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7)
47_가치를 정하는 것은(4)
“검은 다이아몬드라···.”
관리자는 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그래. 나를 믿고, 그대가 할 일을 하도록 하게.”
내가 그를 치하하고 돌아가려 하던 찰나.
“폐하!”
그가 다급히 나를 잡았다.
“저, 실례일 수 있겠지만··· 혹여 이것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투박한 손으로 품을 뒤져, 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이게 무엇인가? 혹여 뇌물이라면 미안하지만 나는 선물의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 없다네.”
이 시대에 왕에게 바치는 뇌물은 퍽 흔한 것이었다.
특정 산업의 특허권이나 전매권 따위를 노리고 주는 뇌물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폐하. 사실 고귀하신 폐하께 감히 이런 것을 드려도 되는지 망설여질 정도로요.”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이채를 띄고 물었다.
“이건 어디서 난 것인가?”
“석탄을 캐다가 나온 것을 제 나름대로 다듬어 본 것입니다. 아내는 좋아하더군요.”
내가 피식 웃고 말했다.
“고맙네. 그대의 정성, 잊지 않도록 하지.”
잊고 있던 유용한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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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특별 의회가 열렸다.
여왕이 소집한 긴급 의회였다.
“다들 이리 모여줘서 고맙군. 오늘 내가 의회를 소집한 이유는,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라네.”
의원들이 잠자코 여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런던 석탄 금지법을 파기하고자 하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주제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는 런던의 미관을 지키기 위한 조치 아닙니까? 어째서 이를 파기하고자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석탄의 도입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네.”
내가 엄숙히 말했다.
“목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그대들도 느끼지 않나. 이대로라면 이 잉글랜드는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까지 모조리 뽑혀 화로에 들어갈 것이네.”
다시 한 번 웅성거림이 있었다.
목재가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런던에서까지 석탄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수도인 런던에선 깨끗한 목재만을 쓰고, 지방에서 석탄을 쓰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런던에서 석탄을 쓰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서도 쓰지 않으려 할 것이야.”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초에, 이 석탄 금지법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미 이 궁에서 얼마나 많은 석탄을 쓰는지 정녕 몰라서 하는 말인가?”
그 말에 사람들이 할 말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 그랬다.
이 런던의 궁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궁정귀족이 생활한다.
여기에 따라붙는 시종들까지 합치면 더 어마어마하겠지.
오죽하면 식량이 부족해서 순행을 다니기까지 할까.
이런 상황에 목재만으로 난방한다면, 아마 1년 중 6개월은 순행을 나가야 간신히 유지될 것이다.
“결국, 궁에서는 석탄으로 따뜻하게 불을 지피고, 가난한 이들은 얼어 죽도록 두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사문화된 법을 없애자는 것이네.”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논리였다.
많은 이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를 악물고 반대하는 이는 있었다.
“궁에서 석탄을 사용하는 것과 밖에서 쓰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궁에서는 제대로 된 난로를 써서 연기를 빼내지 않습니까. 또, 매일 청소하여 벽이 그을리지 않도록 하고요. 무절제한 이들이 아무렇게나 석탄을 쓴다면 온 거리가 시커먼 색으로 물들고, 매캐한 연기를 풍길 것입니다.”
“제대로 된 석탄 난로가 있는 곳에서만 석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지. 이러면 문제가 없겠는가?”
“그들이 법을 지킨다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여왕이 표정을 굳혔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애초에 잘 지켜지지도 않던 석탄금지법이다.
이를 폐지하자는 것이 이토록 반대를 살만한 일이던가?
자신의 말끝마다 이리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으며?
이제 보니, 의회는 거의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귀족들.
그리고 무언가를 준비한 듯, 서로에게 눈짓하며 여왕의 말에 반대하는 이들.
‘아.’
여왕은 깨달았다.
‘슬슬 의회가 한 번 꿈틀거려 볼 생각인가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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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려 약 사흘 전.
1554년 11월, 겨울바람이 부는 어느 날.
“이럴 수가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의회 소집이라니요!”
