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41)
회귀자 사용설명서 1741화
중원무림빙의(146)
일생일대의 고백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이쪽에게 잔을 기울이는 꼬물이가 시야에 비쳐왔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에 무슨 시바 술을 권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니… 이거 물이구나.’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상태가 좋지 않은 사마영을 배려한 것이다. 눈을 조금 흘기자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 여전히 더없이 진지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
“…….”
‘이… 이 새끼… 진심이냐구….’
이걸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동안 고민이 들기는 했지만 받아들이는 선택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 모용꼬물을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나한테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우리 꼬물이에게는 무척 중요한 이벤트였으니 이런 종류의 리액션은 선보여야 했다.
그간의 기다림과 무례가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는 듯이, 이전의 모용진천이 아니라 지금의 모용진천을 기다려 왔다는 듯한 표정을 선보이는 것이 옳다.
술잔을 들어 올린 이후에는 천천히 입가로 가져다 댄다.
‘울 꼬물이 입 찢어지네.’
정말로 찢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기분이 좋아 보인다. 간만에, 아니, 처음 보는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라 말할 만했다.
‘표정 관리 좀 하지.’
녀석에 비하면 이쪽은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편이다. 술잔에 들어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신 이후,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것은 당연지사. 조금 비틀거렸던지라 혹시나 내가 쓰러지지 않을까 황급히 자세를 취하는 꼬물이였지만, 녀석을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제,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주군을 섬기겠나이다.”
곧바로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낸다.
전형적인 중원식 이벤트였다. 이후에 일어나는 이벤트들도 사실 뻔하다. 꼬물이는 황급히 이쪽의 몸을 일으켜 세울 테고, 뭐 덕담을 주고받겠지.
당연히 연회도 열 것이다. 꼬물 사단에 이쪽을 정식으로 소개시키는 자리이니 만큼 아마 광란의 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아니나 다를까.
“기쁜 날이로구나. 그래. 이럴 게 아니라 연회를 열어야겠다. 본좌가 드디어 사마영의 마음을 얻었으니 충분히 기념이 될 만한 날이다. 어찌 이 좋은 날에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본교 전체에 본좌가 날개를 얻었다는 것을 선포할 것이고, 앞으로 본교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알릴 것이다. 아니, 본교가 아니라 중원 전체에 전할 것이니라.”
‘울 꼬물이… 너무 흥분했자너….’
“거기 아무도 없느냐!!!”
‘완전 막무가내자너. 목소리도 우렁차자너. 신생아 때보다 더 우렁차자너.’
“지금 당장 연회를 열 것이다!!! 교 역사상 가장 크고 성대한 연회가 될 것이니, 그 신분이 천하든 귀하든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초대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로 흥분한 거냐고.’
“충… 충!”
“충!”
“추웅!!!”
어디에선가 나타난 쫄따구 놈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제일 당황스러운 게 아마 쟤네들일 것이다.
‘무슨 수로 연회를 준비하겠어?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소리자너….’
내가 직접 집도하더라도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교 전체의 주요인사들을 초대하는 것도 일이거니와 단기간에 연회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다. 길게는 일주일 이상도 걸리는데 이걸 어떻게 하루 만에 준비할 수 있겠는가.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인간을 갈아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말하기 입 아프지만, 현 천마신교와 모용진천에게 반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신뢰를 얻어가는 현 교주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앞으로 바뀌어나갈 천마신교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연회를 아예 안 여는 것도 그렇기는 해.’
사마영이 계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했으니 말이다.
사실 연회는 성대하면 성대할수록 좋다. 내가 그만큼 꼬물이에게 신임받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규모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였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꼬물이의 말처럼 교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연회를 열고 싶다. 그 가운데에서 내가 이 교의 비선실세임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건… 에, 에바겠지.’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은 그런 선택지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교주님.”
“…….”
“교주님.”
“…….”
‘이 새끼 못 들은 척하는 것 봐.’
“주군.”
“아. 그래.”
“주군께서 소인을 챙겨주시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사오나 성대한 연회를 열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 나도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음이다. 하나….”
“저 역시 연회를 여는 것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
‘가신이 된 다음에 처음으로 말하는 건데… 곧바로 거절하지는 않겠지?’
“…….”
‘거절하고 싶은 표정인데?’
“그래, 그렇게까지 이야기한다면… 어쩔 수가 없겠구나. 나는 이 연회가 쓸데없는 허례허식이라 생각하지 않으나. 지금 교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이니….”
“제가 어찌 주군의 뜻을 모를 수 있겠사옵니까.”
“후우….”
“…….”
