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ing For My Villainous Dad's Memories! RAW novel - chapter (30)
악당 아빠의 기억을 찾는 중입니다! 24화(24/40)
진작부터 일어나 저를 괴롭혔어야 하는데.
그는 아이들을 들여다볼까, 하다 관두었다.
‘어차피 자고 있겠지. 뭔 일이 있으려고.’
거기다 하녀들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었다.
오히려 귀찮게 굴지 않아 다행일지도 몰랐다. 어제처럼 행진식에 자기도 데려가라고 떼쓰면 곤란하니까.
“너 나무 밑에 드러누워서 뭐 하냐.”
“신의 계시를 받고 있어…….”
“여러 가지 하는군, 정말.”
“구 아빠, 현 남남 공작님. 내일 있을 행진식에 분홍색 머리를 가진 8살 어린이를 반드시 데려가라는 신의 계시가 있으셨습니다…….”
“따라가고 싶단 말을 참 신박하게도 하지. 당장 안 일어나?”
끄앙. 리린이 파닥파닥 소리 없이 절규하다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하루 종일 바빴다.
까다롭고 빈틈없기로 소문난 저택의 사용인들 틈에 끼어 조잘거리는가 싶다 하면, 또 어느샌가 저택 앞 정원의 나무들을 끌어안거나 돋보기를 들고 화초를 구경하고 있었다.
밝고, 수다스럽고, 친화력 좋은.
그야말로 구김살 없는 꼬맹이였다.
여하튼 그런 어린아이를 대뜸 제 앞에 앉힌 채 행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리린은 뒤의 마차에 타겠다는 말이었지만, 칼렉은 늘 그렇듯 자기 위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황궁에서 황제를 만나면 아이에 대해 귀찮게 물어볼 게 뻔하다.’
이 또한 리린은 황궁까지 따라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칼렉은 역시나 자기 위주로 생각했다.
칼렉이 꽉 닫힌 4층 창문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못 본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됐어. 어차피 혼자 둬도 잘 지내잖아.’
거기다 한 달 뒤면 내보낼 아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입안이 썼다.
하지만 더는 감정이 흔들리는 건 사양이었기에 칼렉은 더 생각하는 걸 관두었다.
긴 행렬이 천천히 공작가를 빠져나갔다.
“와아아아!”
“축하드립니다!”
“에테리온 만세! 윈터발트 만세!”
들뜬 사람들의 환호성을 배경 삼아 칼렉은 느긋하게 수도 한복판을 지났다.
그때, 뒤쪽이 다소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지?”
“아, 엘리사 님께서 마차에 날벌레가 들어왔다며 내쫓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잠시 지체됐습니다.”
돌아보자, 화려한 마차의 출입문이 꽝 닫히는 게 보였다.
“계속 가시지요, 각하. 별일 아닙니다.”
잘 뻗은 칼렉의 눈썹이 크게 한 번 까닥였다. 그가 짧은 한숨과 함께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창문만 열면 될걸, 까다로우시긴.”
* * *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댄 채 바깥을 구경했다.
“호오……. 멋있다…….”
마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엄청났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오색 휘장이 이리저리 나부끼고, 꽃잎이 나풀나풀 춤을 췄다.
바구니를 든 시종들이 여기저기 동전을 흩뿌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선두에서 들리는 뿔피리 소리와 마탑에서 차출된 마법사들이 간헐적으로 뿌려 대는 꽃비까지.
“행진이다……!”
초호화 행진식이야! 멋있어!
“꼬물아, 네 몸이 액체처럼 흘러내린다!”
그때, 짧은 타박이 돌아왔다.
창문 아래에서 빼꼼히 눈만 내 밖을 내다보던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똑바로 앉아야지. 정신 사나워 죽겠구나. 자꾸 그러면 무릎에 앉혀 버릴 테다.”
아름다운 은발을 우아하게 틀어 올린 노부인이 깐깐한 표정을 짓고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공. 죄송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이런 자극에 약하거든요.”
“근데 대체 남의 마차엔 왜 몰래 타 있어?”
그거야…….
‘아빠가 정식으로 따라오는 걸 허락해 주지 않아서죠.’
씨앗 마도구를 움직이려면 엘리사와 동행해야 했다. 마도구를 발동시킬 타이밍을 정확히 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작님은 내게 잔인했다. 마차 구석탱이에도 태워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새벽녘에 몰래 움직였다.
마차 의자 아래에 마도구를 소중히 숨겨 두고, 덤으로 내 몸도 소중히 숨겨 두었다.
마차 관리인이 꼼꼼하게 최종 점검을 마친 뒤 숨은 것이었기에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출발 전 한 번 더 점검한다 하더라도, 이 마차 의자 아래 좁은 공간까지 들여다볼 생각은 못 했겠지.
