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수련(2)
“······폐관수련 말씀이십니까?”
“네, 오늘부터 3개월간이요.”
호루스의 눈을 들고 돌아온 현우.
그가 갑작스럽게 꺼낸 이야기에 류한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뜬금없이 폐관수련이라니.
‘일정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이 으레 거치는 과정이긴 한데. 현우 도련님 단계에서 벌써 폐관수련이라니.’
너무 이르지 않은가.
보통 폐관은 수련 과정에서 심득이 필요할 경우 선택하는 단련법이다. 현우의 성취는 빠르긴 하지만 아직 창천신공 2성급 수준.
아직은 폐관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심득보단 실전에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을 단계다.
실제로 주진석이나 주형석, 그리고 주영미 역시 폐관수련은 7성 이상에서나 시도했던 수련법이었다.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류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현우의 선택엔 항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류한나였다.
그녀는 현우의 선택에 의문을 가질지언정.
의심은 절대로 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동안 덕춘이는 한나 씨가 좀 돌봐주시면 좋겠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딱히 복잡한 건 없을 겁니다.”
“······예?”
류한나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하, 하지만 저는 영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따로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저보다는 다른 분을 찾는 편이······.”
“어차피 둘이 조금 친해져야 하잖아요?”
현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무기 같은 영물은 사람을 가린다. 하지만 류한나를 탐탁지 않아 한다고 해도. 결국 현우가 주인인 이상 그녀와 많이 접촉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기회에 서로 친해지는 것도.
어렵고 귀찮겠지만 나쁘지 않은 일이다.
“뭘 먹는지도 모르는데······.”
“영물이라 식사 대신 마나를 섭취하는 것 같으니까. 밥때가 되면 알아서 저한테 달라붙을 거에요.”
케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현우가 경험했던 회귀 전의 이무기는 전투력 못지않게 지능도 높은 영물이었다.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겠지.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하지만 도련님!”
현우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호루스의 눈에 마나를 불어넣자.
팬던트 중앙에 있는 황금빛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주위의 소리가 꺼지듯 멀어졌다.
오직 현우만을 그 자리에 두고.
주위의 모든 시간이 한없이 가속되어 내달리는 느낌이었다. 아득한 시간 속에서 현우는 자신의 존재를 의식했다.
그리고······.
“쉬, 쉭.”
“이리온······.”
남겨진 류한나와 이무기.
그러니까 주덕춘은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과정을 밟아가고 있었다.
“아, 으, 대체 도련님은 이걸 어떻게 하라고 나한테 맡기신 거야.”
“슈슉! 쉭!”
매몰차게 고개를 돌려버리는 덕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반응이었지만. 또 이렇게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버리니. 동물을 좋아하는 그녀로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나만 안 좋아하는 거야?’
류한나의 얼굴이 울상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주건우의 손길은 즐기는 모습을 보였는데. 유독 류한나 그녀에게만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이리로 온. 쫏쫏.”
혓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어본다.
그제야 덕춘은 시선을 돌려 류한나를 봤다. 그러나 그리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이 인간이 대체 뭐하는 거냐.
그런 느낌의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3개월이라니.
류한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맡았던 어떤 임무보다.
이번 일이 어려울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한편······.
한없이 둔화된 시간.
현우는 호루스의 눈에 의해 너무 느려진 나머지. 그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들었다.
아득한 의식 너머로.
한 가지 분명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인피니티 코어에서 비롯된 무한한 마나.
아자토스의 모래시계로부터 비롯된 인피니티 코어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적은 아니었다.
현우는 독룡 노페이탄과 일전을 떠올렸다.
‘역시,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
원래는 첫 일격으로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마침 거만한 드래곤 답게 적당히 방심하는 기색이었고.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경도로는 웬만한 오러 실드 이상.
호신강기에 버금가는 두꺼운 드래곤 스케일을 뚫는 데엔 성공했지만. 고작해야 녀석이 고통을 느낄 정도의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다.
