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ge Costs Interest RAW novel - Chapter (200)
복수에는 이자가 붙는다 외전 20화 <이 남자와 함께 영원히>(200/200)
외전 20화 <이 남자와 함께 영원히>
2024.02.16.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늘이 바로 로메리카 대통령 부부와 상공회의소 회장이 판타지아에 방문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백화점을 뒤덮은 긴장감에 직원들은 한층 들뜬 분위기였다.
비단 직원들뿐만이 아니었다. 레아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딱히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제게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달까. 더 이상한 건, 불길함은 아니었다.
‘행사 준비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래.’
레아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최대한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녀는 거울로 다가가 오늘 차림새를 점검했다.
쿠르투아 공작 부인이며 판타지아 사장답게 꾸민다고 했는데 늘 부족한 부분이 먼저 보여서 문제였다. 그때 거울 속에 테런이 비쳤다.
“테런!”
레아는 돌아서며 그를 불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아름다워, 나의 그레이스.”
“진짜요?”
레아는 땀이 흥건한 손을 연신 치마에 문지르며 물었다.
“당신은 언제 가장 예뻤는 줄 알아?”
“응?”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내 당황스럽긴 했으나 궁금하기도 했다.
“다 찢기고 더러운 드레스에 헝클어진 머리로 말을 구해 오던 그때.”
테런은 잔잔한 어조로 동화책을 읽어 주듯이 그날의 이야기를 해 주었고 레아는 처음에는 금방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무슨 정신으로 마을까지 달려가 말을 구해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친 테런을 데리고 공작저로 돌아가야겠다는 일념밖에는 없었으니까. 결국, 겉치장이 다가 아니라는 거겠지.
“우리 오늘 잘해 봐요, 테런.”
레아는 테런의 손등에 입 맞추며 열의를 다졌다.
“그러자고.”
마침, 톰의 바쁜 발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폐하와 황후님이 오셨습니다.”
“알겠어요, 톰.”
“테런, 킬리언과 일레나는요?”
“연습 중이야.”
“후!”
“연습이라곤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꽃을 건네도록 연습시켰거든.”
“세상에 당신처럼 극성 아빠도 없을 거예요.”
레아는 작은 소리로 테런에게 잔소리한 후, 톰에게 여러 주의 사항을 알렸다.
대통령과 황제 부부가 판타지아에 방문하는 동안에는 일반 손님은 받지 못하게 할 것이며 주위 경계를 강화하라 했다.
“이미 경관들이 백화점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걱정하지 마, 내 사병들도 배치했으니 우려할 일은 없을 거야.”
테런이 레아를 안심시켰다.
거기에 황실 근위대까지 엄호를 철저하게 하여 혹시 있을 테러에 대처할 예정이다.
드디어 백화점 입구부터 1층 로비까지 붉은 융단이 좌르르 깔렸다.
그 주변으로 너무 요란스럽지 않은 꽃 장식을 하여 백화점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더욱 극대화했다.
드디어 황제 부부도 도착했고 테런은 네 명의 아이들에게 꽃다발을 주곤 마지막 연습을 시켰다.
“카를 황자님과 일레나는 대통령께 꽃을 주시고, 킬리언과 벨라 공주님은 상공회의소장에게 꽃을 주면 됩니다.”
“아! 복잡해요.”
벨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카를이 제 동생에게 혀를 내밀며 소리쳤다.
“돌머리야!”
“나 돌머리 아니거든! 엄마! 오빠가 나한테 돌대가리래요!”
“야! 내가 언제 대가리라고 했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려 하자, 킬리언이 조용히 나섰다.
“황자님, 사랑스러운 여동생한테 너무 심하셨어요.”
“킬리언, 네가 벨라를 몰라서 그래, 머리가 얼마나 나쁜지 몰라.”
“우리 집에서 그런 말을 썼다간 엄청나게 혼나는데.”
“어떻게 혼나는데?”
“우리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거든요. 일레나는 살아 있는 요정이라고요.”
“헐! 킬리언, 너는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막 하고 그러냐. 아니, 설마 그 말을 믿냐?”
카를은 구토하는 듯한 과한 행동으로 킬리언을 놀렸다.
“제 동생, 일레나는 귀엽습니다.”
“그건……! 맞긴 하지만.”
“오라버니, 그만요.”
일레나는 세상 못 들을 말을 접한 양 놀란 얼굴을 했다. 그제야 카를이 장난을 멈췄다.
아이들이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사이 밖은 소란해졌다.
황제 부부와 테런과 레아는 로메리카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백화점 정문 앞에 섰다.
마침내 고급스러운 검은색 자동차가 미끄러지듯이 붉은 주단 앞에 섰다.
로메리카의 경호원들이 먼저 나와 먼저 나와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드디어 자동차 문이 열렸다.
“우와아!”
사람들의 함성이 울리고 루베크와 로메리카의 국기가 이곳저곳에서 펄럭였다.
아직은 연습한 대로 착착 진행되는 중이다.
뒤이어 도착한 자동차의 문이 열리며 로메리카 상공회의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그 사람을 본 순간 몇 명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레아와 테런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아버지?’
분명 제 아버지 리차드 해밀턴이었다.
상공회의소장의 이름이 기재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는데 일부러 비밀로 했던가.