‘그러다 잠들었는데……. 의외로 꿀잠이었어.’
사실 난 요즘 살짝 피곤했다.
수도 날씨는 정말이지 고약해서 거의 대부분 밤엔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마차가 공작저 정문을 넘고 나서였다.
“후아암. 테오, 잘 잤……!”
“에구머니나!”
“……안…녕하세요? 마차가 너무 예뻐서 구경하려다가…….”
나는 엘리사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미 행진이 시작된 시점이었기에, 엘리사는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적당한 때를 봐서 내려 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나도 적당한 때를 봐서 중간에 내릴 생각이긴 했으니까.’
위험이 닥쳤을 때 바로 움직이려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큰 폭발음을 무서워했기에 엘리사 곁에 있으면 마도구를 작동시키긴커녕,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나저나…….’
나는 흘끔 내 옆에 앉은 귀부인을 훔쳐보았다.
그러고 보니 공작가로 온 이후, 엘리사와 마주하는 건 이게 처음이었다.
하지만 요 며칠 그녀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윈터발트 가문의 사람에게 으레 붙는 수식어처럼, 엄혹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특히 매혹적으로 치켜 올라간 입꼬리와 그 오른쪽에 살짝 난 점이 더욱 깐깐함을 배가시켰다.
그녀가 입은 검붉은 실크 드레스는 몹시 우아했다. 소맷단 하나까지 대단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물건에 대한 안목이 아주 높은 편이라고 하더니……. 소문이 진짜였나 보다.
‘멋쟁이 할머니 멋있다.’
밖에선 얼음 공작이라고 불린다더니. 입 다물면 정말 쌀쌀맞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 반지.”
그때, 엘리사가 휙 고개를 들었다.
“느엑?”
“칼렉 녀석이 정말, 아직도, 네게서 반지를 빼앗아 가지 않았느냐?”
난 눈을 깜빡이다 당당하게 외쳤다.
“네! 왜냐면 그건 제 거니까요!”
그리고 그거 주면 나 내쫓을 거잖아!
“흥, 그놈 성격에 오래도 참는군! 협박을 하든 뭘 하든 해서 진작 강탈했을 줄 알았는데.”
“네에에? 그건 너무 폭력적이잖아요. 저 관청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제국어도 얼추 다 익혔고요. 기억력도 좋고, 사인도 잘해요!”
“하! 억지로 빼앗으면 신고하겠단 말을 정성스럽게도 하는구나!”
“그럼 말을 정성스럽게 하지, 성의 없이 할 순 없죠!”
“도대체 그 요목조목 잘 따지는 화법은 어디서 배웠지?”
“아빠요!”
“그것참, 기똥차구나!”
“네?”
“큼, 기가 찬다는 말이었다.”
“아, 네에.”
엘리사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흘끗 창밖 풍경을 응시했다.
‘곧이야.’
난 꿀꺽 침을 삼켰다. 엘리사에게 기세 좋게 대꾸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아주 긴장한 상태였다.
‘꿈속에서 여관 건물이 지나고 난 다음 미궁이 나타났으니까.’
저 멀리 여관이 점점 더 가까워져 오는 게 보였다.
곧 미궁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등딱지 가방을 꽉 끌어안으며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근데요, 할머니.”
“할…머니?”
노부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앗, 이건 좀 심하게 친한 척이었나.
“저 사실 이렇게 뵙게 되면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뭐지?”
“절 저택에 데리고 와 주셔서 감사하다구요.”
엘리사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날 비스듬히 응시했다.
“덕분에 아빠를 수월하게 만나게 됐거든요. 안 그랬다면 테오랑 길거리에서 자느라 감기에 걸렸을 거예요.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막 생계형 소매치기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생계형 소매치기라도 됐다면 다행이지. 너처럼 조그마한 건 벌써 죽…….”
그녀가 충동적으로 내뱉던 말을 꿀꺽 삼켰다.
“……큼. 됐다. 불길한 말은 하지 말아라.”
나는 헤헤, 웃으며 엘리사 옆에 괜히 더 가까이 앉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어휴우우! 지루해. 저 자식은 왜 저렇게 행렬을 길게 잡았어!”
“웁.”
그 순간, 내가 갑자기 입술을 틀어막자 엘리사가 깜짝 놀라 날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저 갑자기 멀미 날 것 같……. 우욱!”
“안 돼! 내 값비싼 동대륙 실크 드레스에 토하면 안 된다!”
엘리사는 새파랗게 질린 내 안색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는 더듬더듬 힘겹게 말했다.
“저, 저 내려서 저택으로 돌아갈, 웁, 돌아가도 될까요?”
“알겠다, 알겠어! 마차 멈춰!”
엘리사가 탕탕! 벽을 두드리자, 마차가 빠르게 멈추어 섰다.