졌다.
더 이상 그의 몸에서는 찬란한 황금빛은 보이지 않았다.
무저갱과도 같은 짙은 어둠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야 가면을 벗었군.”
태무극은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우주였기에 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내공을 섞어 말하면 우주에서도 의사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태무극은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괴물을 응시했다.
‘저것이.’
마해의 괴물의 진짜 모습.
문을 연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물의 몸이 순간적으로 검은 점액질로 변하자, 처음 괴물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쓰으으읍.”
신성이 담긴 내공을 사용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실제 산소로 하는 호흡과는 다르지만, 효과 자체는 비슷했다.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공답보(虛空踏寶)를 사용해 몸을 움직였다.
-촤악!
길게 늘어난 듯한 착각과 함께 태무극의 몸이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공간 자체를 이동하기라도 한 듯, 눈 깜짝할 사이에 강우의 앞에 도달했다.
‘천룡난무.’
검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태무극의 검이 쪼개졌다.
수십, 수백, 수천.
우주의 공허를 채우듯, 검푸른 불꽃이 주변 전체를 휩쓸었다.
-촤악! 촤아아악!
강우의 몸이 태무극의 검에 반으로 갈라졌다.
반으로 갈라진 그의 몸을 다시 반으로, 그 반에서 또 반으로.
용이 난동을 피우는 것처럼 무참하게 강우의 몸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찔꺽.
“왜 그래.”
수백 개의 조각으로 찢어졌던 강우의 몸이 검은 점액질로 변했다.
언제 잘렸냐는 듯, 강우는 멀쩡하게 돌아온 팔을 뻗었다.
손바닥이 길게 찢어지며 거대한 입이 나타났다.
태무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용없는 거 잘 알고 있잖아.”
강우는 활짝 웃으며 앞으로 뻗은 팔을 횡으로 휘둘렀다.
찢어진 손바닥에서 나타난 거대한 입이 태무극의 몸을 노렸다.
태무극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괴물의 이빨과, 검푸른 검이 격돌했다.
━━━━━━!
소리는 없었지만, 그 충격만큼은 순간적으로 공간을 비틀 정도로 강렬했다.
생물을 규격을 아득히 초월한 괴물들의 격돌에 끔찍한 열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태무극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불편하군.’
신화 시절부터 아득할 정도로 많은 전투를 경험해봤지만, 우주에서 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발을 디딜 대지가 없다는 것은 둘째치고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태무극은 가늘게 눈을 떴다.
다른 것은 어떻게 참을 수 있었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무인인 그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전장을 옮겨야겠군.’
태무극은 물구나무를 서듯 몸을 뒤집었다.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박찼다.
유성이 떨어지듯, 빛의 꼬리가 길게 늘어지며 태무극의 몸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어딜 가려고.”
떨어지는 태무극을 따라, 강우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검은 점액질이 그물처럼 넓게 펼쳐지며 태무극을 향해 쏘아졌다.
“크읏.”
태무극은 빠른 속도로 쫓아오는 검은 점액질 때문에 땅에 착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검을 들어 올렸다.
-화르르륵!
검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검이 그를 향해 쏘아지는 검은 점액질을 갈랐다.
-철퍽!
대기권 안으로 들어온 덕분일까.
검으로 점액질을 가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들렸다.
태무극은 더 이상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터엉!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발아래 깔린 짙은 구름이 원형으로 갈라졌다.
검을 들어,
휘둘렀다.
괴물의 목을 베었다.
팔과 다리를 잘랐다.
심장을 찔렀다. 내장을 도려냈다.
-찔꺽.
“소용, 없, 다니까.”
괴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태무극은 괴물을 바라보며 작게 코웃음 쳤다.
“소용없지 않지.”
조롱하듯 말을 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불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김시훈을 이용해 괴물의 정신을 뒤흔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괴물의 불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너.”
이내, 입가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알고 있었구나?”
개문의 약점이 무엇인지, 태무극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죽지는 않지만 죽으면 죽을수록 이성이 마해에 집어 삼켜진다는 사실을.
제어력이 갉아 먹혀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하아.”
열락에 찬 숨을 토했다.
짜릿한 전율과 함께 심장이 맥동한다.
“그래, 그래야지.”
그의 불사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그는 싸우는 것 자체를 포기할 것이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은 무의미했으니까.
하지만 그 불사의 맹점을 알고 있다면,
그 불사가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겠지.’
강우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쩌적.
턱 끝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반으로 갈라진 몸에서 검은 점액질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날카로운 이빨과, 쩍 벌어진 입만으로 이루어진 점액질의 줄기가 태무극을 노리고 쏘아졌다.
“쓰으으으.”
태무극이 숨을 들이쉬었다.
허리춤에 찬 검집에 검을 도로 넣으며, 몸을 낮게 숙였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양발의 간격을 벌렸다.
전신의 내공을 한 점에 집중했다.
‘이번 공격으로.’
결판을 낸다.
“천룡멸섬(天龍滅閃).”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검푸른 빛이 세상을 반으로 갈랐다.
