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Football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41)
프로축구생존기 프로축구 생존기-241화(241/242)
이상과 현실 사이 (1)
대한민국이 비록 먹고살기에 바빠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고,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야구라고 할지라도, 4년에 한 번은 예외다.
물론 그 관심이 응원하려고 하는 관심보다는 비난하려고 하는 관심인 경우가 더 많긴 하나
[대한민국, 페루에게 신승… 16강이 보인다.] [대한민국, 1승 1무로 조 2위… 16강 진출 유력]최소한 지금만큼은 아니였다.
그도 그럴 것이 1승 1무에 조 2위다. 조별탈락이 유력해 보인다는 세간의 평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는 거다.
물론 기왕이면 저 1무가 1승으로 바뀌어서 그냥 16강을 확정지었다면 더 좋았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프랑스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며 질타하는 양심이 터진 인간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킹갓엠페러충무공마제스티대황신태영] [이제부터 나는 신태영에 대한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신태영과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된다신태영에 대한 공격은 나에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신태영, 나의 사랑. 손흥빈, 나의 빛. 기성룡, 나의 어둠. 이준혁, 나의 삶.]
축구팬들은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런 관심에 힘입어 여러 긍정적인 분석 기사도, 좀 진지한 기사도 가끔씩 나오면서 사람들이 소비할 기사가 늘어나던 찰나.
[근데 국대 지금 뭐함? 이긴 것 치곤 지금 뭐하고 있는지 기사가 영 안뜨네.]한 사람이 이상하리만큼 이긴 후 인터뷰가 별로 없는 것에 의문을 표했으나
ㄴ지금 그게 중요함?
ㄴ훈련하거나 쉬거나 하겠지.
ㄴ아니 그래도 보통 훈련 사진정돈 찍어서 기사 올리잖아.
ㄴ그딴 거 왜봄?
언제나처럼 묻힐 뿐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것보다 지금 당장의 기쁨이기에.
-*-*-*-
-꾹.
“아악-!”
아 시발.
“아! 아! 아! 잠! 깐! 좀 살살!”
“예예, 지금 살살하고 있어요.”
아니 이게 살살하는 거라고?
“지금 근육이 이리저리 많이 뭉쳐 있어요. 특히 왼쪽 다리에 햄스트링 부분이 많이 수축되어 있어서 이보다 더 약하게 마사지했다가는 효과 전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발.
“그러니까 다음 경기때는 왼쪽 다리 좀 조심하세요. 잘못하다간 이거 부상당할 수도 있습니다. 햄스트링 부상은 한번 당하면 평생 달고 살 수도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예에.”
-찰싹.
“자, 다 됐습니다. 내일 또 오시고, 가시면서 다음 선수 불러와주세요.”
“예, 수고하셨습니다.”
-벌컥
“영건아, 끝났다. 니 차례야.”
“오케이. 좀 있다 보자.”
-휴우.
‘정상인 인간이 없네, 없어.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고생이다. 저번 페루 경기가 진짜 거친 경기긴 했나보네.’
저번 페루와의 경기는 승리라는 달콤한 과실이 있긴 했으나, 그 과실을 얻은 휴유증이 꽤 있었다.
일단 나부터가 당장 다음 경기 뛰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다. 정도의 판정이었고, 성룡이 형이랑 창운이는 다음 경기 안 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권고’를 받은 상태였으니.
참고로 저 다음경기 뛰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다는 대충 주사 맞아야 뛸 수 있고 뛸 경우 부상당할 확률도 꽤 있다는 소리고, 의사의 뛰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권고는, 다음 경기 뛰면 최소 몇주짜리 부상을 끊는다고 봐야 한다는 소리다.
특히, 어느 정도의 혹사는 감안하는 월드컵 시즌이라면 더더욱.
‘성룡이 형은 몸 상태가 계속 안좋다는 어필이 있었으니 예상했지만··· 창운이는 좀 타격이 크네.’
이러면 우리의 공격력이 상당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할 경우엔
-아니, 그냥 황의찬 넣으면 안 돼? 걔도 유럽에서 잘 했잖아!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잘 했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의찬이는 아직 플레이 스타일이 하나밖에 없다. 오른쪽 측면과 중앙을 빠르게 넘나들면서 수비수 뒤쪽을 노려 침투하는 것.
