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a Failed Idol’s Life RAW novel - Chapter (275)
#외전 06. 언제나 한결같이 (3)
“짜잔-!”
“어?”
딸기 하우스에서 나오는 생각도 못한 얼굴들에 반사적으로 눈이 번쩍 뜨였다.
“우와! 스위프가 왜 여기 있어요?!”
우선 신나고 본 선우에 이어 내가 말을 꺼냈다.
“오늘 오후에 일정 있지 않아요?”
내가 기억을 의심하며 묻자 휘진이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거 내용 자세히 안 봤어요? 유심히 봤으면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휘진의 뜬금없는 발언에 기억을 열심히 뒤져 보자 아~~! 멍청한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행사> 지금 바로 만나러 갑니다(지방 농촌 방문 프로그램) – 당일 복귀 예정]“아…!”
그것 봐요, 라고 아주 글씨로 써 놓은 듯한 표정에 나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어쩐지. 행사비 입금일이나 금액이 자세히 첨부가 안 되어 있어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우와, 깐깐해.”
“깐깐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거든.”
옆에서 유건이 장난스럽게 끼어들었으나 나는 휘말리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지원 사격으로 온 거니까요. 오늘 여기 한 동 저희가 다 수확해야 한다는데 서둘러야 할걸요?”
갯벌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우아하고 예쁜 모습만 담을 예정이었는데. 언제 또 한 동 전체를 따는 걸로 결정된 건데? 투덜투덜하면서도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카메라 앞에 서서 열심히 포즈만 취하고 있는 나루를 보고 있으니 더더욱 나라도 손을 재촉해야 했다.
“어유, 어쩜 너무 귀엽다~.”
주 PD의 주접 섞인 칭찬을 한 귀로 듣고 있으니 속에서 저기요 저희한테는 아주 매정하게 어제부터 계속 강행군만 시키셨잖아요, 약간 반발심이 일었으나 이제 막 스무 살 된 애가 이쁨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루 자체가 워낙에 동안이기도 해서 30대는 물론 20대 후반이 봐도 마냥 어린애 같았으니까.
무슨 화보라도 찍는 것처럼 한참을 찍어대고 나서야 슬슬 다른 멤버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갔다.
“선우 씨, 거기 서서 잠깐만 포즈 취해 볼까요?”
한창 딸기가 든 바구니를 안고 종종걸음으로 이동하고 있던 선우를 주 PD가 불러 세우자 선우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면서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막내가 더 귀엽다.’
선우는 물론 아무 생각이 없을 테지만. 잠깐 서로 아무 생각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나루는 분명 자기가 더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과 함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뭐 해요,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서 난리인데.”
내가 잠깐 나루와 선우가 있는 쪽을 보며 시선을 빼앗기고 있으니 곧장 유건이 다가와 불쑥 말을 걸었다.
“왜 시비야?”
내가 다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대답하자 유건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시비 건 건 아니죠. 효율을 위해 재촉을 좀 한 거지.”
“그거나 그거나.”
이 자식 노트북 빌린 이후로 나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덕분에 도움은 많이 받긴 했다면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런 태도까지도 본인과 무척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으나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래부터 이런 타입 별로 안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기본적으로 빼어나게 탁월한 실력이 아니라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에게 더 가산점을 주었다.
물론…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좀 싸가지가 없어도 일을 잘하는 사람을 챙길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건 회사에서 할 일이니까 나라도 좀 성실한 사람을 응원해 줘야지.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경화나 휘진 같은 성격들이 좀 아픈 손가락처럼 남았다.
그리고 이놈처럼 요령 있게 넘기고 재능으로 해결하는 놈은….
‘역시 재수 없지.’
너무한 평가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녀석도 나름대로 무대 위에서는 최선을 다하기도 하는 거랑 개인적으로 고마운 건 그거랑 별개인 거고.
“잔소리할 시간 있으면 바구니나 새 걸로 좀 가져다 주지?”
“네네, 지금 가요~.”
귀찮은 일을 슬쩍 맡겼더니만 유건이 웬일로 빼지 않고 순순히 새 바구니를 잔뜩 가져다주었다. 조금 전의 평가를 좀 바꿔 줄 필요가 있나?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유건이 그새 예준과 합세하여 나루를 놀리러 가는 걸 보고 다시 감상을 되돌렸다.
‘하여간 얄미운 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 잠시간 열아홉 임현성이 되어 벌어졌던 온갖 사건들은 유건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들 어차피 믿지 않을 테지만. 유건은 임현성일 당시에는 왜 말을 안 하냐고 멤버들이 불쌍하다느니 헛소리를 잔뜩 했으면서. 내가 다시 천이세로 돌아오니 그에 대해서는 별말 없이 넘어갔다.
‘아무튼 내가 잘 돌아왔으니까 됐다는 건가.’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 줄 줄은 몰랐는데. 보비앰 때 사고 이후 플로스가 해체되기까지 이래저래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놈도 나름대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까마득하게 어린 녀석에게 요주의 인물로 챙김을 받았던 것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 나는 괜한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노트북은 잘 돌려줬으니까 됐지 뭐.’
결국 진우에게는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으니, 이 모든 소동의 전말은 나와 유건만 아는 일로 남은 셈이었다.
사실 유건에게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줄줄이 설명해 준 건 아니니까 엄밀히 따지면 그건 또 아니려나.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고 불안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는 유건의 모습에 결과적으로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사실 진우 쪽인데….
