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외전) 다들 바보야?
“여긴···.”
“버려진 도시 같은데.”
게이트를 넘어온 일행은 경계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회색 안개로 뒤덮인,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
건물 벽과 콘크리트 바닥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고, 그 틈으로 잡초 따위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도로에는 버려진 자동차들이 유리창이 깨지거나 전복돼 있었다. 문짝이 뜯겨나간 흔적들, 말라붙은 혈흔이 어떤 사건의 증거처럼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걸까? 상태를 보니 이렇게 된 지 오래된 것 같진 않은데.”
소신한은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늑대화’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후각은 남들보다 수십 배 이상 뛰어났다.
킁킁.
말라붙은 피 냄새 사이로 사람의 냄새를 맡은 소신한이 말했다.
“도시 안에 아직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생존자가 남아 있나 보군. 그럼 일단 그들을 찾아서, 이곳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어떻습니까?”
게롤드가 제안했고, 다른 일행들도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도시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근데 다른 팀 녀석들은 안 보이네.”
“팀마다 시작 포인트를 다르게 설정했을 거야. 안 그러면 시작하자마자 싸워댈 게 뻔하잖아?”
“우리한테 그게 더 편한데.”
“맞아. 한 방에 다 해치워 버리면 나중에 방해받을 일도 없는데.”
“차라리 다른 팀을 먼저 찾을까?”
불과 며칠 만에 친해진 소녀들은 나란히 걸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정말?! 너희들도 그 동굴에 있었다고?”
안나는 생각보다 쾌활하고 소탈한 성격이었다.
공작의 세뇌에서 벗어난 안나는 더 이상 웬디를 질투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자신과 비슷한 소녀들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웬디도 그런 안나를 밀어내지 않아다.
무엇보다 그들은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응. 판데모니움은 여러 곳에 실험실을 갖고 있었거든.”
“그렇구나···.”
“임대인 님의 유언 중 하나였어. 판데모니움의 잔당을 모조리 찾아서 없애라고. 제국과 왕국들이 대대적인 색출 작업을 한 건 그래서야. 그 과정에서 너 같은 피해자가 생길 줄은 몰랐지만···.”
“공작님은···.”
안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릴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걱정 마. 공작은 내 친구가 혼내줬으니까! 그리고 내가 또 혼내주러 갈 거야!”
“말만으로도 고마워. 아무튼 임대인 님은 정말 위대한 영웅이었구나···.”
“후훗.”
“···왜 릴리 네가 좋아하는데?”
“후후훗!”
더 이상 오만하고 불안해 보였던 귀족 영애는 없었다. 그 얼굴에는 이제 또래 소녀다운 다양한 표정들이 자주 보였다.
“알려줘! 뭔데!”
“후후후훗! 비밀이지롱! 꺅! 간지럼 태우면 반칙!”
소녀들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누구 한 명 긴장한 사람이 없었다.
뒤따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소신한도 이젠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는 반쯤은 해탈한 상태였다.
‘뭐가 나오든···. 어차피 릴리한테는 안 될 텐데 뭐.’
그렇게 일행이 소풍이라도 나온 듯 도시 안쪽으로 어느 정도 진입했을 때였다.
모두의 눈앞에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제8 최종 메인 미션 지역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메시지와 동시에, 무너진 건물 안에서, 자동차 아래에서, 맨홀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 괴물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르르르···.”
“그르르르···.”
시커먼 어둠에 휩싸인 사람들.
아니, 한때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괴물들은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거나 변형돼 있었다.
사방에서 나타난 괴물의 숫자가 순식간에 수백으로 불어났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포위된 일행 중 누구도 놀라거나 겁먹지 않았다.
“아,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누가 많이 잡나 내기할래?”
“그럼 준비 땅!”
““릴리 너 반칙!””
경쟁하듯 마력을 끌어 올린 소녀들은 덤벼드는 적들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퍼버버벙!
-쩌저저적!
안나의 화염 마법이 적진 한가운데서 폭발하고, 웬디의 빙결 마법이 움직이는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무엇보다 압권은 릴리의 활약이었다.
“권법 소녀 출동!”
-빠바바바박!
릴리는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닥치는 대로 괴물들을 쓰러뜨렸다. 작은 주먹이 닿는 족족 괴물의 몸이 터져나가고, 발길질 한 번에 날아간 괴물은 빌딩에 부딪쳐 빌딩까지 무너뜨렸다.