그런데 이 플레이 스타일은 우리 대표팀에선 훨씬 더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손흥빈이란 선수가 존재하기에, 결국 둘 중 한 명은 스타일을 바꾸어서 뛰어야 한다는 거다.
자, 그럼 여기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까?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EPL이란 최상위 무대에서 몇 년간 활약한 선수를 최대한 살릴까, 아니면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라는 소규모 리그에서 고작 2년 반짝한 선수를 살릴까?
솔직히 누가 봐도 정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이다. 그래서 의찬이가 창운이보다 공격수로서 종합적인 점수를 매긴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선수라고 볼 여지가 있음에도 창운이가 부동의 주전이었던 거고.
‘···하여튼 감독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겠네. 월드컵 시작하기 전부터 주전 스트라이커 부상당하더니 주전 미드필더랑 주전 윙어 부상이니.’
게다가 월드컵 전 부상은 대체제를 어떻게든 찾을 수 있어도, 월드컵 도중의 부상은 교체 따윈 불가능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 이상의 부상은 없어야 할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복도를 지나가던 도중. 너무나도 선명한 한국말 소리가(여긴 러시아다.) 들렸다.
-으아아아-! 씨발!
···.뭐야 저거, 민제 목소린데?
-*-*-*-
-탁, 탁, 탁.
“에라이 씨팔.”
하아.
“하아, 골치 아프네, 골치 아파. 공격만 보면 그래도 의찬이가 나쁘진 않은데, 수비 밸런스가 너무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야, 어찌 해야···”
그렇게 궁시렁대던 감독에게.
-벌컥.
“감독님. 큰일났습니다.”
“왜 또 큰일이야. 또 기자들 왔어? 그건 무시하라고 했잖아. 창운이 다음 경기 못 나오는 거 숨겨야 한다고.”
“그건 아닙니다.”
코치의 말을 들으면서도 전술판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전 감독은
“민제가 부상입니다.”
-툭-또르르르···
그 말을 들은 순간 감독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김민제, 그가 누구인가.
K리그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후, 곧바로 빅리그로 진출하여 프로 데뷔한 지 2년만에 국가대표로 데뷔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No.1 수비수로 자리잡은 괴물.
그런 그가 부상당했다는 것은, 수비 전술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신 감독은 눈앞에 닥쳐온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에이, 농담이지? 재미없어. 농담이지?”
“······”
“···농담 맞지?”
1단계, 부정.
-꽝.
“씨발 어쩌란 거야 진짜! 그럼 경원이 세우라고? 한 번도 안 세워본 조합을 이제와서 쓰면 수비진 어떻게 될지는 뻔하잖아!”
2단계, 분노.
“하, 부상이더라도, 다음 경기 진통제 맞으면 출전 가능한 그런 부상 맞지?”
“···유감스럽게도, 오른쪽 다리 피로골절이랍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3단계, 타협.
“아니씨발 이게 말이나 되냐··· 부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뭐 이렇게 전력의 1/3이 날아가는 건 너무 억지잖아···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 먹는다고···”
4단계, 우울.
“하아, 그래, 시발. 불평할 시간도 없다. 빨리 새로 작전 짜야지.”
5단계, 수용.
그렇게 분노의 5단계를 5분도 안 되어 모조리 겪은 신 감독은 10년은 더 늙은 얼굴로 전술판을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뭐, 뻔하지. 우리의 A플랜, 시메오네식 4-4-2.”
중앙의 두 미드필더 자리엔 장연수를 정영우 선수와 같이 내보내서 수비적으로 가고, 윙어는 부족함이 좀 있긴 하지만 의찬이를 넣어 볼 생각이었다.
“중앙은, 뭐 수비적으로 갈 경우 최선이군요. 연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랜만에 뛰는 게 좀 불안하긴 한데 영우가 그런 건 어느정도 커버해줄 수 있고,
경험은 좀 부족하긴 하나, 지금 상황에서 수비를 놓치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볼 돌리기가 되는 중원 조합은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측면은 의찬이를 넣은 다음 지켜보다 수비가 정 안 된다 싶으면 교체하고 요한이나 제성이를 넣어 볼 생각이었지.”
“···요한이를 윙어로요? 그건 좀···”
“수비 안 되면 그래야 돼. 지금 우리가 찬 밥 더운밥 가릴 때냐.”
