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70)
회귀자 사용설명서 1670화
중원무림빙의(75)
녀석이 음약(淫藥)에 중독되어 있다는 정보가 눈에 비쳐왔다.
“가까이 오지 마라.”
“군사님?”
막장 무협지 속에서나 나오는 전개였다.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다른 종류의 독들은 대부분 억누른 모양, 물론 체내에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몸에 큰 이상을 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그 많은 독들을 전부 뱉어낸 녀석이 놀랍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저 음약(淫藥)은 혼자서 해독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계속해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든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세맥 여기저기 퍼져 있는 기운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곧바로 해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조금 지지부진한 것 같은 느낌. 금방이라도 몸이 터져 버릴 것 같이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는 모양새.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을 보니 심각한 상황처럼 보이기는 했다.
‘시… 시바.’
“군, 군사님… 죽는 거 아니죠?”
“조용.”
“군사님? 죽… 죽는 거 아니죠?”
“조용히 하라고 했다. 이기영.”
“아니, 시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조용히 해요! 시바 이거 분명히 목에 난 상처 때문에 중독됐던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해결해 준다고 했을 때 얌전히 받아들였어야지. 시바 자존심 부리고 고집부리고 하다가 결국 더 큰 재앙을 불러온 거라고요. 아니! 시바! 아니! 아니! 애초에 진짜 웃겨. 팔이랑 손등은 괜찮고, 목은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야? 뭐 목 위로는 뭐 시바 신체 접촉하면 안 되는 구역이야? 어휴. 답답아. 이 답답아!”
“…….”
“이걸 어떻게 하니! 이 답답한 새끼를…!”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잘 억누르고 있는 중이니 네놈이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신경을 어떻게 안 써요? 지금이야 아무것도 안 하니까 괜찮겠죠. 그게 억지로 누른다고 눌러지는 것도 아닌데, 도망치면서 내공 팍팍 써 봐. 장담하건대 두 시간도 안 지나서 온몸에 약 기운 퍼지면서 기혈 뒤틀리고 난리 날 걸요.”
“네놈만 협조한다면 문제 따위는 생기지 않을 테니 신경 끄도록.”
“협조? 무슨 협조를 해요? 아….”
“……”
“그… 협… 협조해 드려야 돼요?”
“후우….”
“하… 나 좀 당황스러워서… 물론 제가 저번에 군사님 주화입마 걸렸을 때… 좀… 막 나가려고 하기는 했는데… 그때는 진짜 이성을 잃었던 거였고요… 막상 멍석 깔아준다고 하니까 조금 당, 당황스럽기는 하네요.”
“…….”
“그, 그래도 사실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해요. 제가 만들었지만 그거 딱히 해독약이 없을 것 같거든요. 물론 시간이 있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도 조금… 그렇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봐도 유일한 방법은 역시 음양합일밖에 없겠죠. 거국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게 군사님의 경지를 상승시킬 수 있는 해답일 수도요. 솔직히 현경 가지고는 좀 불안 불안하잖아요. 군사님이 너무 약해서 군사님답지 않기도 했고… 문제는 역시 조금… 하… 사실 저도 좀 꺼림칙하기는 한데…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 이었던 거일 수도… 후우… 하… 좀… 아무리… 그래도….”
“…….”
“그래.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했어요. 어쩌면 제가 설계했던 게 이런 모습이었던 거일 수도 있고… 혹시나 둘째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요. 당최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좋아요.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군사님.”
“…….”
“아니, 생각해 보니까 아직 좀 그래… 아… 하… 만약에 현성이가 같은 상황이었으면 사람 살리는 셈치고, 어쩔 수 없는 느낌으로, 우정을 생각해서 눈 한 번 딱 감았을 텐데… 필요에 의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군사님은 조금….”
“지랄하지 말고 떨어져라. 이기영.”
“네?”
“그런 의미가 아니었으니 후우… 떨어지라고 이야기했다. 네 도움이 없더라도 잘 억누르고 있으니 괜한 자극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특히 1미터 안으로 들어오지 말도록.”
“아항.”
“그만. 지금 네놈이 해야 할 일은 그 잘난 망원경으로 모용진천을 찾는 일이다. 추가로 추격자들을 따돌릴 수 있는 옵션을 재설정하는 일도 맡기고 싶군. 아니, 그전에… 지금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부터 파악하도록.”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온 거예요?”
“정확히는 모른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얘도 많이 급하긴 급했나 보자너….’
“시간은 얼마나 지났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28시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지났을 수도 있겠군.”
“그렇게 많이 지났다고요?”
“네놈이 잠들어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일일이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후우….”
‘진짜 많이 급했나 보자너….’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장담하건대 아마 독 때문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힘들어 보이는 상황인데, 온몸이 제대로 독이 돌기 시작했을 때는….
‘제정신이었을 리가 없자너.’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이지 않았을까. 물론 정신력 하나는 특출난 녀석이었으니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겠지만 몸 안에 축적되어 있는 독을 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음약뿐만이 아니라 당장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극독부터 몰아내야 하는 상태에서 모용화연을 들쳐 메고 이 작은 굴을 찾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지 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것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추격대를 상대하면서 말이다.
독 안개에 공성무기에 뭐 별별 것들이 전부 다 튀어나오고 있었으니 녀석의 말대로 정말로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걸 증명하듯이 딱 봐도 몸이 성치 않아 보인다. 내가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더욱더 상처가 많이 쌓인 듯한 느낌.