놀라긴 테런도 마찬가지였다. 리차드와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황제 부부는 우아하게 대통령 부부를 맞이하러 다가갔고 테런도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레아를 이끌었다.
“레아, 침착해.”
“그……래야죠.”
레아는 테런이 건넨 손을 꼭 잡곤 놀란 가슴을 추슬렀다.
예정대로라면 리차드와 만나기로 한 날은 2년 뒤였다. 한데 이렇게 불쑥 앞당겨질 줄이야.
당혹스럽긴 해도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되기에 레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손님맞이에 최선을 다했다.
대통령 부부를 영접한 후 리처드에게도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이들도 연습한 대로 꽃다발을 제대로 전달했다. 특히 리차드는 일레나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테런이 말문을 열었다.
“저와 그레이스의 딸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이어 리차드의 시선은 저만치에 있는 킬리언에게 멈췄다.
누가 봐도 테런과 똑같이 생겨서 굳이 소개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아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침에 느꼈던 묘한 떨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버지를 만나려고 이리도 설렜구나.’
* * *
대통령 부부의 백화점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의 안내는 황제 부부가 맡았다.
대신 리차드는 테런과 레아가 안내했다. 한데 리차드는 백화점 곳곳을 세심하게 관찰만 할 뿐 그다지 말이 없었다.
칭찬이든 비평이든 하면 좋을 텐데, 간혹 고개를 끄덕이는 게 다였다.
그래도 처음 백화점을 보고 한 말은 크나큰 칭찬이었다.
“쓰레기만 널브러졌던 공터에 이런 훌륭한 건물을 창조해 내셨군요.”
“해밀턴 씨 덕분입니다.”
테런은 겸양의 말로 대답했다. 그때 테런이 리차드와 레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신 김에 자동차에 관한 일을 상의해야 해서요. 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백화점 안내는 제 아내인 그레이스가 마저 해 드릴 겁니다.”
누가 봐도 테런이 일부러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였다.
레아는 리차드에게 판타지아 중에서도 어디를 보여 줘야 이곳의 정체성을 가장 잘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웰스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새로 연 매장을 보여 드릴게요. 회장님 아니…….”
무어라 불러야 할지 호칭이 마땅치 않았다.
마음 같아선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지만, 그가 원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편하실 대로 부르시죠, 공작 부인.”
“네, 회장님.”
리차드가 예의 바르게 호칭을 써서 더는 고민조차 할 수 없었다. 이내 레아는 상념을 지운 뒤 그를 웰스로 데려갔다.
그녀는 웰스를 개점하게 된 계기에 관해서 설명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웰스에 들어섰을 때 리차드의 눈에 이채가 도는 것을 보았다.
통창 너머로 한눈에 보이는 도시의 전경. 그 경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레아는 리차드와 창가 자리에 앉아서 간단하게 음식도 맛보았다.
그때까지도 리차드는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양 말을 아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 후 입을 열었다.
“훌륭하군요. 역 근처에 백화점을 짓겠다고 하셨을 때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웰스를 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이곳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체가 아니라, 사람의 작은 유희를 자극하는 파라다이스라는 것을요.”
최고의 극찬에 레아는 말문이 막혔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을 정도였다.
리차드는 남은 차를 마시곤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역시 내 딸이 아니면 해내지 못할 일이지. 레아 해밀턴.”
“아버지.”
“세상에서 이런 기적을 이룰 사람은 너밖에 없다, 레아.”
“흡……!”
감동하여 두 손으로 제 입을 막는 순간, 레아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리차드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라가 말을 해 주었을 때 감정적으로는 믿고 싶었으나 그런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또다시 흐릿한 이성으로 잘못된 판단을 할까 두려웠다.
그렇게 8년을 잊고 살았다. 한데 이렇게 레아가 이룬 것들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이제껏 자신이 쌓아 놨던 세계관이 뒤집히고 말았다.
백화점 곳곳에서 딸아이의 손길이 묻어났다.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남을 인정해야 할 때였다.
“장하구나!”
리차드의 주름진 얼굴에 희열이 가득했다.
때마침 일을 보러 갔던 테런이 다가왔고 리차드는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나는 2층을 둘러보고 있으마, 레아.”
리차드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러다 만난 테런에겐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공작님.”
“예?”
영문도 모르는 채 얼떨떨해하던 테런은 눈가가 발개진 레아를 보곤 상황을 알아챘다.
드디어 리차드와 레아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음을 말이다.
테런은 리차드를 보내곤 레아에게로 다가갔다.
“당신은 참 대단한 여자야.”
그는 속삭이듯 그녀를 칭찬했다.
“저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테런은 우는 것조차 아름다운 자기 아내를 창가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오늘도 바삐 돌아가는 도시를 보고 있지만 감정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이제까지 잘해 왔다고 해서 앞으로 우리에게 고난이 없지는 않을 거야. 어떤 인생이든 시련은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하지.”
테런은 레아에게로 돌아섰다.
“죽는 날까지 나는 너와 모든 시간을 함께할 거다. 내가 가진 것이 다 사라져도 너와 아이들만큼은 목숨을 바쳐…….”
“지키겠다고요?”
“사랑도 해야지.”
레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 테런을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철없이 뛰어다니는 제 아이들을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거기에 아버지까지 되찾았으니 더는 여한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제게 넘치는 사랑과 행복을 많은 이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남자와 함께.’
<외전 마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