만약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이나.
십인추를 대신해서 잡아준 주건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없었다면. 노페이탄을 혼자 상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걸론 부족하다.’
다니엘 블랙은 물론이고.
샤오 가문을 정면에서 상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이 자랑하는 독에 대한 대비는 이미 완벽하게 끝냈지만. 샤오 가문의 가주인 샤오 리와의 격차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멀다.
헌터만 해도 등급간의 격차는 아득할 정도로 멀다. 하물며 7대 가문의 실력자는 헌터 등급으론 규정하기 어려운 수준.
개중에는 SSS급 헌터를 한참 상회하는 무위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처럼.
전 세계를 통틀어 주양태 회장 같은 천외천(天外天) 격의 인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 바로 7대 가문이다.
‘2성 수준으론 어림도 없어.’
지금까진 아티팩트의 덕을 많이 보았다.
미래의 지식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부터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노페이탄과 일전으로 현우는 그 사실을 실감했다.
연료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엔진의 성능을 뛰어넘진 못한다.
마나 또한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무한한 마나를 가졌다고 해도. 충분히 분열된 코어가 없다면. 그 활용법은 무식하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무한’에 효율을 따지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가도 문제겠지만.
결론은 하나다.
창염을 비롯해 앞으로 현우가 습득할 모든 스킬의 위력과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선. 결국 창천신공의 코어를 더 분열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 수준으로는 무한한 마나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꼴이야. 기왕 손에 넣은 힘을 무식하게 휘두를 수는 없지.’
이제는······.
슬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였다.
현우는 인피티니 코어에 의식을 집중했다.
격류처럼 터져 나오는 마나.
그러나 ‘호루스의 눈’의 효능이 발동되는 동안은 1초가 하루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기혈을 타고 흐르는 격류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득한 시간 속에서.
현우는 격렬한 마나의 흐름과 자신의 의식이 차츰 동화되어 가는 것을 실감했다.
‘모든 갈래를 내 힘으로 통제한다.’
흐름이 전신을 일주한다.
결국 모든 흐름은 돌고 돌아 한 곳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창천신공의 코어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자. 인피니티 코어가 맹렬히 회전하는 심장으로.
이게 불과 3초만에 일어난 일.
그러나 그 3초는 현우에게 있어서는 무려 3년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지금까진 이 거대한 흐름을 세세하게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현우의 신체가 아직 제대로 무르익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회귀전과 현재를 통틀어 이토록 방대한 마나를 마음껏 다루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게 부족한 건······.’
이 모든 것을 담을 그릇이다.
양과 흐름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릇의 크기. 폭풍이 이는 바다의 격랑처럼. 제멋대로 요동치는 마나를 작은 술잔 속에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우선 잔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요동치는 바다를 담고 싶다면. 당연하게도 잔의 크기를 바다만큼 키워야 한다. 폭풍이나 격랑 따위로는 잔을 흔들고 깰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샤오 가문을 비롯.
인류를 배신한 세 가문을 찍어누르고. 다니엘 블랙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 기회를 헛되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한다.’
흐름과 하나가 된다.
의식으로 정확히 유도한 마나의 흐름으로. 그릇을 두드리고 유지하고 확장시킨다.
그렇게······.
오수진과 약속했던 3개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
“이야······.”
오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3개월 만에 이렇게 바뀐다고?’
호루스의 눈을 빌려주기야 했지만.
대체 어떻게 사용하면 불과 3개월 만에 이런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걸까. 오수진은 내심 감탄을 삼켰다.
“그동안 잘 썼습니다.”
현우가 내민 호루스의 눈을 받아들며.
오수진은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순순히 돌려주네?”
“그런 거래였으니까요.”
“조금 더 가지고 있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녀의 말에 현우는 가볍게 웃었다.
“당연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지난 3개월 동안 호루스의 눈을 통해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모두 취했습니다.”