해수면을 넘어 파도가 밀려오듯, 검의 궤적을 따라 검푸른 빛의 파도가 밀려왔다.
용의 형태로 만들어진 검푸른 빛이 검은 점액질을 집어삼켰다.
-화르르르륵!
검푸른 빛에 집어 삼켜진 검은 점액질이 잿더미로 변해 흩뿌려졌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때까지.”
파앙!
허공을 박차며, 질주했다.
반으로 갈라진 괴물의 몸에 검을 쑤셔 박았다.
태무극은 차갑게 빛나는 눈으로 괴물을 노려보았다.
“죽여주마.”
헤.
괴물의 입가가 벌어졌다.
검푸른 불꽃에 휩싸인 몸으로, 괴물은 팔을 뻗었다.
녹아내리고 재생되고를 반복하는 괴물의 팔에서는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든지.”
“…….”
이어지는 괴물의 대답에, 태무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개를 들어 괴물의 표정을 살폈다.
괴물은 몸 전체가 불에 집어 삼켜지고 있는 와중에도,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는 듯 활짝 웃고 있었다.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는 것처럼.
죽음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처럼.
‘마치.’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미친놈.”
태무극은 다시 한번 낮게 중얼거렸다.
미쳤다는 말 외에, 정확하게 괴물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태무극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그의 속을 뒤틀었다.
-촤악!!
검을 움직였다.
괴물의 몸을 베었다.
검은 점액질로 변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전에, 검을 다시 휘둘렀다.
-촤악! 촤아악! 촤악!
베고, 베고, 베고, 베고, 베고, 베고.
언제 이토록 검을 휘둘렀는지 알 수 없게 될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괴물의 몸이 조각조각 찢겨나갔다.
-찔꺽.
더 이상 괴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검은 점액질로 변한 괴물의 몸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조각조각 찢겨나간 그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으, 아.”
강우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세어 나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몸이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온몸이 갈라지며,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남아 있는 이성이 빠른 속도로 마해에 갉아 먹히고 있었다.
‘역시.’
뜨거운 눈빛을 태무극에게 향했다.
‘강하네.’
그가 마주한 절망은,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손을 쓸 틈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죽음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해(魔海)에 집어 삼켜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때?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 때마다 들리는 목소리였다.
머리가 녹아내릴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
이성이 갉아 먹힌 자리에, 욕망이 차올랐다.
강렬한 허기가 몸을 태웠다.
불에 타는 것 같았다.
아니, 불이 되는 것만 같았다.
강우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자.’
저 절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눈앞에 마주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을.
검에 조각조각 찢겨가는 와중, 사고를 이어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무런 리스크 없이 태무극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짊어져야지.’
몸을 태우는 불꽃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닿을 수 없다.
양팔을 벌렸다.
손뼉을 치듯, 두 손을 겹친다.
‘혼돈.’
폭(爆).
━━━━━━!!!
소리조자 집어삼키는 끔찍한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크윽!!”
폭발에 휩쓸린 태무극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휘두른 검이 끔찍한 열기에 녹아내렸다.
만약 검을 휘둘러 폭발을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녹아내린 것은 자신의 몸일 것이다.
태무극의 등골을 타고 오싹한 공포가 퍼졌다.
고개를 들어 괴물을 바라보았다.
“크학, 큭, 크흐윽!”
공격을 받은 것은 태무극이건만, 상태는 오히려 강우 쪽이 심각했다.
강우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찬 비명을 토했다.
개문 중에 사용한 혼돈 스킬.
안 그래도 모자란 제어력이 순간적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시야가 일그러진다.
한계에 도달한 이성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검은 바다가 그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쿨럭.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너는….”
태무극은 가늘게 뜬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았다.
“그렇군.”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나방 같은 놈이었군.”
방금 전 폭발이 괴물로서도 얼마나 큰 위험을 짊어졌는지는, 지금 괴물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놈은, 죽음을 각오하고 방금 전 폭발을 일으켰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미친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셀 수 없는 전장을 넘어온 그조차도, 죽음을 각오한 동귀어진을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
강우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불나방 같은 놈이라니.
언젠가 리리스에게 들었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왕님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아요.
그녀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태무극 또한 같은 말을 했다.
“푸흨.”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그것은 더 이상 손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마해에 잠식된 그의 신체는 검은 점토를 어설프게 짓뭉갠 듯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다니.
마치 죽기 위해서, 죽는 것만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 않은가.
“뒤지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새끼야.”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죽으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도,
죽음을 갈망하며 목숨을 건 적은 없다.
들어 올린 손을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그렇다면, 어때?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린다.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죽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불이 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다.
온 세상을 집어삼킬, 거대한 불이 되기 위해.
-문을 하나만 더 여는 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입가를 올렸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
열자.
두 번째 문이 열렸다.
-띠링.
[시스템이 오류를 확인합니다.] [플레이어 오강우의 신명(神名)에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신명을 확인합니다.] [플레이어 오강우에게 ‘탐식(貪食)’의 신명을 부여합니다.] [신격이 중(中)급에서 최상(最上)급으로 격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