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8
18화 보물찾기(2)
전화로 백영희에게 힘들다고 엄살을 좀 부렸더니, 얼마 후에 그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임팀장. 몸은 좀 괜찮은가?
백창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괜찮습니다. 좀 피곤하긴 합니다만···.”
-괜찮긴! 영희한테 다 들었네.
휴대폰 너머에서 백창수가 한숨을 쉬었다.
-상식적으로 그만한 몬스터를 잡았는데 멀쩡할 리가 없잖은가. 물론 자네 마음은 잘 알지만···.
“네?”
이 양반이 뭘 잘 못 드셨나.
알긴 도대체 뭘 안다는 거야?
-나도 젊을 때는 힘들어도 괜찮은 척, 아파도 멀쩡한 척 했지. 그땐 그게 진짜 남자다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갑자기 추억을 회상하시는데, 나로선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요. 전 힘들면 쉬고, 아프면 병원부터 갑니다.”
-하하. 속마음을 들키니 부끄러운가 보군. 젊을 때 부리는 허세는 청춘이란 증거야. 다 이해하네.
이 아저씨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반박하기도 귀찮아도 대충 맞장구를 쳤다.
“아, 네, 뭐···. 근데 무슨 일로 전화하신 겁니까?”
-앞으로는 어제처럼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해서. 자넨 영희와 함께 우리 길드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이 아닌가.
길드의 미래를 짊어지고 싶지도 않고, 백영희와 함께는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내가 영희랑 얘기를 해봤는데 말이지.
“아, 네네···.”
이런 귀찮은 꼰대 같으니.
할 말 끝났으면 빨리 끊었으면 싶었다.
-며칠 더 쉬고 오게.
“아, 네네···. 네에?”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되묻자, 백창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팀 구성이 제대로 완료될 때까진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는 어려울 거야. 영희 말로는 그게 사흘 정도 걸린다더군.
“저도 그 얘긴 들었습니다만···.”
-그러니 아예 사흘간 푹 쉬고 완벽한 몸 상태로 돌아오라는 뜻이네.
그 순간 나는 “대표님 만세!” 라고 외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사흘이요? 정말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지.
나는 혹시라도 백창수가 말을 바꿀까 싶어 빠르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고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저, 그리고 말이지···.
갑자기 백창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는 마치 속삭이듯이 작게 말했다.
-언제 시간 날 때 나랑 대련 한번만···.
이 아저씨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네.
다행히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아빠-!!” 라는 고함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크흠! 그 이야긴 나중에 하지. 그럼 임팀장! 사흘 후에 보세나!
백창수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마 지금쯤 자기 딸에게 구박당하고 있을 것이다.
“사흘이라···.”
갑자기 사흘이나 휴가가 생겼다.
그 동안 길드에서는 나와 7팀에서 일할 사람들을 섭외해줄 것이고, 왕구호 영입도 백영희가 직접 진행해주기로 했다.
물론 나도 그때까지 놀고먹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야. 꼬맹이.”
한글공부용 그림책을 보고 있던 릴리가 부루퉁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왜?”
꼬맹이는 점심 때 일로 아직까지 내게 삐쳐 있었다.
물론 저 정도는 간단하게 풀어줄 방법이 있었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씰룩.
부루퉁하게 부어있던 뺨이 움직였다.
하지만 꼬맹이도 주제에 자존심은 있다고,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배 안 고픈데.”
“진짜? 배 안 고파? 하나도?”
“···별로 안 고픈데.”
목소리에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쉽다. 진짜 맛있는 거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치킨만큼이나 맛있는 건데···.”
순간 릴리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치킨만큼 맛있는 거? 거짓말!”
나는 씩 웃으며 무지몽매한 꼬맹이를 바라봐 주었다.
“꼬맹아.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단다. 이 지구에는 치킨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음식도 있지.”
꼴깍.
릴리는 침을 삼키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다다 뛰어와서 외쳤다.
“그거 먹으러 가자!”