“모든 이득을 취했다니······.”
그게 정말 사실일까.
진실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지난 3개월간 현우의 성취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뭐, 좋아.”
오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잘 지켜주면 그녀로선 고마울 뿐이다. 돌려주지 않으려 이런저런 변명을 대는 것보단 훨씬 깔끔하고 편하니까.
“우리 주 회장님이 좋아하시겠네. 이렇게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야.”
“글쎄요.”
주양태 회장은 언제나 결과를 중시한다.
단순히 수련의 성취를 자랑하기보단. 성취를 활용한 활약과 천무그룹에 대한 헌신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 쉬울 것이다.
“아무튼 받을 것도 받았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 볼게. 혹시라도 또 재미있는 소재를 손에 넣으면 알려주고.”
“알겠습니다.”
현우의 대답을 듣자마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오수진은 사라졌다.
“도련님.”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류한나가 현우의 방문을 빼꼼 열었다.
그녀의 팔엔 이무기.
아니, 덕춘이가 얌전히 안겨 있었다.
그동안 덕춘이도 꽤나 성장했다.
현우가 호루스의 눈을 통해 의식을 집중한 동안. 밥때만 되면 꼬박꼬박 그의 몸에서 마나를 뽑아먹은 결과였다.
“쉬익─.”
“둘이 조금은 친해진 모양이네요.”
“······쉽진 않았습니다.”
어딘가 수척해 보이는 류한나.
그녀는 아득한 눈으로 덕춘이를 응시했다. 이윽고 다시 현우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을 찾으셨습니다.”
“지금요?”
“폐관에서 나오시는 즉시. 도련님을 호출하라고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일주일 정도 되었으니. 최대한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양태 회장을 일주일이나 기다리게 했다.
만약 현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폐관 수련이고 나발이고 당장에 멱살을 잡고 끌려져 나왔을 것이다.
천무그룹의 지존.
주양태 회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조부님이 나를 일주일이나 기다리셨단 말이지.’
현우의 입꼬리가 호를 그리며 휘어졌다.
기적처럼 주어진 두 번째 삶에서. 주현우는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다른 사람들의 예상보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천무그룹의 정상에 닿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
“왔군.”
주양태 회장은 약간 심통스런 얼굴로 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를 기다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누굴 기다렸다고?”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기다린 것은 사실일진대.
그는 유독 날선 반응을 보이며 현우의 말을 부정했다. 현우도 반박보단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주양태 회장이 현우를 바라봤다.
외적인 변화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현우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주양태 회장의 감각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3개월이나 폐관수련을 했다더니. 그냥 방구석에 틀어박혀 빈둥대진 않은 모양이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몇 성까지 도달했지?”
그는 약간은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물었다.
“4성입니다.”
“벽을 단숨에 두 개나 넘어섰군.”
주양태 회장이 눈을 빛냈다.
“아무리 호루스의 눈을 사용했다곤 하지만.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법한 일을 네놈은 자꾸만 해내는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게 칭찬이라도 듣고 싶으냐.”
현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고작 칭찬이나 한마디 듣자고 시도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 역시. 이런 것으로 칭찬을 일삼는 이가 아니었다.
“그럼 이거나 보거라.”
“이건······.”
툭, 하고 현우 앞으로 던진 것.
신문이었다.
요즘 누가 신문을 본단 말인가. 현우는 새삼 주양태 회장의 나이를 실감하며 입맛을 다셨다.
현우는 신문을 집어들었다.
무엇을 보아야 하나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첫 장부터 대문짝만 하게.
못 보고 지나치기도 어려운 기사가 인쇄되어 있었으니까.
[샤오 제약, 한국 내 제약 공장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가동 예정. 국내 영약 시장 이대로 질 좋고 물량 넘치는 샤오 가문 손에 넘어가나······.]“네가 내뱉은 약속을 지킬 차례다.”
생각했던것 보다 조금 빨랐지만.
현우가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