일단의 의원들이 모여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주제도 알려주지 않고 의회를 소집하다니. 폐하께선 의회를 너무 만만히 보시는 것 아닙니까?”
“아직도 폐하께서 망치를 휘두르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신성한 의회에서 망치를 휘두르며 협박을 하다니.”
“의회를 소집해봤자 뭘 하겠습니까? 어차피 폐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실 텐데.”
불만을 속닥이는 이들의 면면이 익숙했다.
이들은 과거, 노퍽 공작의 밑에서 여왕에게 맞서려 했던 이들이었다.
“노퍽공께서 쓰러지신 뒤, 저희 꼴이 말이 안 됩니다.”
“구심점이 될 젊은 공작 각하는 아무래도 지나치게 젊다 보니, 사리분별을 잘하지 못하는 듯하더군요.”
여왕에게 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했다.
하지만 연이어 터진 반란 사건에, 노퍽 공작의 급사까지 겹쳐 그들은 한동안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의 참사로부터 시일이 꽤 지난 상황.
언제까지 억눌려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때마침 열린 의회는, 의원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기회에 폐하께 한 번 우리의 힘을 보여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옳습니다! 설마하니, 또 망치를 휘두르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들이 만용을 부릴 수 있던 이유는 사실 하나 더 있었다.
근래 들어 유하게 행동했던 메리의 행적을 믿는 것이다.
‘설마 즉위 초처럼 무식하게 망치를 휘두르겠어?’
얼마 전에는 연회도 열었고, 나름 화목한 분위기 아니었나.
틀림없이 즉위 초와 달리 정치적 식견이 생긴 것이다.
오명을 감수하고 또 망치를 휘두르진 않을 것 같았다.
‘혹시 예상이 틀려서 여왕이 미친 척 망치를 휘두른다면?’
그러면 뭐, 어쩌겠나. 후퇴해야지.
고작 정책에 좀 반대했다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자, 동지들! 우리는 대헌장의 후예들 아닙니까?”
“그래요. 어디 한 번 우리의 힘을 보입시다!”
의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결의를 주고받았다.
의회가 열리기 사흘 전.
아직 의회의 주제도 통보받지 못한 이 시점에, 그들의 대응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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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말한 신법에 반대하는 이가 많은 것 같군?”
여왕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장내를 살폈다.
“좋아. 그러면 표결에 부쳐보도록 하지. 표결의 결과에 따라 석탄금지법을 개정할지 말지 정하도록 하지.”
반대파에 속한 의원들이 기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왕이 생각보다 평화적으로 나섰다.
역시, 여왕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리라는 그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곧 표결이 진행되었다.
결과는 뻔했다.
“세, 세 표! 반대가 세 표 더 많습니다. 부결입니다!”
찬성 쪽에 섰던 귀족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외쳤다.
“재밌는 결과가 나왔군.”
여왕이 말을 꺼내자 장내가 조용해졌다.
다들 침만 꿀꺽 삼키면서 여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자네.”
여왕이 반대파에 선 이들 중 한 명을 가리켰다.
“석탄금지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목당한 사람은 퍼뜩 놀라 말을 더듬다가, 이내 대답했다.
“부, 불결하기 때문입니다.”
“불결하다?”
“예. 폐하께서 계시는 런던에 지저분한 냄새를 풍기는, 얼굴이 새까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석탄은 짐승의 변만큼이나 더럽고 하찮습니다.”
“더럽고 하찮다. ···그리 생각하나?”
여왕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내가 찬 이 허리띠는 어떠한가?”
아니, 난데없이?
지목받은 남자가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여왕은 오늘 못 보던 허리띠를 하고 있긴 했다.
검은 보석이 알알이 꿰매진 아름다운 보석 허리띠였다.
그가 본 중 가장 검은 보석이었는데, 아주 부드러운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무척 아름답군요. 잘 어울리십니다.”
“그렇단 말이지?”
여왕이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었다.
“이거, 사실 석탄으로 만든 건데?”