“게롤드. 저희는 뭘 해야···.”
“점심 식사나 준비하지.”
팀의 두 성인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주변을 정리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조리도구를 꺼내 점심을 준비했다.
소녀들이 일대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돌아왔을 땐, 냄비 안에 보글보글 스튜가 끓고 있었다.
“잠깐! 밥 먹기 전에 손부터 씻고 와야지!”
“아저씨랑 똑같은 잔소리···.”
“여기 전염병 돈다는 말 못 들었어? 손 씻기는 질병 예방의 첫걸음이야.”
소신한의 잔소리에 릴리는 입을 삐죽이고는 손을 씻었다.
잠시 후, 일행은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근데 난이도 별로 안 높은데?”
“아니 충분히 높아. 이 파티가 비정상인 거야.”
“스튜 엄청 맛있다! 이거 게롤드가 만들었어요?”
“있는 재료로 간단히 만들었습니다.”
“웬디네 아저씨는 요리 잘하는구나. 부러워···.”
“근데 우리 밥 먹은 다음엔 어디로 가?”
안나의 질문에, 릴리가 숟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대인과 수많은 차원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한 적이 한 두 번인가.
이젠 척하면 척이었다.
“저기로 가면 될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짙은 회색 안개 너머로, 뾰족하게 솟은 탑이 흐릿하게 보였다.
***
[접근 불가 구역입니다. 선행 조건을 달성한 후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투명한 막이 일행을 가로막았다.
“여기서 더 이상 못 들어가는 모양인데?”
“선행 조건이라···. 어쩐지 여기까지 너무 쉽다 했어.”
“주변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요?”
일행이 뭔가 단서가 없나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통통!
투명한 막을 노크하듯 몇 번 두드려본 릴리는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방법이 있어.”
“방법?”
“하아압···!”
릴리는 기합을 넣으며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췄다. 두 주먹을 옆구리에 붙이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투명한 막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이 승부욕으로 불타올랐다.
“천마권법 오의(奧義)···.”
-콰콰콰콰콰콰콰!!
릴리를 중심으로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무시무시한 힘이 릴리의 일권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만둬!”
깜짝 놀란 소신한과 웬디가 양쪽에서 릴리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메시지 못 봤어? 이건 부수라고 만든 게 아니야!”
“다 때려 부수고 다닐 거면 학교는 왜 다니니!”
“아 할 수 있다니깐!”
““할 수 있다고 다 하면 안 된다고!””
잠시 후, 겨우 릴리를 뜯어말린 일행은 그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신한이 릴리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릴리 넌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기만 해!”
“힝···. 알았어요.”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왔다.
“혹시···. 초인들이세요?”
어두운 골목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년.
소년은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붕대 위로 검은 피 얼룩이 군데군데 져 있었다.
붕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게임 진행을 위해 나타나는 NPC인가 보군.’
일행은 그렇게 생각했다. 게롤드가 대표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린 이곳의 전염병을 없애러 온 사람들이다.”
“아···!”
소년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소신한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혹시 저 탑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게 있니?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힘에 가로막혔거든.”
“···아, 알아요.”
소년은 조금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그, 그 전에 먼저 절 치료해 주세요. 그럼 알려드릴게요.”
“너를?”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얼굴을 감싸고 있는 붕대를 반쯤 풀었다.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시뻘건 종기와 흘러내리는 피고름, 피부는 절반 이상이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도시에 도는 전염병이에요. 한 달만 지나면 완전히 괴물로 변해요. 전 걸린 지 3주가 넘었고요···.”
“······.”
비위가 약한 소신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게롤드의 무표정에도 살짝 금이 갔다.
오히려 소녀들은 덤덤해 보였다.
판데모니움의 실험실에서 보고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절 치료해 주시면 저 탑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
“고, 고문해 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죽을 몸이라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말은 안 무섭다고 했지만, 소년의 표정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두려움이 드러나 있었다.
“치료라···.”
소신한과 게롤드가 서로 돌아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소년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포션을 못 들고 들어가게 하더니.”
“우리가 쓰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네요.”
어른들이 곤란해할 때, 안나가 앞으로 나섰다.
“치료 마법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요.”