단순히 독에 중독된 것뿐만이 아니라, 누적된 대미지도 놈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
그 와중에 인내심도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든다.
슬쩍 이쪽의 몰골을 확인해 본 것은 당연지사. 물에 흠뻑 젖었던 만큼 거의 반 나신 상태다. 얇은 옷가지들이 내 몸을 감싸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뭘 입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걸 누가 갈아입혔는지는 뻔할 뻔 자.
음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로 뒤처리를 전부 해 놓은 것이다. 심지어 인공호흡을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녀석이 정말로 음약에 중독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자너.’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둥, 자극하지 말라는 둥, 같은 말들을 지껄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모용화연을 의식하고 있다.
‘도대체 약발이 얼마나 잘 듣는 거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갔지만 그 진군사가 모용화연을 경계하고 있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 껍데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이기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녀석이 말이다.
물론 머릿속에서는 스스로를 부정하겠지만 상반신과 하반신이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모용화연의 체취나 목소리 같은 것들마저 큰 자극이 되고 있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는 색욕과 영면에 대항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색욕으로 인해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드는 색욕과 영면과는 다르게, 이 특수 음약(淫藥) 같은 경우는 인간을 발정 난 짐승으로 만드는 종류. 진 군사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까딱하면 못 볼 꼴을 볼 수도 있었다.
‘근데 이걸 버티자너.’
명경지수(明鏡止水) 그 자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상황. 심지어는 이 와중에 거처가 나름 깔끔하다. 언제 해놨는지 옆에는 간단한 요깃거리도 준비되어 있다.
“이거 먹어도 돼요?”
“…….”
“그럼 먹을게요.”
“…….”
“이거 토끼고기 맞죠? 그 와중에 토끼는 또 언제 잡아 오셨대. 진짜 대단하네요. 군사님. 조금 믿음직스러울지도….”
“쓸데없는 말은 삼가도록.”
“조금 믿음직스럽다는 말이 뭐가 문제가 되는 건데요?”
“제길. 쓸데없는 말을 삼가라고 말했을 텐데!? 그리고 제기랄! 빨리 옷부터 입으란 말이다. 제기랄!”
“어차피 눈 감고 있잖아요. 지금 좀 위험한 상황인 거예요? 아니… 많이 HORNY 한 거예요? 그 정도로 HORNY 해요? 저 이기영이라는 거 잊으면 안 돼요. 군사님.”
“후우… 후우… 제발. 입 닫고 있어라. 이기영.”
‘무슨 말도 못 하게 하자너.’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것은 왜일까. 슬금슬금 조심스레 이동을 하며 옷을 입기 시작. 옷과 살결이 스치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크게 들려온다.
살짝 진 군사의 눈치를 살피자 아니나 다를까 이것 역시 자극적으로 들려오는 모양이다.
스르륵. 스륵. 스르르륵.
“놀리려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고 네놈 할 일이나 하라고 했을 텐데. 제발… 제발 부탁이니 제기랄! 입 닫고 네놈 할 일이나 하란 말이다!”
‘나 참… 진짜.’
효과가 있다고 하기에는 뭣했지만 뭔가 가닥을 잡은 것 같기는 하다.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이리저리 내공을 움직이는 모습, 성능 좋은 음약을 아예 내공으로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약기운에 대항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흡수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게 되네.’
조금이지만 경지상승마저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지라, 구태여 내 도움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녀석의 말대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곧바로 녀석에게 시선을 뗀 이후에, 곧바로 망원경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중원대륙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지금 녀석과 내가 자리한 장소는….
‘감숙?’
강물을 타고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해만 넘으면 곧바로 마교가 있는 십만 대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시간을 단축한 셈이었다.
진군사가 황하에 몸을 던진 선택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 시바….’
아니, 단순히 사람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 퀄리티도 문제가 될 만했다. 구대문파에 오대세가는 물론이거니와 온갖 낭인들까지 자리해 있는 중, 정파 사파 할 것 없이 인간들이 떼거지로 몰려 서로를 향해 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에 하북에서 봤던 모습 따위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미쳐 있는 아귀 놈들이 서로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며 칼을 던지고 있었다.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줄 광경이라 할 만했다.
‘꼬물이는… 어디에 있지?’
“…….”
‘아마 이쪽 근처에 있을 텐데?’
현경에 오른 두 노괴들이 분명 꼬물이를 데리고 있을 테니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에이이잉! 말년에 얻은 제자 때문에 외팔이가 되어버렸구나!!
-팔 한 짝이면 싸게 먹힌 것이오! 형님!
-네놈 팔은 멀쩡하다고 유세 떠는 것이냐?!
-그런 뜻이 아니지 않소! 나 참!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꼬물이를 안고 도망치고 있는 두 노괴들의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뭐야. 얘네는 왜 쫓기고 있어?’
-모용화연의 아들이다! 잡아라!!!
-갈!! 이런 개잡놈들을 보았나! 감히 누구 제자에게 손을 데려 하려는 게냐!!
-형님! 괜히 또 싸우지 말고 어서어서 이동합시다! 절륜색부부는 안전하게 빠져나간 것 같으니… 이제 우리 제자 놈 차례요!
-에이이이이잉!! 일단 먼저 가거라!!!! 나는 여기서 이놈들을 모두 저승길로 데려가야겠으니!!!
-염병 떨지 마시고 빨리 달리기나 하시오! 형님!
심지어 상황이 그리 좋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