“배 안 고프다며.”
“다시 고파졌어!”
“앞으로 내 말 잘 들을 거야? 내가 해준 요리도 잘 먹고?”
“······.”
“이거 봐라? 중요한 타이밍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네?”
잠시 후, 릴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 아저씨가 만든 것도 먹을게···. 후우···.”
무지하게 기분 나쁜 한숨이었지만, 그래도 어른인 내가 참기로 했다.
“빨리 그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잠깐.”
나는 보채는 꼬맹이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이게 정확히 우리나라 속담인지는 모르겠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웅? 그게 뭔데?”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먼저 일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이거야.”
잠시 후, 나는 못마땅한 표정의 꼬맹이를 옆구리에 끼고 텐트를 나섰다.
오늘은 미뤄뒀던 보물찾기를 할 생각이었다.
***
우리는 텐트를 벗어나 꽤 많이 움직였다.
통제구역 바깥에는 야생동물과 범죄자들, 그리고 멀리 갈수록 몬스터들이 많아진다.
나는 꼬맹이를 옆구리에 끼고, 최대한 몬스터를 피해서 달렸다.
휘익! 휙!
통제구역 바깥에 있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퍼스트 게이트 때 출현한 녀석들이었다.
그 때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무리를 이루거나 각자 영역을 구축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번식해서 개체를 늘리기도 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녀석들처럼 말이다.
“···생각보다 많네.”
나는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우르크 부락을 살펴보고 있었다.
우르크. 회색피부의 이족보행형 몬스터.
오거나 트롤보다는 약하지만 단체행동을 하고,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생명체가 들어오면 무조건 죽이는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부락을 살펴보며 놈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대충 200마리 정도인가.”
지금으로부터 1년 뒤쯤, 정부는 대규모 토벌대를 구성해 저 부락을 쓸어버린다.
그 당시 초인+군대로 이루어진 토벌대에는 나도 포함 돼 있었다.
물론 그때 전투에서 나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토벌대의 수많은 조연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거든.”
나는 우크르 부락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석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포효하는 전사의 석상이었는데, 밤에도 스스로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퍼스트 게이트 때 넘어온 다른 차원의 유물.
내가 손에 넣으려는 보물은 저 석상 안에 들어 있었다.
“문제는 저기에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건데···.”
석상이 있는 위치는 부락의 중심.
게다가 우르크 놈들은 저 석상을 신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받들고 있었다.
나는 망원경으로 부락을 구석구석 살피며 옆에 있는 릴리에게 말을 걸었다.
“꼬맹이. 별로 기대는 안한다만 뭔가 의견 없어?”
“······.”
대답이 없기에 옆을 힐끗 보자, 릴리는 부락이 아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왠지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줌 마려워? 저기 가서 누고 올래?”
“그거 아니거든!”
꼬맹이가 내 옆구리를 힘껏 꼬집었다. 그리곤 삐졌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면 말지 왜 꼬집고 난리야?
나는 꼬집힌 자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서 잠입해 볼 테니까.”
스르르륵.
나는 오랜만에 [은신]을 사용했다.
내 모습이 주변풍경과 동화되고, 나는 그 상태로 우르크 부락 안으로 숨어들었다.
마법 경보장치 같은 게 있었다면 한층 조심해야 했겠지만, 우르크 부락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부락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나는 부락의 중앙에 있는 석상으로 점점 접근했다.
“······.”
석상 주변에서 경계를 서는 녀석은 열 마리 정도.
전력을 다한다면 빠르게 놈들을 해치우고, 포위되기 전에 석상에서 물건을 꺼내 도주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여기서 해버릴까?
내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때였다.
크르르르!
나직한 울음소리와 함께, 석상 왼편에 있는 큼직한 움막에서 거대한 우르크가 걸어 나왔다.
다른 녀석들보다 족히 두 배는 되는 덩치.
회색이 아닌 흰색털을 가진 우르크.
