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109)
외전 4장
***
점심 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아침에 수확한 양배추와 순무로 만든 요리가 식탁에 올라왔다. 그러나 일리아는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식당에 내려오지 않았다.
어깨를 늘어뜨린 카르한은 좋아하는 양배추 샐러드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포크를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조용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세쌍둥이는 방으로 올라왔다.
“다들 앉아봐.”
엘로드의 말에 헤이든만 자리에 앉았다. 라울이 정신 산만하게 몸을 움직이자 엘로드가 짜증 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 할 거라고.”
“뭔데?”
“엄마 아빠가 좀 이상하지 않아?”
“음…….”
뺨을 긁적이는 라울을 대신해 헤이든이 말했다.
“형들처럼 싸웠나 봐.”
라울과 엘로드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둘 다 헤이든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잠깐 침묵이 돌았다. 평소에 태평하기만 하던 라울이 걱정되었는지 슬쩍 물었다.
“……어쩌지?”
“생각 중이야.”
엘로드 또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끙끙거렸다. 이렇게나 어려운 문제는 처음이었다. 지금껏 일리아와 카르한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나서자!”
헤이든이 소리치자 라울과 엘로드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그래. 우리가 도와줘야겠어.”
엘로드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라울이 성격 급하게 문을 열었다.
“엄마한테 먼저 가보자.”
아이들은 곧바로 일리아의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일리아가 아이들을 맞이했다.
“점심은 잘 먹었니?”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
라울은 본래 목적도 잊어버린 채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재잘거렸다. 엘로드가 라울의 옆구리를 쿡 찔러서 입을 다물게 한 후에 말했다.
“오늘 야채가 많이 나왔는데, 아빠가 거의 다 남겼어요.”
일리아가 움찔했다. 몸을 일으킨 일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빠한테 저녁은 잘 먹으라고 전해주렴.”
“엄마는 저녁 안 먹어요?”
“별로 생각이 없네.”
“알겠어요.”
세쌍둥이는 곧바로 일리아의 침실을 빠져나와 카르한에게 갔다.
“아빠!”
문이 열리자 책상 앞에 앉아있던 카르한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카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쌍둥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니?”
“방금 엄마 만나고 왔어요.”
내내 처져있던 카르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라울은 방금 일리아가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저녁 먹으래요.”
“……지금?”
“바보야. 단어를 빼먹었잖아.”
라울을 타박한 엘로드가 말을 정정했다.
“저녁은 잘 먹으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카르한은 다시금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말에 숨겨진 의미는 ‘나는 저녁도 안 먹을 거예요.’였다.
“엄마는…… 화난 것 같아?”
카르한이 조심스레 묻자, 세쌍둥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라울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카르한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뽑아버리기 전에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카르한은 후회 가득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시 고개를 든 카르한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저녁은 거르지 말라고 전해주렴. 그리고…… 아빠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전해줄게요!”
아이들은 곧바로 집무실을 빠져나와 일리아의 침실로 뛰어갔다. 복도를 걷던 고용인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도련님들! 뛰면 안 돼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오늘만 봐줘!”
복도를 힘껏 달린 아이들은 일리아의 침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리아에게 카르한이 했던 말을 전해주었다. 일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네…….”
일리아는 화병에 꽂힌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제 출근하기 전에 카르한이 직접 갈아놓고 간 꽃이었다.
“이유 없이 꽃을 꺾을 사람이 아닌데.”
혼잣말하던 일리아는 조금 부끄러워졌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역시 저녁은 같이 먹어야겠어.”
일리아의 혼잣말에 아이들은 다음 말도 듣지 않고 침실을 뛰쳐나와, 카르한의 집무실로 향했다. 세쌍둥이가 들이닥치자 방 안을 서성이던 카르한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을 맞이했다.
“엄마가 저녁 같이 먹자고 했어요!”
카르한의 안색이 대번에 밝아졌다.
“빨리 아빠도 대답해줘요.”
“우리가 전해줄게요!”
세쌍둥이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카르한이 아이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인 세쌍둥이는 또다시 일리아의 침실로 뛰어갔다.
“엄마!! 아빠가 사랑한대요!”
일리아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순식간에 일리아의 뺨과 목덜미에 붉은 물이 들었다. 세쌍둥이는 대답을 재촉했다.
“엄마는요?”
“……엄마도 그래. 벌써 보고 싶네.”
그리고 일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곧바로 침실을 나왔다. 부지런히 뛰어서 카르한의 침실에 도착한 아이들이 소리쳤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대요!”
그 말에 카르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르한은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새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일리아의 침실 앞에 멈춰 선 카르한이 숨을 갈무리한 후 노크하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쥔 일리아가 놀라서 카르한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일리아가 먼저 두 팔로 카르한을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카르한.”
카르한 또한 팔을 들어 일리아를 마주 안으며 속삭였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카르한은 어떻게 된 일인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일리아가 키우던 야생화는 벌레가 뿌리부터 갉아먹어서 죽기 직전이었다. 이러다가 옆에 있는 식물들까지 피해를 볼까 싶어, 뽑아버렸다고 그가 말했다. 일리아는 귓불을 붉힌 채 웅얼거렸다.