그 말까지 들은 코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16강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수비, 두 번째로 중요한 것도 수비. 세 번째도 수비다.
“일리가 있군요, 다만 지금은 민제가 부상당했으니 이렇게 되면···
“···그래, 시메오네식 4-4-2는 못 써. 수비진 라인은 절대 못 올린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리 시메오네식 4-4-2가 전원 수비, 즉 텐 백에 가까운 전술이라 할지라도 공격을 아예 포기한 전술이 한 시대를 풍미할 수는 없는 법이고, 당연히 텐백에 비해서는 공격을 위한 장치가 하나 정도는 있다.
바로 ‘수비 라인은 의외로 좀 끌어올려서 완벽하게 텐 백은 아니고 공격도 기회 봐서 노릴 수는 있게 만든다.’ 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수비 라인을 정말 잘 조절해서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노련한 수비수거나 발이 공격수만큼이나 빠른 수비수가 필요한데.
“민제가 발 빠르게 뒷공간 커버하고 그럴 수 있어서 수비진 라인을 올릴 수 있었던 건데 연수나 경원이, 영건이 모두 민제 정도로 빠르진 못하고, 연수가 수비 라인을 좀 조절할 줄은 알아도···”
“···걘 빈틈이 많죠. 이해했습니다.”
즉, 대표팀의 A플랜은 이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였다.
“···뭐 그래도 아예 힘든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무승부만 하면 되는데, 그냥 공격 포기하고 완전히 전원 수비하는 식으로 바꿔버리고 텐백 써버리죠?”
실로 그랬다. 물론 그렇게 될 경우 조 2위로 진출하게 되어서 아르헨티나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겠지만, 그 딴 것보다 일단 16강에 진출할 확률을 1%라도 더 높여야 하는 게 원칙 아니겠는가.
“안 돼.”
그러나, 신 감독은 텐백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일단 본인부터가 원래 공격적인 전술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텐 백 한다고 해서 우리가 90분 동안 완벽히 수비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AT 마드리드가 아니야.”
그렇다.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보다 골을 안 먹히는 게 더 쉽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헌데 그럼 게임 시작부터 전원 수비를 한다고 해서 골을 한 골도 안 먹히는 건 난이도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들 신음소리부터 낸다.
그도 그럴 것이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수비만 하면서 버틴다는 것은 선수들이 딱딱한 잔디를 침대처럼 푹신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전원 수비를 자처하는 팀은 약팀인 경우가 많고, 약팀답게 강팀에 비해 체력적인 수준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한 60~70분까진 어찌어찌 잘 버티더라도 결국 마지막 20분 정도는 운에 기대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빈도가 높진 않더라도, 위협적인 공격을 몇 번씩은 찔러줘서 상대방이 마음껏 공격하지 못 하게 해야 해. 그래야 무실점을 진심으로 노릴 수 있는 거지. 그냥 대놓고 텐백하는 건 기도하는 행위밖에 안돼.”
그 때문에 신 감독이 수비적인 능력치는 바닥에 가까운 황의찬을 선발로 낙점한 거였다. 팀 밸런스를 해치는 일이긴 하나 상대방이 위협적이라고 느낄 만한 움직임을 보여줄 능력이 있는 선수였으니까.
“그래도 왼쪽은 믿을 만 하니까. 왼쪽 믿고 가시면···”
“이 사람아 흥빈이도 사람이야 사람! 준혁이랑 흥빈이가 있다고 해도 그 한 쪽만 있으면 당연히 막지!”
코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표정 관리에 잠시 실패했다.
‘애초에 주전 1/3이 날라갔는데도 공격을 기대할 만한 곳이 한 쪽이라도 남아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실 만한 사람이 왜 이러시냐···’
그러나, 코치는 프로답게 그 표정을 금세 지우는 데 성공하고는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애초에 이 문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상 때문이니 자신이 화내봤자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절대로 상사에게 대들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하아, 진짜 흥빈이를 차라리 원 톱으로 올려? 아냐, 그랬다가 그냥 대놓고 라인 올려버리면 꼼짝없이 오프사이드 걸리니 때문에 더 대처하기 쉽-?”
그렇게 중얼거리던 신 감독은 잠시 멈칫하다가.
“···가만, 가만? 준혁이 좀 불러오게. 그 녀석한테 한 가지 좀 확인해야 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