“예? 석탄이요?”
잠깐 귀를 의심했지만, 남자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갈탄의 일종을 보석처럼 세공한 것이라네. 갈탄이 뭔지는 알고 있겠지? 석탄 중에서도 가장 냄새나고 더러운 게 갈탄이지. 그렇지만 가장 흔해, 가난한 이들을 덥혀주는 것도 바로 이 갈탄이야.”
런던의 어지간한 귀족들은 다들 갈탄을 본 적이 있다.
추운 겨울, 마차를 타고 대로변을 지나가다 보면 거지들이 서로 뭉쳐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서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타는 것이 바로 갈탄이었다.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
그런데 그 갈탄이 지금 여왕의 몸에 닿고 있다고?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보석인데?
“그대는 분명히 이 허리띠가 내게 어울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찬 보석 허리띠가 더럽고 하찮아 보이나?.”
귀족이 당황해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해서 모욕죄라도 쓰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
하지만 여왕은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갈탄 중에서도 유독 단단하고 무늬가 있는 것을 세공하면 이리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고 하네. 그대는 미처 몰랐겠지만.”
몰랐으니 용서해준다는 건가?
귀족이 일말의 희망을 느끼며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가 무지한 탓에···.”
“그렇겠지. 그대는 많은 것에 무지하니까.”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말투였다.
“최근 궁전에서 유행하는 현자의 과실과 이 허리띠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네.”
“예?”
“그대들이 하찮게 보던 것들 아닌가. 돼지 먹이로 쓰는 순무와 거지들이나 쓰는 지저분한 돌덩어리. 그 안의 가치를 전혀 몰랐지. 찾아볼 생각도 없었고.”
여왕이 몸을 일으켰다.
그에 따라, 허리에 찬 검은 보석이 아름답게 찰랑거렸다.
“그러니 하찮다고 섣불리 단언하지 말게. 이 작고 검은 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대는 아직 모르니까.”
의미심장한 경고였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의회는 그렇게 찝찝한 뒷맛을 남기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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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뒤를 돌아보니, 와이어트였다.
의회가 끝나자마자 다급히 나를 찾은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그 건방진 이들이···.”
“나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게.”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기껏 걱정해준 그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와이어트는 내 웃는 얼굴에 살짝 놀란 듯했다.
“저,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괜찮지. 언젠가 벌어질 일 아니었나.”
말 그대로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었다.
저 의회가 한 번 눌러놨다고 조용할 리가 없지 않나.
“오히려 기쁘다고 해야겠지. 내게 맞서려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나.”
“그래도···.”
말끝을 흐리는 와이어트에게 내가 되물었다.
“내가 정녕 저들을 제지할 힘이 없어 놔두었다고 생각하나?”
반대를 표하면서도 내 눈치를 보며 땀을 뻘뻘 흘리던 나약한 것들이다.
강압적으로 밀고 나갔다면 그대로 나가떨어졌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네. 그래 봤자 반발만 더 쌓일 뿐이니까.”
내가 의회를 아주 없애버릴 생각이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그건 패망의 지름길이니 그렇게까진 못하지.
결국은 하나하나 내 앞에 무릎 꿇릴 수밖에 없다.
“자, 저들과 내 의견이 갈린 이 상황에 나는 자비롭게 저들의 말을 들어주었다네. 아마 저들은 꽤 기뻐하겠지?”
아마 지금쯤 환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여왕에게 그들의 힘을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말이야. 이 상황에서, 곧 내 의견이 옳았음이 밝혀진다면? 그리되면 어떨 것 같나?”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이 기회에 의회를 한 번 다져놓고 가자고.”
늘 망치를 들고 협박하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
난 이래 봬도 꽤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흑옥-
패갈탄이라고도 불리는 석탄의 일종입니다. 일반적인 석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겼지만, 가공하면 아름다운 보석이 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첨부한 사진은 가공되지 않은 흑옥 덩어리와, 가공된 흑옥 장식입니다.
(사진출처: Jet Jewellery by Sudzie, CC BY 라이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