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653
상남자 653화
아이디어를 떠나 메신저 위드를 무척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순간 유현의 뇌리에 나도하가 얼마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개발 경력 많은 사람들보다 보미 씨가 훨씬 나아요.오히려 보미 씨에게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땐 그냥 면접 인원을 돌려보낸 데 대한 변명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윤보미에겐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었다.
유현은 가만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제법 많은 대화가 쌓일 때였다.
박영훈과 나도하가 들어오자, 윤보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인사했다.
“대표님, 오셨어요?”
“보미 씨, 그러지 말라니까.부담스러워.”
“회사는 체계가 갖춰져야 해요.잠시만요.제가 커피 타 올게요.두 분 다 아이스로 갑니다.”
윤보미는 또 빠르게 탕비실로 움직였다.
박영훈은 괜히 찔리는지 유현에게 변명했다.
“커피 타라고 내가 시킨 거 아냐.나 그런 대표 아니라고.”
“알았으니까 앉아.도하도.”
“형, 언제 왔어요?”
“좀 전에.근데 너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의자를 빼내 앉은 나도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신경 쓰여서 그래요.오늘도 저 때문에 사람 못 뽑을까 봐요.”
“부담 가지지 마.오늘은 나도 같이 봐 줄게.”
유현의 말에 박영훈도 거들었다.
“그래.유현아, 네가 정확하게 판단해 줘.그래야 도하도 도움이 될 거야.”
“알았어.서류는?”
“잠시만.”
유현은 박영훈이 건넨 서류를 살펴봤다.
다소 부실한 내용인지라, 박영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대형 포털 회사에서 앱 제작했던 친구야.벤처로 옮겨서 유명 쇼핑몰 앱과 은행 앱도 제작했어.경력과 실력은 확실해.또 학벌도…….”
박영훈의 말대로 이력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런 작은 회사에 면접 보러 와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울 정도다.
유현은 찬찬히 서류를 눈에 담으며 상상했다.
어떤 인물일까?
왜 더블와이에 지원했을까?
와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
적은 단서 속에서도 유현은 최대한 많은 것들을 이끌어내려 애썼다.
오랜 면접 경험과 회사에서 쌓은 연륜이 이 과정을 도왔다.
잠시 후, 유현은 상상했던 인물을 대표실에서 마주했다.
이름은 신창희, IT 개발 12년 경력에 베테랑이다.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눈 끝이 살짝 올라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다소 얇은 목소리와 달리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아시겠지만, 이 바닥에서 제 경력 정도 되는 사람 잘 없습니다.”
“네.꽤 많은 일을 하셨더군요.”
유현이 동의를 표하자, 신창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그저 한국에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별로 없다 보니, 제게 일이 몰린 거죠.물론 덕분에 고생 꽤나 했지만요.”
“어떤 부분이 제일 고생스러웠습니까?”
“사실 이 바닥에 의욕만 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체계도 없이 돈 벌이도 안 되는 걸 하겠답시고 나서는 바람에…….”
신창희는 국내 IT 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느낀 바를 신랄하게 말했다.
이걸 시작으로 더블와이에 대해 바라는 점을 요목조목 짚었다.
초기 멤버로서의 지분에 대한 요구도 빠뜨리지 않았다.
박영훈과 이야기가 됐던 부분인 터라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만 제대로 낸다면 당연히 가능한 이야기죠.”
“물론 박 대표님이 약속한 대로 저에게 전권도 줘야 합니다.일이라는 게 막무가내로 진행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더블와이에서 어떤 일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모바일 증권 플랫폼을 제대로 만들어야죠.시중에 이렇다 할 앱이 아직 없는 이때,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제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요.”
신창희는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였다.
말만 들어 보면, 그는 세계 최고의 개발자나 다름없었다.
다소 과장이 섞였겠지만, 유현은 이런 자신감을 낮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찝찝한 걸까?
머리로는 이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가슴이 따르질 않았다.
과거 면접관이었을 때는 느껴 보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렇군요.그럼 해 온 업무를 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어떻게 확인하시려고요?”
유현은 일단 나도하에게 바통을 넘겼다.
“간단한 질의응답이죠.저희 쪽에도 전문가가 있어서요.나 실장.”
“네, 이사님.”
나도하가 답하자, 신창희가 껄껄 웃었다.
“하하! 이 어린 친구가요? 재밌네요.”
“저희 핵심 개발자입니다.지금껏 저희가 만든 게 전부 이 친구 손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요? 면접 전에 보내 주셨던 앱들도 이 친구 작품이군요.”
“맞습니다.”
“어쩐지, 자유분방하다 했습니다.한번 해 보시죠.”
신창희는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손짓했다.
이것만 봐도 실력에 꽤나 자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현의 눈치를 힐끔 본 나도하는 바로 파고들었다.
“자바로 백엔드 개발을 주로 하셨다고 써 놓으셨던데…….”
“그건 프레임워크에서 데이터를 끌어와…….”
나도하의 질문 수준이 깊게 느껴져서일까?
신창희는 전문 용어를 섞어 가며 상대를 누르려 했다.
나도하 역시 지지 않고 맞섰다.
창과 창이 부딪치다 보니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하고, 박영훈이 유현에게 속삭였다.
“어때?”
“나쁘지 않네.”
“진짜 이 바닥에서 유명한 사람이야.봐 봐.오늘은 도하 녀석도 쉽게 못 넘기잖아.”
일부러 봐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하의 공격은 번번이 막히고 있었다.
“그러네.”
“근데 넌 썩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다? 좀 오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래?”
“아니.그럴 리가.저 정도면 양호하지.”
나도하 면접 때를 생각하면 신창희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설령 건방지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경력 있고 실력 있다는 의미니, 오히려 인정해 줘야 했다.