“그대의 뜻이 그러하다면 연회는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준비하겠다. 본궁에서 중요한 손님들만 초대해 그대가 본좌의 책사가 되었음을 알릴 것이니라.”
“…….”
“오늘 저녁 연회가 시작될 것이니 그때까지 몸을 편히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 저녁? 그게 될까? 암만 조촐하게 해도… 준비하려면 한참 걸릴 텐데….’
“…….”
“…….”
하지만 슬쩍 바깥에서 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서기도 한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심 씨 삼 자매가 그 이유였다.
‘그래. 쟤네… 저런 방면으로도 엄청 유능하기는 했어.’
그야말로 경지에 올랐다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다. 지금은 무공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 더 치중하고 있기는 하나, 사실 심 씨 자매들의 전문분야는 저쪽, 겨우 3명이서 예전 연가장을 전부 책임졌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단순히 연가장을 책임졌을 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도 전부 처리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초인이었지.’
초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정도였다. 지금 그녀들의 밑에는 직속 하인들이 수십은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소소는 음식을 담당하고 있었고, 심소희는 연회가 열릴 연회장을, 심소월은 연회에 초대할 주요 인사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녀들이 직접 움직일 때마다 뭔가 성벽이 쌓아 올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어느새 이쪽에 방에 갈아입을 옷까지 도착해 있다.
‘부채, 부채는 꼭 있어야 하는데… 부채 가지고 왔지?’
그래. 누구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부채도 자리해 있다. 그 와중에 눈에 띄었던 것은 심 씨 자매들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꼬물이의 명령에 따라 연회 준비는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고 실제로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뭔가 본인들만의 성에 갑작스레 찾아온 사마영이 불청객처럼 느껴지는 걸까. 아니, 불청객도 불청객이었지만….
‘궁기신녀… 이슈도 있지 않았었나? 그건 어떻게 됐지?’
어쩌면 지난 사건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궁기신녀도 꼬물이의 관심을 한 번 받았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아직도 관심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간에 궁기신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들켰을 수도 있고, 그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은 꼬물이가 궁기신녀를 멀리했을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간에 심 씨 자매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꼬물이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반갑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꼬물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인 줄 아는 거냐고….’
“…….”
‘아니…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이기는 한데….’
“…….”
아무튼 간에 사마영의 데뷔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 건방지게 행동하기도 했고… 갑작스레 바뀐 꼬물이의 태도를 보자면…
‘완전 미움받으면서 시작할 것 같은데?’
“…….”
‘심 씨 자매들뿐만이 아니라, 꼬물이 사단 전체한테 미움받고 있을 것 같은데….’
“…….”
‘이거 괜히… 연회 규모를 축소하자고 했나?’
“…….”
‘대놓고 성대하게 해서 사마영의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줬어야 했던 건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는 걸 좀 알려 줬어야 하는 건가? 괜히 착한 척하려다가… 시바 쭉정이 취급당하는 거 아닌가?’
순식간에 걱정이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기 싸움을 피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니, 특기였지만… 되도록 귀찮은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아냐. 괜한 걱정이야. 꼬물이도 알고 있겠지. 얘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똑똑하니까. 아마 적당히 챙겨주고 면도 세워줄 거야.’
가장 성대한 연회를 열겠다고 한 것부터가 이미 사마영을 팍팍 밀어준다는 신호였다. 연회가 다소 조촐할지언정 나를 아낀다는 것을 티를 낼 가능성이 높다.
“…….”
“…….”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배치가 이상한데?’
“…….”
‘내 자리… 어… 상석이야… 어? 뭐야. 내 자리….’
“…….”
‘꼬물이 바로 옆자리야?’
꼬물이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된 내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중앙에 좌석 두 개가 배치되어 있다.
그냥 옆자리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꼬물이의 옆에서 모든 가신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터라 부담스럽다.
다분히 의도가 의심스러운 배치. 자연스럽게 이쪽을 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거기에… 거기에… 이 녀석… 과하게 친절하다.
“사마영. 몸은 괜찮은가.”
“네. 주군.”
“사마영. 음식은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군.”
“네. 주군.”
“사마영. 그대를 위한 연회이니라. 좀 더 즐겨도 좋다.”
“네. 주군.”
“사마영.”
“네. 주군.”
연회가 시작된 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 이름만 불러대고 있었다. 나머지는 시바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서 졸지에 꼬물이의 이쪽의 대화만 듣고 있다.
밀어주는 것은 좋지만… 시바 너무 밀어주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 또 문제였다.
심지어… 조촐한 연회도 아니었다.
‘이게 조촐한 거면… 성대하게 할 거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