“자세히 듣지도 않고 오해했어요.”
“일리아가 아끼던 꽃인데, 말없이 뽑아버려서 미안합니다.”
카르한은 일리아를 꼭 안아주었다. 부부가 된 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서투른 구석이 많았다. 다툰 적이 없어서 풀어나가는 방법도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앞으로는 기분이 나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일리아는 결심했다.
잠시 눈을 마주하던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온기가 전해지며 부족함이 채워졌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지켜보던 세쌍둥이가 달려들었다.
“우리도!”
카르한이 아이들을 번쩍 들어올렸다. 한 명 한 명 뺨에 입을 맞춘 일리아가 속삭였다.
“라울, 엘로드, 헤이든. 고마워.”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침대에 함께 누운 그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 올 때까지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올해 열 살이 된 세쌍둥이는 나갈 채비를 마쳤다. 블로든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특별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자, 종이에 적어두었으니 사올 수 있지?”
일리아의 물음에 세쌍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넣어둔 지갑과 지도를 건네준 일리아가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엄마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잘 다녀오렴.”
일리아가 숙였던 허리를 폈다. 현관 계단을 내려가자 프란체와 말렉이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도련님들, 오늘 저희가 엄호하겠습니다.”
아이들은 순서를 지키는 병아리처럼 하나씩 마차에 올라탔다. 창문에 다다닥 붙은 아이들을 향해 일리아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침내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일리아는 고개를 돌려 카르한을 쳐다보았다.
“그럼 우리도 가볼까요?”
“역시 뒤따라가는 겁니까?”
“잘하는지 봐야죠.”
일리아와 카르한은 곧장 마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특이한 전통이군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문 사람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에요.”
“그럼 일리아도 했습니까?”
“당연하죠.”
아주 오래되었기에 잊어버릴 법하나, 아직도 드문드문 기억이 났다. 어릴 적의 일리아도 부모님이 시킨 심부름을 하러 떠났다. 간소했던 첫 심부름은 재물운이 터져, 일리아가 시장을 반쯤 쓸어오며 막을 내렸다.
“애들도 금전 감각을 깨우칠 때가 되었죠.”
세쌍둥이는 지금껏 직접 물건을 구입해본 적이 없었다. 필요한 건 전부 저택에서 구할 수 있었기에, 어른들이 거래하는 것을 지켜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 첫 심부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얻게 될 터였다.
번화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프란체와 말렉이 확 눈에 띄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뒤따라 걷는 중이었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종종걸음으로 아이들을 뒤쫓았다.
“책부터 사야 해.”
둘째 엘로드가 종이에 적힌 심부름 목록을 확인하고 말했다.
“서점을 가야 하는데, 여기가 우리 위치니까…….”
똑 부러지는 엘로드의 모습에 일리아와 카르한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까지 아기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이렇게나 자랐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세쌍둥이는 별 다른 문제 없이 서점을 찾아 나섰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건물에 몸을 숨긴 채 아이들을 따라갔다.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이 뒤돌아보려는 순간 일리아가 소리쳤다.
“숙여요.”
카르한은 재빠르게 커다란 몸을 구겼다. 비록 우체통으로는 몸이 전부 가려지지 않았으나 다행히 아이들은 못 본 모양이었다.
“휴, 들킬 뻔했…….”
안도의 한숨을 삼킨 일리아는 잠시 멈칫했다. 맞은편 건물에 달라붙은 비올레와 클리프가 보였다. 일리아는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비올레와 클리프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일리아가 눈빛으로 물었다. 다들 왜 거기 있어요?
“어흠흠.”
클리프가 헛기침하며 일리아 쪽으로 다가왔다.
“우연이로구나.”
“볼일 보고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 봤단다.”
비올레가 말을 덧붙이자 일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요, 뭐…….”
그 와중에 나름 변장까지 한 두 사람의 모습에 일리아는 웃음을 삼켰다. 클리프는 콧수염을 붙였으며 비올레는 가발을 썼다. 슬쩍 봐서는 두 사람인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 천사들이 서점에 들어가는구나.”
클리프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저 멀리까지 가버린 세쌍둥이가 서점으로 막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서점으로 향했다.
“……엇?”
서점 앞을 지키던 프란체와 말렉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리아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블로든 가문 사람들은 서점 유리창에 옹기종기 붙어서 세쌍둥이를 지켜보았다.
“와, 책 많다.”
라울이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블로든 저택 서재보다 작은 서점이었으나 사방에 책이 가득했다.
“우리가 사야 하는 책은 이거야.”
엘로드는 연신 두리번거리는 라울과 헤이든에게 책 제목을 알려주었다.
“세 권이니까 각자 한 권씩 찾아오자.”
엘로드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각자 흩어졌다. 서점을 누비던 라울은 금방 지루해졌는지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딴짓하기 시작했다.
