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1988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회귀 (3)
끼이익!
현재 자동차의 흰색 스텔라가 멈추었다.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에서는 좀 사는 사람이었다.
차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정장을 입은 동수의 친구 최덕만이었다.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스텔라와 최덕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트렁크를 열어서 과자 선물상자와 오렌지주스 세트를 꺼내어 양손에 들고 동수의 집으로 걸어갔다.
단독주택의 초인종을 누르자 동수가 출입문을 열고 나오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덕만아, 어서 와라.”
“잘 있었냐?”
“어, 나야 늘 그렇지.”
“군 제대했다는 것은 들었는데 일이 바빠서 못 와봤다. 미안하다.”
“괜찮아. 이건 뭐냐?”
“그냥 오기 그래서 사왔다.”
“고맙다.”
덕만이 내미는 것을 받아서 한쪽에 두었다.
덕만이 거실 소파에 앉자 재빨리 동수가 냉장고를 열어서 시원한 포도주스를 주스 잔에 부어서 가져왔다.
덕만이 포도주스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거실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펴보았다.
“이제 제대를 했는데 뭐할 거냐?”
“글쎄. 아직은 생각 중이다. 곧 뭐라도 해야겠지.”
동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을 가지 않고 몇 개월 후에 군에 입대를 했었다.
하지만 덕만은 한성 전문대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고 글렌이라는 재미교포가 설립한 이스트 아메리칸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동안 동수가 군에 있어서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휴가를 나왔을 때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
갑자기 어제 연락이 왔고 오늘 이렇게 집으로 찾아온 거였다.
‘으음, 역시 내가 너무 순진했었어.’
동수는 포도주스를 마시면서 덕만을 쳐다보았다.
“지금도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냐?”
“그럼. 다니고 있지.”
“좋아 보인다?”
“요즘 주식으로 돈 좀 벌고 있어.”
“주식?”
“그래. 회사의 월급만으로는 큰돈을 만지지 못하니 부업으로 생각하고 주식을 하였는데 이게 더 많은 돈을 벌어.”
“호오, 대단하다.”
동수가 장단을 맞추어주자 신이 났는지 덕만이 자랑을 시작했다.
회귀 전에는 전혀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친구 덕만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허접한 수법이나 이야기에 속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색을 하지는 않고 덕만이 신나게 떠드는 것을 들어 주었다.
충분히 바람을 잡았다고 판단을 했는지 이야기를 멈추었다.
“동수야, 나가자.”
“그래.”
동수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점퍼를 꺼내 걸치면서 다시 나왔다.
덕만이 구두를 먼저 신고는 나가자 뒤따라 동수가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열쇠로 출입문을 잠그고 대문은 그냥 닫았다.
덕만이 흰색 스텔라의 차문에 키를 꽂더니 돌린 후에 차문을 열었다.
“호오, 멋진데?”
“이번에 한 대 구입했다.”
덕만이 운전석에 앉자 동수는 조수석에 탔다.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출발하여 동네를 빠져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동수는 앞만 바라보았다.
동네를 빠져나와 1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숯불구이집이었다.
지글지글!
불판에 양념 소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덕만이 오늘 한턱낸다고 하였기에 동수가 머리를 끄떡이면서 따라온 거였다.
돼지고기도 아니고 소고기는 비싸다.
그렇기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수가 젓가락으로 잘 구워진 소고기를 상추에 올려서 먹었다.
역시나 소고기는 맛있었다.
그렇지만 1등급 소고기라서 아주 고급은 아니고 그냥 먹을 만했다.
현재의 동수에게는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덕만이도 소고기를 먹으면서 집에서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월급쟁이에 불과하기에 주식에 관하여 배우고 지금은 제법 큰돈을 만진다는 내용이었다.
‘으음, 역시나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동수는 태연하게 상추에 고기를 올려서 먹으면서 덕만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덕만이의 말이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진실은 20%정도 되었지만 80%가 거짓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한성 전문대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고 글렌이라는 재미교포가 설립한 이스트 아메리칸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고 약간의 횡령을 하여 6개월 만에 해고가 되었었다.
지금은 사채업을 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돈이 궁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사기도 쳤다.
주식을 하는 것은 맞지만 생각보다 수익을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에 빚이 35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친구인 동수에게 찾아와서 사기를 치려고 하는 거였다.
순진한 동수는 먹음직스러운 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동수는 단독주택과 2만평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었는데 돌아가시면서 모든 재산의 명의가 동수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생각보다는 부자였다.
이것을 알고 있는 덕만이기에 동수에게 사기를 치려는 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동수였기에 친구 덕만에게 사기를 당하지만 회귀한 동수는 바보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덕만의 이야기가 거짓이고 사기를 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소로웠다.
다만 내색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덕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쌈을 싸서 고기를 먹었다.
‘으음, 허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나는 모르고 속았다니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었어.’
덕만이가 아니었더라도 이대로 계속 순진하고 사회 물정을 모른 채로 살았다면 또 누군가에게 손쉽게 사기를 당하였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주식으로 얼마나 벌었냐?”
“가지고 있는 돈이 많지를 않아서 한 8천만 원 정도?”
“우와, 대단하다.”
“밑천만 두둑하다면 크게 벌수도 있는데 너무 아까워.”
덕만은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내었다.
요즘 잘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급 정장에 스텔라를 끌고 왔고 이렇게 친구 동수에게는 숯불구이 집으로 데리고 와서 거하게 식사 대접을 하는 거였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동수에게 사기를 치기 위함이었다.
요즘 주식시장이 뜨겁다는 것은 신문에도 보도가 되고 있었다.