‘혹시 전 대표님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노트북을 돌려받기 위해 진우에게 연락했을 때, 진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게 물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미안하지도 않냐는 유건의 말에 전부 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천수 그룹의 막내아들이 임현성 대표와 관계가 있다는 게 남들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가뜩이나 조영푸드 전체가 지금 사주 일가 논란으로 쑥대밭이 된 와중에 그걸 수습하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진우에게 혼란을 더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 제가 잠깐 집 나왔을 때 밥을 해 주셨거든요….’
나름대로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고 댄 것이었는데 강 전무가 정말 믿었을지 아닐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라고 사실대로 다 말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건 아니라서. 그대로 돌아서기 전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 덧붙이고 말았다.
‘전 대표님이 정말 고마웠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덕분에 원혼은 안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시답잖은 농담에 진우가 겨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참 다행이네요. 말꼬리가 흐려지는 문장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다행히 진우 앞에서 우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 뒤돌아서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직전. 나도 모르게 임현성의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강 전무를 향해 멈칫 손을 뻗었다가 나는 얌전히 뒤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임현성이고 동시에 천이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천이세로서 살아가야 하니까 이게 맞는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으나, 곧 대표 대리로 여기저기서 활약하는 강 전무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 다 괜찮은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듯 중얼거리지 않아도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조금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유건이 내 쪽을 보며 소리쳤다.
“거기 손이 너무 놀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는 본인은 스무 살짜리 애 놀린다고 신나서 장난치고 있었으면서.
“네네, 일합니다, 해요~.”
내가 투덜거리며 부지런히 바구니에 딸기를 차곡차곡 채우자 풋풋한 과일 냄새가 코끝을 잔뜩 간지럽혔다.
그때 농장 주인분이 하우스로 들어와 피디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운전해서 장 좀 다녀와 줄 수 있는 친구들 있나요? 잠깐 종묘사 가서 받아와야 할 게 있을 것 같은데….”
“엇.”
이 멤버 중에서 운전이 비교적 능숙한 사람은 나와 휘진뿐이었다.
“혼자 가서 받아와도 되는 거죠?”
주 PD가 확인차 묻자 어르신이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뭐, 네네. 혼자서도 다녀올 만하기는 한데….”
한참을 상의한 결과 내가 운전을 하고 휘진이 옆에서 브이로그라도 찍는 것처럼 촬영해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별도의 촬영 스태프 없이 둘이서만 단출하게 마이크와 셀카봉을 들고 차에 올라타자 시골 특유의 흙먼지 냄새가 뽀얗게 올라왔다.
“종묘사 가서 먼저 비료 받아오고, 그다음에 시장에 들러서 점심거리를 좀 같이 사 오라는데요?”
내가 주 PD가 적어 준 간이 미션 카드를 확인하고는 시동을 걸어 차를 시내 쪽으로 몰자 휘진이 나와 풍경을 번갈아가며 화면에 담았다.
‘아니, 어차피 시청자분들은 이거 예쁜 풍경 보려고 보는 게 아니니까 차라리 본인 셀카나 찍지.’
약간 니즈를 잘못 파악한 듯한 앵글에 지적할까 싶다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촬영 중인 휘진의 얼굴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올해로 서른인 사람답지 않게.
그리고 그 훈훈한 감상은 잠시 후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 * *
“와 나 연예인 처음 봐!”
“이휘진이다 대박.”
“사인 한 장만 더 해 주시면 안 돼요?”
“총각, 이짝도 사인 좀 해 줘~.”
“누구여? 유명한 양반이여?”
“아이고, 유명하다마다. TV 틀면 나오는 인물이잖여.”
그로부터 20분도 지나지 않아 오만 인파에 둘러싸인 나는 한숨을 쉬며 여기저기서 들이밀어지는 종이에 사인을 휘갈기고 있었다.
“그러게 사람 좀 몰리기 전에 빨리 가자니까….”
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휘진에게만 들리게 불평하자 휘진이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런 시골에서도 알아봐 주셨는데 죄송하고 감사하잖아요.”
죄송하고 감사하긴. 완전 어르신들만 왕래하는 시골장도 아니고 이 정도면 20대나 관광객들도 많아서 충분히 젊은 시장이었다. 못 알아보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곳이라고.
이제와서 투덜거려 봤자 도망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나는 얌전히 종이에 사인을 반복했다.
“총각들 이것도 좀 먹어 봐! 사진 한 장 좀 찍어도 되지?”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건어물이며 족발이며 빈대떡이며 하는 주전부리들이 들이밀어지는 이유는 뻔했다.
가게 한구석에 플로스 이휘진, 오프비트 천이세도 반한 집! 같은 문구로 사진을 내걸으려 하는 의도였다.
문구에 내걸릴 그룹명이 스위프 이휘진도, 클라이막스 천이세도 아닐 거라는 점에서 별로 내 이름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와는 달리 태평하게 주는대로 입에 넣고 있는 휘진을 보고 있으니 속이 터졌다.
“아니 그만 좀 먹어요.”
“와. 이세 씨 입에서 그런 말 나오는 거 처음 들었어요.”
“예?”
“아니 보통은 먹으라고 권유하는 편이니까….”
“그거랑 이건 다르죠.”
투덜투덜 거리며 손목이 빠지도록 사인을 해 주고 차로 돌아오자, 아까 샀던 튀김이며 떡볶이 같은 간식이 조금 식어 있었다.
돌아가기손맛으로 구제하는 망돌 인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