불꽃과 얼음에 특화된 릴리와 웬디와 달리, 안나는 다른 대부분의 마법에도 적성을 가지고 있었다.
-스르르륵···.
안나의 손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와 소년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소년의 몸이 치료되기 시작했다.
약 10분 후, 소년의 몸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흉터는 조금 남았지만 몸에 가득하던 종기가 사라지고 피부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후우···. 꽤 지독한 병이야.”
조금 지쳤는지, 치료를 끝낸 이마에는 식은땀이 살짝 맺혀 있었다.
“아···!”
소년은 완치된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몸을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알려줘. 저기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뭐지?”
“죄송해요. 몰라요.”
“뭐?”
“뭐라고?”
“사, 살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어요.”
소년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움츠린 작은 어깨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 어른들이 온갖 방법으로 시도해 봤지만 아무도 저 안으로 못 들어갔어요. 결국 다들 도망치고, 지금 도시에 남은 건 괴물들과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뿐이에요···.”
“······.”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일행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화가 났는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년이 일행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저기 정말 죄송한데···.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도 치료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사람들 중에 탑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어?”
안나가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직접 소년의 전염병을 치료하느라 마력과 심력을 소모한 만큼,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소년은 잠시 갈등하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마 없을 거예요.”
“······.”
“죄, 죄송해요. 하지만 혹시 있을지도 몰라요! 제가 가서 다시 물어볼게요. 그러니까 몇 명만이라도 더···.”
“미안하군. 우리에겐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게롤드가 딱 잘라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다른 팀들도 들어와 있었다.
자신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경쟁자들은 저 탑에 들어갈 방법을 알아낼 것이다.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어차피 여긴 만들어진 가상세계다.’
‘도와줘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돼.’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
‘나 혼자였다면 도와줬겠지만 우린 팀이니까···.’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로 소년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한 순간이었다.
“···다들 바보야?”
냉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
모두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릴리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아픈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어?”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아이가 정색을 하고 분노한다.
그들의 비겁함에, 그 치졸함에.
릴리의 분노는 그들에게 몇 배의 죄책감을 느끼게 했고,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게 했다.
안나가 어물거리며 변명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동굴에서 있었던 일. 벌써 다 잊었어?”
안나는 입을 다물었다. 웬디의 표정도 같이 굳었다.
“릴리 님.”
게롤드가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소년을 외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염병의 이유는 저 탑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치료제가 있을 수도 있지요. 결과적으로는 저곳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일 겁니다.”
“탑에 아무것도 없으면요? 갔다 오는 사이에 사람들이 다 죽으면요?”
“저는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을···.”
피식.
릴리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싸늘한 미소로.
“그냥 귀찮은 건 아니구요? 저 애가 살고 싶어서 거짓말한 걸로 화난 건 아니구요? 시험에서 1등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구요?”
“그건···.”
“핑계대지 마세요. 아저씨 말이 진심이었으면 저도 화나지 않았을 거예요.”
“······.”
낯선 릴리의 모습을 보며, 소신한은 아까 보았던 메시지 중 하나를 떠올렸다.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아마 릴리는 그 문구를 기억조차 못 할 것이다.
‘기억할 필요도 없겠지.’
저 작은 소녀는 이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소신한은 스스로를 돌이켜보았다.
‘나는 임대인 님을 동경해서 이곳에 입학하고 싶었던 건데···.’
목적을 위해 눈앞의 약자를 외면하는 사람을,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임대인 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 때,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지···.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 저 안의 세계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오기 전, 왕구호는 응시생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게 진짜 상황이라면.’
저 탑을 올라 빠르게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우선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옳은가.
‘잘 모르겠어.’
이 시험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소신한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가 소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니?”
그는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도우러 가자.”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두 소녀와 게롤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릴리의 말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듯 얼굴을 붉혔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저, 저쪽으로···.”
소년은 멀지 않은 곳의 지하벙커에 환자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안내해 줘!”
릴리는 소년에게 앞장서라고 말했다.
그 표정은 전에 없이 단호했고, 행동은 확신에 차 있었다.
“걱정 마. 우리가 아픈 사람들 다 고쳐줄게. 그리고 이 도시도 구해줄게.”
“저, 정말 감사합니다···.”
“맨날 하는 일인 걸 뭐.”
오늘따라 커 보이는 소녀의 뒷모습을, 다른 일행들은 조용히 뒤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