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01)
301화
3.
전쟁이 끝나고 2주 후.
레오와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교단의 재정비를 맡겼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우리 교단에서 신경 쓸 일은 크게 없었다.
점령 지역을 비롯한 구호가 필요한 지역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게 끝.
그 정도 역할은 간부들에게 일임해도 충분했다.
에덴 출신 간부들은 모두 전쟁 이후 수습 기간을 경험했던 인물들.
그들만 한 적임자는 또 없었다.
아, 나는 그럼 뭐 하고 있냐고?
“리멘님은 지금쯤 어디 계실까요?”
“계속 찾으러 다녀 봐야지.”
“아니, 이래서 언제 찾으시겠다고.”
“그러니까요. 다 좋은데, 형님 왜 저까지 데리고 다니십니까? 저도 가족들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구요.”
루나, 자현이를 데리고 전국 팔도를 유랑 중이다.
리멘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찾는 이유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다.
“리멘이 소멸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작은 편린이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게 어디에 있을 줄 알고.”
“이러다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겠어요.”
루나는 나와 함께 산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필요하다면 그럴 거야.”
루나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리멘의 신성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루나라면 리멘의 흔적을 감지하기 수월할 테니까.
일종의 탐지기 역할인 셈이다.
그리고 자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일단 몸 쓸 친구는 하나 필요하잖아?
에이든을 데리고 다니자니 시끄러워서 싫고.
자현이가 딱 적격이었다.
“부모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잖니, 자현아. 얼굴 좀 펴라.”
자현이를 데리고 다니기 위해 일부러 자현이의 부모님께 직접 가서 부탁을 드렸다.
자현이와 함께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러자 자현이 부모님이 그냥 ‘얼마든지 데려가 쓰세요.’라고 하시더라.
두 분이 나를 정말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다.
“나도 이제 제대로 귀환자 라이프 좀 즐기려고 했는데, 형님 때문에 이게 뭡니까?”
“그래서 싫어?”
주먹을 슬쩍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그러자 자현이가 크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형님이 활기를 되찾으신 것 같아서 동생으로서 정말 기쁩니다.”
“활기?”
“전쟁 끝났을 때 형님 표정 생각하면 아직도 떨린다니까요. 나 형님이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다니까? 산송장도 그것보단 생기 넘쳤겠다.”
희망이란 게 원래 그렇다.
아무리 희박한 희망이라도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그래도 자현이 이 녀석이 내 생각을 조금은 해 주는구나.
자현이는 풀을 밟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요새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왜, 진짜 천마가 되려고?”
“천마가 돼야 형님이 그런 표정 지을 때 몇 대 쥐어 팰 거 아닙니까?”
“새끼…… 기특하네.”
“기특하다는 소리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스승 밑에서 자랐는지는 몰라도 아주 그냥 괘씸한 놈이다.
나를 쥐어 패려고 힘을 기르겠다니?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슬쩍 루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쪽에서는 딱히 느껴지는 거 없지?”
“예, 그러네요. 힌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거야 원 맨땅에 헤딩 같아요.”
“그래서 싫냐?”
“그럴 리가. 아직 리멘님께 효도도 제대로 못 해 드렸는데, 차가운 바닥에 계시게 할 수는 없죠.”
“효녀다, 효녀야.”
이곳 부산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은 싹 한번 훑었다.
리멘 교단의 교세가 가장 강력한 지역부터 훑을 계획이다.
대한민국은 끝냈으니, 이제 다음은 일본.
격전지였던 베이징 주위는 이미 탐색을 끝냈다.
제발, 어디에라도 흔적이 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내 평생을 리멘을 찾는 데에 바쳐도 좋으니까,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리멘의 얼굴 없는 신상이 이때만큼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성하.”
루나는 길을 걸으면서 나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응?”
“리멘님의 흔적이요. 교단의 교세가 가장 강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탐색한다고 친다면, 지구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곳이 있잖아요.”
“……에덴?”
“네. 리멘님께서 힘을 잃고 기다리고 계신다면, 에덴만큼 힘을 회복하기 좋은 곳도 없죠.”
리멘에게 모든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에덴에 대해서 잠시 잊어버렸다.
에덴은 지구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일지도 몰랐다.
리멘은 에덴의 주신이었다.
즉, 에덴은 한순간에 주신을 잃어버린 셈이다.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상황인데, 아마 혼란에 휩싸여 있지 않을까?
그 두 세계를 이어 주던 리멘이 소멸한 거라 에덴의 상황도 알 수가 없었다.
“연락도 못 하는데, 직접 가는 게 가능할까?”
“그러네요.”
“아, 에덴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좀 어때? 못 돌아가서 불만이 많을 것 같은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들 덤덤하더라구요. 각오하고 넘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잘 챙겨 줘.”
“최선을 다해서 챙겨 줄 거예요. 우리 교단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한걸요.”
만약 에덴에서 넘어온 그들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후배들에게 전수해 준 경험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많은 이들이 죽었으나, 결국 살아남은 이들은 새로운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발아하면 결국 저마다 듬직한 나무가 되어 우리 교단을 지켜 줄 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에덴으로 직접 넘어가서 확인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실현이 불가능한 방법이다.
그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슬슬 다음 구역으로 움직이자.”
“일본이죠?”
“어, 총리에게 미리 말해 뒀어. 어디든지 가도 돼.”
“이래서 인맥이 최고라니까! 자현 씨, 갑시다.”