덕만은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기에 손쉽게 주식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 밑천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이렇게까지 말하였다면 성급하게 동수가 달려들었을 거였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쌈을 싸서 먹었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덕만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동수 너도 주식을 해보는 건 어때?”
“내가?”
“그래. 주식을 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뭐 아는 게 있어야 하지.”
“내가 있잖아.”
회귀 전에도 이렇게 덕만의 말에 속아서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게 집안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처음에는 가지고 있던 돈을 투자하여 덕만의 정보로 약간의 수익을 올리기도 하였었다.
나중에는 작전주에 속아서 40평대의 단독주택과 집 근처에 있는 밭 2만 평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하여 주식 투자를 하였었다.
문제는 친구 덕만을 너무 믿다보니 그가 데리고 간 곳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자율이었다.
선이자로 1천만 원을 때고 매월 말일에 30%의 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3개월 후부터는 복리로 계산하여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자였지만 두 달 후에는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높은 이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작전주로 단기간에 큰돈을 벌수 있다는 덕만의 말에 속았기 때문이다.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어서 덕만이 추천하는 작전주를 매수하는 데 전부 써버렸다.
그 이후로 덕만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작전으로 덕만 일당들은 크게 한탕하고 잠적해버린 거였다.
어쩔 수없이 40평대의 단독주택과 집 근처에 있는 밭 2만 평을 팔아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갚았더니 약간의 빚이 생겼다.
월세 방을 얻어서 이사하고 수년을 어렵게 살면서 겨우 빚을 다 갚긴 했다.
어쨌든 덕만의 사기에 당하면서 사람을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인생의 내리막을 타면서 가난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게 가슴에 한이 남을 정도였다.
만약 친구 덕만에게 사기만 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하류 인생으로 살지는 않았을 거였다.
이렇게 회귀한 이상 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흰색 스텔라가 길가에 멈추었다.
조수석 차문을 열고 동수가 내렸다.
“동수야, 생각해 보고 연락해.”
“그래.”
동수가 차문을 닫아주자 다시 출발했다.
멀어지는 흰색 스텔라를 잠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으음, 친구로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믿을 수 없는 놈이었어. 친구인 나에게 사기를 칠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집과 땅을 담보로 작전주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럼 덕만은 사기를 치지도 못하고 다른 자에게 사기를 치다가 교도소에 들어갈 거였다.
어차피 덕만은 동수에게 사기를 치고 달아났지만 몇 년 후에 사기를 치다가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
동수에게 사기를 치고 달아났기에 그 이후에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작전주에 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후후후, 놈들에게 내가 먼저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군.”
동수는 눈을 번뜩이고는 뒤돌아 집으로 걸어갔다.
열쇠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닫았다.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니 수정이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수정이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빠, 누가 찾아왔어?”
“어, 덕만이.”
“덕만이 오빠가 무슨 일로?”
“내가 제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던데? 나가서 같이 밥 먹고 들어오는 길이야.”
“그랬구나.”
머리를 끄떡인 수정이가 고개를 돌려 TV를 시청했다.
그런 수정이를 한차례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입고 있던 옷과 속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예전의 동수였다면 속옷이나 옷을 잘 갈아입지 않았다.
물론 샤워도 하지 않고 2주일에 한 번씩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회귀한 후에는 매일 샤워를 하고 외출하면 돌아와서 또 샤워를 하니 하루에 두 번 샤워할 때도 있었다.
속옷과 옷도 입었던 것을 벗고 갈아입으니 크게 달라진 거라 할 수 있었다.
깔끔해진 모습이기에 수정이와 어머니가 모를 수가 없었다.
방에서 나온 동수가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보리차가 들어 있는 재활용 주스 유리병을 꺼내어 뚜껑을 열어 컵에 부어서 마셨다.
“아, 시원하다.”
다시 뚜껑을 닫아서 냉장고에 넣고 사용한 컵은 싱크대에서 깨끗하게 씻은 후에 제자리에 두었다.
거실로 갔더니 수정이가 TV를 시청하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오빠, 샤워했어.”
“어, 샤워했다.”
“요즘 오빠 좀 변한 거 같아.”
“변하다니 어떻게?”
“매일 샤워하고 속옷이랑 옷도 갈아입고 말이야.”
“그동안 게을렀던 거 같아서 마음을 바꾸었어. 이제는 달라져야지.”
“그렇게 깔끔해지니 보기 좋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방도 매일 청소하고 있다고.”
동수의 말에 수정이가 머리를 끄떡였다.
방문을 열어서 보았었기에 오빠 방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크게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어쨌든 좋은 일이니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동수가 신문을 거실 바닥에 펼치더니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정이가 동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TV를 시청했다.
주식시세표를 보았더니 서울 건설 주식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500원이나 떨어졌다.
그렇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바른 정밀 주식 시세를 보았더니 1230원이었다.
회귀 전에 친구 덕만에게 속아서 주식을 매수할 때에는 주당 1520원이었다.
덕만은 앞으로 수시로 전화하여 동수에게 주식을 권할 거였다.
바로 시작을 하지는 않고 두 달 정도 후에 호기심에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주식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친구 덕만이만 믿고 주식 투자를 하였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게 되는 거였다.
물론 동수가 어리석은 것도 있었지만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 한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허접한 사기에 당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바른 정밀 주식회사의 주식을 작전주로 이용하는 자들에게 크게 한방 먹여줄 생각이다.
‘후후후, 두 달 정도 후에 서울 건설 주식을 매도하여 현금을 확보하면 바른 정밀 주식을 매수하여 크게 차익을 거두면 되겠어. 그리고 리치 금속의 주식도 매수하고 말이야.’
미래를 다 알고 있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특별히 바쁘거나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매일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