“그런데 왜?”
“글쎄.이상하게 안 끌리네.”
“야, 너 도하 앞에서 그런 얘기 꺼내지 마.겨우 잡은 기횐데 놓치면 안 돼.”
“나도 그럴 생각 없어.”
박영훈의 우려는 충분히 알고 있다.
유현도 그런 추상적인 이유로 기회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화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부족한 게 없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신창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분명 데이터베이스 접근에 대한 설명은 아까 했을 텐데?”
“AWS 클라우드와 데이터베이스 연동 방식이 설명하셨던 내용과 달라서 그렇죠.그대로라면 진행이 안 됩니다.”
“뭐가 안 된다는 건가? 그게 정석이야.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혼자 안 된다고 하는 거지?”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개선을 해야죠.효율이 배 이상 차이 나는데, 왜 불필요한 방식을 고수하는 겁니까?”
“자네가 나보다 경험이 많나? 이 바닥에선 겸손해야 해.그걸 모르니 어디다 쓸지도 모르는 메신저 같은 앱을 만드는 거야.”
치열한 대립 중에 메신저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애정을 듬뿍 쏟은 게 무시당했으니, 화가 날 만했다.
“그러지들 말고…….”
중재하려는 박영훈의 팔을 유현이 잡았다.
그러곤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일단 그냥 놔둬.”
“도하 녀석 성질 알잖아.가만히 있겠냐?”
“이것도 과정이야.”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그냥 둬 봐.어디까지 하나 보게.”
박영훈을 막아 세운 유현이 나도하를 바라봤다.
잔뜩 독이 오른 표정이지만, 과거처럼 철없이 쏘아붙이진 않았다.
억지로라도 꾹 눌러 참으려는 기색이다.
잠시 침묵하던 나도하가 애써 화를 억누른 채 말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어디다 쓸지도 모른다는 건가요?”
“개념은 신선한 거 인정해.근데 그게 돈이 되나?”
“사람들이 모이면 돈이 되는 거죠.”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거야.뭐, 자네 딴에는 재밌자고 했겠지.하지만 마니아들이나 좋아할 만한 걸로는 결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이건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도하의 반박을 듣고 있자니, 유현에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신난 듯 떠들어 대던 윤보미의 모습이었다.
-전 면접 전부터 위드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어요.이걸로 연동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요.
단순히 그녀가 마니아라서 좋아한 걸까?
아니다.그녀만 특이한 게 아니었다.
위드를 처음 본 순간, 박영훈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랐었다.
-이건 혁신이라니까.이걸 모바일 주식 플랫폼과 연동한다고 생각해 봐.프리미엄 고객에겐 자동 매도 매수까지 지원하면 진짜 대박 터져.
미래를 경험한 유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나도하가 만든 메신저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그랬구나.’
유현은 그제야 왜 신창희에게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다.
면접 전 나도하의 앱을 접했다면 흥분했어야 정상이지만, 그는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돈벌이가 안 되는 걸 왜 했냐며 폄하하기까지 했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눈앞에 있는 혁신을 전혀 몰라봤다.
다른 면접 인원들이라고 달랐을까?
하나같이 학벌 좋고 IT 업계에서 경력 많은 사람들인 걸 미뤄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도하가 왜 보미 씨보다 못하다고 했는지 알겠네.’
피식 웃은 유현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지금 이 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런 마음으로 두 사람의 설전에 끼어들었다.
“나 실장, 거기까지.”
“네? 아, 네, 이사님.”
유현이 잔뜩 흥분한 나도하를 물리자, 신창희가 불만을 내뱉었다.
“이거 생각보다 뜯어고칠 게 많겠습니다.어린 친구가 실력은 있는데 경험이 없다 보니,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네요.이런 식으로 체계 없이 일하면 결코 성공 못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후! 저 정도 되니 이런 말도 해 주는 겁니다.”
“그럼요.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새삼 깨달음도 얻었고요.”
“그랬다면 쓸데없는 시간은 아니었겠네요.”
쓸데없기는커녕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신창희 같은 부류는 더블와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알았으니 말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티를 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유현은 미소와 함께 면접을 정리했다.
먼 길 온 신창희에게 두둑한 면접비를 건넨 건 덤이었다.
신창희를 배웅한 후였다.
박영훈과 나도하, 유현은 대표실에 다시 모였다.
잔뜩 굳은 표정을 짓던 나도하가 고개를 푹 숙였다.
“형, 미안해요.제가 또 괜히 흥분해 버려서.”
유현이 답하려던 찰나, 박영훈이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듣다 보니 나도 짜증나더라.”
“웬일로 형이 반대해? 힘들게 데려온 사람이라며.”
“저 정도로 위드를 무시할 줄은 몰랐지.웬만하면 맞춰 주고 싶었는데, 저래선 내가 하자는 것도 안 할 거 같더라고.”
“그거 참 현실적인 이유네.그래서 안 뽑으려고?”
떠보는 듯한 유현의 물음에 박영훈이 어이없어 했다.
“내가 안 뽑았냐? 네가 싫어서 면접 멈춘 거잖아.”
“역시 대표님 눈은 못 속이겠어.”
“괜한 소리 말고, 이제 어쩔 거야? 딱 보니까 너도 쉽게 사람 못 뽑는 거 같은데.”
맞는 말인 터라 유현은 바로 수긍했다.
“인정.지금의 방식으로는 안 될 거 같아.”
“지금 방식이라니?”
“형이 나서서 IT 업계 사람들 데려오는 거 말이야.”
“네가 경력 있고 실력 확실한 사람들을 데려오라며? 그래야 도하 수준에 맞출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했지.근데 그건 내 착각이었던 거 같아.”
유현은 나도하에게 맞추려면 당연히 검증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