녀석이 걸어 나오자 다른 우르크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낑낑댔다.
“······.”
그 하얀 우르크를 본 순간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 토벌대에서 저 녀석 손에 찢겨죽은 사람만 50명이 넘었으니까.
놈은 이 부락의 우두머리이자, 말도 안 되게 강한 돌연변이였다.
크르르르···.
하얀 놈은 석상 앞까지 걸어와 이빨을 드러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내 기척을 느낀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개성 [은신]은 절대적인 능력이 아니다.
감각이 예민한 초인이나 몬스터라면 얼마든지 내 존재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물론, 내가 실력을 완전히 회복했다면 저 녀석 따위는 눈앞에서 목을 따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아직 먼 얘기고.
나는 살금살금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다행히 놈도 정확히 내 위치를 파악하지는 못해서, 나는 무사히 부락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휴우···.”
언덕으로 돌아온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은신을 해제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어떻게 됐어?”
릴리가 날 보더니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경계가 너무 많아. 그리고 그 하얀 놈은···.”
솔직히 정면승부로는 아직 어렵다.
암습을 한다면 성공확률은 절반 정도.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순식간에 200마리나 되는 적에게 포위당하게 될 테니까.
이래저래 고민해본 끝에, 나는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꼬맹이. 불을 질러서 놈들의 시선을 끌어 보자.”
잠시 후, 우르크 부락의 외곽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화르르르륵!
그 모습을 본 우르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놈들은 불을 끄겠다며 괴성을 질러대고 흙을 마구 뿌려댔다.
스르르륵.
나는 그 틈에 다시 석상으로 접근했다.
내 등에는 방화범 꼬맹이가 업혀 있었다.
지금 내 [은신]으로는 꼬맹이 하나 정도는 커버가 가능했다.
물론 혼자일 때보다 몇 배로 조심해야 하지만.
석상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 주변에 경계병들도 다 불길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행히 그 하얀 놈도 안 보였다.
이제 저 석상 안에서 물건만 꺼내면···.
크르르르르!
“······.”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순간 하얀 놈과 내 눈이 딱 마주쳤고,
“흐읍!”
릴리가 숨을 들이켜는 순간 은신이 깨졌다.
“크아아아앙-!!”
포효하면서 달려드는 하얀 놈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에라이 씨발!”
나는 곧장 뒤돌아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하얀놈과 그 부하 우르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리를 쫓아왔다.
그렇게 도망치기를 10여분.
놈들을 겨우 떨쳐낸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이렇게 두 번째 시도도 실패.
그냥 저기 말고 다른 곳부터 갈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택도 없지. 그나마 여기가 가장 난이도가 낮은 곳인데···.”
“여기! 여기야!”
그때 도망치는 동안 팔자 편하게 내 등에 업혀 있었던 꼬맹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꼬맹이를 바라봤다.
“뭐가 여긴데?”
“여기가 내가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곳이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나 했더니 그거였나.
릴리는 가이아 대륙에서 차원게이트를 넘어 지구로 왔고, 이곳에서 나를 만나 내 부하 1호가 되었다.
새삼 생각해보니, 나는 이 꼬맹이의 엄청난 은인이다.
이 녀석 나를 만나기 전에 범죄조직 놈들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그때 구해주지 않았다면···.
···잠깐만.
“그럼 이 근처에 그 나쁜 놈들 아지트가 있어?”
릴리가 작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그 동굴이 있어. 게이트에서 나오니까 그 동굴 안이었는데, 그 아저씨들이 날 잡으려고 해서 도망쳐 나왔어.”
나는 릴리가 말한 동굴과, 우리가 도망쳐온 방향을 번갈아 바라봤다.
10분 거리에 범죄조직의 아지트와 몬스터 부락이 이웃하고 있을 줄이야.
이거 잘만 하면…
“동굴 안에 몇 명이나 있는지 봤어?”
“100명은 넘은 것 같은데···.”
“마침 숫자도 딱이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내 입가에는 점점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