“일본 여행 좋죠. 가는 김에 온천도 들릅니까?”
“놀러 가냐?”
그렇게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일본에도, 중국에도.
그 어디에도 리멘의 흔적은 없었다.
우리가 그걸 깨닫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4.
내가 서울로 되돌아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라파엘의 호출 때문이었다.
중국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리멘의 흔적을 찾고 있을 때, 라파엘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교황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라파엘의 용건이 무언지 직감할 수 있었다.
라파엘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 세계로 돌아가는 겁니까?”
나는 라파엘에게 차를 내주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라파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건네준 차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전부 교황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구요.”
“성역에서 아주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고대 신들이 성역 곳곳에 다른 세계와의 연결점을 만들어 둔 덕분이지요. 원래는 고대 신들의 힘에 의해 접근조차 불가능했었지만, 교황님께서 그들을 소멸시킨 덕분에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그 게이트로부터 여러 가지 데이터를 뽑아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차원을 넘을 수 있는 공식이야말로 그가 얻어 낸 가장 큰 성과였다던가.
“물론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뭡니까?”
“고대 신들이 이용하던 방법을 응용한 것이라 막대한 양의 신성석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과정은 제가 지닌 사이킥 수정으로 해결이 되지만…… 차원 이동기를 활성화시키는 트리거는 신성석으로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이동 가능한 숫자는요?”
“많지 않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극히 비효율적입니다. 기껏해야 한 명입니다.”
“그래도 잘된 일이네요.”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는 것만큼 라파엘에게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을까?
내 축하 인사에 라파엘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신성석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손을 휘저으면서 답했다.
“구매라니요. 여태까지 라파엘이 우리를 위해 해 준 게 얼만데, 그 정도는 제가 작별 선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미친 과학자 놈을 잘 챙겨 주셨잖습니까? 당연히 제값을 치러야지요.”
“돈이라면 저희도…….”
“아, 신성석 구매 대금은 다른 걸로 치를 생각입니다.”
라파엘은 내 두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에이든 군에게 듣기로, 교황님께서도 에덴에 다녀오고 싶어 하신다던데, 맞습니까?”
“갈 수만 있다면 좋겠죠. 찾아야 할 존재가 있어서요. 하지만 힘들지 않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예?”
“교황님께서 에덴에 다녀오시는 거, 충분히 가능합니다. 왕복까지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체류 기간은 길지 않겠습니다만…… 지구의 시간으로 한 일주일 정도는 가능합니다.”
라파엘이 나를 만나려고 했던 목적이 단순히 작별 인사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차를 마셨다.
그리고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가 에덴에 다녀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 언제 들으신 겁니까?”
“며칠 전에 엠마 여사님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에 에이든 군을 만났었습니다.”
“입 한번 싸네.”
“아마 에이든 군은 제가 교황님을 위해 방법을 마련해 주길 기대했던 걸 겁니다. 에이든 그 친구가 속으로 많이 걱정하고 있더군요. 에이든 군이 보기보다 생각이 깊은 편이거든요.”
엠마 여사의 상태에 대해서는 일찍이 들었다.
전쟁이 끝날 때쯤, 혼수상태에 빠진 후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던가.
아마 테라가 소멸하면서 그녀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었던 엠마 여사에게도 충격이 갔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더 이상하네.
그에 반해 우리 교단의 선지자들은 멀쩡하다.
이것 역시 리멘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차원 이동을 위해서는 해당 차원에 귀속된 물건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해당 차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음, 그래, 유물이라고 표현하면 되겠군요. 강력한 에너지가 담긴 유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물건을 통해 좌표를 얻는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런 유물이라면 우리 교단에도 몇 개 있다.
서울 성지에 있는 태초의 목걸이라든지, 아니면 심판의 검이라든지.
그 두 개라면 충분히 좌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내 표정을 읽은 걸까?
라파엘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리멘 교단에 있는 성유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돌아오는 방법은요?”
“교황님께 제가 선물해 드렸던 슈트를 이용하면 됩니다. 제가 그곳에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좌표를 입력해 드릴 겁니다. 물론 간이 차원 이동 기능도 탑재해 드려야지요. 크기가 작아 일회용이겠지만요. 아, 그리고 신성석도 현지에서 조달하셔야 합니다.”
“에덴이라면 충분히 수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니 더욱 다행이군요.”
“그러니까 지금 라파엘의 말은…… 결국, 제가 에덴에 잠시 다녀올 수 있다는 소리입니까?”
“정확합니다.”
신성석의 결제 대금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조건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구원의 손이 다가온 기분이다.
라파엘은 활짝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교황님께서는 미쳐 가는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는 길도 찾아 주셨지요. 그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교황님의 친구잖습니까?”
“……친구.”
왜 내 주위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걸까.
나는 라파엘이 내미는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교황님의 슈트를 개조하고, 차원 이동기를 준비하는 데까지는 넉넉히 2주 정도 걸릴 듯합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라파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멀어지는 라파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에덴으로 잠시 다녀오기 전, 허락을 맡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일단, 그들에게 허락을 맡는 게 먼저였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시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오빠!
“시연이 지금 어디야?”
-나 집에서 작은오빠랑 할머니랑 드라마 보고 있었어!
“오빠 지금 갈게. 다 같이 모여서 할 이야기가 있어.”
내 소중한 사람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옛날처럼 아무 말 없이 떠나서는 안 된다. 가족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전화를 끊은 다음,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나눌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