헤이든은 책을 찾다가 바로 옆 칸에 마련된 예술 서적을 발견하고, 바닥에 앉아서 미술 책을 읽었다. 두 형제와 달리 엘로드는 착실하게 분야부터 찾은 후에 제목을 살폈다.
“찾았다.”
책장 위쪽에 찾던 책이 꽂혀 있었다. 엘로드는 책을 빼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발뒤꿈치를 들어도 닿지 않았다.
한참 끙끙거리던 엘로드는 이만 포기하고 점원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등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엘로드가 뒤돌아서자, 두꺼운 안경에 중절모를 쓴 남자가 책을 내밀었다.
“찾던 게 이건가요?”
얼떨결에 책을 받은 엘로드가 남자를 살피며 물었다.
“헤인리 삼촌?”
“…….”
헤인리는 낭패 어린 얼굴로 자그맣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잠깐 고민한 끝에 헤인리는 노선을 틀기로 했다.
“우연이구나. 서점은 무슨 일로 온 거니?”
“엄마 심부름 왔어요.”
“그래? 삼촌이 도와줄까?”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엘로드가 또박또박 말하자 헤인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견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이었다. 엘로드는 책을 품에 안고 라울과 헤이든을 찾았다.
둘 다 딴짓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엘로드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다른 책을 찾아 나섰다. 볼일 보는 척하던 헤인리는 엘로드의 주위를 맴돌며 함께 책을 찾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집에서 봐요.”
엘로드의 인사에 헤인리가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딸랑, 문에 달아둔 종이 울리며 세쌍둥이가 서점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창문에 달라붙어 있던 구경꾼들은 일제히 흩어졌다.
잠시 후 헤인리가 서점을 나오자, 블로든 가문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헤인리가 뻔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는 것이 어른의 도리지요.”
“……일은요?”
“당연히 휴가 냈지.”
이런 중대사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냐며 헤인리가 웃었다. 일리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만 내저었다.
어느새 다섯으로 불어난 그들은 세쌍둥이의 뒤를 밟았다. 지도를 보느라 바쁜 엘로드와 달리 라울과 헤이든은 이미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다. 엘로드가 길을 살피는 사이, 라울은 노점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군것질거리를 샀다.
헤이든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길거리 연주자들 앞으로 걸어갔다. 뒤늦게 정신 차린 엘로드가 라울과 헤이든을 불렀다.
“야! 너희 뭐 해?”
돼지고기 꼬치를 먹던 라울이 멈칫하는 동시에 길거리 연주를 듣고 손뼉 치던 헤이든이 뒤돌아보았다. 양손에 꼬치를 가득 쥔 라울이 엘로드에게 꼬치 하나를 내밀었다.
“먹을래?”
“무슨 돈으로 산 거야?”
“지갑에 있는 걸로 샀는데?”
라울의 대답에 엘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심부름 할 돈인데, 그걸 쓰면 어떡해?”
엘로드가 잔소리하자 헤이든이 자백했다.
“나도 돈 다 썼는데.”
“뭐?”
“사람들이 연주 듣고 돈 주길래 따라 줬어.”
길거리 연주자에게 수중에 있던 돈을 전부 줬다는 거였다. 순식간에 엘로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일리아는 심부름비를 넉넉하게 주었다. 그 돈을 셋이 똑같이 나눠서 들고 있었는데, 벌써 반 넘게 써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뭐? 부족하다고?!”
“그럼 다른 거 못 사?”
그제야 라울과 헤이든도 상황을 깨닫고 심각해졌다. 잠시 말이 없던 세쌍둥이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프란체와 말렉을 쳐다보았다. 당황한 말렉이 주저하다가 말했다.
“저희도 가진 돈이 없습니다.”
일리아는 프란체와 말렉에게 아이들을 직접 도와주지 말라고 못 박아두었다.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흠, 큰일 났네.”
별로 큰일 난 것 같지 않은 말투로 라울이 말했다. 그리고 정작 진짜 큰일이 난 것은 블로든 가문 사람들이었다.
“우리 천사들이 돈이 모자라다는데요?!”
아이들의 대화를 전부 들은 클리프가 호들갑 떨었다.
“가는 길에 돈을 뿌려둘까요?”
“차라리 경품에 당첨된 척하는 건 어떻습니까?”
클리프에 이어 헤인리가 의견을 제시했다. 비올레가 멀찍이 서 있던 수행원에게 말했다.
“심부름 목록에 적힌 물건을 파는 가게, 당장 매수해!”
카르한도 안절부절못하다가 일리아를 쳐다보았다. 모두가 난리법석을 부리자 보다 못한 일리아가 나섰다.
“다들 진정 좀 해요.”
그들의 시선이 일리아에게 향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볼 기회잖아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나서면 되죠.”
“……그것도 그렇구나.”
겨우 수그러든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눈으로 세쌍둥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클리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천사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일리아는 못 말린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겨우 침착함을 되찾은 뒤, 다 같이 세쌍둥이를 찾아 나섰다.
“사과 사야 해.”
다음으로 사야 할 물품은 사과 다섯 알이었다.
“여기 과일 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